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자본론』 (마스다 무네아키, 2015)

매년 어마어마한 수의 신간이 나오는 시대에 2015년 출간된 책이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는 점은 실로 놀랍다.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과 하코다테 츠타야서점 그리고 다케오시립도서관에 대한 열렬한 반응 덕분일 터. 대단한 내용 있겠나 싶어 외면했다가 작고 가벼운 판형에 이끌려 결국 집어들었다.

저자 마스다 무네아키(增田 宗昭)는 츠타야서점을 만들고 다케오시립도서관(武雄市図書館)을 기획한 장본인. 그는 ‘고객 가치’의 관점에서 이 시대를 이른바 “서드 스테이지3rd stage”로 정의한다. 상품과 플랫폼이 범람하는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가치 있는 ‘라이프 스타일 제안’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라이프 스타일 제안’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디자인’이며 고도의 지적 작업이다. 머릿속 아이디어를 가시화 할 수 있는 디자인 능력의 유무, 이러한 지적 작업을 가능케 할 ‘지적자본’의 축적 여부 — 결국 그런 능력을 가진 인재를 확보하고 길러낼 수 있는 조직인지 여부 — 에 기업의 사활이 걸려있다는 것은 이런 연유이다.

“디자이너 집단이 되어야 하는 미래의 기업에는 ‘직렬형 조직’은 어울리지 않는다. 시간 낭비가 지나치게 클 뿐 아니라, 디자인 감각은 상하 관계를 통해 단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직렬형 조직보다 클라우드적 발상에 근거한 ‘병렬형 조직’ 쪽이 앞으로는 보다 효과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반세기 전, 일본의 미래를 창조해 낸 것은 철근과 콘크리트였다. 하지만 앞으로 일본을 창조해 낼 것은 디자인이고 여기에 필요한 것은 지성이다.” (56~57쪽)

마스다 무네아키의 CCC는 일본인 5,000만 명이 가입했다고 하는 “T포인트”라는 포인트 적립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고, 그가 말하는 ‘라이프 스타일 제안’이 허무맹랑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어느 정도 실체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의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데이터 덕분이다. 참으로 명민한 기업가이다.

한국어 번역본의 부제는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인데, 일본어본은 “모든 기업이 디자이너 집단이 되는 미래”이다.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고, 실제로 책을 읽고 나면 일본어본의 표현이 좀 더 정확한 설명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출판 편집, 번역에 관하여 깊이 아는 바는 없으나 번역 출판물을 소비하는 독자로서 역자 또는 출판사에서 굳이 이런 수정을 감행한 이유가 무엇인지 몹시 궁금하다.

『나인: 더 빨라진 미래의 생존원칙』 (조이 이토 등, 2017)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세 가지 상황: ⑴비대칭성 → ⑵복잡성 → ⑶불확실성.

네트워크의 시대.

“우리는 이제야 겨우 우리가 아는 것이 얼마나 없는지 깨달을 만큼 뭔가를 알게 됐다.”

이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MIT 미디어랩의 9가지 원칙:

  1. 권위보다 창발(emergence) ; 소수 → 다수
  2. 푸시보다 풀(pull) 전략 ; 필요한 것을 가장 필요한 때
  3. 지도보다 나침반; ‘문화’라는 방향성
  4. 안전보다 리스크; 저비용의 혁신
  5. 순종보다 불복종; 긍정적 일탈
  6. 이론보다 실제; 교육이 아닌 학습
  7. 능력보다 다양성; 복잡성 시대의 필수 전략
  8. 견고함보다 회복력;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기
  9. 대상보다 시스템; 관계들에 미칠 영향에 주목

『피로사회』를 읽고

Müdigkeitsgesellschaft. 피로사회. 한병철. 문학과지성사. 2012.


신경성 폭력

[1]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21세기의 시작은 신경증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신경성 질환들은 경색(梗塞)성 질병이며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으로 면역학적 기술로는 결코 다스려지지 않는다.

[2]

이 사회는 기존의 면역학적인 조직과 방어의 도식으로는 전혀 파악할 수 없는, 이질성Andersheit과 타자성Fremdheit의 소멸을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구도 속으로 점차 빠져들어 가고 있다. 오늘날 이질성은 격렬한 면역 반응을 촉발하는 가시가 빠진 차이로 대체되었고, 타자성 역시 날카로움을 잃고 상투적인 소비주의로 전락하였다.

[3]

이 시대를 면역학적 시대로 가정하는 로베르토 에스포지토Roberto Esposito의 면역성 이론은 잘못된 가정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민자나 난민은 위협이라기보다는 짐스러운 존재로 여겨질 뿐이다.

[4]

면역학적 패러다임은 ‘세계화 과정’과 양립하기 어렵고, 오늘날 문화이론적 담론에서부터 생활감정 자체까지도 지배하고 있는 ‘혼성화 경향’과도 반대된다.

[5]

자아의 면역학적 자기주장은 부정의 부정(부정성의 변증법)을 통해 관철되는 것이지만, 21세기의 신경성 질환들은 긍정성의 변증법을 따른다.

[6]

 

『샤무: 내 남자 내 맘대로 길들이는 행복한 조련법』 (에이미 서덜랜드, 2008)

원제목 What Shamu Taught Me About Life, Love, and Marriage: Lessons for People from Animals and Their Trainers이 훨씬 좋다.

  • 전통적인 조련에서는, 동물을 인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그 주된 목표였다. 동물을 때리면서, 누가 주인인지를 가르쳤다. 그런 조련방식이 사람들에게 ‘조련’이라는 낱말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했다. 전통적인 조련사들은 상은 안 주어도 처벌은 반드시 한다. 그들은 동물에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가르친다. (p.59)
  • 하지만 진보적인 조련사들은 근본적으로 그와는 정반대의 접근법을 취한다. 그들은 조련을 대상 동물과의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한다. 길들이기보다는,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동물들에게 무엇을 하게 만들지 않고, 하도록 유도한다. 그들의 목표는 동물이 복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p.59)
  • 우리는 말을 하는 능력 덕분에 의사소통에서는 동물들을 능가하지만, 언어 때문에 자기표현을 똑바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진화 덕분에 언어를 얻어놓고도, 자기표현을 할 때가 되면 머뭇거린다. 게으르기까지 하다. 어떤 뜻으로 말을 해놓고, 그 뜻을 분명히 전하려고 더 많은 말을 하기도 한다. 오랜 세월 부부들이 서로 “미안해요!”라고 소리쳤고 그에 대한 반응은 몸짓으로 나타났다. 문을 쾅 닫고 나가는 몸짓으로 말이다. 말은 너무나 든든한 버팀목인 것으로 생각되어, 우리는 행동이 모든 것을 알려주는데도 상대의 말에만 신경을 쓴다. (pp.62-63)
  • 조련사들이 내게 가르쳐준 첫 번째 교훈은 내가 거울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궁극적으로 외래동물조련사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그것을 의미했다. 나는 내 모습을 알고, 변해야 했다. 좋든 싫든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었다. 이제부터 말을 전혀 안 쓰겠다는 게 아니라, ‘말로만’ 하지는 않을 거라는 뜻이다. 이후로는 상대에게 적절한 말을 하는 데에만 집착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과 타이밍, 보디랭귀지까지 챙길 작정이었다. 나는 조련사들의 ‘동물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모토를 내 생활에 채택했다. (pp.75-76)
  • 조련사처럼 생각하려면 동물을 인격화하려고 하는 인간의 오랜 관행을 버려야 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사람에 대해서 인격화하는 습관만 버리면 족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 특히 남편의 행동을 내 기준으로만 받아들이지 말아야 된다는 뜻이었다. 전에는 스콧(남편)이 운동복을 아무렇게나 내던져두는 것을 내게 맞서는 행동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남편이나 타인의 행위를 보다 냉정하게 보게 되었다. 훌륭한 조련사들은 동물의 행동을 행동 그 자체로 생각한다. 나도 남편의 행동을 그냥 행동 자체로 보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나 도덕심이 반영된 것이 아닌,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보았다. 스콧(남편)에게 내게 왜 그런 행동들을 하느냐고 따져 묻는 대신, 이제는 왜 그 일을 하고 싶은지 묻는다. 그걸로 끝이다. 거기에 나를, 내 생각을 집어넣지 않는다. 그가 아무리 날 사랑한다고 해도, 그 사랑보다는 자기 존재에 깊게 각인된 특성이 우선한다. 내가 찬바람이 쌩쌩 부는 공항 터미널 앞에 나와서 목이 빠지게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게 된다 해도 이제 짜증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남편이 늦게 나타나는 것을 사랑의 잣대로 재지 않는다. (pp.80-82)
  • 우리는 누군가가 개나 지갑, 급여로 받은 수표를 잃어버려 제정신이 아닌 최악의 순간에, 그에게 입바른 소리를 한다. 물론 선의로 한 말이지만, 그런 때의 상대는 그런 지적을 흘려버리거나 고까워하며 맞받아치기까지 한다.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기분이 나쁠 때는 아무것도 못 배운다. (p.89)
  • 나는 ‘본능’이라고 이름 붙인 행동에 대해 나름대로의 원칙을 정했다. 여기서 말하는 ‘본능’이란 변화가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변화시키기 어렵고 변화시키려고 노력해 봤자 소용이 없는 상대방의 행동을 뜻한다. (본능에 가까운 습관들을 고치고자 한다면) 그것은 필시 길고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다. 너구리가 먹이를 씻는 버릇을 말리는 것처럼 힘든 과정이 될 것이다. 나는 내가 맡은 동물을 성공으로 이끌고 싶은 만큼 나 자신도 성공하고 싶다. 그러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은 애초부터 손대지 않는 편이 좋다. 상대방의 행동이 미미한 것이라면 특히 그렇다. 게다가 너구리에게 먹이를 씻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꼭 그러고 싶은가? 너구리를 너구리답게 만드는 게 그런 습관인 것을. 조련사는 동물을 인형처럼 만들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상한 버릇과 작은 습관들이 우리를 우리로 만든다. 조련할 동물을 파악하려면, 그 점과 본능 같은 것을 인정해야 한다. (pp.107-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