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무: 내 남자 내 맘대로 길들이는 행복한 조련법』 (에이미 서덜랜드, 2008)

원제목 What Shamu Taught Me About Life, Love, and Marriage: Lessons for People from Animals and Their Trainers이 훨씬 좋다.

  • 전통적인 조련에서는, 동물을 인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그 주된 목표였다. 동물을 때리면서, 누가 주인인지를 가르쳤다. 그런 조련방식이 사람들에게 ‘조련’이라는 낱말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했다. 전통적인 조련사들은 상은 안 주어도 처벌은 반드시 한다. 그들은 동물에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가르친다. (p.59)
  • 하지만 진보적인 조련사들은 근본적으로 그와는 정반대의 접근법을 취한다. 그들은 조련을 대상 동물과의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한다. 길들이기보다는,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동물들에게 무엇을 하게 만들지 않고, 하도록 유도한다. 그들의 목표는 동물이 복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p.59)
  • 우리는 말을 하는 능력 덕분에 의사소통에서는 동물들을 능가하지만, 언어 때문에 자기표현을 똑바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진화 덕분에 언어를 얻어놓고도, 자기표현을 할 때가 되면 머뭇거린다. 게으르기까지 하다. 어떤 뜻으로 말을 해놓고, 그 뜻을 분명히 전하려고 더 많은 말을 하기도 한다. 오랜 세월 부부들이 서로 “미안해요!”라고 소리쳤고 그에 대한 반응은 몸짓으로 나타났다. 문을 쾅 닫고 나가는 몸짓으로 말이다. 말은 너무나 든든한 버팀목인 것으로 생각되어, 우리는 행동이 모든 것을 알려주는데도 상대의 말에만 신경을 쓴다. (pp.62-63)
  • 조련사들이 내게 가르쳐준 첫 번째 교훈은 내가 거울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궁극적으로 외래동물조련사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그것을 의미했다. 나는 내 모습을 알고, 변해야 했다. 좋든 싫든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었다. 이제부터 말을 전혀 안 쓰겠다는 게 아니라, ‘말로만’ 하지는 않을 거라는 뜻이다. 이후로는 상대에게 적절한 말을 하는 데에만 집착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과 타이밍, 보디랭귀지까지 챙길 작정이었다. 나는 조련사들의 ‘동물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모토를 내 생활에 채택했다. (pp.75-76)
  • 조련사처럼 생각하려면 동물을 인격화하려고 하는 인간의 오랜 관행을 버려야 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사람에 대해서 인격화하는 습관만 버리면 족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 특히 남편의 행동을 내 기준으로만 받아들이지 말아야 된다는 뜻이었다. 전에는 스콧(남편)이 운동복을 아무렇게나 내던져두는 것을 내게 맞서는 행동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남편이나 타인의 행위를 보다 냉정하게 보게 되었다. 훌륭한 조련사들은 동물의 행동을 행동 그 자체로 생각한다. 나도 남편의 행동을 그냥 행동 자체로 보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나 도덕심이 반영된 것이 아닌,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보았다. 스콧(남편)에게 내게 왜 그런 행동들을 하느냐고 따져 묻는 대신, 이제는 왜 그 일을 하고 싶은지 묻는다. 그걸로 끝이다. 거기에 나를, 내 생각을 집어넣지 않는다. 그가 아무리 날 사랑한다고 해도, 그 사랑보다는 자기 존재에 깊게 각인된 특성이 우선한다. 내가 찬바람이 쌩쌩 부는 공항 터미널 앞에 나와서 목이 빠지게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게 된다 해도 이제 짜증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남편이 늦게 나타나는 것을 사랑의 잣대로 재지 않는다. (pp.80-82)
  • 우리는 누군가가 개나 지갑, 급여로 받은 수표를 잃어버려 제정신이 아닌 최악의 순간에, 그에게 입바른 소리를 한다. 물론 선의로 한 말이지만, 그런 때의 상대는 그런 지적을 흘려버리거나 고까워하며 맞받아치기까지 한다.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기분이 나쁠 때는 아무것도 못 배운다. (p.89)
  • 나는 ‘본능’이라고 이름 붙인 행동에 대해 나름대로의 원칙을 정했다. 여기서 말하는 ‘본능’이란 변화가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변화시키기 어렵고 변화시키려고 노력해 봤자 소용이 없는 상대방의 행동을 뜻한다. (본능에 가까운 습관들을 고치고자 한다면) 그것은 필시 길고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다. 너구리가 먹이를 씻는 버릇을 말리는 것처럼 힘든 과정이 될 것이다. 나는 내가 맡은 동물을 성공으로 이끌고 싶은 만큼 나 자신도 성공하고 싶다. 그러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은 애초부터 손대지 않는 편이 좋다. 상대방의 행동이 미미한 것이라면 특히 그렇다. 게다가 너구리에게 먹이를 씻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꼭 그러고 싶은가? 너구리를 너구리답게 만드는 게 그런 습관인 것을. 조련사는 동물을 인형처럼 만들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상한 버릇과 작은 습관들이 우리를 우리로 만든다. 조련할 동물을 파악하려면, 그 점과 본능 같은 것을 인정해야 한다. (pp.107-110)

글쓴이

Sehee Park

Advocate for Innovators. Law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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