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은 언제나 실재를 쫓을 뿐, 그를 포박할 수는 없다

―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를 보고

no country for old men poster

뻑뻑할 정도로 건조하다. 사막의 모래바람과 보안관 역을 맡은 배우의 갈라져 있는 피부가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보다보니 갈증이 날 지경이다. (어째서 영화 속 인물들은 물 한 잔 제대로 마시지 않는단 말인가.)

이 영화는 크게 두 개의 추격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약거래 현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돈가방을 들고 튄 르웰린 모스를 안톤 쉬거가 쫓는다. 그리고 보안관 에드는 사태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 안톤 쉬거와 르웰린 모스를 쫓는다.

안톤 쉬거는 고작 ‘유머를 좀 알지 못하는’ 정도의 악인이 아니다. 도무지 적당한 수준의 마무리라는 것을 모르는 인물로서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이지 않는 것에 관하여 어떠한 필요 또는 불필요를 생각하거나 느끼지 않는 사람이다.

극 중 그의 등장은 여러모로 놀라운데 첫째, 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른다. 둘째, 유명한 ‘동전 던지기 장면’에서 보듯 어떤 구실로 사람을 죽일지 모른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종잡을 수 없다. 우리의 낡은 관념이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인물이다. 끝내 누구에게도 포박되지 않는다.

이 땅에 ‘정의’라는 관념을 실현하여야 할 주체인 보안관 에드의 시간은 어찌나 느리게 흐르는지, 관할 구역에 벌써 몇 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였음에도 한가로움이 느껴질 정도이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하고 있거나 무능한 것은 아니다. 자꾸 한 발 두 발 늦을 뿐이다. 그리고 막상 안톤 쉬거를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는 그를 대면하지 않은 것에 안도하는 지경이다.

이 숨가쁜 스릴러의 대미는 아주 싱겁다. 변모하는 세상을 쫓아갈 자신이 없어진 보안관 에드는 은퇴한다. 자신의 도덕 관념으로 이 타락한 실재의 세계를 더는 해석할 자신이 없어진 게다. 그리고 부인을 앞에 두고 간밤에 꾼 꿈에 대하여 길고 상세하게 설명한다. 마치 실재를 쫓지 않는 관념이 도달할 곳은 무의식의 세계라는 것인양.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