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청주 출장

목요일 서산, 월요일 청주, 충청 민심을 읽으러 바쁘게 돌아다녔다.

서산에서는 임관 동기들을 만났고 장장 아홉 시간을 고속도로 위에서 보냈다.

청주에서는 사회 보도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J기자님을 면알했다. 네이버 검색 결과, 유사 석유 판매, 무면허 시술, 초등생 성추행, 보험 사기 등 언뜻 보기에도 쉽지 않은 사건들만 보도했다.

오늘 만날 줄 알았다면, 미리 좀 찾아보고 영상들도 확인했을텐데, 마냥 즐거운 얘기만 나눴다. 저런 보도를 하면서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을 테다. 아니면, 내가 너무 아마추어적인 건지….

밤 기차를 타고 부산역에 당도하여 늘어선 택시 중 하나를 골라잡아 숙소로 돌아왔다. 군 부대로 간다고 하니, 군인이냐면서 본인의 군 생활을 늘어놓는 기사님 덕에 크게 심심하지 않았다.

방에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 것도 없다. 룸메이트가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싹 비워져있다. 며칠 전부터 방을 옮기라는 얘길 듣긴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옮겨질 줄이야.

하라면 하는 게 군대라지만, 협상의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게 답답하다. 타인을 배려한 지시, 아랫사람을 고려한 결심은 드물다. 이런 조직에서는 자존감이 아주 강하거나 자기 합리화에 특히 뛰어난 이들만이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으리.

내일은 나도 방을 옮겨야 한다. 군 생활 내내 방 문제 때문에 몸 고생, 마음 고생했더니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앞으로 6개월이다. 좋고 나쁜 일이 많았지만, 나쁜 일만 오래 남을까봐 걱정이다.

몸 길들이기

해가 지고 한참이 흘러도 뜨거운 바람이 부는 대구의 여름이다. K의 모교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했다. 정확히는 공부는 따로 했고 식사, 휴식만 같이 했다.

K와 이렇게 같은 목표를 공유하는 건 고등학교 3학년 때 이후로 처음이다. 그때가 2003년이니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K는 다 잘 될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지만, 나는 조금 두렵다.

오늘도 오전 내내 LEET 기출 문제를 풀었는데, 몸 상태가 별로인 걸 알 수 있었다. 내 몸은 내가 안다. 남은 시간 동안 감각을 예리하게 다듬어야 한다. 컨디션이 딱 올라왔다고 느껴야 자신감도 생긴다.

방법은 딱 하나다. 몸을 길들이는 거다. 그것도 무식하게. 오늘은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식사, 휴식, 산책 빼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었다. 땀이 차고 좀이 쑤셨지만 버텼다.

악셀 하케와 조반디 디 로렌초가 쓴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푸른지식, 2011)을 읽었다. 저자들과 고급 수다를 떤 느낌이다. 경험에서 출발하는 얘기는 무엇이든 좋다.

다니엘 벤사이드의 『저항 -일반 두더지학에 대한 시론』은 책장만 넘기는 수준이었고,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도 마찬가지였다. 내일은 이 지점에서 다시 올라가야 한다.

칼퇴근

임관 2년 5개월 만에 칼퇴근이 무엇인지 몸소 깨치고 있다. 약 1년을 스케쥴 근무를 뛰었고, 나머지 1년 5개월은 출근은 누구보다 빠르게 퇴근은 기약없는 생활을 했다. 그래서, 아직은 퇴근시각에 사무실을 나서는 게 영 어색하고 불안하다. 숙소에 돌아가도 전화가 와서 당장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라고 할 것만 같고, 꼭 등 뒤에서 누가 잡아끄는 것만 같고 그렇다.

룸메이트는 이런 나에게, “아주 당연한 것을 이제야 누리는 것 뿐이다.”라고 깔끔하게 정리해줬다. 이 말에 기운이 나긴 했으나, 막상 날이 밝을 때 숙소에 돌아오니 당장에 무엇을 할지 고민이 됐다. 계획해둔 건 있었으나, 놀라움과 불안함과 설렘이 뒤섞여 이러지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침대에 누웠다. 잠깐 누웠다 일어나려고 했는데 그렇게 22시 35분까지 잤고, 그 뒤로 약 1시간 정도 운동을 했다.

18시부터 태권도 승단심사 응심자 연습이 있었다. 차라리 거기라도 갈 걸 그랬다. 인근 도서관에 가서 연체도서도 반납하고, 토요일에 있을 라이프가드 필기 검정 준비도 하고, 밀려있는 책들도 마저 읽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주 꿀맛같은 저녁 잠에 이 계획들이 실행되지 못했다. 플래너라는 건, 실행하지 않으면 있으나마나 한 것이다. 훌륭한 성공 파트너가 한갓 자기 위안 도구로 전락하는 데, 많은 사연이 필요한 건 아니다.

객관적으로 실행에 큰 무리가 있는 계획은 아니었지만, 어제의 야간훈련 및 기타 상황을 고려해서 사전에 조정하는 게 보다 현명한 대처였을 것이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이대로 잠들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는 차라리 계획을 연기하는 기민함과 대범함을 보였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냥 내 몸이 시키는 바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따랐다. 이런 선택, 결정이 때로는 옳기도 하고 순리에 맞다는 것도 알지만, 종국에는 자괴감, 자신감 결여로 돌아올 것도 안다.

계획대로 사는 것, 계획한 대로만 이루어지는 삶, 둘 다 따분하고 매력없다. 인생의 진미는 의외성, 우연성에 있다. 그러나, 계획한 만큼도 해내지 못하는 상태에서 돌발적인 상황을 여유롭게 대처할 생각은 말아야 한다. 계획을 세우고, 조정하고, 평가하는 건 우연적 요소가 개입할 여지를 최대한 줄이고 줄인 후에, 그럼에도 찾아오는 불청객을 따스히 맞이하기 위해서다.

새 사무실로 첫 출근한 날

손으로 적는 일기장을 대구집에 놓고 오는 바람에 부득불 이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새 사무실로 첫 출근한 날이었다. 7시 30분은 되서야 방을 나섰다. 작년에는 6시 45분 정도에 방을 나섰고, 올해는 7시 이전에 방을 나섰던 걸 생각하면, 상당히 여유로워진 셈이다. 아침 시간을 좀 더 활용하는 편이 좋겠다.

아침에는 새 사무실, 새 자리에 앉아 먼지도 털고 책상도 닦고 철지난 문서나 자료들도 치우고 내 물건을 배치했다. 직능에 걸맞는 업무도 파악해야 했고, 내가 관리해야 할 자료들도 하나씩 하나씩 인수했다. 익숙하진 않지만, 버겁지도 않다. 배울 일이 있다면 주저하고 싶진 않다.

이제 전역까지 6개월 정도 남았는데, 무슨 일을 하겠어, 라는 시선이 있다는 건 안다. 그런 시선이 일반적이라는 것도 안다. 분명 내 안에서도 그냥 대충 때우다 전역하자는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어디서나 제 몫을 해내는 사람이고 싶다. 이 과정에서 내 적성, 내 재능, 내 강점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이미 어느 정도 고정된 관계에 끼어든다는 건 불편하고 복잡한 과정이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들은 나에게 어느 편이 될지 결정하라는 주문을 하는 듯도 하다. 나는 언제나 어느 편도 아니면서 모두의 편이고자 하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입장을 취하지만, 그게 어정쩡함이 되거나 절묘한 균형이 되거나, 내 할 바에 달렸다.

오늘 또 한 번 알게 된 것인데, 나는 상대방이 자신의 발화에 강하게 공감하길 원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 도무지 어쩔 줄을 모르겠다. 특히나 그가 “남 얘기”를 하고 있다면, 더군다나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라면, 나는 내가 건성으로 듣고 있다는 티를 내고야 만다. 아니면, 아주 삐딱한 반응을 보여준다.

내가 듣는 이의 자세가 부족하다는 건 인정한다. 나는 곧 죽어도 내 할 말은 하려고 하는 유형의 사람이라서 더욱 그런 면이 있다는 것도 안다. 이 부분은 확실히 개선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듣는 이가 되는가. 이건 나중에 더 생각해보자.

나의 부족함과는 별개로 “남 얘기”를 하는 건, 쉽게 용인하기가 어렵다. 특히나 자신의 편협한 관찰 혹은 판단에 동의, 공감하기를 바라는 뉘앙스를 풍길 때면, 참으로 불편하다. 인간은 누구나 뒷담화를 한다. 그러니 아주 자연스레 한 귀로 흘려넘기면 될 일인데, 너무도 어색한 반응이 나온다.

어쩌면, 그 ‘남’이 언젠가 ‘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예감 때문일까? 그럴 가능성이야 인간 사회에서 상존하는 것이니, 대범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그래야 정신건강에도 유익할 것이다. 나는 상사들이 자신을 술안주로 올리는 부하직원들의 맹랑함을 너그러이 눈 감아주어야 한다는 쪽이기도 하다.

현장에 있는 ‘나’와 ‘너’가 서로 맞대고 앉아 할 얘기가 고작 “남 얘기”, 그것도 “남 좋지 않은 얘기” 밖에 없는지, 이 실태가 서글프기도 하다. 그것 말고라도, 좀 더 진솔하고 진취적이고 생산적인 담화를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내가 그런 담화를 나누고픈 상대방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부터는 마음과 귀를 함께 열고 진심으로 들으려 노력해보자. 바로 반응하지 말고, 곱씹어 생각하고, 또 생각한 뒤에 정중하게 나의 의견을 알리자. 네/아니오, 긍정/부정으로 답하기가 부담스럽다면, 아리송하고 갸우뚱한 그대로를 솔직하게 역시 정중하게 내뱉자. 그리고 나서, 다시 이 문제를 고민해보자.

부관 하번

퇴근했으니 서둘러 대구로 떠나얄텐데 방 정리를 핑계로 이렇게 꾸물거리고 있다.

주말 내내 수영에 숙제에 시달릴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실은 내일 내야할 숙제도 다 못해서 걱정이다. 집에 가서 시작해도 새벽에야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2009년 12월 9일부터 시작됐던 내 삶의 한 부분이 이렇게 갑자기 끝나게 될지는 몰랐다. 담담하게 받아들이곤 있지만 서운함, 상실감은 어쩔 도리가 없다.

살다보면 정말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진다. 나와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일이 나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저 받아들이고, 잘 넘기면 된다.

약 1년 5개월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많이 배웠다. 아쉽게도 최선을 다하진 못했다. 이렇게 갑자기 끝나니, 뭔가를 해 볼 기회마저 없어졌구나.

남은 8개월이 어떻게 될지도 조금 걱정이다. 어쨌거나 새 환경, 새 사람, 새 일…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자.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갈 것이다

등신 같이 토익 접수 기한을 놓치고 업무에서 자잘한 실수는 여전해도, 나는 요즘 참 행복하다.

다른 이유가 없다. 오래 기대했던 대한적십자사 수상인명구조요원 교육을 실제로 받고 있고, M.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차분하게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는 게 좋다. 지금의 내가 그럴 여유가 있다는 것도 좋다. 성난 얼굴이 아니라 따스하게 돌아볼 수 있어서 더욱 좋다.

당시의 내가 미숙하고 부족했음은 인정하지만, 과거를 그리고 과거의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예전보다는 지금의 내가 나를 더 잘 알게 됐기 때문이다.

특별히 성과를 내거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일상이지만, 그래도 좋다. 가끔씩 전역 이후의 삶에 대한 구상이 흔들릴 때마다 불안감이 엄습하지만, 그래도 좋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갈 것이다. 그 외의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전속

성탄 전에 옮기는 것이 확실하다. 아무리 늦어도 내주중이다. 이 객관적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차근히 준비를 해야한다. 적응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이리저리 치이다보면 금새 익숙해질 것이다. 다만, 정리는 내가 나를 채근하여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잘 하기가 어렵다. 심란한 마음도 추스리고, 널부러진 짐도 챙기고, 도움주신 분들도 챙기고, 그렇게 빈틈이 없도록 해야한다.

변수를 끌어안고 가는 것

성탄은 넘길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을 수 있다는 걸 오늘 알았다.

촘촘히 짰던 계획은 뒤틀릴 것이고, 덩달아 내 속도 뒤틀릴 것이다.

그래도 어쩌랴!

한 친구의 말처럼, “삶이란 변수를 쳐내는 것이 아니라 변수를 끌어안고 가는 것”이니,

잡을 것은 잡고, 흘릴 것은 흘리고, 그렇게 우주의 시절 인연이 이끄는 대로,

혹은 어느 종교의 표현을 따르자면, 주님께서 예비하신 대로,

또 어디론가 나 역시 흘러갈 뿐이다.

삶의 실험, 실패도 성공도 없는 오로지 삶

근래 나의 최대 관심사는 2011년 한 해의 거취 문제이다. “쿨한듯 쉬크하게” 초연한 척 하고픈데 그게 잘 안 된다. 어디까지나 수양이 부족한 탓이다.

활자가 눈에 잘 안 박혀 필사를 하고 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손을 단련하는 데 필사만큼 효과적인 건 아직 찾지 못했다. 운동도 다시 신경써서 하려고 한다.

나는 누구보다도 밥벌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가급적 사교육 시장의 일원이 되는 건 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교육은 정말 필요한 학생만 이용하고,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입장을 지지한다.

다만, 그렇게 벌어먹고 사는 사람을 나쁘게 말하고 싶진 않다. 나도 한 때는 그들 중 하나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없으니까. 궁하면 뭐라도 해야하는 법이다. 그런 이들을 욕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대학원에 진학하든 유학을 가든 아카데미를 다니든 계속해서 뭔가 ― 아마도, 정치학 ― 를(을) 배울 생각은 있다. 그러나 전업 학자가 되어 식솔을 꾸릴 생각은 않는다. 그러려면 반드시 교수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되고자 노력하는 건 이제 그만 좀 하고 싶다.

누군가는 “차라리 기술을 배우라”고 했다. 그것 뿐이 아니다. 내 삶에 대한 기대를 확연히 낮추어야 한다. 먹을 것 덜 먹고 입을 것 덜 입어야 한다. 처음에는 안 하는 것이다가 나중에는 못 하는 것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야 한다.

굳이 고르라면 풍요보다는 존엄을 택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말이 곧 풍요는 존엄과 배치된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자본가나 대지주가 아니며 더는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픈 내 존재의 실존적 결단이다.

현재로선 시한부적 결단이지만, 이 삶이 그럭저럭 괜찮으면 평생 이렇게 살아보려 한다. 한마디로 “삶의 실험”(Life Experiment)이다. 실험이니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다. 삶이니 실패도 성공도 없다. 오로지 삶이다.

세상에 질문을 던지며 살라

우라사와 나오키의 <마스터 키튼>(マスターキートン)을 보며 “인간은 언제 어디에서도 배울 수 있다”는 말을 가슴에 담았고, 대학 졸업 후 입대하여서는 하물며 군대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기본군사훈련을 받는 도중에 박이철 선배의 강연을 들었다.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는 시간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가 아래의 강연 내용을 듣고는 귀가 번쩍 뜨였다.

“언젠가 아들 녀석이 하늘은 왜 파랗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나는 다시 되물었습니다. 너는 왜 파랗다고 생각하느냐고….

아들은 아무말도 없더군요.

여러분, 질문을 하는 쪽이 이기는 겁니다.

세상의 질문에 답하기보다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며 사세요.”

세상에 질문을 던지며 살라. 고된 훈련과 수면 부족으로 찌들어 있던 나는 순간 짜릿함을 느꼈다. 그래서 곧장 노트에다 적고, 그날 저녁 훈련일지에도 적고,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적고, 몇 번을 되뇌었다. 그러나 정작 이 말을 행동으로 옮기고자 결정한 것은 최근이다.

나 혹은 우리는 지금껏 세상의 질문에 답하느라 바빴다. 수능점수, 학점, 스펙, 연봉…,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가느라 허덕였다. 이제 더는 세상이 내주는 질문에 맞추어 나를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고, 모범답안을 내놓지 못하는 스스로를 책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나도 세상에 물음을 던질 것이다.

이제는 내가 묻고, 세상이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