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아이즈 온 미 (2017)

투팍(2Pac)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올 아이즈 온 미>(All Eyez On Me, 2017)를 보았다.

1971년 뉴욕에서 태어나 볼티모어, 캘리포티나를 거쳐 1991년 <2Pacalypse Now>로 데뷔하고 1996년 <All Eyez On Me>를 내놓고 그해 라스베가스에서 총에 맞아 숨질 때까지의 이야기를 ‘아주 성실하게’ 그리고 있다.

타고난 문학적 감수성으로 흑인 빈민, 곧 자신의 삶을 노래했고 영화 연기까지 했던 예술가적 면모, 흑표당 일원이었던 어머니의 영향과 사회적 파장의 중심에서 자신의 노선을 분명히 했던 운동가적 면모, 두 명의 경찰을 총으로 쐈고 성폭력 사건에서 유죄를 받았으며 사망 당일 폭행사건에 가담했던 문제아적 면모까지.

이 모든 것을 한 편의 영화에 다 우겨넣다보니 이미 투팍의 삶을 다룬 바 있는 다큐멘터리 <투팍: 부활>(Tupac: Resurrection, 2003)이나 이전에 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들과 큰 차이점이 없게 되어버렸다. 너무나도 유명한 인물이고 사건들이라 어느 하나를 빼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재밌었다. 투팍을 몹시 닯았고 그래서 약간은 불쾌할(uncanny) 정도인 주연배우의 어색한 따라하기 연기가 조금 거슬리긴 하였지만.

관념은 언제나 실재를 쫓을 뿐, 그를 포박할 수는 없다

―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를 보고

no country for old men poster

뻑뻑할 정도로 건조하다. 사막의 모래바람과 보안관 역을 맡은 배우의 갈라져 있는 피부가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보다보니 갈증이 날 지경이다. (어째서 영화 속 인물들은 물 한 잔 제대로 마시지 않는단 말인가.)

이 영화는 크게 두 개의 추격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약거래 현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돈가방을 들고 튄 르웰린 모스를 안톤 쉬거가 쫓는다. 그리고 보안관 에드는 사태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 안톤 쉬거와 르웰린 모스를 쫓는다.

안톤 쉬거는 고작 ‘유머를 좀 알지 못하는’ 정도의 악인이 아니다. 도무지 적당한 수준의 마무리라는 것을 모르는 인물로서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이지 않는 것에 관하여 어떠한 필요 또는 불필요를 생각하거나 느끼지 않는 사람이다.

극 중 그의 등장은 여러모로 놀라운데 첫째, 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른다. 둘째, 유명한 ‘동전 던지기 장면’에서 보듯 어떤 구실로 사람을 죽일지 모른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종잡을 수 없다. 우리의 낡은 관념이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인물이다. 끝내 누구에게도 포박되지 않는다.

이 땅에 ‘정의’라는 관념을 실현하여야 할 주체인 보안관 에드의 시간은 어찌나 느리게 흐르는지, 관할 구역에 벌써 몇 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였음에도 한가로움이 느껴질 정도이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하고 있거나 무능한 것은 아니다. 자꾸 한 발 두 발 늦을 뿐이다. 그리고 막상 안톤 쉬거를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는 그를 대면하지 않은 것에 안도하는 지경이다.

이 숨가쁜 스릴러의 대미는 아주 싱겁다. 변모하는 세상을 쫓아갈 자신이 없어진 보안관 에드는 은퇴한다. 자신의 도덕 관념으로 이 타락한 실재의 세계를 더는 해석할 자신이 없어진 게다. 그리고 부인을 앞에 두고 간밤에 꾼 꿈에 대하여 길고 상세하게 설명한다. 마치 실재를 쫓지 않는 관념이 도달할 곳은 무의식의 세계라는 것인양.

미스 슬로운 (2017)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그러면서 자기 앞가림까지 철저하게 하는 로비스트 엘리자베스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 분)의 이야기이다.

일은 완벽에 가깝게 처리하지만 불면에 시달리고 자주 약을 찾을 만큼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 호텔에서 남자 에스코트를 불러서 관계를 갖는 등 사생활도 깨끗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 인간적 결함들 때문에 이 로비스트가 내면적으로 무너진다거나, 갑자기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개관천선한다거나 하는 일은 다행히 없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그 냉혈한 캐릭터로 쭉 밀고 나간다. 그렇게 드라마를 완성한다. 그 점이 정말 좋았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본 것이 다행이었다. 잘 짜인 각본에 세련된 연출. 정말 몰입하면서 재밌게 봤는데, 미국이고 한국이고 흥행참패였다고.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정치드라마를 좋아한다면 무조건 재밌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2016)

스타워즈 전체 시리즈를 놓고 보면 희망의 씨앗이 뿌려지는 시기이지만 이 영화만 놓고 보면 슬프디 슬픈 우주 서사.

이후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행성 하나를 파괴할 수 있는 가공할 위력을 가진 ‘데스 스타’가 어찌 저항군의 전투기 몇 대의 침투로 박살이 날 수 있었던 것인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 영화이다.

전쯔단(甄子丹)이 제다이로 나오는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고 봉술 잘 하는 맹인 사이비 포스교 신자로 나온다. 제다이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스타워즈라니, 그런데도 재미있다니.

라라랜드 (2016)

배우를 꿈꾸는 여자와 재즈 뮤지션을 꿈꾸는 남자가 LA에서 만나 사랑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꿈을 이루려 노력하면서 어쩌고저쩌고 한다는 이야기.

결국 여자는 자신의 꿈을 이루고, 남자도 자신의 꿈을 이루는데, 이 둘의 사랑은 과연 이루어질 것인가 말 것인가. 사실 뻔한 이야기인데, 지루하기는 커녕 널리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잘 풀었다.

영상과 음악은 덤이다.

마지막 짧은 회상 또는 공상 장면은, 아니, 갑자기, 왜?, 연출의도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필요한 장면은 아니었겠지만, 영화 전반의 톤에 비해 너무 튀는 것은 또 아니라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히든 피겨스 (2016)

미국과 소련이 이른바 우주 경쟁(Space Race)을 하던 1960년대 당시 미국의 흑백 인종차별이 얼마나 치사하고 추잡하 뻔뻔한 짓거리였는지 알 수 있는 영화.

학교를 나누고 버스를 나누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었는데, 화장실을 나누고 (하긴 학교와 버스를 나누는데 화장실을 같이 썼겠어?) 커피포트를 나누다니. 내 치사하고 더러워서 정말.

실제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였던 흑인 여성 세 명이 주인공. 이 세 주인공은 시종일관 멋지다.

제일 멋진 장면은 새로이 도입되는 IBM에 대응하기 위해 포트란을 공부하는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 분)이 공립도서관에 갔다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나면서 포트란Fortran 교재를 몰래 훔쳐나오는 씬이다.

같이 도서관에 갔던 아들이, 엄마 책을 훔치면 어떻게 해요, 라고 따지자, 나는 세금을 냈고 이 책은 내가 낸 세금으로 산 것이니 훔친 것은 아니다, 라며.

케빈 코스트너나 글렌 파월이 맡은 역 같이 일부 인물을 제외하고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백인들은 죄다 인종차별이나 하는 덜떨어진 못난 인간들로 보인다.

그땐 다 그랬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습이 덜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 (2017)

한 시리즈가 끝이 났다. 이렇게 진한 감동이 지속되는 영화는 참 오랜만이다.

이 리부트 3부작은 결국 침팬지 영웅 ‘시저’의 일대기이자 인류멸망사라고 할 수 있다.

문명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는데도 서로 쌈박질이나 하는 인간 무리들을 보면 결국 인류가 멸종하고 서로를 위해 협력하고 때로는 희생하는 유인원들이 살아남는 미래가 참 다행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좋은 유인원은 죽은 유인원 뿐이다!”(The only good apes, are dead apes!)라는 문구는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유인원들이 “좋은 인간은 죽은 인간 뿐이다!”(The only good human, is a dead human!)에서 따온 것이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2014)

역시 재밌다. 한 시리즈의 팬이 되면 어지간한 흠은 다 눈감아 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전편에서 시저를 비롯한 유인원 무리가 숲으로 들어간 사이 인류는 ‘시미안 플루’의 확산으로 인해 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유인원과 인류가 평화적 공존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였지만, 끝내 전쟁으로 치닫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액션은 약하지만 프란스 드 발이 쓴 «침팬지 폴리틱스»가 연상될 정도로 세밀한 정치드라마가 그려진다.

택시운전사 (2017)

서울 사는 택시운전사 김아무개의 눈으로 본 80년 광주. ‘서울에서 외신기자를 태우고 광주를 다녀갔던 택시기사가 있었다.’ 이 한 줄로 시작되는 꽤 괜찮은 한국현대사 부교재.

다만, 영화적 연출이라고 넘어가기에는 지나친 몇 장면(광주 대학생으로 분한 류준열이 어설픈 전라도 사투리로, 아따 그럼 내가 노래 한 곡조 뽑아보겄소잉, 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 유해진 등 광주 택시운전사들이 자동차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 등)은 꼭 그렇게 만들어야만 했는지.

힙합 에볼루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2016년작. 시즌 1은 총 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각 에피소드당 러닝타임은 약 45분.

오늘날 “힙합”이라고 하는 음악 장르, 넓게는 대중문화에 대하여 1970년대 뉴욕 브롱크스 지역에서 그 토대를 찾고(Episode 1. The Foundation),

브롱크스를 벗어난 힙합이 뉴욕 다운타운에서 펑크 록과 만나며 주류문화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며(Episode 2. The Underground to Mainstream),

Run-D.M.C., 말리 말(Marley Marl), 라킴(Rakim) 등 새로운 혜성의 등장과(Episode 3. The New Guard),

동부 해안(East Coast)에서 서부 해안(West Coast)로 넘어간 힙합이 N.W.A.를 통해 갱스타랩으로 자리매김하고 닥터 드레(Dr. Dre)의 전설적인 명반 The Chronic (1992)을 탄생시키는 내용(Episode 4. The Birth of Gangsta Rap)까지 다룬다.

3시간 남짓을 투자하여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귀 호강까지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