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벌린 글레니, KBS교향악단 제704회 정기연주회

KBS교향악단 제704회 정기연주회 다녀왔다. 금요일 저녁 예술의 전당은 분위기가 좋았다. 음악 분수도 이뻤고, 콘서트홀로 향하는 길도 기억에 남을 만큼 아름다웠다.

무대 맨 앞에 놓여진 타악기가 바로 에벌린 글레니(Evelyn Glennie)가 연주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타악기 연주자인 에벌린 글레니는 12세 때 청각을 완전히 상실하여 청각장애가 있지만, 마치 그 정도 장애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로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타악기 독주가 아닌 교향악단과의 협연을 어떻게 소화할지 정말 궁금했고 혹시라도 실수가 있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막상 연주가 시작되면 그런 걱정이 매우 불경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훌륭한 연주에 몰입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에게 핸디캡이 있다고 하여 그 사람의 퍼포먼스, 그 사람이 내어놓는 결과물까지 핸디캡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타악기를 갖고 관객의 마음을 쥐었다 폈다 뛰게 했다 흔들었다 하는 에벌린 글레니의 연주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에벌린 글레니의 타악기 연주는 1부에서만 들을 수 있었고, 2부는 KBS교향악단의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연주로 채워졌다. 다음에 또 에벌린 글레니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아래 TED 강연을 링크한다.

마션 (The Martian, 2015)

유인 화성 탐사가 기술적으로 정치경제적으로 가능하게 된 가까운 미래. 동료들과 함께 화성에서 임무수행 중이던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분)는 갑작스런 모래 폭풍으로 인하여 홀로 화성에 남게 된다. 폭풍으로 날아온 작은 철심이 하필 우주복의 생체신호탐지기에 꽂히면서 동료들도 휴스턴(NASA)에서도 모두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비교적 가벼운 상처를 입은 마크 와트니는 여전히 건재한 화성 기지로 돌아와 간단한 자가 치료를 마치고 어떻게 지구로 돌아갈 것인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지구와 화성으로 로켓을 발사할 경우 걸리는 시간은 최소 780일. 어쨌거나 그때까지 버티기 위해서는 식량 확보가 최우선 과제이다.

마크 와트니는 추수감사절 특식으로 챙겨온 감자를 기지 내에서 재배하기 시작한다. 함께 왔던 동료들이 남기고 난 인분을 모아 비료를 만들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수분공급장치도 만들어낸다. 지구와 교신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예전에 화성으로 보내졌던 무인탐사선을 찾는다. 정지 사진만 찍을 수 있는 이 무인탐사선을 이용해 어렵사리 지구와 의사소통에 성공한다.

[이 대목은 톰 행크스가 열연했던 영화 <아폴로 13>(1995년작)에서 NASA연구원들이 우주선에 있는 각종 잡동사니들을 모아 새로운 부품을 만들어내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죽은 줄 알았던 마크 와트니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휴스턴에서도 마크 와트니를 생환시키기 위한 계획을 준비한다. 그러나 예정에 없던 우주선 발사가 그렇게 쉽게 간단하게 가능할 리가 없다. 예산도 문제지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결국 안전검사 단계를 생략하기로 결정하지만, 물자보급 우주선에 적재된 물자의 미세한 진동이 증폭되어 우주선은 발사직후 폭파하고 만다.

과연 마크 와트니는 무사히 지구로 귀환할 수 있을까. 당연한 결말이 예상되지만,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은 매번 손에 땀을 쥐게 만들 정도로 흥미롭다. 간간이 덧붙여지는 과학적 설명 역시 매우 흥미롭다. 화성 탐사에서부터 화성에서의 조난, 생존 그리고 구조에 이르기까지 매우 과학적이고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는 이 영화는 그야말로 보는 재미가 있다.

가족과 게임

어릴 적에 아버지랑 삼성겜보이로 남극탐험, 요술나무 엄청 했었다. 새벽에 화장실 가려고 깼는데 티브이에서 불이 새어나오는 것 같아서 봤더니 일 끝내고 들어오신 아버지께서 패드를 쥐고 열심히 펭귄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고 계셨던 게 기억이 난다. 대구 교동시장엔가 가서 레고도 사고, 사온 날 밤에는 일찍 자라고 하시는 부모님 눈을 피해서 밤새 레고를 만들고 또 허물고 했던 기억도 난다. 게임, 놀이는 인간의 유적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의 추억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시간에게 시간을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어릴 때부터 정확히 알고 확신을 갖는 게 가능한가요? 어릴 땐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몰라요. 생각하고 탐험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죠. 어떤 확신이 있어서 프랑스로 온 게 아니라 저에게 탐험할 시간을 주려고 온 것이에요. 일본에 있을 땐 요리도 좋아했고 피아노도 쳤어요. ‘이게 내 길일까?’ 스스로에게 질문하면 ‘모르겠는데’라는 답이 돌아왔죠. 그땐 제가 그림을 그릴 줄 안다는 사실조차 몰랐어요. 꿈이 뭔지 잘 모르겠으니까 손에 잡힐 때까지 탐험하는데 시간을 쓰기로 결정한 거예요. 성숙해지려면 시간을 써야 해요. 생각할 시간을 허락하지도 않고, 꿈을 찾으라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죠.

‘이치카와 사토미’ 시간 사용법

프레셔스 (Precious, 2009)

1987년, 할렘의 16세 소녀 프레셔스. 귀하다는 뜻의 그 이름이 역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처참하고 비참하게 살고 있는 이 소녀는 두 번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내쫓긴다. 16세에 벌써 두 번째 임신이라니. 흠모하는 남자 선생님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것말고는 학교생활에 달리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퇴학 자체가 프레셔스에게 큰 사건은 아니었다.

그래도 집까지 찾아온 교장선생님은 초인종을 여러 번 울려가며 프레셔스에게 꼭 대안학교를 찾아가길 권한다. 프레셔스에게 기대가 있었는지, 작은 호의를 베푼 것이었는지, 어쩌다가의 동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깟 공부 좀 해서 백인들 흉내내보았자 넌 별 볼 일 없는 삶을 살 거라는 어미의 폭언을 뒤로하고 프레셔스는 대안학교의 문을 두드린다.

그렇게 만난 레인 선생님. 첫 만남에서 레인 선생님은 프레셔스에게 무엇을 잘 하는지를 묻는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프레셔스는 나는 잘 하는 것이 없다고 답한다. 레인 선생님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씩은 잘 하는 것이 있다고 말해준다. 레인 선생님 이전에는 누구도 그런 말을 해 준 적이 없었다. 프레셔스의 눈빛이 달라진다.

사실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제대로 된 읽기, 쓰기 교육도 받지 못했던 프레셔스는 레인 선생님으로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제대로 된 문장이 아니더라도 일단은 무엇이든 매일 써보라는 레인 선생님의 주문을 프레셔스는 성실히 따르려 한다.

그러나, 집은 여전히 시궁창이다. 하루종일 티브이만 보는 어미는 프레셔스와 프레셔스의 첫째 아이를 부양한다는 명목으로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그 지원금으로 살아간다. 어미는 학교를 다니려는 프레셔스가 못마땅하다. 배워서 무엇하느냐 그래봤자 넌 달라질 게 없을 것이니 그냥 정부 지원금이나 받아먹으며 사는 것이 최선이라는 폭언을 일삼는다.

대체 이 어미는 자기가 낳은 딸인 프레셔스를 왜 이다지도 미워하는 것일까. 이유는 있었다. 프레셔스가 자신의 남자를 꼬셔 첫째 아이를 낳고 둘째 아이까지 가졌다는 것이다. 말은 바로해야지. 프레셔스는 아버지에 의해 강간을 당했던 것이었다. 그것도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프레셔스의 이런 이야기를 어미는 믿어주지 않는다.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싶었던 것이었거나.

둘째 아이까지 낳은 프레셔스는 집으로 돌아가지만, 어미의 폭행이 자신을 넘어 갓난 아이에까지 미치자 결국 집을 나온다. 잠시 레인 선생님 친구 집에 몸을 의탁한다. 레인 선생님과 그 친구는 웃음과 따뜻함으로 프레셔스를 대한다.

프레셔스는 궁금하다. 대체 이들은 왜 이다지도 나에게 친절한 것인가. 프레셔스는 감히 레인 선생님이 지나쳤을 어두운 긴 터널을 가늠해보고자 한다. 그 긴 터널을 돌파할 수 있는 빛을 품었기에 터널을 나와서도 남들에게 그 빛을 보여줄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프레셔스는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다. 문맹퇴치상도 받는다. 중학교 검정고시와 비슷한 시험도 통과한다.

레인 선생님 친구의 집을 나와 복지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프레셔스를 찾아온 어미는 프레셔스를 강간했던 아비의 사망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그 아비가 에이즈로 죽었으니 너도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전한다. 양성. 프레셔스는 오열한다. 왜 하필 자신에게 이런 시련이 닥치는 것인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자 한다. 레인 선생님은 프레셔스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글을 써.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이 있으면 그 고통을 글로 써. 자신을 위해서,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써.

사랑. 선생님, 사랑은 나를 때리고 강간하고 짐승 같은 년이라고 불렀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아, 그건 사랑이 아니다, 프레셔스. 사랑은 너가 너의 아이에게 주는 것, 너의 아이가 너에게 주는 것, 그리고 내가 너에게 주는 바로 이것이 사랑이란다.

다시 프레셔스와 함께 살고 싶어하는 어미의 요청 앞에서 두 아이를 힘겹게 둘러업은 프레셔스는 어미의 솔직한 반성에 고마움을 표하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고자 한다. 다시 어디론가, 아마도 미래로, 두 아이와 함께 걸어간다. 그러나, 어디로. 프레셔스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오프라 윈프리. 이 영화의 제작으로 참여한 오프라 윈프리를 떠올려본다.

오프라 윈프리는 가난한 흑인 마을에서 18세 미혼모의 딸로 태어났다. 9살때는 사촌 오빠나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며 14살 때 조산아를 낳았고, 그 아이는 2주 만에 죽고 말았다. 기구한 세월을 견뎌내기 어려워 자살도 생각했고 마약이나 담배로 현실을 잊고자 했고 한때는 폭식으로 몸무게가 엄청 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 프레셔스와 많은 점이 비슷합니다.)

그런데 오프라 윈프리는 지금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돈도 잘 버는) TV쇼 진행자이다. 힘겨운 과거를 딛고 성공했기 때문에 오프라 윈프리가 대단한 것이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프라 윈프리의 어두운 과거는 오프라 윈프리가 큰 성공을 거둔 뒤에 한 가족에 의하여 ‘폭로’된 것이다. 그러나 오프라 윈프리는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진행하는 TV쇼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과거를 밝힘으로써 이를 ‘극복’했다.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프레셔스가 오프라 윈프리처럼 인생 대역전을 이루게 될지, 아니면 영원히 가난한 흑인 마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폭행에 시달리며 밑바닥 인생을 살게 될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누가 감히 프레셔스에게 ‘희망’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 자신도 레인 선생님을 따라 고통이란 이름의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고자 노력하는 프레셔스에게 조심스럽고 간절한 응원을 보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