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강

2013년 가을학기,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고 네번째 학기가 종강했다.

첫 기말시험이 11월 27일 수요일에 있었던 탓에 학기말이 좀 어수선했다. 두번째 세번째 시험도 연달아 있어서 거의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발을 다친 탓에 지각, 결석도 많이 했다.

마지막 수업, 교수님의 조언을 기억해두고자 글을 쓴다.

나를 포함한 2학년들에게, 졸업까지 이제 1년 남짓 남았으니 지금부터라도 아낌없이 공부하라고 하셨다. 변호사라는 자격이 정말 좋은 자격이니 그 자격에 합당한 실력을 갖추고 가능한 만반의 준비를 하여 실무로 나갈 수 있도록 공부하라고 하셨다.

선생이 학생에 공부하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임에도, 결코 가벼이 느껴지지 않았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도 상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생활, 내 습관의 어느 부분을 조금 손 볼 것인가, 고민 중이다.

그리고 변호사의 직무라는 것은 그 영역이 무궁무진하므로 절대로 고전적인 법조, 재야의 틀에 갇히지 말라고 하셨다. 이 역시 내가 동의하는 바이다. 최근에는 어쨌거나 시작은 로펌에서 해야겠다, 그런 생각도 하고 있긴 하지만.

할 수 있을 때, 하여야 한다.

과정은 좋았지만 여전히 후회가 남는 시험

아직도 정리가 잘 안 되고 있지만, 그 상태 그대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

그러니까 어제 시험 하나가 끝났다.

학점수로는 3학점이긴 한데, 일단 시험시간이 4시간. 문제지는 총 164쪽. 그리고 이걸 설마 다 쓰라고 준 건 아니겠지 싶을 정도의 두툼한 답안지를 받았다.

목요일과 금요일은 수업도 없었겠다. 정말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먹고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만 빼고는 꼬박 공부했다. 꽤 많은 양을 보았고 이해했고 정리했다. 약간의 자신감도 생겼다. 조금 늦었다 싶은 감은 있었지만 어떤 문제가 나오더라도 어지간해서는 풀어낼 자신이 조금은 있었다. 그래서 그 자신감에 기인한 기대감으로 시험을 기다렸다.

시험 당일 오전에는 조금 헤매긴 했다. 약 5시간을 남겨두고, 자 이제 무엇을 해볼까….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있었다’라는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얼마나 가혹하고 힘이 빠지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거라고 알게 된 게 어디야, 싶지만, 시험이 끝나고 다시 책을 잡는 사람이 몇이나 되더라….

도무지 “끝난 것에 의의를 두는 것”도 안 되는 상태이다.

지금 쓰면서 정리가 좀 되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한 번 보고 어떻게 아는가.”이다. 그렇게 위안을 삼아보련다. 이게 ‘시작’이라고.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번이 ‘시작’인 것은 아니다. 기실 지난 3개 학기 동안 형사법 수업을 통해서 배워 온 부분이다. 물론 수업의 핀트야 조금은 달랐을 수도 있지만, 내가 ‘제대로’ 공부했다면 정확히 이해하고 익히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잊으며 사는 존재라는 그 존재의 본질을 상기하더라도!

그러니까, 어쩌면 지금의 좌절감은 지난 시간들을 제대로 쓰지 못한 것에 대한 속칭 ‘정대만류’의 후회와 비슷한 것이다. 한다고는 했는데, 혹은 제대로 하지도 않았구나. 동위선상에서 엇비슷하게 경쟁(?)하고 있는 줄 알았던 사람들은 얼추 나보다 잘 알고 있는 것만 같을 때, 아 나는 이 모양인데 저 치는 저만치나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정대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실 정대만은 중학MVP 출신이고, 잠시 운동을 쉬고 놀기는 놀았지만 결코 담배는 피지 않았노라고 회상한 것으로보아 아예 몸을 망가뜨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역 내 약팀이라고는 해도 엄연히 레귤러가 있는 북산팀에 들어가서 당당히 자리를 꿰찬다. 그럼에도 회한이 남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적다보니, 정리가 된다. 지금은 회한에 젖을 때가 아니다. 그냥 다시 묵묵하게 나아갈 때이다.

책을 펴자.

칭찬이 듣고 싶어 적어보는 오늘 하루

11월 18일 월요일 10시 정도에 느즈막히 일어났다. 부재중전화가 4통 정도 와 있었다. 아버지의 모닝콜. 6시 55분부터 7시 10분까지만 딱 와 있다.

씻었다. 6층에서 조세법 공부를 했다. 소득세법 중 배당소득까지 러프하게 보았다.

점심을 먹고 셔틀버스를 이용 학교로 내려왔다.

2시 조세법 강의에 들어갔다. 2명이 각 발표를 1개씩 했다. 부가가치세법 영세율에 대해서 조금 배웠다.

3시부터 5시 Law and Politics in Korea 강의에 들어갔다. 10주차 리딩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강의 도중에 나와서 11주, 12주, 13주 리딩을 인쇄하고 분류했다.

용돈이 입금되어 카드회사에서 연체액을 빼가고, 남은 금액 중 얼마를 4분기 기숙사비로 이체했다. 축의금을 부탁했던 친구에게도 이체했다. 10만원을 인출해서 지갑에 넣었다.

겨울방학 때 인턴을 나가게 될 곳의 변호사께 이메일을 발송했다. 또 다른 곳에서 인턴 선발 메일이 왔다. 바로 답장을 드렸고, 그 곳에서 일하는 변호사께도 이메일을 보냈다. 지난 주 금요일 면접을 하러 왔던 변호사께도 이메일을 썼다.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법문서작성 강의에 들어갔다. 제1회 변호사시험 형사법 기록형 문제에 대한 강평이 있었다. 강의를 듣기보다는 딴짓을 좀 했다.

강의가 끝나고 검찰실무 스터디를 했다. 연수원 기록 1개(7시간짜리)를 1시간 40분 정도에 보고 검토를 했다.

셔틀버스를 이용 기숙사에 돌아와서 검찰실무 간이기록 검토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담당 교수님께 보냈다. 좀 늦긴 했지만 어쨌든 보냈다. 그리고 지금.

조세법 기말시험이 8일 남았다. 계약법의특수문제 기말시험이 14일 남았다. 준비상태는 그다지 양호하지 못하다.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 방법 밖에 없다.

이 정도면 오늘은 푹 자도 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일은 점심 약속이 있고, 일주일에 한 번 가는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을 것이다. 검찰실무 복습과 계약법의특수문제, 그리고 조세법 과목에 대한 시험공부로 하루를 보내지 않을까 싶다.

수요일에는 저녁에 (아마도 마지막) 검찰실무 스터디가 있다. 이 날은 조세법 강의도 있으니 역시 조세법 시험공부로 하루를 보낼 것이다.

형사실체법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그리고 형사소송법 주요쟁점에 대한 환기도. 한 번 다루었던 쟁점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고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다시 볼 시간적 여유가 없다.

목요일에는 형사소송실무 강의가 있고 점심 약속이 있으며 다시 저녁에 형사소송실무 스터디가 있다. 형사소송실무 스터디 검토보고서 과제를 해야할 것이다, 아마도.

금요일에는 공익소송리걸클리닉 수업이 있는데, 아뿔싸, 아직 해당 리서치를 마무리 하지 못했다. 금요일 오전 US Contract Law 수업은 9시부터 시작한다. 이 수업 시간에 리서치를 하는, 간교한 꾀를 부리는 수밖에 없다.

토/일요일은 온통 조세법 공부로 채워야 할 것이다. 달리 수가 없다. 여기에 Law and Politics in Korea 11주차 리딩을 하고 Response Paper를 작성, 제출. 그리고 검찰실무/형사소송실무 과제를 수행.

늦어도 월요일 정도에는 조세법 시험대비자료가 완성되어 있어야 한다.

수요일부터는 다시 계약법의특수문제와 형사소송실무 대비에 전념해야 한다. 검찰실무는? 형사소송실무 시험 이후에 다시 일주일이 주어지니, 그때를 이용하여 준비하는 방법 밖에 없다. Law & Politics in Korea와 US Contract Law는 그 이후에 시작해도 시간이 충분하다.

그러고 나면, 2학년 2학기도 끝이 나고 바로 다음주 월요일부터 법무법인 세종의 동계 실무수습이 시작된다. 정장과 와이셔츠를 준비해야 한다. 동계 실무수습 대비는 검찰실무 시험이 끝나고부터 생각해보는 것으로.

다치고 나서 느끼고 알게 된 것들

사소하지만 고의적인 부주의로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었다. 부상 부위는 오른쪽 엄지발가락. 이동이 잦으니 회복도 더디다. 아무튼 간에 다치고 나서 느끼고 알게 된 것들이 있었으니…

  1. 일단, 아프면 다치면 서럽다. 발을 다쳤는데 어째서인지 마음까지 아프다… 몸이 불편하니까 마음이 위축된다. 의욕도 없어지고 귀찮아진다.
  2. 세상(어쩌면 2013년, 대한민국)의 속도는 정말 빠르다. 특히,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는 그렇게 긴 편이 아니다. 그리고 갑자기 차가 돌진해도 피할 수 없으니, 위험천만하다. 버스도 절대 기다려주지 않는다… 잡을 수 없는 것에 마음이 조급해지지 말자, 라고 몇 번을 다짐했는지 모른다.
  3. 나의 몸/마음이 아주 건강하다고 생각했으나,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특히 마음이… 그러니까 이 정도 다친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버텨낼 줄, 견뎌낼 줄 알았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나의 이런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4. 다쳤답시고 도와주고 배려해주고 걱정해주고 챙겨주는 주위 사람들이 (설령 도움이 안될지언정)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고맙다.
  5. 부모님은 나를 정말 사랑하신다. 스물아홉 먹은 아들의 징징거림을 받아주시다니… 기대고 싶을 때, 기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정말 감사했다.
  6. 내가 부지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걷는 게 느리니까 수업이나 약속에 늦기가 부지기수. 예전에는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닌 덕분에 게으름이 주는 악영향이 상쇄되었던 것이었다.
  7. 절뚝이며 걷고 있으면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이 내 발을 많이 쳐다본다. 눈이 그리로 향한다는 것이 내 눈에도 보인다. 그게 은근히 사람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8. 아픈 사람을 보면 괜한 동지애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아파봐야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이 있는 것일까. 꼭 일부러 아플 필요는 없겠지만. 그리고 병원을 가보니 사람들이 정말 많이들 아프구나, 알게 됐다. 세상에 아픈 사람들 많구나…
  9. 겸손해졌다. 그 말인즉 내가 그만큼 오만하게 굴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걸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10. 신앙에 대하여 아주 약간 더 진지해졌다. 물론 그저 주일미사를 좀 더 꼼꼼히 챙기는 정도이지만. (2013.12.8. 추가)

좋은 삶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살고 싶다는 것은 맞기에.

  1. 주일미사를 지킨다.
  2. 일주일에 한 편 이상 ‘좋은’ 영화를 본다.
  3. 집 가까운 도서관에 자주 들른다.
  4. 집 가까운 수영장에 자주 들른다.
  5. 일기를 쓴다.
  6. 첼로를 배운다 그리고 켠다.
  7. 테니스를 배운다 그리고 친다.
  8. 째즈를 듣는다.
  9. 예술가들을 가까이 한다.
  10. 하루에 5km 이상 달린다.
  11. 하루에 한 번 이상 가족 혹은 친구와 대화/통화한다.
  12. 아침 공복에 과일을 먹는다.
  13. 아침식사 후에 향이 좋은 커피를 마신다.
  14.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탕 목욕을 한다.
  15.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한다.
  16. 일주일에 2시간 이상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리바운딩

요며칠 아니 요 몇주 제정신이 아니었다.

오버로딩.
알아챘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나에게서 나타나는 이상징후 같은 걸 감지하지 못했다.

결국, 사단이 났다.
시험도 망쳤고… 인턴 과제도 못했다.
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나, 싶었다. 이건 아닌데…

어제 5km, 오늘 4km 정도를 달렸다.
기분이 좀 나아졌다.

나도 그럴 수도 있구나 싶다.
두려웠던 일이 현실화 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아직 잘 실감이 안 나지만,
그래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달리 수가 없기도 하다. 그냥 받아들일 밖에…

욕심을 줄이고, 여유를 늘려야 한다.
사람, 모임, 일, 경험… 다…

지금은 내 공부에 좀 더 집중할 때이니까,
나도 그걸 알고 있으니까.

하루에 최소 1~2시간은 나를 위해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멍하니 빈 책상에 앉아서 이것저것 정리하고 궁리를 해보려고 한다.

특히 1주일에 하루 반나절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청소를 깨끗이 하고,
지난 한 주와 다음 한 주에 대해서 차분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차분히… 이건 어렵겠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정리하는 삶을 살고 싶다.
멘붕이 왔었는데 이 정도까지 정리해낸 것도 대단하다.

잘 했어,
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