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는 길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물음은 불현듯 찾아온다. 한동안 나를 괴롭히지만 쉬이 답해지지 못한 채 다시 한 켠에 치워진다. 삶이 순탄하기만 한 것이라면 이런 물음은 만날 기회조차 드물다.

길 것만 같은 인생도 지나고나면 한 순간.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물음은 지금 던져야 하는 것이다.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

암 투병을 하시느라 한동안 설교를 못하시다가 오랜만에 다시 나오신 것이라 하였다. 설교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약간은 야윈 듯한 몸매를 하시고는 아주 엄격한 단어 사용을 고집하시는 느낌이었다. 복잡하지 않고 간결하되 심오하고 이해하기 쉬웠다.

목사님께서, 상대적으로 장수한 편인 다윗도 임종 직전에는 인생은 지나고보니 한 뼘 밖에 되지 않는 매우 짧은 것, 이라며 회고하였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지나고 보면, 시간은 참 잘도 간다. 임종의 순간에도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며 정말 화살처럼 빨리 지나갔다고 말할 것이다. 이날 설교의 화두는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것이었다.

영국 선덜랜드에서 있었던 한 마라톤 대회 이야기를 해주셨다. 5,000명이 넘는 참가자 가운데 1위 선수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 전원이 실격하였다고 한다(관련기사). 1위 선수는 올바른 가이드 차량을 따라서 레이스를 하였고, 1위 선수와 격차가 많이 났던 2위 이하 선수들은 모두 코스를 잘못 들게 되었다. 어찌저찌 결승선에 도달하였으나, 42.195km에서 약 264m가 부족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는 살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만 살아서는 안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어디로 가십니까,
어디로 갈까요.

메리 크리스마스.

삶에 대하여 진지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한 번도 삶에 대하여 진지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그러나 내가 그만큼 나의 삶을 소중하게 대하였는지는 의문이다.

힘든 공부 속에서도 즐겁게 지내고 있는 스스로가 대견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반문하게 된다.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너무 편했던 것은 아닌가? 누구보다 힘겹게 공부했어야 했는데 스스로의 기준이 너무 낮았던 것은 아닌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잊고, 뒤늦게 실망 혹은 자책하고… 이 패턴을 반복하다보니 자신에 대한 기대가 낮아졌고, 어느샌가 아예 아무런 목표도 세우지 않게 된 것은 아닌가.

지금 나는 누군가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나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나를 믿는다. 이 말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어려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닌 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자신있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자신있게 나를 한 번 믿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려면 나를 다시 추스려야 한다. 당연히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바로 생활이다.

생활을 바로잡자.

책 읽고 글 쓰는 일

비싼 밥 먹고도 한 번씩 공상을 한다.

“어떠한 물질적 사회적 제약조건도 없는 상황이라면, 어떤 ‘일’을 업으로 삼을 것인가?”

아예 일이나 업에서부터 벗어나면 안 될지 되물을 이도 있겠다만, 맑스에 의하면 인간의 유적 본질은 노동이므로 최소한의 인간성 담보를 위해 그러한 도피는 불가하다고 하자.

이 질문에 나름의 답을 몇 차례 던져봤지만, “책 읽고 글 쓰는 일” 외에는 답을 할 수가 없었으니 나도 참 무미한 인간이다 싶다.

그리고 이 일은 지금도 간간이나마 하고 있고 또 할 수 있으니 이 역시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