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토토가2 젝스키스

지난 토요일 방영한 MBC 무한도전 토토가2 젝스키스 편(제476회)을 보았다. 젝스키스 6인이 그룹 해체 후 16년 만에 재결합하여 게릴라콘서트를 준비한다는 내용이다.

젝스키스 데뷔 당시 영상이 나왔다. 그때 멤버들은 18~20세였다. 16년 전 나에게 ‘형들’이었던 그들의 모습을 이제 서른이 넘은 내 입장에서 다시 바라보니 그들에 대한 걱정부터 앞섰다. 저 영상 속의 멤버들 각자는 자기 앞에 펼쳐질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감히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당시 법령상 미성년이었던 멤버들이 어떤 형태로든 제 나이에 필요한 교육의 기회를 가졌을까, 와 같은 꼰대 같은 생각도 했다. 음반 작업, 안무 연습, 방송 출연, 공연 출연 시간을 다 합하면 대체 주당 몇십 시간을 일했던 것일까.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 저작물에 대한 권리는 제대로 누리긴 하였을까.

현재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이 그러하듯 젝스키스 역시 연예기획사의 기획으로 만들어졌다. 즉, 16년 전 혹은 그 이전의 시기에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6명의 멤버를 모으고 기획하여 데뷔시킨 누군가가 있었다는 얘기다. 젝스키스를 데뷔시킨 그때 그 사람들은 이 그룹의 흥행 성패에만 관심이 있었을까. 아니면 6명 멤버의 인생에 대하여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하였을까.

16년 전에는 다 같이 아이돌 그룹 멤버였던 6명은 이제는 제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후에도 꾸준하게 방송 출연을 하면서 예능 쪽으로 꽃을 피운(?) 멤버도 있고, 여러 구설에 올랐다가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낸 멤버들도 있고, 배우로 나서거나 간간이 방송에 나오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 알기 어려운 멤버도 있으며, 아예 방송 쪽과는 연을 끊은 멤버도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 없는 일 중의 하나라는 ‘연예인 걱정’을 잠시 해보았다.

주토피아 (Zootopia, 2016)

과거 서로 먹고 먹히며 살아가던 ‘자연상태’의 동물들이 수 세기에 걸친 진화(?) 끝에 조화롭게 어울려 살게 된 현대의 ‘주토피아’. 이 주토피아에서 최초의 토끼 경찰이 된 주디 홉스는 “주토피아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주토피안 드림’을 직접 실현해낸 멋진 주인공이다.

토끼 같은 작은 초식동물은 경찰이 될 수 없다는 편견. 그 편견을 깨고 주토피아 경찰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주디 홉스. 그런 그에게 맡겨지는 첫 임무는 주차딱지를 떼는 일이다. (누군가는 주차딱지를 떼야하겠지만, 포유류 실종사건으로 세간이 떠들썩한 와중이었다.)

오전에만 200개의 주차딱지를 떼주겠다며 동분서주한 주디 홉스는 주토피아에서 소소한 사기꾼으로 살아가고 있는 여우 닉 와일드를 만나게 되고, 닉 와일드와 짝을 이루어 실종사건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단서들에 접근하게 된다. 여느 버디 무비와 같이 주디와 닉은 티격태격 하다가도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준다.

짝패(2인조)의 사건 해결이라는 큰 줄거리 속에서 ‘나(또는 우리)와 다른 존재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라는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경쾌하게 풀어낸다. 이 영화는 2인조 영화의 전형적인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 보다 심오한 주제를 세련되게 설명하는 작업에 성공한 듯 보인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동영화’로 분류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로지 관객을 웃길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면, 기발한 상상력이 표현된 장면도 곳곳에서 활기를 더한다. 애니메이션의 장점이다.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이 갖가지 표정으로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모습만 봐도 즐거운 기분이 든다. 웹에 올려진 동물 사진을 보며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도 있다지 않은가.

이 영화는 이솝우화나 동화를 통하여 우리가 학습해 온 특정 동물에 대한 편견 마저도 뒤집는다. 통쾌하다. 겁 많은 토끼, 교활한 여우, 무뚝뚝한 물소, 재빠른 치타, 용감한 사자, 온순한 양, 용맹한 늑대, 힘 없는 두더지, 느리기만 한 나무늘보…. 우리가 동물들에게 부여했던 캐릭터가 이 영화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뒤집어지는지 살펴보는 것도 큰 재미다.

더 랍스터 (The Lobster, 2015)

자유를 거세한 사랑에 대한 잔혹한 우화

이 영화 속 공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간은 크게 도시, 호텔, 숲으로 나뉜다. 짝을 이룬 자들이 사는 ‘도시’. 짝을 잃은 자들이 모이는 ‘호텔’. 그리고 짝 없이 혼자 살겠다는 이들의 ‘숲’.

‘도시’는 혼자 있는 자들을 검문한다. 짝과 함께 다니지 않는 자들에게 신분증명을 요구한다. ‘호텔’에서는 정해진 기간 내에 짝을 이룰 것을 강요 받는다. 짝을 이루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서 호텔 밖으로 내쫓긴다. ‘숲’에서는 짝을 이루는 일이 허용되지 않는다. 설령 덫에 발이 걸리더라도 혼자 살아남아야 하고 자기 손으로 판 무덤 ― literally, 무덤 ― 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해야 한다.

‘도시’에는 혼자 있을 자유가 없고, ‘호텔’에는 짝을 이루지 않을 자유가 없으며, ‘숲’에는 짝을 이룰 수 있는 자유가 없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도 사랑은 가능하지 않다. 억지로 짝을 이루려고 타인에게 자신을 맞추며 남도 나도 속이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재채기를 숨길 수 없듯 타인을 좋아하는 마음 역시 숨길 수가 없다.”

이 영화는 자유가 거세된 공간에서의 사랑은 코미디 혹은 잔혹극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유가 없는 사랑, 그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