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에서 성숙으로

Y모 강사의 친족•상속법 강의를 들었는데, 강의 내용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그가 세바시 강연을 듣고 나서 해줬던 열정, 권태, 성숙에 관한 이야기. 찾아보니 김창옥 교수가 했던 강연이다.

강연의 요지는, 인간이 품은 ‘열정’은 짧든 길든 일정 시간이 흐르면 ‘권태’(또는 정체기)를 만나 사그라들게 되며, 권태가 ‘성숙’으로 고양될 것인지 아니면 ‘우울’로 빠져들 것인지는 미래에 대한 낙관을 가졌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그러니, 이 권태는 반드시 끝이 난다, 라고 생각하고 묵묵히 견뎌낸다면 성숙에 이를 수 있다.

외계소년 위제트를 닮아 어딘가 친근한 알리바바의 마윈은 “오늘은 힘들고 내일은 더 힘들 수도 있지만 모레는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내일 저녁에 죽어버리는 바람에 모레의 빛나는 태양을 보지 못한다.”라는 곱씹을수록 묘한 말을 하였다고 한다.

오늘 힘들지 않고서는, 오늘 하루만 힘든 정도로는 모레의 태양을 볼 수 없다는 아주 냉정하고 현실적인 조언이면서, 어쨌거나 고진감래의 낙관을 가지고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따뜻한 격려이기도 하다. 설령 모레까지 힘들면 내일 모레를 기대하면서…, 힘겨운 시간은 그렇게 버텨내는 것이다.

용기

‘존경’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한낱 인간’일 뿐인 누군가를 쉽게 존경하고 쉽게 실망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사랑에 빠져들 때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을 걱정하지 않듯이, 언젠가 다가올 실망의 순간을 미리부터 겁낼 것은 없었다.

오늘 나는 ‘용기’에 대해서 들었다. 진실을 판가름 하는 일의 중요성 못지 않은 우리 스스로가 가진 진실을 밝히는 것의 위중함에 대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라도 진실을 위하여 맞서 싸울 수 있는 그 용기에 대하여 말이다.

큰 시험까지 이제 백 여일 남짓, 한 줌의 지식을 더하는 작업에 열중하면서도 지혜와 용기를 잃지 않고자 매일의 나를 단련해야만 한다는 것을, 오늘의 나는 알았다.

나는, 또, 다시, 일어선다

누가 넘어뜨리던 제 발에 걸려 넘어지던 다시 일어났다. 누워 엎드려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언제고 다시 일어나서 “What’s next?”를 물어왔다. 아픔과 쓰라림은 그 속에서 어떻게든 아물었던 것 같다. 실은 나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 정도 아픔과 쓰라림 쯤은 호사스러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었다.

어릴 적에는 누가 아버지 얘기를 하는 것이 몹시 싫었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에 대해서 누군가가 고의든 실수든 함부로 말하게 되는 것이 싫었고, 동시에 아버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마치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도 되는 양 내 스스로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는 것도 싫었다. 왜 당당하고 뻔뻔하지 못했는가, 지금도 부끄럽다.

며칠 전, 모처에 지원하는 서류를 완성하면서 부모님께 두 분의 최종학교명을 여쭈었다. 최종학력은 알고 있었기에 지금껏 부모님의 마음을 긁지 않을 수가 있었는데, 최종학교명을 적으라는 서류는 처음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여쭙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얼굴이 화끈거리시는지 아이고, 부끄러워서 어쩌느냐, 혹시 부모의 학력 때문에 아들이 불이익을 입게 되는 것은 아니냐, 하시며 난감해하셨다.

나는 당연히 두 분의 짧은 가방끈에도 불구하고 딸, 아들을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낸 것은 상찬받을 일이지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능글거리는 투로 말씀드렸다. 웃음. 다음날 아침 두 분께서는 밥상 앞에서 서로의 부끄러움을 공유하시고는 그래도 우리 딸, 아들은 나중에 자식에게 부끄러울 일이 없을 터이니 참 다행이라고 멋쩍게 웃으셨다고 한다.

서울사투리를 능숙하게 흉내내는 내가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고 하면, 어디 갱상도 사투리를 들어보자며 정당은 보수당을 지지하는지 야구는 삼성라이온즈를 응원하는지 묻는 사람들이 왕왕 있었다. 나는 해태타이거즈를 응원하며, 부친의 고향이 전남이셔서 그 영향을 받았다고 답한다. 물론 지금의 나는 엘지트윈스를 응원한다.

아버지가 왜 고향 땅을 두고 지역감정이 남아있는 타향으로 이주하여 생계를 잇고 가족을 꾸리게 되었는지 그 구구절절함에 대하여는 아버지로부터 직접 들어 알게 되었다. 그러나 기댈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두 발과 두 손으로 일어서는 일이 얼마나 힘겹고 처절한 것인지, 그 어려움에 대하여 어렴풋 알게 된 것은 부끄럽게도 최근의 일이다.

촌로가 우골탑을 쌓는 심정이셨을까. 아버지께서는 내가 관직에 나아가기를 내심 바라셨다. 오죽하면 이름도 벼슬 관(官)자를 써서 ‘관희’로 지으려 하셨단다. 그 시도를 막아주신 백부님 감사합니다. 공군장교로 ‘임관’하였을 때도 그렇게나 기뻐하셨다. 그러나 나는 고시공부는 끝끝내 싫다고 내뺐다.

어려서는 웹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의무적 야간자율학습을 빠지고 입시미술학원에 다니겠다는 철부지가 아버지는 어찌나 한심하셨을까. 그럼에도 아버지는 직접 학교로 오셔서 담임교사를 설득해주셨다: “우리 아들이 하고 싶어하는 대로 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아들의 결정을 한 번 믿어보겠습니다.” 그때 나는 역설적으로 내 결정에 뒤따르는 책임의 무게감에 섬뜩했다. 딱 1년 만에 쪼르르 학교로 돌아갔다.

지금의 나는 무엇이 되고 말고의 문제는 중요하기는 하지만 결정적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우리는 잠들면서 부디 내일 아침에도 눈 뜰 수 있기를 바라는 존재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숨 쉬는 순간에는 마치 영생을 약속 받은 것처럼 대담함과 무지함을 겸비하고 살아간다. 나는 오늘 또 하루 넘어졌지만, 내일 또 넘어질지도 모르지만, 또 다시 일어선다. 이것이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음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 있다(The greatest glory in living lies not in never falling, but in rising every time we fall).”

–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1918~2013).

삶에 대하여 진지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한 번도 삶에 대하여 진지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그러나 내가 그만큼 나의 삶을 소중하게 대하였는지는 의문이다.

힘든 공부 속에서도 즐겁게 지내고 있는 스스로가 대견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반문하게 된다.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너무 편했던 것은 아닌가? 누구보다 힘겹게 공부했어야 했는데 스스로의 기준이 너무 낮았던 것은 아닌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잊고, 뒤늦게 실망 혹은 자책하고… 이 패턴을 반복하다보니 자신에 대한 기대가 낮아졌고, 어느샌가 아예 아무런 목표도 세우지 않게 된 것은 아닌가.

지금 나는 누군가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나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나를 믿는다. 이 말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어려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닌 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자신있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자신있게 나를 한 번 믿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려면 나를 다시 추스려야 한다. 당연히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바로 생활이다.

생활을 바로잡자.

겸손

겸손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그 부족함 때문에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부족하다는 이유로 도전을 포기하는 것은 겸손한 것도 현명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판단을 과신하는 일종의 교만함에 가깝다. “너 자신을 알라”, 즉 네가 어찌 너 자신을 알겠는가. 겸손한 우리는 항상 “더 나은 실패”를 기획할 뿐이다. 결과는 받아들이는 것이지 성취하는 것이 아니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