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5번째 주의 회고

2017년 24번째 주의 회고

매일 같이 점심 약속이 있어 gym은 한 번도 못 갔지만, 금요일 오후에 축구를 했고 토요일 오전에는 농구를 했다. 중국어 공부는 조금 소홀했고, 책 읽기는 여전히 의욕적으로 하고 있다.

  1. 가족
    • 총총이는 생후 9개월에 접어 들었다. 잘 크고 잘 논다. 반면, 먹는 양은 잘 늘지 않는다. 아내와 합의 하에 수면교육(취침플랜)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제 잠버릇만 제대로 들이면 삶의 질이 조금 더 올라갈 것 같다.
    • 예상보다 일찍 아내와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그 시간을 통해서 아내도 나도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 대화 이후에 아내가 나를 배려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느껴진다. 나 역시 그에 대응하게 되니 긍정적인 피드백이다.
  2. 건강
    • 체중 감소세는 여전히 완만하다. 그런데 체중이 적절한 지표는 아닌 듯 하다. 주말 아침에 농구를 하기 때문인지 예전보다 활력이 생겼다. 총총이의 잠버릇이 들면 아내도 나도 양질의 수면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차주 월요일 오전부터 새 운동을 배운다. 매우 수요일 저녁에 있다는 테니스 모임은 아무래도 참가하기가 어렵겠다.
    • 일 자체에 좀 더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능력이다. 어찌되었건 마무리를 잘 하고 싶다.
    • 일-학습을 연계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 업무시간 중 짬을 내어 ‘회사법’을 다시 보아야겠다.
  3. 학습
    • 중국어 학습은 지지부진. 진도가 밀렸다.
    • 그외 학습과 무관한 독서는 열심히 하고 있다: 『딥 워크』,『플랫폼 레볼루션』,『기술중독사회』,『레비씨, 픽사에 뛰어들다!』,『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4. 관계
    • 티 나지 않게 변화를 꾀하고 있다. 티 나지 않더라도 노력은 노력이다.

2017년 24번째 주의 회고

리바운드라고 할까, 리밸런싱이라고 할까. 잠시 쓰기를 중단했던 다이어리를 다시 쓰고 있고, 몇 주 만에 다시 gym을 방문해서 운동도 했다. 책 읽기도 의욕적으로 하고 있고, 중국어 공부도 시작했다. 앞으로는 금요일 저녁 일정을 비우고 한 주를 회고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여기까지가 금요일 저녁, 아래부터는 일요일에 이어서 작성했다.)

  1. 가족
    • 정해놓은 방향으로 총총이를 유도하려 하지 않고, 총총이의 상태를 세심히 관찰하면서 총총이가 원하는 바를 빨리 알아차리려고 노력했다. 토요일 낮에 총총이를 업고 책을 읽어주었더니 곤히 잠들었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한 듯 싶다. 기사, 방송, 인터넷 가십을 나누는 껍데기 대화말고 서로의 진짜 감정, 욕구를 공유하는 그런 대화를. 존중하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정말 소중하다, 정말.
  2. 건강
    • 지난 토요일 오전 농구에 이어 이번 토요일에는 오전 축구를 했다. 주중에 하루 뿐이었지만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gym에 다녀오기도 했다. 다음 주에는 좀 더 횟수를 늘리고 밀도도 높이고. 체중변화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활력이 느껴진다.
    • 기존에 하는 일도 새로 맡을 일도 더 잘 해내기를. 제때 착착 해내는 것에서 운이라는 것이 생겨나는 법이다. 하고 있는 일 매듭 잘 짓고, 매사에 긍정적으로 대응하기를.
  3. 학습
    • HSK 4급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압도되지 않기 위해 조금씩 쪼개서 매일 자주 반복해야 한다. 첫 주 스타트는 나쁘지 않으니 차츰 페이스를 올려야 할 것이다.
    • 독서는 학습과는 별 관계 없는 『레버리지』 그리고 『한국의 젊은 부자들』, 이렇게 두 권. 선물 받은 『아이들은 모두 문제아』도 조금. 앞으로는 분야를 정해놓고 경중을 달리해서 10권을 채운 다음에 다른 분야로 넘어가는 방식의 독서를 생각 중이다.
    • 대학원 진학, 여전히 고민 중이다. 공부해보고 싶은 것은 많은데 그 중에 하나를 고르기가 쉽지 않다.
  4. 관계
    • 없어도 되는 말은 굳이 내뱉지 않아도 좋다. 그리고 말을 않을 거면 표정으로도 내색하지 않도록 하자.

용기

‘존경’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한낱 인간’일 뿐인 누군가를 쉽게 존경하고 쉽게 실망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사랑에 빠져들 때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을 걱정하지 않듯이, 언젠가 다가올 실망의 순간을 미리부터 겁낼 것은 없었다.

오늘 나는 ‘용기’에 대해서 들었다. 진실을 판가름 하는 일의 중요성 못지 않은 우리 스스로가 가진 진실을 밝히는 것의 위중함에 대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라도 진실을 위하여 맞서 싸울 수 있는 그 용기에 대하여 말이다.

큰 시험까지 이제 백 여일 남짓, 한 줌의 지식을 더하는 작업에 열중하면서도 지혜와 용기를 잃지 않고자 매일의 나를 단련해야만 한다는 것을, 오늘의 나는 알았다.

나는, 또, 다시, 일어선다

누가 넘어뜨리던 제 발에 걸려 넘어지던 다시 일어났다. 누워 엎드려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언제고 다시 일어나서 “What’s next?”를 물어왔다. 아픔과 쓰라림은 그 속에서 어떻게든 아물었던 것 같다. 실은 나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 정도 아픔과 쓰라림 쯤은 호사스러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었다.

어릴 적에는 누가 아버지 얘기를 하는 것이 몹시 싫었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에 대해서 누군가가 고의든 실수든 함부로 말하게 되는 것이 싫었고, 동시에 아버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마치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도 되는 양 내 스스로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는 것도 싫었다. 왜 당당하고 뻔뻔하지 못했는가, 지금도 부끄럽다.

며칠 전, 모처에 지원하는 서류를 완성하면서 부모님께 두 분의 최종학교명을 여쭈었다. 최종학력은 알고 있었기에 지금껏 부모님의 마음을 긁지 않을 수가 있었는데, 최종학교명을 적으라는 서류는 처음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여쭙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얼굴이 화끈거리시는지 아이고, 부끄러워서 어쩌느냐, 혹시 부모의 학력 때문에 아들이 불이익을 입게 되는 것은 아니냐, 하시며 난감해하셨다.

나는 당연히 두 분의 짧은 가방끈에도 불구하고 딸, 아들을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낸 것은 상찬받을 일이지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능글거리는 투로 말씀드렸다. 웃음. 다음날 아침 두 분께서는 밥상 앞에서 서로의 부끄러움을 공유하시고는 그래도 우리 딸, 아들은 나중에 자식에게 부끄러울 일이 없을 터이니 참 다행이라고 멋쩍게 웃으셨다고 한다.

서울사투리를 능숙하게 흉내내는 내가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고 하면, 어디 갱상도 사투리를 들어보자며 정당은 보수당을 지지하는지 야구는 삼성라이온즈를 응원하는지 묻는 사람들이 왕왕 있었다. 나는 해태타이거즈를 응원하며, 부친의 고향이 전남이셔서 그 영향을 받았다고 답한다. 물론 지금의 나는 엘지트윈스를 응원한다.

아버지가 왜 고향 땅을 두고 지역감정이 남아있는 타향으로 이주하여 생계를 잇고 가족을 꾸리게 되었는지 그 구구절절함에 대하여는 아버지로부터 직접 들어 알게 되었다. 그러나 기댈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두 발과 두 손으로 일어서는 일이 얼마나 힘겹고 처절한 것인지, 그 어려움에 대하여 어렴풋 알게 된 것은 부끄럽게도 최근의 일이다.

촌로가 우골탑을 쌓는 심정이셨을까. 아버지께서는 내가 관직에 나아가기를 내심 바라셨다. 오죽하면 이름도 벼슬 관(官)자를 써서 ‘관희’로 지으려 하셨단다. 그 시도를 막아주신 백부님 감사합니다. 공군장교로 ‘임관’하였을 때도 그렇게나 기뻐하셨다. 그러나 나는 고시공부는 끝끝내 싫다고 내뺐다.

어려서는 웹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의무적 야간자율학습을 빠지고 입시미술학원에 다니겠다는 철부지가 아버지는 어찌나 한심하셨을까. 그럼에도 아버지는 직접 학교로 오셔서 담임교사를 설득해주셨다: “우리 아들이 하고 싶어하는 대로 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아들의 결정을 한 번 믿어보겠습니다.” 그때 나는 역설적으로 내 결정에 뒤따르는 책임의 무게감에 섬뜩했다. 딱 1년 만에 쪼르르 학교로 돌아갔다.

지금의 나는 무엇이 되고 말고의 문제는 중요하기는 하지만 결정적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우리는 잠들면서 부디 내일 아침에도 눈 뜰 수 있기를 바라는 존재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숨 쉬는 순간에는 마치 영생을 약속 받은 것처럼 대담함과 무지함을 겸비하고 살아간다. 나는 오늘 또 하루 넘어졌지만, 내일 또 넘어질지도 모르지만, 또 다시 일어선다. 이것이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음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 있다(The greatest glory in living lies not in never falling, but in rising every time we fall).”

–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1918~2013).

삶에 대하여 진지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한 번도 삶에 대하여 진지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그러나 내가 그만큼 나의 삶을 소중하게 대하였는지는 의문이다.

힘든 공부 속에서도 즐겁게 지내고 있는 스스로가 대견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반문하게 된다.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너무 편했던 것은 아닌가? 누구보다 힘겹게 공부했어야 했는데 스스로의 기준이 너무 낮았던 것은 아닌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잊고, 뒤늦게 실망 혹은 자책하고… 이 패턴을 반복하다보니 자신에 대한 기대가 낮아졌고, 어느샌가 아예 아무런 목표도 세우지 않게 된 것은 아닌가.

지금 나는 누군가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나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나를 믿는다. 이 말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어려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닌 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자신있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자신있게 나를 한 번 믿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려면 나를 다시 추스려야 한다. 당연히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바로 생활이다.

생활을 바로잡자.

다치고 나서 느끼고 알게 된 것들

사소하지만 고의적인 부주의로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었다. 부상 부위는 오른쪽 엄지발가락. 이동이 잦으니 회복도 더디다. 아무튼 간에 다치고 나서 느끼고 알게 된 것들이 있었으니…

  1. 일단, 아프면 다치면 서럽다. 발을 다쳤는데 어째서인지 마음까지 아프다… 몸이 불편하니까 마음이 위축된다. 의욕도 없어지고 귀찮아진다.
  2. 세상(어쩌면 2013년, 대한민국)의 속도는 정말 빠르다. 특히,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는 그렇게 긴 편이 아니다. 그리고 갑자기 차가 돌진해도 피할 수 없으니, 위험천만하다. 버스도 절대 기다려주지 않는다… 잡을 수 없는 것에 마음이 조급해지지 말자, 라고 몇 번을 다짐했는지 모른다.
  3. 나의 몸/마음이 아주 건강하다고 생각했으나,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특히 마음이… 그러니까 이 정도 다친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버텨낼 줄, 견뎌낼 줄 알았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나의 이런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4. 다쳤답시고 도와주고 배려해주고 걱정해주고 챙겨주는 주위 사람들이 (설령 도움이 안될지언정)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고맙다.
  5. 부모님은 나를 정말 사랑하신다. 스물아홉 먹은 아들의 징징거림을 받아주시다니… 기대고 싶을 때, 기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정말 감사했다.
  6. 내가 부지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걷는 게 느리니까 수업이나 약속에 늦기가 부지기수. 예전에는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닌 덕분에 게으름이 주는 악영향이 상쇄되었던 것이었다.
  7. 절뚝이며 걷고 있으면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이 내 발을 많이 쳐다본다. 눈이 그리로 향한다는 것이 내 눈에도 보인다. 그게 은근히 사람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8. 아픈 사람을 보면 괜한 동지애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아파봐야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이 있는 것일까. 꼭 일부러 아플 필요는 없겠지만. 그리고 병원을 가보니 사람들이 정말 많이들 아프구나, 알게 됐다. 세상에 아픈 사람들 많구나…
  9. 겸손해졌다. 그 말인즉 내가 그만큼 오만하게 굴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걸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10. 신앙에 대하여 아주 약간 더 진지해졌다. 물론 그저 주일미사를 좀 더 꼼꼼히 챙기는 정도이지만. (2013.12.8. 추가)

변수를 끌어안고 가는 것

성탄은 넘길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을 수 있다는 걸 오늘 알았다.

촘촘히 짰던 계획은 뒤틀릴 것이고, 덩달아 내 속도 뒤틀릴 것이다.

그래도 어쩌랴!

한 친구의 말처럼, “삶이란 변수를 쳐내는 것이 아니라 변수를 끌어안고 가는 것”이니,

잡을 것은 잡고, 흘릴 것은 흘리고, 그렇게 우주의 시절 인연이 이끄는 대로,

혹은 어느 종교의 표현을 따르자면, 주님께서 예비하신 대로,

또 어디론가 나 역시 흘러갈 뿐이다.

책 읽고 글 쓰는 일

비싼 밥 먹고도 한 번씩 공상을 한다.

“어떠한 물질적 사회적 제약조건도 없는 상황이라면, 어떤 ‘일’을 업으로 삼을 것인가?”

아예 일이나 업에서부터 벗어나면 안 될지 되물을 이도 있겠다만, 맑스에 의하면 인간의 유적 본질은 노동이므로 최소한의 인간성 담보를 위해 그러한 도피는 불가하다고 하자.

이 질문에 나름의 답을 몇 차례 던져봤지만, “책 읽고 글 쓰는 일” 외에는 답을 할 수가 없었으니 나도 참 무미한 인간이다 싶다.

그리고 이 일은 지금도 간간이나마 하고 있고 또 할 수 있으니 이 역시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싶다.

테너를 빌려줘

어제, 대학로에서 봤다.

연극+뮤지컬+오페라, 라는데 그게 말이나 되는 건지…. 그냥 재밌게 봤다. 배우들이 노래를 잘하긴 했다.

무려 4년 전에 무악극장에서 공연할 적 생각이 났다. 아무리 승진을 해도 평생 ‘조’연출일 은영의 연기지도 및 연출에 따라 몇 달을 준비해서 공연을 올렸드랬다.

새 친구도 만나고 평생에 또 없을 듯한 연기 경험도 하고 떠올리기만 해도 나자빠지며 웃음이 터질 재미난 에피소드도 얻었다. 고맙고 행복한 시절이었다.

또 얼마 전에는 귀가하다가 문득 2006년 12월에 중국 하이난에 다녀 온 일이 생각났다. 대뜸 소윤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라삐 야 야 야 라삐 야”를 불렀다.

그런 즐거운 시절을 공유할 누군가가 있기에 참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