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팅룸 연남

로컬스티치 김수민 (Sumin Kim) 대표님 팟캐스트 듣고 굳이 미팅 장소로 정해서 겸사겸사 찾아가봤다. 공간 컨설팅, 디렉팅을 업으로 하는 핏플레이스(FIT place)가 만들고 직접 오퍼레이션까지 하는 공간이라고.

푹푹 찌는 더운 날 골목골목 후비며 찾아가서 그랬는지 한국 아니고 고온다습한 기후의 동남아 어느 나라의 카페에 온 것 같았다. 나무 소재와 식물 배치가 많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주변을 보면 또 전형적인 한국의 다세대주택 빌라촌이다.

그 전형적인 빌라 건물 1층의 내부 인테리어를 다 뜯어내고 벽면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신축 건물이 이런 인테리어를 했다면 ‘트렌디’한 척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거부감이 있었을텐데, 시간의 흔적이 쌓인 오래된 집이었다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음료를 팔기는 하지만 단순히 ‘카페’라고만 하기도 좀 그런 것이 실제로 어떤 공간은 누군가의 작업실(음악) 또는 쇼룸(모자) 또는 팝업스토어(꽃집, 책방)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그냥 텃밭인 줄 알았던 공간도 나름의 맥락과 이유가 있었다. 도시 소농을 위한 컴패니언 플랜팅, 이라나.

이런 구조를 보면 법돌이인 나로서는 대체 이들이 어떤 계약조건으로 어떠한 권리의무를 주고 받았을지 머리가 복잡해지지만, 이 XS size 좁은 공간에 여러 주체들이 모호한 경계 위에서보고 오밀조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놀라울 따름.

(이 공간에서 풍기는 ‘갬성’이랄지 ‘분위기’가 궁금하다면, 네이버/구글에서 “피팅룸연남”을 뚜드려보자. 파워핫플러 언니들의 쓴 생생한 후기를 접할 수 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분들처럼 피부에 챡챡 와닿게 쓰기는 어렵다…)

도시의 재구성 (음성원, 2017)


도시의 재구성

도시는 쉼 없이 재구성 된다. 저자는 2012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현재까지 서울시가 재구성 되고 있는 가장 큰 동력으로 저성장 시대, 도심지 집중 현상,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을 꼽는다(11쪽). 저성장 시대가 되면서 저금리로 부동산 투자가 가능했고, 도심지 집중에 따른 주거 문제가 발생하였으며,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확산시켰다.

젠트리피케이션

특정 지역이 상업적으로 활성화 되면 땅값과 임대료가 오른다.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존 임차인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일견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는 걸까. 서울시가 내놓은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임대료가 저렴한 구도심에 예술가들의 거점이 생겼고 독창적인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유동인구 급증으로 상업시설이 증가하고 기존 건축물을 용도변경하면서 땅값과 임대료가 급등하였다.” 저자는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 또는 ‘부동산 쏠림 현상’은 예술가가 주도한 것이 아니고, 저성장 시대, 저금리 정책기조로 새로운 투자처를 찾던 자본의 기획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서울의 경우에는 가치, 이용도 측면에서 저평가 되어 있던 지역이 이제야 정상 수준으로 회복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44쪽). 이제 우리도 ‘임차인 사회’로 접어들었다. 이런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도시재생

저자는 도시재생을 “원래 용도가 다한 동네에서 새 용도를 찾아내고, 그 용도에 맞게 건물과 동네를 새롭게 디자인 하는 일”이라 정의한다(224쪽). 도시재생이 등장한 배경에는 개발시대의 종언(65쪽), 저성장 시대, 임대료라는 새로운 현금 흐름 창출을 목적으로 집을 소비재에서 생산재로 바꾸고 싶은 투자 수요가 있다. 신축비용의 60% 수준이면 리모델링이 가능하고(72쪽), 이 비용은 저금리로 조달할 수 있다. 옛날 구조, 외관이 남아 있는 건물이 오히려 감성을 자극한다며 인기를 끈다. 동네가 뜨면서 투어리스티피케이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107쪽). 이 자연스러운 현상 속에서 서울시가 도시재생사업 ‘정책’을 갖고 끼어든다. 책에서 언급된 사례는 세운상가 그리고 창신동. 건물만 바꾼다고 도시재생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해당 지역의 새 용도를 찾아내는 ‘리프로그래밍’이 필요하다(114쪽). 서울의 경우, 물리적 재생이 필요한 지역도 아직 많다.

코리빙

도심지 집중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도심 밀집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교류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그만큼 기회가 많다는 뜻이다. ‘도시 르네상스’, ‘도시기업가’(Urbanpreneur)라는 말도 나온다. 자본도 인재도 도시에 모여있다. 도심지 주거 수요를 떠받치고 있는 1인 가구, 세대 구분적으로는 소위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는 어디든 쉽게 떠나고 싶어하는 ‘코스모폴리탄’이면서 새로운 사람과의 교류, 희소한 경험을 추구한다. 이 세대에 대한 대표적인 설명이 소유보다는 ‘경험’을 중시한다는 것이다(131쪽). 1인 가구의 부상에 대한 매우 현실적인 대응이 바로 셰어하우스로 대표되는 새로운 주거형태 ‘코리빙’이다. 방을 쪼개서 침실을 줄이고 임대료를 낮춘다. 여기에 공용 공간을 활용하여 교류와 경험을 넓힌다. 이것도 ‘임차인 사회’의 한 단면이다.

테크놀로지

접근성 낮은 골목이 새롭게 주목받게 된 이유는 모바일 시대 덕분이다(172쪽). 모바일 앱, 플랫폼 덕분에 자원의 수요-공급이 점점 더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기술과 결합된 공간은 새로운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영업 시작 전 또는 브레이크타임에 레스토랑을 공용 사무공간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비즈니스도 등장했다(Spacious). 이 역시 공간의 ‘리프로그래밍’이다(188쪽). ‘에어비앤비’ 영향력은 어마어마해졌다. 선한 기업이기도 하면서(181쪽),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182쪽). VR, AR, MR 기술에 힘입어 거리의 제약은 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196쪽). ‘디지털 노마드’라는 새로운 트렌드도 있다. 이들을 겨냥한 서비스도 인기를 얻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등장하면 기존의 도시 공간이 재편되면서 걷기 좋은 도시로 변화할 것이다(209쪽).

서울시 택시 앱 유감

서울시가 약 ‘10억’을 들여서 아무도 안 쓸 것 같은 앱을 만들었다. 마음이 아파서 차마 ‘쓰레기’라고는 못 쓰겠다. 관련 보도가 나올 때마다 국민의 세금을 허투루 쓰지 말아야 한다는 비판이 일었고 그 강도가 약한 수준이 아니었음에도, 이미 진행되고 있는 사업의 방향타를 돌리기는 역부족이었던 것일까.

반면, 소위 ‘한복 여성’이 등장한 서울시 광고 포스터는 “기생관광을 암시한다”라는 일견 과도해 보이는 해석 논란이 있자마자 며칠 만에 철회 기사가 떴다. 주변 디자이너들도 혹평할 정도였으니 원래가 좋은 디자인이라고 하기도 어려웠거니와, 변경에 따른 비용 발생도 크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결정이 가능했으리라 짐작한다.

정부 등 중앙부처에서 개발한 공공 앱 1768개 중 642개가 폐지되었다는 기사가 올해 초에 보도되었다(“만들었다 없앴다 ‘공공 앱’…수백억 예산 ‘줄줄’”). 이번에 출시된 서울시 택시 앱이 어떤 수순을 밟아 어떤 운명에 처할 것인가를 미리 알려주는 부고 기사처럼 읽힌다.

‘전자정부(e-government)’, 공공분야의 디지털 역량 강화, 공공서비스의 디지털화 등등 다 좋은 얘기이고, 그래서 여러 시행착오의 기회를 원천봉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지만, 공공+민간의 ‘협치’와 공공/민간 영역의 ‘혼동’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정부, 지자체 차원의 디지털 가이드가 존재하는지, 만약 존재한다면 잘 지켜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참고로, 영국에는 「정부 디지털 설계 원칙」(Government Digital Service Design Principles)이 있다고 한다(기사). 이 원칙 중 “2. Do less ― Government should only do what only government can do.”(적게 해라 ― 정부는 정부만 할 수 있는 일만 해야 한다.)에 눈이 머문다.

* 뒤늦게 알게 된 사실: 한국 정부(前미래창조과학부→現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도 2015년부터 ‘소프트웨어(SW)영향평가제도’를 마련해 실시하고 있다. 정부, 지자체 주도의 공공정보화사업이 중복개발에 따른 예산낭비에 빠지는 것을 막고, 민간시장을 침해하여 SW산업 자체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대상기관에는 중앙부처 및 광역자치단체가 포함되어 있어 서울시 역시 본 제도의 적용 대상이었는데도 이런 결과가…

프릳츠 커피 컴퍼니

프릳츠커피 다녀오고 생각이 많아졌다.

왜 어떤 카페는 ‘이렇게나’ 잘 되고, 어떤 카페는 파리만 날리다 결국에는 망하는가.

입지? 마포구 도화동이 뜨고 있는 동네라고 하기는 어렵고, 공덕역 가까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거리에 있다. 대로변이 아니고 오히려 같은 블 대로변 건물 1층에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다.

분위기? 확실히 이색적이다. 기계로 찍어낸 듯 유사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느 프랜차이즈 카페들과는 당연히 다르다.

전에는 고깃집이었던 마당이 있는 2층 양옥집 ― 지면에서 0.5층 높게 1층을 두는 이런 건축양식(?)을 일컫는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 을 통째로 사용한다. 반지하에 빵을 굽는 시설이 있고 1층에 계산대, 커피, 빵 그리고 기념품(컵, 모자, 티셔츠 등) 판매대가 있으며 1층 일부와 2층에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다 만 듯 천장과 벽을 그대로 노출했다. 이런 스타일은 이제 새롭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키취적인 느낌은 없다. 오히려, 이런 복고 느낌은 우리가 제일 잘 살릴 수 있다, 하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게 원래 우리 색이야… 같은? 그래서 가구, 조명 기타 소품의 선택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자신감은 계산대와 커피를 내리는 공간을 1층 가운데에 배치하고 아무런 칸막이를 두지 않음으로써 완전히 개방하는 형태에서도 묻어났다. 넓지 않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이기도 했겠지만, 보시려면 얼마든지 보시고요… 그런 것 아니었을까 싶다.

맛? 압도적이었다. 최근 마셨던 어떤 커피보다 강렬한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입구에서부터 진동하는 빵 굽는 냄새에 코가 홀렸다.

커피를 마시는 물개가 그려진 로고. 귀엽지만 의아했다. 커피랑 물개가 무슨 상관이지? 역시 아무 상관이 없었고, 아무 상관이 있을 필요가 없었다. 전에 없었던 새로운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골목마다 카페가 들어서는 이 시대에 프릳츠 커피 컴퍼니는 전에 없던 새로운 존재로 자리매김을 하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이걸 한 번에 다 잘 해내는 카페가 몇이나 있을까 싶다.

『지적자본론』 (마스다 무네아키, 2015)

매년 어마어마한 수의 신간이 나오는 시대에 2015년 출간된 책이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는 점은 실로 놀랍다.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과 하코다테 츠타야서점 그리고 다케오시립도서관에 대한 열렬한 반응 덕분일 터. 대단한 내용 있겠나 싶어 외면했다가 작고 가벼운 판형에 이끌려 결국 집어들었다.

저자 마스다 무네아키(增田 宗昭)는 츠타야서점을 만들고 다케오시립도서관(武雄市図書館)을 기획한 장본인. 그는 ‘고객 가치’의 관점에서 이 시대를 이른바 “서드 스테이지3rd stage”로 정의한다. 상품과 플랫폼이 범람하는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가치 있는 ‘라이프 스타일 제안’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라이프 스타일 제안’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디자인’이며 고도의 지적 작업이다. 머릿속 아이디어를 가시화 할 수 있는 디자인 능력의 유무, 이러한 지적 작업을 가능케 할 ‘지적자본’의 축적 여부 — 결국 그런 능력을 가진 인재를 확보하고 길러낼 수 있는 조직인지 여부 — 에 기업의 사활이 걸려있다는 것은 이런 연유이다.

“디자이너 집단이 되어야 하는 미래의 기업에는 ‘직렬형 조직’은 어울리지 않는다. 시간 낭비가 지나치게 클 뿐 아니라, 디자인 감각은 상하 관계를 통해 단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직렬형 조직보다 클라우드적 발상에 근거한 ‘병렬형 조직’ 쪽이 앞으로는 보다 효과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반세기 전, 일본의 미래를 창조해 낸 것은 철근과 콘크리트였다. 하지만 앞으로 일본을 창조해 낼 것은 디자인이고 여기에 필요한 것은 지성이다.” (56~57쪽)

마스다 무네아키의 CCC는 일본인 5,000만 명이 가입했다고 하는 “T포인트”라는 포인트 적립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고, 그가 말하는 ‘라이프 스타일 제안’이 허무맹랑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어느 정도 실체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의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데이터 덕분이다. 참으로 명민한 기업가이다.

한국어 번역본의 부제는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인데, 일본어본은 “모든 기업이 디자이너 집단이 되는 미래”이다.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고, 실제로 책을 읽고 나면 일본어본의 표현이 좀 더 정확한 설명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출판 편집, 번역에 관하여 깊이 아는 바는 없으나 번역 출판물을 소비하는 독자로서 역자 또는 출판사에서 굳이 이런 수정을 감행한 이유가 무엇인지 몹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