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어떠한 상황 ― 난생 처음이고 어렵고 고되고 당황스럽고 황당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막막하고 낯뜨겁고 민망하고 남부끄러운, 그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과거를 부정하거나 후회하지 말고 책임을 회피하지도 타인을 원망하지도 미래를 비관하지도 그렇다고 요행을 바라지도 말며, 무엇보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뿐이라는 의연함으로 묵묵히 돌파해내기를.

여보, 친구

여보, 친구.
그냥, 아무 이유없이, 무조건, 잘 지내.
아니 좀 잘 못 지내도 괜찮으니,
괜찮지 않아도 괜찮으니,
힘든 일 있으면, 아니 힘든 일 없어도,
아무 일, 아무 할 말 없어도,
언제든 편하게 연락해.
도울 순 없겠지만 들어줄 순 있고,
답을 줄 순 없겠지만 닿을 순 있겠지.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오고,
멀리 있는 우리도 언젠가는 만난다.
오늘 차가운 길바닥에 몸을 뉘이지만,
내일 신문지 몇 장 날아들지도 모를 일.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을 너의 존재가
오늘밤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하다.

친구를 떠나보내며

너무 열심히 살지들 맙시다.
그냥, 삽시다.
가끔 웃고, 가끔 지루해하고,
즐겁기만 하다가, 짜증도 좀 내고,
사소한 일에 바보처럼 기뻐하고,
힘든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좋은 사람한테 잘 해주고,
싫은 사람은 어여삐 여기고,
그것도 힘들면 그냥 넘기고,
그래도 안 되면 콱 화도 내버리고,
좀 무리해서 달리기도 했다가,
지치면 앉아서 늘어지기도 하고,
산 넘어 산으로 허겁지겁 살지 말고,
남실대는 시냇물 마냥,
이리 흘러, 저리 흘러,
어디로든 가나보다 하면서,
그냥, 삽시다.
그리고, 친구야.
좋은 일 있으면 항상 알려달라 해놓고,
이렇게 저 세상으로 훌쩍 가버리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으니.
베시시 귀여운 웃음,
아름다운 글솜씨,
가끔 엉뚱한 너의 유머,
때론 존경스러웠던 사명감,
다 생각난다.
너는,
참 좋은 사람,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인데,
가늘고 길게 우리 인연 이어가자,
그 말은 지켜졌으면 참 좋았을 걸.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외교관이 되어서 반드시 외교가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노라며, 지금껏 그 길만을 좇으며 살아 온 친구가 있다.

처음 그 친구를 만났을 때는 대학 신입생 주제에 무척이나 교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치지 않는가.

그러나 시간이 조금 흘러서는 합격자가 고작 40명 정도에 불과한 그 시험에 도전한 친구가 안쓰럽고 가여웠다. 그러다가 지금은 몇 해째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밀어붙이고 있는 그 친구가 대단히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언제부턴가 온 마음으로 응원하게 됐다. 그 친구 주위의 대부분이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돌이켜보니, 처음 그 친구의 꿈을 들었던 그날로부터, 나는 어쩌면 그 친구를 아주 부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꿈을 정하고 다른 것은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실은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일생을 통해 내보일 수 있는 최선이 아니겠는가.

친구 셋과 공 하나

어젯밤, 친구 셋과 공 하나로 신나게 놀았다. 바지까지 찢어졌다.

어머니께서 바지가 이렇게 해질 때까지 입고 다녔냐고 하셨지만, 사실 이상한 포즈만 취하지 않았다면 몇 년은 더 입을 수 있었는데.

바지가 부지직 찢어지는 순간, TV에서만 보던 걸 직접 보게 해줘서 고맙다던 준이. 계속 건강하고. 학교 잘 다니고.

당장 다음 주에 미국으로 떠나는 원이. 가서 애들이랑 싸우지 말고 잘 지내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또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선 윤호. 지금까지 너의 공부가 헛된 게 아님이 어떤 식으로든 증명될 것이니 너무 걱정 말고.

슬럼프

무너져내린 블록 조각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다시 쌓아올릴 마음을 먹게 되는 것.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다시 시작할 마음을 품는 것, 말처럼 쉽지는 않은 일이다. 약간의 용기도 필요하다. 더 나은 성과를 내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그 다음 일이다.

오랜만에 다시 본 주성치의 <서유기>. “뽀로뽀로미!” 그리고 갓 구워져 나온 고소한 코코넛 쿠키. 이 둘 덕분에 이번 슬럼프는 그럭저럭 떨쳐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래저래 엉망이라고 생각하는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날 마음이 생긴 것 같다.

내가 받고 싶고, 느끼고 싶었던 것은 ‘温もり’였는지도 모른다. 특별히 우섭과 은정, 유정에게 고맙다.

친구의 출국

한 친구가 미국으로 떠났다.

본인 스스로 “나는 드센 여자.”라고 말할 정도였지만, 누구보다 여리고 순수한 心과 性을 가진 친구였기에 보내는 마음이 마냥 편치는 않았다.

가능하다면 다른 친구들과 그 친구의 뒷모습을 지켜봐주고 싶었다. 네 뒤엔 우리가 있으니 걱정말고 당차게 발을 내딛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가족들을 뒤로하고 게이트로 들어서는 친구의 얼굴엔 아마도 멋쩍은 웃음과 시근댐이 있었으리라.

교환학생 때문에 한국에서의 소중한 인연을 다 잃으면 어떻게 하냐며 걱정하던 친구에게 꼭 해주고픈 말이 있었다. 우리가 인생이란 길을 걷기로 결심한 이상 어딘가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없다. 오직 좌표상의 귀환일 뿐이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길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새로운 길 위에서, 우리는 반갑게 인사할 것이고 서로에게 주름진 웃음을 지어 보일 것이고 또다시 푸지게 먹고 마셔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와 내가 할 일은 서로의 ‘지금’에 충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