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를 읽고 난 후의 잡상

순수한 현대인이 오직 현대의 조건에 구애되어 사고하는 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개인에 대해 아쉬운 감정은 갖고 있지만 도덕적으로 비난할 생각은 없다. 기본적으로 나는 인간이 구조(가족, 역사, 전통 등)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주장에 동의하며, 누군가 인간을 ‘조건의 동물’이라 표현한 것에 동의한다.

나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공부는 오직 역사(歷史)라고 확신한다. 내가 ‘현대인은 역사 공부를 게을리 하고 있다’고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국무총리 인준 과정에서 병역비리네 투기재산입네 뻔뻔하게 캐묻는 국회의원들이 있기도 하고 나는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노력이라도 했으니 ‘덮어놓고 비난’은 피해주었으면 한다.

자본주의(資本主義)가 현재의 조건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하나의 사실fact이다. 그럼 이 자본주의는 인류의 역사와 처음부터 함께했는가? 물론, 아니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길어야 삼사백년 짧으면 백오십년에 불과하다. 이 책은 이 자본주의가 어떻게 현재의 조건이 되어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주된 목적인 책이다. 거칠게나마 유물론적 역사관에 동의한다면, 산업자본주의 생산관계가 현 상부구조를 완전히 결정짓는 것은 아닐지라도 많은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에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거대한 실험장인 소비에트가 붕괴하고, 맑스에 의해 암 선고를 받았던 자본주의는 오히려 전 세계를 무대로 활개치고 있다. 오직 자본주의의 제 1목표라 할 수 있는 이윤 동기가 국경은 물론 인간마저 무시하며 자본의 집중을 가속하고 있다. 이윤 앞에서는 모든 것이 용서된다. 에서 앙리 베르두가 연이은 살인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그가 사회의 기본원리, 바로 자본주의의 핵심을 정확히 이해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그것은 사실이었다.

자본주의가 변종에 변종을 거듭하며 전 세계에서 맹위를 떨치자, 이에 섣불리 항복하는 학자들이 나타났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호들갑을 떨며 ‘역사의 종말’을 말하기도 했고, 『현대 사회학』으로 저명한 앤서니 기든스는 『제 3의 길』에서 ‘자본주의 다음의 대안’은 없다고 섣불리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난 오히려 그보다 훨씬 전인 1920대에 ‘마지막 혁명’은 ‘마지막 수(數)’와 마찬가지로 말이 안 된다며 오직 영원한 혁명만이 있을 뿐이라던 자미아친(Zamyatin)의 혜안이 마음에 든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책벌레, 2000)

이 책은 세계가, 엄밀히는 유럽이 중세 봉건제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자본주의 시대로 이행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1936년에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이었다는 리오 휴버먼Leo Huberman이 썼고 무엇보다 쉽고 재미있다는 큰 장점을 바탕으로 전 세계적으로 읽혔다. 책은 총 2부(“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자본주의에서 어디로?”)로 구성되어있고, 35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지만 이 정도 분량만으로도 자본주의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막연히 그리고 있던 중세 봉건제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이행과정을 저자가 이 책의 두 가지 목적이라 밝힌 ‘경제 이론으로 역사를 설명하는 것’과 ‘역사로 경제 이론을 설명하는 것’으로 좀 더 선명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특히 당대 인물의 입을 빌려 시대상을 설명하는 부분이나 신문기사 등은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 시대를 규정짓는 몇 가지 단어나 수사 같은 것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과연 어떤 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정보화시대, 문화산업시대, 세계화시대 등, 이 시대를 설명하는 단어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유물론적 사관의 시각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시대가 아직 ‘자본주의’ 시대라는 사실이다. 중세 봉건제의 낡은 관습을 부르주아지가 타파함으로써 올리게 된 자본주의 시대의 장막은 아직도 내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가 이뤄지면 필연적으로 사회주의 사회로 이행하게 될 것이라던 마르크스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마르크스의 예언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에 어떠한 수정을 가할 필요도 없이, 체제 내적 모순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파멸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것일까. 그 과정에서 해야 할 일은 노동자들이 계급적 자각을 할 수 있도록 선동하는 것뿐일까. 부르주아 계급이 혁명에 성공했던 것은 이미 물적 토대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을 혁명은 이 물적 토대를 폭력적으로 빼앗는 방법이 되어야만 할 것인가. 혁명의 시대에 부르주아지들이 자유방임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듯 자본주의 다음의 시대가 오기 위해서는 물적 토대의 재구성과 새로운 문화적 힘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