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어 보이 (About a boy, 2002)

당신은 섬으로 살 수 있나요

닉 혼비의 동명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작곡가였던 아버지가 남긴 저작권료로 살아가는 중년 백수 윌(휴 그랜트 憤)과 싱글맘의 아들, 학교에서는 왕따인 마커스(니콜라스 홀트 憤)가 만나 서로에게 여분의 존재가 되어가는 이야기.

일찍이 영국의 시인 John Donne은 “사람은 섬이 아니다(No man is an island).”라고 했고, 시인 정현종은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윌은 “어떤 사람은 섬이다.”라는 생각으로 혼자서 잘도 살아간다. 특별히 자신은 섬 중에서도 지중해의 낙원 이비자(Ibiza) 섬이라 생각하며 홀로 쓸쓸하지 않느냐는 주위의 우려는 가볍게 받아넘긴다.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있는 윌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굳이 무리해서 할 필요가 없다. 앰네스티 봉사활동도 가벼운 소일거리일 뿐이다. 누구와의 관계에도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단위로 계량되는 여러 활동을 알차게 보내는 것만이 그의 삶의 전부이다.

윌이 마커스를 처음 만나게 된 건 아주 엉뚱한 생각 때문이었다: ‘싱글맘을 만나면 결혼을 할 필요도 아이를 낳을 필요도 없이 연애만 하게 되니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어디서 싱글맘을 만날 수 있지?’

윌은 싱글맘들을 위한 모임을 발견하고, 마치 자신도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여 그 모임의 일원이 된다. 여기까지만 봐도 윌은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지만, 휴 그랜트 특유의 가볍지만 미워할 수 없는 연기 덕분인지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는 캐릭터로 느껴진다.

이 모임에서 마음에 들었던 수지를 따라 피크닉을 갔다가 만나게 된 마커스. 하필이면 그날 우울증에 시달리던 마커스의 엄마가 자살 시도를 하고, 이에 충격을 받은 마커스는 엄마와 자신, 두 사람만으로는 부족하고 최소한 셋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윌을 자신의 엄마와 데이트 시킬 궁리를 한다. 다짜고짜 윌에게 연락하고 집으로 찾아가 막무가내로 들이댄다. 이런 마커스를 윌은 별 생각 없이 받아준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번지르르 하게 살아가는 윌 역시 내면의 상처가 있다. 어쩌다가 쓴 첫 곡이 대박이 나버리자 그에 필적하는 곡을 쓰지 못하고 평생 우울하게 살다가 죽은 자신의 아버지. 하필이면 그 대박난 곡이 크리스마스 캐롤이라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면 부쩍 울쩍해지는 윌이었다. 항상 프랑켄슈타인 영화를 보며 “Alone, Bad. Friend, Good.” 대사를 듣던 윌은 마커스의 집에 초대되어 어색하지만 따뜻한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마커스는 자신의 엄마가 다시 아침마다 눈물을 흘리자 자신이 엄마의 빛이 되겠다며 학교에서 하는 노래자랑에 출전하기로 한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분명히 평생 부끄러워 할 악몽 같은 기억이 될지언정. 곡목은 엄마가 좋아하는 Killing me softly. 자칫 인생 최대의 흑역사가 될 뻔한 이 무대를 뒤늦게 달려온 윌이 기타 반주로 살려낸다. 그렇게 윌은 공허한(blank) 자신의 인생에서 유일한 의미인 마커스를 돕는다.

윌이 결혼을 하여 가족을 이룬다거나 마커스에게 새 아버지가 생긴다거나 하는 식의 해피엔딩은 없다. 그렇지만 윌의 집에서 정말 넓은 범주의 사람들이 모여 다시 올해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그 장면은 마치 정말로 당신은 섬으로 살 수 있겠는가, 하고 관객에게 묻는 것만 같다.

화려한 껍데기를 위해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첫째, 나는 내가 직업을 통해 어떠한 형태의 보상을 바라는지에 대해 솔직했다. 일을 하는 데 대한 보상으로 내가 원했던 것은 일종의 명성과 유연성이었으며, 나는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직업을 내 진로로 선택했다.

물론 학자로 살면서 내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물론 돈을 벌기 위해선 다른 직업들을 택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대신 나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식으로 보상을 받았다. 디너파티 석상에서 사람들에게 내가 대학교수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나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볼 것이고, 강의를 하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완벽하게 내 시간을 재량껏 사용하면서 하루하루 지내게 될 것이었다.

교수가 되기 위해선 박사학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위험한 선택이 아닌 가장 안전한 선택으로 여겨졌으며, 어쩌면 내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고, 내가 만족스러워하는 직업을 갖기 위한 유일한 길로 여겨졌다.

둘째, 나는 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폭넓게 수용하리라는 각오가 되어 있었다. 미국 대학원에 지원하면서, 나는 다른 어느 도시에서라도 살 준비가 되어 있었고 마음 속으로 어느 특별한 학교를 정해 놓지도 않았으며, 결국에 어떤 직업을 갖게 되건 수용하리라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폭은 제법 넓었다. 내가 흥미를 갖고 있는 주제에 대해 비교적 안락한 환경에서 연구하는 것, 그것이 내 목표였다. 나는 세부적인 문제에 대해선 그리 까다롭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과정 자체가 내게 위험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대체로, 자신에게 주어진 야망에 대해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야망을 추구하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위험한 것처럼 생각된다.

목표가 편협할수록, 목표를 추구하는 동안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함정의 수는 늘어난다. 만약 당시 내가 미국유학을 떠나는 목표를 오로지 하버드 대학의 교수가 되는 것으로 세웠다면, 내 시도는 정말이지 위험천만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미래에 대한 높은 실패율과 절망의 가능성 때문에, 나는 처음부터 힘들어 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산의 진로를 극도로 위험한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의 99퍼센트는 그들의 목표 설정이 유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상당수는 사업가가 되는 것을 주저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빌 게이츠처럼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성공이란 걸 오직 시장을 지배하고 억만금을 벌어들이는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모든 벤처를 불가능한 것,시작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 나는 생소한 분야에 발을 딛기로 결정하면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수십년 동안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나아가는 동안, 전체적인 긴 시간의 맥락에서 생각해 보니 대학원 공부를 어느 곳에서 할 것인지에 대한 내 선택은 상대적으로 작고 사소한 것으로 여겨졌다.

학자로서의 직업을 갖는다는 것, 특히 존경받는 교수가 된다든가 저명한 교수가 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박사학위를 따고 정교수 자리에 오르는 데만 최소한 15년 정도가 걸린다. 그리고 성공을 향한 이처럼 아득히 먼 수평선은 다른 직장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회사에서든 어느 날 갑자기 CEO가 될 수는 없다. 성공은 고사하고,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얻기 위해서는 기나긴 좌절의 시간들을 보내야만 한다. 위험을 회피하는 사람들, 그리고 동창회에 가는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대해 걱정하고 가까운 결과에 대해서만 염려한다. 하지만 자신의 진로를 폭넓게 바라봄으로써, 가장 위태롭다고 생각되는 결정조차 그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는 작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여러분은 보다 모험을 즐기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상의 방법들이 보다 편안하게 위험을 감수하도록 도와주는 유일한 방법들은 아니며, 이 외에도 더 좋은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실제로 위험을 헤쳐 나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그들의 모험적 태도가 자신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라거나, 혹은 소액으로 복권을 구입하는 방법으로 작은 위험들에 대해 미리 연습해 보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내 견해와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위의 세 가지 방법들이 가장 확실하고 믿을 만한 방법인 것 같다.

직업을 결정하는 데 있어 당신이 직업을 통해 얻고자 하는 보상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성공의 의미를 폭넓게 정의하며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

이 세 가지 방법을 실천하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진로에 대한 정확한 안목을 유지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질 때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완고하게 끊임없이 일을 계속 밀고 나가서는 안 된다. 스스로 시간제한을 두어야 한다. 발명가가 되건 기업가가 되건 혹은 서커스 단원이 되건,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되어도 좋지만, 제발 팔리지도 않는 물건을 들고 행상에 나서가나, 번창할 가망이 없는 회사에 마냥 붙어 있거나, 아무도 보러 오지 않는 연극을 공연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는 마라.

— 데이지 웨이드먼, 하버드 인생수업

2015년 4월 10일

제4회 변호사시험 합격했다.

당연히 붙을 것이라 자신하면서도, 다른 한 편 걱정이 되었다. 아무렇지 않게 지내다가도 J가 걱정을 하면 나까지 덩달아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우습기도 했다. 그래도 불합격을 가정하면 너무도 막막하고 맥이 빠져서 간절히 합격을 바라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잠들기 전에 문득 불합격을 떠올리면서 심장이 빨리 뛰고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당장 오늘만해도 합격자 발표 예정 시각이 가까워지자 손이 차가워지고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서늘함을 느끼기도 했다. 16시가 조금 넘어 합격자발표 명단이 뜨자마자 주저없이 게시물을 클릭했고 첨부파일을 열어서 나와 J의 응시번호를 찾아보았다. 아주 당연한 것처럼, 우리 둘 모두의 응시번호가 명단에 있었다. 합격. 졸업은 한 달 전에 했지만, 이제서야 정말로 모든 과정이 끝났다는 것이 실감난다. 졸업을 하면서도 어딘가 찜찜했던 마음이 이제는 후련해졌다. 무엇보다 다시는 수험생활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점이 가장 좋다.

불합격했다, 누군가는. 335명 과락, 741명 점수미달.

그래서 마냥 즐겁지는 않다.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 윤재윤 변호사가 쓴 책 제목이 언뜻 떠오른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위로를 할 수 있을까. 지금은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상책인 듯 싶다. 그래도 위선을 떨고 싶지는 않다. 우선은 J와 내가 합격했다는 것에 안도하고 감사하고 충분히 기뻐하고 싶다. 양가 부모님들께서 좋아해주셔서, 그 점이 가장 기쁘고 행복하다.

위플래시 (Whiplash, 2014)

영화관에서 보길 정말 잘했다. 빵빵한 사운드 때문. 주인공은 드럼이라고 해도, 피아노, 베이스, 섹소폰, 트럼펫, 트럼본 등으로 구성된 재즈밴드의 음악을 접할 기회가 어디 흔한가.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에 악기와 연주에만 몰입하는 카메라도 굉장히 좋다. 느릿한 장면은 거의 없고, 화면 전환도 굉장히 빠르다. 스승과 제자, 이 두 주인공의 대결구도 말고 다른 갈등선은 별로 부각되지도 않는다. 연주자나 악기는 굉장히 클로즈업 해서 세밀하게 묘사한다. (혹자는 이를 두고 “이건 포르노.”라고 평하기도.)

교육자라기 보다는 가학적 인격장애와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폭력배라 불리어 마땅한 플레처 교수로 분한 J. K. 시몬스의 열연은 물론이고, 세계 최고의 드러머가 되겠다는 꿈 하나를 품고, 밤낮없이 손에 피가 나도록 연습만 하며, 음악적 성취를 위해서라면 친구도 짓밟고 사랑도 외면할 정도의 아집을 가진 풋내기 드러머 앤드류 네이먼으로 분한 마일스 텔러의 연기도 정말 좋다.

왕십리 CGV.

단단한 사람, 두 마리의 토끼

의식과 무의식은 서로 견제와 균형을 반복한다. 의식을 가다듬도 집중해서 무의식을 들여다보면 마치 지독하게 잘게 부서진 파편 같다. 그런데 이 파편들은 나의 의식이 약화되었을 때, 수면 위로 떠올라 의식을 교란한다. 의식이 정돈되어 무의식을 잘 통제하고 있을 때는 바닥에 가라앉아 있지만, 의식이 산만하거나 집중력이 느슨해지면 장마철 호수 위에 떠오른 쓰레기더미처럼 나의 의식을 오염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긴장을 늦추며 살아가면 나의 의식은 늘 무의식과 함께하게 된다.

무의식은 치명적인 약점들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들, 기억하고 싶은 것들,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들은 의식의 흐름 속에 자리잡지만, 부정적이고 잊고 싶은 것들은 의식의 가위질로 편집되어 깊은 심연 속에 조각조각 던져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의식을 잘 통제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장점과 단전을 적어보라고 하면 장점과 단점 항목을 최소한 비슷하게 나열하지만, 무의식이 통제되지 않고 의식의 틈새에 얼기설기 끼어 있는 사람들은 장점은 두 세 개만 적고 단점은 수십 개나 적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가치관과 목표의 이정표를 바로 세울 수가 없다. 가치관에 대한 판단도 명료하지 않고, 그에 따른 목표도 자신의 장단점을 분석한 결과가 아니라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결정하게 된다.

청년들에게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외부 요인들만 가득해서 좋아 보이는 것, 기발하고 멋져 보이는 목표들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나의 좌표를 설정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나의 강점과 재능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바탕 위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하는데, 나를 소외시키고 남들에게 성공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추상적인 망상만 가득한 셈이다.

목표를 세울 때는 반드시 나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의식을 집중해서 무의식을 가만히 탐색하고, 나의 장점과 단점을 잘 비교한 다음, 최소한 장점 항목이 단점을 능가할 때, 장점들을 잘 모아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재능을 파악한다. 그리고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결정한 다음, 그 분야에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을 찾아 그것을 나의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이때 의식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이 끼어들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그 방법은 나쁜 습관을 제거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나의 단점들 중에서 버릴 것을 검토하고, 하나하나 차례로 제거해나가야 한다. 나쁜 줄 알면서도 달콤함에 취해 포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해서 끝까지 그것을 결행할 인내심을 가지고 있을리 없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버리지 못하면서, 새로운 것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이때 명심할 것이 있다. 단발적으로 버리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일요일 아침에 게으름을 버리고 등산을 한 번 하거나, 밀린 청소를 한꺼번에 해버리겠다는 결심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것은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결심이다. 정말 버려야 하는 대상은 장기적 인내가 필요한 것들이어야 한다. 잠을 참아내거나 담배를 참아내거나 술을 참아내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늘 그것과 투쟁해야 하는 것들을 버리기로 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긴 투쟁을 이겨나가면 그것이 곧 새로운 습관으로 이어지고, 의식은 명료해진다. 의식이 본능을 통제하고 극복하면서 필요한 일을 행하는 인내로 이어졌다면, 이미 의식의 통제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이제 그것을 습관화함으로써 강고한 자아를 구축하고, 산만하고 저급한 무의식을 의식의 바다 밑 깊은 골짜기로 밀어버리면 된다.

그로써 우리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 다음 우리가 단단한 바탕을 딛고 자신의 길을 심장이 터질 만큼 힘차게 달려나갈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특별한 아우라를 획득할 수 있다.

이런 삶은 불행하지 않다. 우울의 여지도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는 달콤한 말에 현혹될 필요도 없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은 무의식의 노예가 되라는 뜻이다. 긍정은 당의정이 아니다. 긍정의 태도를 몸에 익히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느껴지는 자존감이 바로 긍정의 힘을 발휘한다.

이 길에서는 무언가 이루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최선을 다하는 삶 그 자체가 중요하다. 훗날 지난 20년간 나는 이런 것들을 이루었다, 고 회고한다면 비웃음의 대상이 될 뿐이다. 인간은 상대적 욕망 체계가 작동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자신보다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을 쳐다보게 되어 있고, 그것은 다시 상대적 열등감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20년간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 라고 말할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내가 주인이 되는 삶, 결과를 돌아보지 않고 과정을 중시하는 긍정적 삶의 뿌리다.

주어진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최악/차악 뿐이다. 하지만 내가 만든 상황에서 던지는 주사위에는 최선/차선의 선택이 있다. 기다린다고 상황이 명료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밤안개는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진다. 빨리 지나가야 한다. 안개가 옅어지기를 기다리다 결국 새벽을 맞는다. 인생이 바람처럼 지나가버린 것이다.

다만,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새로운 것을 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마리의 토끼를 좇지 말라는 것은 패배자의 논리다. 지금 만약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 두 마리의 토끼를 좇아라. 지금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서, 미래에 대한 준비를 병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그만큼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한다. 불필요한 순서대로 나에게 붙어 있는 나쁜 습관의 찌꺼리를 떼어내고, 시간을 압축해서 밀도를 높이고, 코피가 터지고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집중해가면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하필 행운의 여신이 나만 피해갈 리 없고, 하필 불행의 여신이 내 발목만 잡을 리도 없다. 인생은 정직한 것이다. 묵묵히 걸어가라. 결과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

― 박경철,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pp.394~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