2005년 봄학기 마감

파일링에 아직 꼽혀있던, 기말고사 때문에 흩어져있던, 구겨져있던 노트 필기를 주섬주섬 모아서 파일케이스에 넣었다. 워드파일로 남겨져 있는 hand-out이나 study-question 같은 것들은 추려서 버렸다. 그래도 파일케이스가 빠방하다. 다음 학기부터는 좀 더 큰 놈으로 마련해야 겠다.

이 파일케이스를 닫고 드디어 한 학기를 마감했다. 책도 안 만들었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 것도 아니었고 운동도 하지 않았고 중간고사 때는 아파서 시험도 거르고 오만가지 일들이 다 있었던 한 학기였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한 학기가 끝났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에 대해서 초보적인 이해를 하게 되었다. 구조주의에 대해서 그리고 미드의 사회심리학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미진하나마 Marx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맛봤고 Plato의 저작을 읽을 수 있었고 여러모로 고대 아테네에 대한 흥미를 키웠다. 옛날이야기 듣듯 고대 중세 근대 경제사를 배울 수 있었고, 국제관계론을 통해 베스트팔렌부터 얄타까지 현실주의부터 구성주의까지 냉전의 소소한 뒷얘기들까지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남은게 없다 탓할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얻은 것을 붙잡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해야한다.

자판기 커피

건조기에 빨래를 넣고 나서 커피를 한 잔 뽑아 들었다. 월요일까지 독서 보고서 두 편을 써야한다. 부끄럽지만 아직 책 한 권을 다 읽지 못했다. (정확히는) 어제 아침, 점심을 먹지 않고 세미나에 통역 선발 심사에 진을 다 빼서 무척이나 졸립지만 기어코 다 읽고 말겠다는 각오다. 취침 시간을 뒤로 미루고 싶거나 어떻게든 말짱한 정신상태를 유지하고 싶을 때, 커피를 마시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고작 이백오십원의 카페라떼 한 잔이 나를 각성시킨다. 앞으로 최소한 두 세시간은 벌었다. 내게 주어진 이 짧은 시간 안에 약 사백오십페이지를 읽고 내일 하루 종일 열 바닥의 보고서를 쓸테다.

선택의 무게

누구도 내게 지우지 않았지만 스스로 어깨에 놓은 짐 때문에 미친듯이 괴롭고 슬플 때가 많다.

김명섭 교수님께서 시간에 종종 다음과 같은 말들을 한다. 히틀러고 스탈린이고 부쉬고 누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 했던 것’이라고. 물론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코웃음을 치고도 남을 말이나, 그네들이 실제로 그러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섬찟하다.

아이데알리스트들의 위험함이 이런 것이다. 만들어진 (만들어놓은) 이상 혹은 이상 세계의 틀을 (마치 여러 모양의 틀로 빵을 찍어대듯) 현실에 덮어 씌우려는데서 생기는 무리함과 성급함 그리고 폭력….

자신이 엘리트라 최면을 거는 사람들 사이에서 수업을 듣고 생활을 하니 마치 내가 엘리트 인양 착각하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김명섭 교수님의 말씀대로) 혹 나의 선택의 무게가 나를 압도할 때가 올 것 같아서 두렵다.

학점

‘수업에 대한 열정의 정도,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서의 성실함의 정도, 수업에 대한 이해도, 수업을 들으며 성장한 정도….’등과 ‘아주 작은 수’의 상관계수를 가지면서 학점은 나온다. 극단적으로 학점은 자신이 이 수업 수강생들의 분포에서 몇 %지점에 위치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이것이 상대평가제도이다.

만약 처음 수업을 듣는 순간에 내가 B와 C 사이 어딘가에 위치했다고 해서 끝날 때도 역시 그 지점에 위치하란 법은 어디에도 없으니 누군가는 ‘시스템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 그 위치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종용되는 경쟁은 사실 어디에도 있는 것이니 생색낼 것 없다.

많은 학생들이 외국어 교양 수강을 꺼려하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생활일본어>, <생활독일어>를 수강했는데 둘 다 B+를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어 수업에는 아쉬움이, 독일어 수업에는 남음이 있는 성적평가라고 생각한다.

우연히도 이 두 수업을 가르쳐주신 분들과 비슷한 시차를 두고 마주치게 되었다. 일본어를 가르쳐주신 미무라 노리아키 선생님과는 1학기가 끝나고 여름학기가 지나고 2학기 초에, 정윤희 선생님과는 2학기가 끝나고 겨울학기가 지나고 이번 학기 초에….

만나자마자 두 분이 처음 하시는 소리가 (물론 단순한 인사치례일 수도 있겠지만) “학점 많이 아쉬웠죠?” 였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대관절 B+씩이나 받고 교수들한테 아우성을 쳐댔길래 얼굴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이런 얘기가 나올까 싶었다.

사실 객관적으로 B+이라는 학점이 자랑스럽데 들이댈 학점은 아니지만 나는 나름대로 외국어 수강에 있어서 ‘선방’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따라서 후회도 없는 것이고 어느 정도 만족도 하고 있고…. 오히려 B+보다 얻은 것이 많아 내가 감사해야 할 판이다.

책 이사

끈이 되는만큼 책을 묶고 잡동사니들을 박스에 넣어 포장하고 그렇게 새벽 네시까지 깨어있었다. 10시에 일어나서 싸놓은 짐만 우선 학생회관 편집실로 옮기기로 했다. 차로 기숙사에서 학생회관 앞으로 이동한 뒤 간신히 1층 로비로 옮겨놓고, 샌드위치와 자판기 커피를 마쉬며 숨 좀 돌리고 있다.

신영복 선생이 貧者의 계절은 여름이라지만 이 좁은 감방에서는 차라리 겨울이 낫다고 했던가? 이유는 여름의 열기 속에서는 옆에 누운 한 사람이 단순한 열을 내는 덩어리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충 이러한 이유 때문에 차라리 옆에 있는 사람을 끌어 안을 수 있는 겨울이 낫다 했다.

이사가 싫은 것은 몸이 고단하기 때문 만이 아니라 항상 곁에 두고 아껴야 할 책들이 단순한 짐 이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책 한 묶음 한 묶음을 옮기면서 한 숨을 쉬곤 하는데, 그렇다고 책 사기를 하지 않을 것은 또 아니니. 읽고 팔고 순환주기를 빨리하면 이런 걱정이 없어지려나?

다섯 번째 이사

고향집에서 서문 하숙집으로의 이사.
하숙집에서 홍대 근처 친구 자취방으로의 이사.
자취방에서 별장 원룸으로. 별장에서 기숙사로.
이제 기숙사에서 다시 고향집으로.

짐꾸리기만 이번이 다섯번째. 적지 않은 양의 짐이다. 책은 더 늘어났고 옷가지들은 겨울 옷이라 더 두꺼워졌다. 신발도 하나 더 늘었고 뭐 그렇다. 일단 책은 노끈으로 묶어서 편집실에 옮겨놓을 생각이고 옷가지나 자질구레한 것들은 모조리 고향집으로 보낼 작정이다. 내 핏 속에 유목의 지류는 없는지 이사 시기만 되면 괜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완연한 정착은 언제나 이뤄질런지….

비범함

정확히 2004년 2월에 상경, 좋아하는 책들과 아직 덜 읽은 책들과 그리고 공부하는 책들, 입을 옷, 이렇게 주섬주섬 챙겨서 연희동 하숙집으로 이사했다. 그렇게 3월, 4월, 5월, 6월, 7월을 보냈다. 정확히 5개월을 이 방에서 보냈다.

어제 파병반대 집회에 참석한 뒤에 H형과 김밥천국에서 허기를 채우고 나서 생활에 대해서 얘기했다. 요전까지 나의 무기력하고 불규칙하며 무계획적인 생활에 대해서. H형은 한마디 해줬다. “가족이 없어서 그래.”

가족이었다. 난 정확히 18년 2개월을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밥은 언제나 아침 점심 저녁으로 어머니께서 준비해주셨고 빨래도 물론 어머니께서 해주셨다. 방청소는 내 몫이었지만 어쨌든. 난 내 생활의 대부분을 가족과 공유하고 있었고 알게 모르게 가족들은 내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이루고 배워나가리라, 했던 당찬 결심은 이내 흔들리고 마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하나 둘씩 날 발목 잡았다. 모든 일을 나 혼자 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한 편으로는 벅찬 일이다. 더군다나 생활이라는 것은 순환의 고리와 비슷해서 한 번 악순환의 싸이클을 타면 쉽사리 헤어날 수 없다.

오늘 하숙집을 비우기 위해서 짐을 싸면서 이것저것 생각했다.

내가 이루려는 것이 무엇이든, 내가 내 삶을 통해서 실현하려는 의미가 무엇이든, 정말 그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 위대해지자고 스스로 위대하면서도 초연해지자고. 정말 지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시 비범해지자고 생각했다.

1학년

아직 1학년이니까,
여유있게 책을 읽고 충분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을 충분히 거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

솔직히 알고 싶은 내용, 읽고 싶은 분야는 너무나도 많고 알아야하는 내용, 읽어야하는 책들도 너무나 많다.

때로는 이 순간에 책을 잡고 앉아있는 것이 방법론적으로 옳은 행동일까 고민하기도 한다. (바로 그 때문에 가끔 집중을 흐리지만) 그래도 아직은 시간이 있다는 핑계로 고개를 젓고 다시 책을 집는다.

그렇지만 책을 읽어도 별로 남는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는 그냥 머릿속은 텅비어있고 날이 갈수록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것 같은 순간에는 … 괴롭다. 내 입에서 읊는 것은 누군가가 했던 말, 어디선가 들은 말 뿐. 내 생각은 어디있고 내 방식은 어디있나.

홍세화가 말하는 ‘무식한’ 대학생이 바로 나다.
다치바나다카시의 ‘무식한’ 독서력에는 따라갈 수가 없고.

하지만 나는 아직 젋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최면을 걸 수밖에 없다.

한비야 씨는 “꿈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질 수 있어도, 목표는 하루에 한 발짝씩 걸어가야만 도달할 수 있다.”는 격언을 인용했다.

아버지께서는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다보면 어느 새 정상에 도착해 있을 것”이라며 집착하고 조급해하지 말라고 하셨다.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큰 꿈, 이상.
나를 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목표, 현실.

박노해 시인 특강 수강기

금요일 5,6교시 정치학입문(김기정, 김성호, 진영재 교수 팀티칭)시간에 김기정 교수님께서 7,8교시에 연희관 404호 강의실에서 박노해 시인의 특강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특강은 분위기 있게 시작했다. 열정적인 음악. 메르세데스 소사. 그리고 봄. 박노해 시인의 과거사.

  • Intro : Merecedes Sosa – ‘Gracias a la vida’

  • 감옥에서‥
    • 절 받는다 – 저를 받는다 (낮음, 겸허함)
    • 나쁜사람 – 나뿐인 사람, 아상은 하늘도 어쩌지 못함.
  • 큰 배움은 큰 물음을 던지는 것
    • 인생관·세계관·가치관 → 이 3가지 것들에 끊임없이 큰 물음을 던져야 한다.
    • 존재의 근원적인 이유에 대한 책임
    •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멀리 바라볼 수 있었다” → “거인은 어깨에 태워줄 수도 있지만, 그 거대한 발로 우리의 머리를 짓밟을 수도 있다” 거인(=역사, 관습, 시스템)
    • 기존의 것들에 대한 거대한 물음
  • 젊음
    • 젊음은 곱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 세계와 不和하는 것. 세상에 간택당하는 노예가 되지 말라.
  • 진리
    • “진리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깨치는 것이다”
    • “길을 찾는다는 것은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수풀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 “사랑은 몸을 던져서 하는 것, 머리로 계산하면서 하는 것이 아니다”
    • “진리를 배우려고 하는가, 진리를 살려고 하는가. 길을 찾으려고 하는가, 길을 걸으려고 하는가. 사랑을 말하려고 하는가, 사랑을 하려고 하는가”
    • “저항과 투쟁에도 때가 있다”
    • “리더는〔가치중심-인간미〕를 가져야 한다.”
    • “가난은 미덕, 예수는 왜 한마리 양을 찾아 내려갔는가”
    • “머리보다 가슴보다, 손과 발. 발은 그냥 발이 아닌 정신의 발”
    • “늙은 개처럼, 채이고 밟혀도 묵묵히 가야한다”
  • 봄 그리고 진달래와 철쭉.
    진달래는 봄을 붉히고 쓰러진다.
    진달래가 쓰러지더라도 봄은 봄이다. 진달래는 봄을 열고 사라진다.

중간중간에 읊어주는 詩. 그 역시 감동적이었다.

나눔문화에 대한 설명과 100-10-1에 대한 얘기.

아마 그것은 모든 대학생들이 공통적으로 해줄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100권의 古典을 읽고, 10명의 벗을 사귀고, 1명의 참스승을 만나라” 그리고 “사랑만큼의 실력을…”

모든 강의가 끝나고, 질문과 답변 시간도 끝이나고, 직접 만나뵈어 사인을 받았다. 한 자, 한 자에 정성을 기울여서 쓰시는 모습..

“마음이 깊으면 꽃이 핀다!”
2004年 봄날
박 노 해

오늘 강연에서 참 많은 것을 얻었다. 요즘 내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들에 대해서 나름대로 구체적으로 약간의 힌트를 얻은 것이다. 게다가 「나눔문화」라는 단체에 대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시간이 된다면 직접 참여해보고 싶다.

진정 나를 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