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을 가지고 살 권리』 (이즈미야 간지, 2016)

뿔을 가지고 살 ‘권리’ (제목 한 번 잘 지었다)

‘아그레아블 독서모임’이라고 있다. 이 모임에서 모집한 『뿔을 가지고 살 권리』 서평단에 선정되어서 읽게 되었다. 원제가 『‘보통이 좋아’라고 하는 병』인 이 책이 현해탄을 건너오면서 『뿔을 가지고 살 권리』로 이름표를 바꿔달게 된 데에는 역대 최장기 베스트셀러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책인 『미움받을 용기』의 영향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권리’ 개념을 법률적으로 깐깐하게 분석하려 들지만 않는다면, 매우 성공적인 개명이라 생각한다.

정신과 의사인 이즈미야 간지가 카운슬러나 의료직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 내용을 추려 총 10강으로 구성했다. 이른바, 열 편의 마음 수업.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책이 아니라고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내용이 추상적이고 철학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어 이해가 쉽지 않다. “지금 시점에서 이것이 이해를 초월한 것이라 해도 꼭 머리 한구석에 담아두자.”라는 저자의 세심한 충고를 귀담아 듣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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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병 진단 그리고 기적처럼 만난 구절:
“병은 불행이라는 포장지에 싸인 선물”

어머니가 아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병명을 진단받은 것은 최근이다. 하필 그 날은 어머니와 내가 남해로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이었다. 짐을 꾸리며 이 책을 챙긴 것은 우연이었다. 숙소에서 어머니께 이 책을 낭독해드렸다. 각 티슈를 갖다놓고 엉엉 울었다. 테이블 위에 휴지 더미가 수북이 쌓였다.

여행을 다녀온 뒤에도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아래의 대목을 반복하여 읽었다:

「불행이라는 포장지에 싸인 선물」

현대인은 고민이나 고통에 맞닥뜨리면 그 즉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카운슬러를 찾아가거나 병원으로 달려가 고통을 당장 제거하려고 한다. 과일의 상한 부분을 잘라내버리듯이.

그러나 이런 고민이나 고통에는 반드시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타인이 제공하는 표면적인 해결법만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중요한 메시지를 놓쳐 큰 손실을 입게 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동일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수차례 같은 재난이 엄습해온다. 끝없이 계속되는 반품과 택배 재발송처럼 말이다.

고민․고통이 전달하는 것은 흔히들 말하는 운동이나 식생활 개선 같은 차원의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가장 근본에 있는 가치관이나 사고방식과 관련된 깊은 메시지다.

… 나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 의뢰인에게 들려준다. “병이나 괴로움은 하늘이 보내준 선물 같은 것으로 그 안에는 매우 소중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불행’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있기 때문에 대개는 꺼리며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받지 않는 한 몇 번이고 다시 발송된다. 용기를 내어 받아들이고 그 꺼림칙한 포장을 풀어보면, 자신답게 살아가기 위한 소중한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실제로 ‘이 병이 아니었다면 내 삶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도 옛날에 살았던 방식 그대로 살고 있을 텐데 그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고 말하는 의뢰인도 적지 않다. (pp.30~32)

누구도 초대하지 않았지만 어머니에게 도착한 병. 어머니의 병에도 반드시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어머니가 병에 담겨 있을 중요한 메시지, 어머니가 어머니 자신답게 살아가기 위한 소중한 그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 바람이 나의 슬픔을 대체할 수는 없었지만 위로는 되었다.

행복의 본질은 ‘보통’이 아닌 것

이 책의 원제가 『‘보통이 좋아’라고 하는 병』인 이유를 알만한 단서 같은 대목이 있었다:

‘보통’이라는 말에는 모두와 같은 게 좋다거나 평범하게 사는 것이 행복할 게 틀림없다는 편중된 가치관이 들러붙어 있다. 사람들은 ‘보통’이 되면 ‘보통’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것에 ‘보통’은 없다. 왜냐하면 ‘보통’이 아닌 것이 행복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p.38)

… ‘보통’이라는 말의 경우 ‘보통은 좋다’, ‘보통은 행복하다’는 가치관이 그 배후에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보통’은 ‘다수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게 틀림없다. 결국 ‘보통’이라는 말은 ‘표준적인’, ‘사회에 적응한’이라는 가치관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 말에 들러붙은 가치관이나 세계관 같은 것이 사람의 생각을 구속하고 고착되게 한다.

‘보통’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나는 정말 ‘보통’ 사람을 본 적이 있던가? 하고 되물음으로써 거기에 들러붙은 가치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언어의 손때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p.40)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좋다는 말이 있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아무도 그 ‘평범’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고 본 적도 없는 평범함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은 것 같다. ‘보통’이 아닌 것이 행복의 본질이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다만, 요즘 시대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시대이다. 여기서의 평범함은 가계 소득 등으로 설명이 가능한 중산층을 의미한다. 소위 ‘중산층의 붕괴’가 사람들의 평범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어차피 평범하게 살기는 어려우니 그냥 생긴대로 살자는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이 자신이 자신다울 수 있는 뿔을 간직한 채로 살자라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머리’의 독재를 끝내고 ‘마음’=‘몸’의 지혜에 귀 기울이기

저자는 인간을 ‘머리’(이성, 얕은 감정) vs ‘마음’(깊은 감정)=‘몸’으로 이루어진 존재로 설명한다. 이 설명이 참 재미있다. 저자는 우리 현대인의 상태를 사장인 ‘마음’=‘몸’이 계산에 능한 비서로 ‘머리’를 고용할 작정이었는데 어느샌가 비서가 사장에게 명령을 내리는 시스템이 되어버린 꼴이라고 비유한다. 마음=몸이 우주의 파편으로서 우리에게 ‘내재된 자연’ 같은 것이라는 설명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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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마음, 몸 그리고 자연 (p.110)

머리에서 유래한 ‘생각’이 마음에서 유래한 ‘감정’을 억누를 때(억압), 겉보기에는 갈등 없이 개운하지만(‘병적인 안정’ 상태), 결국 억압당한 ‘감정’이 반발하여 마음과 몸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신체적 병 또는 ‘우울’ 상태). 그러니, 무조건 감정을 억누를 것이 아니라 표현하고 살아야 한다. 아니, 살고 ‘싶다’. 대신에 그 표현을 세련되게 하기 위한 연습이 필요하겠다.

자기자신, 타인, 관계에 고민이 깊은 이들에게 추천

내가 지금 이 책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이 책이 널리 읽혀서 자기 자신의 깊은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얕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당장에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경험’이 누적되면 이 책이 담고 있는 인간에 관한 설명과 인간의 성숙 과정에 깊이 공감할 날이 올 것이다.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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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의 남해

휴가란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이다.

구체적으로는 대강의 일정(시기, 장소)만을 가지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철저히 쉬는 일에 집중하면서 아주 가끔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 – 나의 경우에는 수영 – 을 하는 것이다.

우리들 (2015)

그때도 지금도 어려운 ‘관계’에 관하여

초등학교 4학년, 이제 겨우 11살이 된 착하디 착한 ‘선’(최수인 憤)은 어쩐지 친구가 없다. 급우들이 선이를 따돌리는 와중에도 선이는 울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꿋꿋하게 착한 아이다.

평소 그렇게나 친해지고 싶던 ‘보라’(이서연 憤)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은 날, ‘보라’를 대신하여 학급청소를 해주던 ‘선’이는 다음 학기부터 같은 반으로 전학오는 ‘지아’(설혜인 憤)를 다른 급우들보다 먼저 만난다.

‘선’이는 자신에 대한 편견이 없는 ‘지아’와 방학 내내 진한 봉숭아물과 같이 친밀한 시간을 쌓아간다. 그런데 막상 개학을 하자 ‘지아’는 이유 없이(?) ‘선’이를 멀리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도 아직 이런 아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착한 ‘선’이. 동생을 잘 챙기고 부모에게 존댓말을 쓴다. 그런 ‘선’이는 친한 친구, 믿을 수 있는 관계 하나를 만드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다.

갑자기 자신을 멀리하는 ‘지아’가 낯설고, 자신이 아닌 다른 무리와 어울려 심지어 자신을 따돌리는 행동에 동참하는 ‘지아’를 선이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엄마 가계부에서 돈을 몰래 꺼내 비싼 생일선물을 사서 ‘지아’에게 줘보려고도 하고, ‘지아’에게 무엇 때문에 기분이 나빴는지 솔직하게 물어보기도 하지만, ‘지아’는 답을 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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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와 ‘선’이

영화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복잡한 감정들로 요동치는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아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고 어림짐작할 뿐이다(“애들이 일은 무슨 일. 그냥 학교 가고 공부하고 친구들이랑 놀면 그만이지.”).

밥벌이에 부모 봉양에 고단한 어른들은 아이들의 세계에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다. 자신들도 이미 지나온 유년기인데 뭐 대수로울 것이 있겠는가. 어렸을 때는 어려서 어려웠고, 나이가 들어서는 나이가 들어서 어려운 ‘관계 맺기’.

영화 속 어른들처럼 영화 밖 대다수의 어른들도 유년기의 이야기는 묻어두고 산다. 그런데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윤가은 감독이 아이들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이토록 세밀하게 묘사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인터뷰를 보니, 윤가은 감독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단짝 친구에게 배신당한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이 영화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실로 예민한 감성이다.)

자칫 유치할 수도 있었던 이 드라마를 완성시킨 것은 결국 아이들의 연기력이다. ‘선’이의 얼굴은 클로즈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 순간의 표정만으로 자신이 처한 복잡애매한 상황을 설명해낸다. 감탄하면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