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 쇼코의 미소(최은영, 문학동네, 2016)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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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엇이 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모두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여기서 작가란 그리 거창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삶을 말-글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작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가벼운 마음가짐.

그러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는 정말로 특별한 존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들이 단 몇 개의 문장만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솜씨를 보이면 기가 질린다. 나에게 모국어란 친교적 의사소통의 수단에 불과한데, 작가들은 직접 모국어의 지평을 넓히고 그것들을 풍성하게 가꾼다.

최은영 작가의 정갈한 문장들을 읽으며 마음이 가지런해졌다. 단숨에 읽어내리는 것이 아까워 조금씩 아껴가며 읽었다. 어느 평론가가 덧붙인 글과 마지막의 작가의 말까지 빼놓지 않고 읽었다. 작중 인물들에서 작가의 모습이 읽히기도 했다. 글은 곧 자신의 반영이다.

작가 최은영을 세상에 알린 표제작 「쇼코의 미소」를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 단행본에 실린 다른 작품들을 함께 읽고 나니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 책에 실린 평론에서도 유사하게 언급되고 있는 내용이다.) 화자는 모두 ‘여자’이고 ‘이성애’는 부각되지 않는다. 어떤 계기로든 ‘죽음’이 이야기 되고, 그것은 우리 사회의 굵직한 사건들(인혁당 사건, 세월호 참사)과 연결되어있다.

그런 맥락에서 「한지와 영주」라는 단편은 이 단행본 내에서 조금 독특한 위상을 갖는다. 지질학을 연구하는 대학원생 ‘영주’가 프랑스 어느 수도원에 체류하면서 케냐에서 온 수의사 ‘한지’를 만난다. 영주와 한지는 따로 만나 자주 산책을 다닐 정도로 가까워지고 사람들과 거리를 둔다는 한지는 영주에게만은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영주는 잠시 한지와 함께 하는 삶을 그려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영주와 한지는 뚜렷한 이유가 없이 차츰 멀어진다. 한지가 케냐로 돌아갈 때까지 관계는 회복되지 않는다. 영주의 독백은 한지를 진심으로 아끼고 생각하고 있음을 수 차례 내비추지만 그것은 관객과의 대화에 그치고 한지에게 표현되지 않는다. 영주는 한지를 만난 이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지에 대하여 쓴 일기장을 빙하 속에 담으면서 추억을 봉인한다.

영주와 한지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과정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굳이 이유를 찾다면 영주와 한지가 갖고 있는 고유한 ‘성격’ 정도일 것이다. 그 성격에 좋고 나쁨이 있을리가.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이다. “다시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이동하는 것”일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감정의 잔해는 남겠지만 말이다.

이 밋밋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때 지구상에 외롭게 등장했다가 멸종되었거나 진화하였거나 하여 사라진 생물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담담해졌다. 직접적으로나 소재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라는 작가의 말이 곱씹어지는 작품이었다.

14 나는 엄마와 할아버지는 작동하지 않아 해마다 먼지가 쌓이고 색이 바래가는 괘종시계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변화할 의지도, 아무런 목표도 없이 그저 그 자리에서 멈춰버린 사람들이라고.

24 나는 쇼코가 조금 미워져서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그리웠었다는 그 말에 눈물이 났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25 쇼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쇼코에게 내가 어떤 의미이기를 바랐다. 쇼코가 내게 편지를 하지 않을 무렵부터 느꼈던 이상한 공허감. 쇼코에게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정신적인 허영심.

31 당시의 나는 쇼코가 너무 쉬운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스물세 살에 벌써 직업을 정하고 태어난 소읍에서 떠나지 못한다는 건 형편없는 선택이라고.
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그런 이상한 오만으로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그때는 나의 삶이 속물적이고 답답한 쇼코의 삶과는 전혀 다른, 자유롭고 하루하루가 생생한 삶이 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33 그래서 꿈은 죄였다. 아니, 그건 꿈도 아니었다.
영화 일이 꿈이었다면, 그래서 내가 꿈을 좇았다면 나는 적어도 어느 부분에서는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지 감독이 되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나 자신도 설득할 수 없는 영화에 타인의 마음이 움직이기를 바라는 건 착각이었다.

34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47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걸 사내답지 않다고 여기며 깔보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가끔씩 그런 통제에도 불구하고 비어져나왔던 사랑의 흔적들이 있었다.

89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114 서로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던 그런 태도가 서서히 그들의 사이를 멀게 했고, 함께 살았던 시간 동안 쌓아왔던 마음들도 더 이상 그 관계를 지탱해주지 못했다.

129 나는 언니의 말에 동의했다. 언니의 목소리에 실린 분노에 가까운 두려움은 나의 오래된 주인이었으니까. 그 두려움은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나를 추동했고 겉보기에는 그다지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 어른으로 키워냈다.

130 우리는 깨끗하게 갈라섰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지막은 그렇게 깨끗할 수 없었기에 그 이별은 우리 사이에 어떤 사랑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는 그저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이동했을 뿐이었다.

276 이 책 전체를 통해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서사를 감싸고 있는 순하고 맑은 힘이다. 그 힘은 이를테면 열기라기 보다는 온기에 가까워서 힘보다는 기운이라고 함이 좀더 적절할 수도 있겠지만, 비유하자면 그 힘은 추운 겨울에 따뜻한 실내로 들어갔을 때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온기와도 같다.

277 그러니까 최은영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거칠고 단단한 것만이 아니라 순하고 맑은 것도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291 서른 살 여름, 종로 반디앤루니스 한국소설 코너에서 서 있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나는 안 되는 걸까, 한참을 서서 움직이지 못하던 내 모습을.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삶은 멀리 있었고, 점점 더 멀어지는 중이었다.
…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작가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포기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했다.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펑펑 울었던 적도 있다. 오래 사랑한 사람을 놓아주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울었다.

292 십대와 이십대의 나는 나에게 너무 모진 인간이었다.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미워하고 부당하게 대했던 것에 대해 그때의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293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 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도시의 재구성』(음성원, 2017)


도시의 재구성

도시는 쉼 없이 재구성 된다. 저자는 2012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현재까지 서울시가 재구성 되고 있는 가장 큰 동력으로 저성장 시대, 도심지 집중 현상,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을 꼽는다(11쪽). 저성장 시대가 되면서 저금리로 부동산 투자가 가능했고, 도심지 집중에 따른 주거 문제가 발생하였으며,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확산시켰다.

젠트리피케이션

특정 지역이 상업적으로 활성화 되면 땅값과 임대료가 오른다.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존 임차인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일견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는 걸까. 서울시가 내놓은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임대료가 저렴한 구도심에 예술가들의 거점이 생겼고 독창적인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유동인구 급증으로 상업시설이 증가하고 기존 건축물을 용도변경하면서 땅값과 임대료가 급등하였다.” 저자는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 또는 ‘부동산 쏠림 현상’은 예술가가 주도한 것이 아니고, 저성장 시대, 저금리 정책기조로 새로운 투자처를 찾던 자본의 기획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서울의 경우에는 가치, 이용도 측면에서 저평가 되어 있던 지역이 이제야 정상 수준으로 회복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44쪽). 이제 우리도 ‘임차인 사회’로 접어들었다. 이런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도시재생

저자는 도시재생을 “원래 용도가 다한 동네에서 새 용도를 찾아내고, 그 용도에 맞게 건물과 동네를 새롭게 디자인 하는 일”이라 정의한다(224쪽). 도시재생이 등장한 배경에는 개발시대의 종언(65쪽), 저성장 시대, 임대료라는 새로운 현금 흐름 창출을 목적으로 집을 소비재에서 생산재로 바꾸고 싶은 투자 수요가 있다. 신축비용의 60% 수준이면 리모델링이 가능하고(72쪽), 이 비용은 저금리로 조달할 수 있다. 옛날 구조, 외관이 남아 있는 건물이 오히려 감성을 자극한다며 인기를 끈다. 동네가 뜨면서 투어리스티피케이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107쪽). 이 자연스러운 현상 속에서 서울시가 도시재생사업 ‘정책’을 갖고 끼어든다. 책에서 언급된 사례는 세운상가 그리고 창신동. 건물만 바꾼다고 도시재생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해당 지역의 새 용도를 찾아내는 ‘리프로그래밍’이 필요하다(114쪽). 서울의 경우, 물리적 재생이 필요한 지역도 아직 많다.

코리빙

도심지 집중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도심 밀집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교류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그만큼 기회가 많다는 뜻이다. ‘도시 르네상스’, ‘도시기업가’(Urbanpreneur)라는 말도 나온다. 자본도 인재도 도시에 모여있다. 도심지 주거 수요를 떠받치고 있는 1인 가구, 세대 구분적으로는 소위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는 어디든 쉽게 떠나고 싶어하는 ‘코스모폴리탄’이면서 새로운 사람과의 교류, 희소한 경험을 추구한다. 이 세대에 대한 대표적인 설명이 소유보다는 ‘경험’을 중시한다는 것이다(131쪽). 1인 가구의 부상에 대한 매우 현실적인 대응이 바로 셰어하우스로 대표되는 새로운 주거형태 ‘코리빙’이다. 방을 쪼개서 침실을 줄이고 임대료를 낮춘다. 여기에 공용 공간을 활용하여 교류와 경험을 넓힌다. 이것도 ‘임차인 사회’의 한 단면이다.

테크놀로지

접근성 낮은 골목이 새롭게 주목받게 된 이유는 모바일 시대 덕분이다(172쪽). 모바일 앱, 플랫폼 덕분에 자원의 수요-공급이 점점 더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기술과 결합된 공간은 새로운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영업 시작 전 또는 브레이크타임에 레스토랑을 공용 사무공간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비즈니스도 등장했다(Spacious). 이 역시 공간의 ‘리프로그래밍’이다(188쪽). ‘에어비앤비’ 영향력은 어마어마해졌다. 선한 기업이기도 하면서(181쪽),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182쪽). VR, AR, MR 기술에 힘입어 거리의 제약은 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196쪽). ‘디지털 노마드’라는 새로운 트렌드도 있다. 이들을 겨냥한 서비스도 인기를 얻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등장하면 기존의 도시 공간이 재편되면서 걷기 좋은 도시로 변화할 것이다(209쪽).

『소중한 것은 모두 일상 속에 있다』(야마시타 히데코 등, 2017)

만듦새에 신경을 쓴 책을 만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한 손에 꼭 들어오는 판형(B6에 가깝다)에 적당한 무게 그리고 깔끔한 표지 일러스트.

10개의 주제, 108개의 화두에 대하여 두 저자가 짤막하게 쓴 글을 모았다. 야마시타 히데코는 일본의 대표적인 미니멀리스트, 오노코로 신페이는 유명 카운슬러라고 한다. 둘 다 낯선 인물이다. 괜한 의심이 시작된다. ‘대체 누구시길래 이런 글을 쓰세요?’

그러고 보니 『소중한 것은 모두 일상 속에 있다』(大切なことはすべて日常のなかにある)라는 제목에도 딴지를 걸고 싶어진다. ‘그럼. 당연히 소중한 것이 모두 일상 속에 있지. 다른 곳에 있겠어?’

그러다 “정리를 포기하는 것은 인생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17쪽), “수납과 정리라는 이름으로 물건을 모아두고, 사용하지 않아 죽어버린 소장품으로 만들지, 아니면 고르고 선택한 물건을 마음껏 사용하며 살 것인지는 당신의 선택입니다.”(29쪽)과 같은 문장을 만나 이런 생각을 한다. ‘건질 문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군.’

“만남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또한 찾으러 돌아다니고 갈망하더라도 원하는 만남이 꼭 이루어진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 만남은 어떤 거대한 힘이 ‘계산한’ 것이라고요. 그렇다면 그 ‘거대한 힘’에 어떤 방법으로 다가가면 좋을까요? 먼저 하나만 명심해두세요. 그 방법에 거만함과 태만함이 끼어들 자리는 없습니다.”(115쪽)

그리고 위 문단은 ‘만남’이 어려워 고민하고 있는 한 친구에게 타이프 해서 보내주고 싶었다. “인간은 평생 만날 사람과 반드시 만난다. 한순간도 이르지 않고, 한순간도 느리지 않을 때.”(116쪽)라는 문장과 함께.

“일상은 변덕스러워서, 멍하니 생활하다보면 순식간에 지나가고 말지요. 흘러가는 강,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처럼 손에 움켜쥐기가 너무 힘듭니다. 그러다보니 생활습관을 개선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늘 자각하며 생각하고 생활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252~253쪽)

그러고보니 ‘소중한 것이 일상 속에 있다’는 문장을 두고 상투적이라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그 소중한 것들을 어떻게 ‘자각’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공간과 마음에 여유가 없다면 일상은 그저 흘러가 버린다.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소중한 것들을 음미하려면 공간과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공간과 마음의 여유는 ‘정리’에서 비롯된다. 일상을 착실하게 정돈해나가는 것에서부터. 기상 즉시 침구 정리 또는 현관(신발장) 정리 부터.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2016)

책을 읽고 나니 이 소설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를 알겠다: 짧다. 간결하다. 읽기 쉽다. 그러니 많이들 읽고, 또 많이들 언급한다.

내 얘기 같고, 내가 아는 사람 얘기 같다. 그만큼 소재가 평범하다.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서 이미 읽은 적이 있지 않나 싶을 정도이다. ‘아, 이렇게도 소설이 되는구나.’ 게다가, 올 상반기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니.

그 소름 끼치는 평범함이 바로 이 소설이 가진 힘이라면 힘일 것이다. 내 주위 독자들이 공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이거 내 얘기, 내가 아는 사람 얘기다.’,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가 여기 있다.’

아내와 함께 읽고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혼자 읽었을 때의 감상은 ‘답답해서 미치겠다’ 였는데, 아내와 대화를 나눈 다음에는 그 김지영이 답답할 정도로 침묵하게 된 배경에 좀 더 포커스를 하게 되었다.

‘82년생 김지영’씨는 “더 많은 보상과 기회와 발언권이 주어져야 마땅한 사람”이라는 작가의 말에 동의하면서, 그 보상과 기회와 발언권은 누가 주는 것인지가 궁금했던 나는, 다음 세대의 여성들에게 이 책이 그저 답답한 옛 이야기 정도로 읽힐 수 있기를 바란다.

『욕망해도 괜찮아』 (김두식, 2012)

한 달에 한 번 모이지만 두 달에 한 번 정도 얼굴을 내미는 독서모임이 있다. 선한 눈빛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지적이고 유쾌한 대화를 나눈다.

지난번 모임에서는 김두식 교수의 『욕망해도 괜찮아』(창비, 2012)를 읽었다.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욕망해도 괜찮다니. 당연히 괜찮지 그럼. 욕망이 괜찮고 말고 할 문제인가. 욕망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으면 그때부터 욕망이 없어지기라도 하는가.

그러니까 이 책은 어려서 ‘욕망하면 안 된다’는 계율을 내면화하여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 가치관에 붙들려 있는(또는 속고 있는) 사람들이나 한번 읽어볼 법한 그런 책인 것이다.

다행히 발제가 재밌었다. 펀치라인은 “모범생 저자는 욕망을 글로만 배운 것 같다.”

그리고 “‘남자란 이렇다, 여자란 저렇다’고 일반화하는 건 늘 위험하고 언제나 틀린 명제지만 … 무식하게 툭 던져본다면, 아무래도 사랑에 자신을 던지는 건 남성보다 여성 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424쪽)라고 쓴 부분에 대하여는, 언제나 틀린 명제를 무식하게 툭 던지지 말았어야 라고.

‘학벌 욕망’을 논할 때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수도권에 위치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하였고 (아마도) 4대 보험이 적용되는 번듯한 일자리(또는 자영업, 전문직)를 가졌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생각이 다양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지만 정체성의 여러 부분에서는 여전히 동질적이었던 것이고 어쩌면 그 이유 덕분에 공감대가 더 쉽고 넓게 형성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항상 만나는 사람, 나와 비슷한 사람이 주는 편안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해서 이번 일요일에는 또 다른 친구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에 구경가기로 했다.

『지적자본론』 (마스다 무네아키, 2015)

매년 어마어마한 수의 신간이 나오는 시대에 2015년 출간된 책이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는 점은 실로 놀랍다.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과 하코다테 츠타야서점 그리고 다케오시립도서관에 대한 열렬한 반응 덕분일 터. 대단한 내용 있겠나 싶어 외면했다가 작고 가벼운 판형에 이끌려 결국 집어들었다.

저자 마스다 무네아키(增田 宗昭)는 츠타야서점을 만들고 다케오시립도서관(武雄市図書館)을 기획한 장본인. 그는 ‘고객 가치’의 관점에서 이 시대를 이른바 “서드 스테이지3rd stage”로 정의한다. 상품과 플랫폼이 범람하는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가치 있는 ‘라이프 스타일 제안’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라이프 스타일 제안’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디자인’이며 고도의 지적 작업이다. 머릿속 아이디어를 가시화 할 수 있는 디자인 능력의 유무, 이러한 지적 작업을 가능케 할 ‘지적자본’의 축적 여부 — 결국 그런 능력을 가진 인재를 확보하고 길러낼 수 있는 조직인지 여부 — 에 기업의 사활이 걸려있다는 것은 이런 연유이다.

“디자이너 집단이 되어야 하는 미래의 기업에는 ‘직렬형 조직’은 어울리지 않는다. 시간 낭비가 지나치게 클 뿐 아니라, 디자인 감각은 상하 관계를 통해 단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직렬형 조직보다 클라우드적 발상에 근거한 ‘병렬형 조직’ 쪽이 앞으로는 보다 효과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반세기 전, 일본의 미래를 창조해 낸 것은 철근과 콘크리트였다. 하지만 앞으로 일본을 창조해 낼 것은 디자인이고 여기에 필요한 것은 지성이다.” (56~57쪽)

마스다 무네아키의 CCC는 일본인 5,000만 명이 가입했다고 하는 “T포인트”라는 포인트 적립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고, 그가 말하는 ‘라이프 스타일 제안’이 허무맹랑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어느 정도 실체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의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데이터 덕분이다. 참으로 명민한 기업가이다.

한국어 번역본의 부제는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인데, 일본어본은 “모든 기업이 디자이너 집단이 되는 미래”이다.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고, 실제로 책을 읽고 나면 일본어본의 표현이 좀 더 정확한 설명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출판 편집, 번역에 관하여 깊이 아는 바는 없으나 번역 출판물을 소비하는 독자로서 역자 또는 출판사에서 굳이 이런 수정을 감행한 이유가 무엇인지 몹시 궁금하다.

『나인: 더 빨라진 미래의 생존원칙』 (조이 이토 등, 2017)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세 가지 상황: ⑴비대칭성 → ⑵복잡성 → ⑶불확실성.

네트워크의 시대.

“우리는 이제야 겨우 우리가 아는 것이 얼마나 없는지 깨달을 만큼 뭔가를 알게 됐다.”

이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MIT 미디어랩의 9가지 원칙:

  1. 권위보다 창발(emergence) ; 소수 → 다수
  2. 푸시보다 풀(pull) 전략 ; 필요한 것을 가장 필요한 때
  3. 지도보다 나침반; ‘문화’라는 방향성
  4. 안전보다 리스크; 저비용의 혁신
  5. 순종보다 불복종; 긍정적 일탈
  6. 이론보다 실제; 교육이 아닌 학습
  7. 능력보다 다양성; 복잡성 시대의 필수 전략
  8. 견고함보다 회복력;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기
  9. 대상보다 시스템; 관계들에 미칠 영향에 주목

『피로사회』를 읽고

Müdigkeitsgesellschaft. 피로사회. 한병철. 문학과지성사. 2012.


신경성 폭력

[1]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21세기의 시작은 신경증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신경성 질환들은 경색(梗塞)성 질병이며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으로 면역학적 기술로는 결코 다스려지지 않는다.

[2]

이 사회는 기존의 면역학적인 조직과 방어의 도식으로는 전혀 파악할 수 없는, 이질성Andersheit과 타자성Fremdheit의 소멸을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구도 속으로 점차 빠져들어 가고 있다. 오늘날 이질성은 격렬한 면역 반응을 촉발하는 가시가 빠진 차이로 대체되었고, 타자성 역시 날카로움을 잃고 상투적인 소비주의로 전락하였다.

[3]

이 시대를 면역학적 시대로 가정하는 로베르토 에스포지토Roberto Esposito의 면역성 이론은 잘못된 가정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민자나 난민은 위협이라기보다는 짐스러운 존재로 여겨질 뿐이다.

[4]

면역학적 패러다임은 ‘세계화 과정’과 양립하기 어렵고, 오늘날 문화이론적 담론에서부터 생활감정 자체까지도 지배하고 있는 ‘혼성화 경향’과도 반대된다.

[5]

자아의 면역학적 자기주장은 부정의 부정(부정성의 변증법)을 통해 관철되는 것이지만, 21세기의 신경성 질환들은 긍정성의 변증법을 따른다.

[6]

 

『샤무: 내 남자 내 맘대로 길들이는 행복한 조련법』 (에이미 서덜랜드, 2008)

원제목 What Shamu Taught Me About Life, Love, and Marriage: Lessons for People from Animals and Their Trainers이 훨씬 좋다.

  • 전통적인 조련에서는, 동물을 인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그 주된 목표였다. 동물을 때리면서, 누가 주인인지를 가르쳤다. 그런 조련방식이 사람들에게 ‘조련’이라는 낱말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했다. 전통적인 조련사들은 상은 안 주어도 처벌은 반드시 한다. 그들은 동물에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가르친다. (p.59)
  • 하지만 진보적인 조련사들은 근본적으로 그와는 정반대의 접근법을 취한다. 그들은 조련을 대상 동물과의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한다. 길들이기보다는,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동물들에게 무엇을 하게 만들지 않고, 하도록 유도한다. 그들의 목표는 동물이 복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p.59)
  • 우리는 말을 하는 능력 덕분에 의사소통에서는 동물들을 능가하지만, 언어 때문에 자기표현을 똑바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진화 덕분에 언어를 얻어놓고도, 자기표현을 할 때가 되면 머뭇거린다. 게으르기까지 하다. 어떤 뜻으로 말을 해놓고, 그 뜻을 분명히 전하려고 더 많은 말을 하기도 한다. 오랜 세월 부부들이 서로 “미안해요!”라고 소리쳤고 그에 대한 반응은 몸짓으로 나타났다. 문을 쾅 닫고 나가는 몸짓으로 말이다. 말은 너무나 든든한 버팀목인 것으로 생각되어, 우리는 행동이 모든 것을 알려주는데도 상대의 말에만 신경을 쓴다. (pp.62-63)
  • 조련사들이 내게 가르쳐준 첫 번째 교훈은 내가 거울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궁극적으로 외래동물조련사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그것을 의미했다. 나는 내 모습을 알고, 변해야 했다. 좋든 싫든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었다. 이제부터 말을 전혀 안 쓰겠다는 게 아니라, ‘말로만’ 하지는 않을 거라는 뜻이다. 이후로는 상대에게 적절한 말을 하는 데에만 집착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과 타이밍, 보디랭귀지까지 챙길 작정이었다. 나는 조련사들의 ‘동물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모토를 내 생활에 채택했다. (pp.75-76)
  • 조련사처럼 생각하려면 동물을 인격화하려고 하는 인간의 오랜 관행을 버려야 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사람에 대해서 인격화하는 습관만 버리면 족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 특히 남편의 행동을 내 기준으로만 받아들이지 말아야 된다는 뜻이었다. 전에는 스콧(남편)이 운동복을 아무렇게나 내던져두는 것을 내게 맞서는 행동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남편이나 타인의 행위를 보다 냉정하게 보게 되었다. 훌륭한 조련사들은 동물의 행동을 행동 그 자체로 생각한다. 나도 남편의 행동을 그냥 행동 자체로 보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나 도덕심이 반영된 것이 아닌,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보았다. 스콧(남편)에게 내게 왜 그런 행동들을 하느냐고 따져 묻는 대신, 이제는 왜 그 일을 하고 싶은지 묻는다. 그걸로 끝이다. 거기에 나를, 내 생각을 집어넣지 않는다. 그가 아무리 날 사랑한다고 해도, 그 사랑보다는 자기 존재에 깊게 각인된 특성이 우선한다. 내가 찬바람이 쌩쌩 부는 공항 터미널 앞에 나와서 목이 빠지게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게 된다 해도 이제 짜증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남편이 늦게 나타나는 것을 사랑의 잣대로 재지 않는다. (pp.80-82)
  • 우리는 누군가가 개나 지갑, 급여로 받은 수표를 잃어버려 제정신이 아닌 최악의 순간에, 그에게 입바른 소리를 한다. 물론 선의로 한 말이지만, 그런 때의 상대는 그런 지적을 흘려버리거나 고까워하며 맞받아치기까지 한다.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기분이 나쁠 때는 아무것도 못 배운다. (p.89)
  • 나는 ‘본능’이라고 이름 붙인 행동에 대해 나름대로의 원칙을 정했다. 여기서 말하는 ‘본능’이란 변화가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변화시키기 어렵고 변화시키려고 노력해 봤자 소용이 없는 상대방의 행동을 뜻한다. (본능에 가까운 습관들을 고치고자 한다면) 그것은 필시 길고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다. 너구리가 먹이를 씻는 버릇을 말리는 것처럼 힘든 과정이 될 것이다. 나는 내가 맡은 동물을 성공으로 이끌고 싶은 만큼 나 자신도 성공하고 싶다. 그러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은 애초부터 손대지 않는 편이 좋다. 상대방의 행동이 미미한 것이라면 특히 그렇다. 게다가 너구리에게 먹이를 씻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꼭 그러고 싶은가? 너구리를 너구리답게 만드는 게 그런 습관인 것을. 조련사는 동물을 인형처럼 만들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상한 버릇과 작은 습관들이 우리를 우리로 만든다. 조련할 동물을 파악하려면, 그 점과 본능 같은 것을 인정해야 한다. (pp.107-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