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오브 스틸 (Man of Steel, 2013)

또 슈퍼맨 영화이다. 이렇게 끝없이 그럴싸한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미국 코믹스의 문화적 자본력에 일단 찬사와 시샘을 보낸다.

영화의 주된 줄거리는 칼엘이 어떻게 크립톤 행성에서 지구로 보내졌고, 지구에서 클라크 켄트로 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크립톤 행성의 멸망과 옛 크립톤 행성의 장군인 조드가 지구로 쳐들어오면서 갈등이 전개된다.

다크 나이트(Dark Knight)가 배트맨의 별명이라면, 맨 오브 스틸(Man of Steel, 강철 인간)은 슈퍼맨의 별명이라고 한다. 크립톤 족으로서 젊은 태양의 에너지와 깨끗한 지구 대기의 힘으로 초인적인 신체능력을 지니게 된 슈퍼맨에게 꼭 들어맞는 별명이다.

동시에 이 별명은 슈퍼맨의 선함 그 자체에 가까운 정신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슈퍼맨이 어떻게 선함 그 자체의 존재가 되었는가, 이 영화는 이 물음에 대한 인간적인 설명이기도 하다. 슈퍼맨은 자신의 초인적인 능력을 선함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슈퍼맨은 크립톤 족의 재건을 위하여 인류를 복속시키고 지구를 식민화하는데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슈퍼맨은 선함 그 자체가 되기로 선택한다. 영화에서는 아버지 조나단 켄트(케빈 코스트너 분)의 믿음과 희생, 어머니 마샤 켄트(다이앤 레인 분)의 사랑과 응원이 그 주된 이유가 되는 것으로 그린다.

슈퍼맨이 된 칼엘은 크립톤 행성에서 수 백 년 만에 유전자 조작을 거치지 않고 자연출산 되었다. 그러한 결정이 크립톤 최고의 과학자인 아버지 조엘(러셀 크로 분)에 의하여 내려진 것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때문에 칼엘은 유전자 결정론적인 틀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선택으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 이 대목은 마치 영화 가타가 (Gattaca, 1997)를 떠올리게 한다.

지구의 현 인류보다 뛰어난 과학문명을 가지고 있던 크립톤 족이 여러 행성을 거치며 자신들의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그토록 발전된 문명 역시 유전자 결정론적 계급사회의 경직성과 정체된 정치의 후진성에 의하여 멸망을 맞이하는 설정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누렁소, 검정소

누렁소와 검정소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실화인지는 모르겠다.

조선의 황희 정승이 논밭을 거닐다 누렁소와 검정소로 밭을 갈고 있는 농부에게, 누렁소와 검정소 중 어느 소가 일을 잘하오, 묻자, 농부가 황희 정승에게 가까이 다가와서는, 누렁소 쪽이 조금 더 일을 잘합니다, 하고 귓속말을 하더라는 이야기다. 인간의 언어를 이해할 지능이 없는 동물 앞에서도 흉 보는 얘기를 삼갈 정도로 말 조심을 하여야 한다, 정도의 교훈을 주는 이야기로 알고 있다.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은 아가들도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 이야기에는 귀를 쫑긋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먹는다기보다는 말하는 이들의 표정, 말의 억양, 뉘앙스, 주변의 분위기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것 같다. 뭔가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웃거나 즐거워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 뾰루퉁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때마다 저 누렁소, 검정소 이야기가 떠올라서 한편으로는 우습고 또 한편으로는 무섭다.

디 인터뷰 (The Interview, 2014)

한반도 부근에서 특히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이 영화를 드디어 보았다. 주로 자극적 가쉽을 다루어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는 티비쇼의 진행자가 북한의 김정은이 이 쇼의 팬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김정은을 인터뷰하러 평양에 가게 되었는데 이 기회를 이용하여 CIA가 김정은을 독살하는 임무를 맡긴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다.

게다가 이 영화는 웃길 수만 있다면 게이 비하, 섹스, 마약, 고어 같은 소재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정말 단 한 장면도 진지하지 않다. 제임스 프랭코가 분한 주인공은 내내 마약에 취한 듯 느껴질 정도로 방정맞다. 실종 인물을 암살한다는 자극적인 설정에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그 나라에서는 자국 정치인을 노골적인 섹스 코미디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니 이 부분을 따지고 들기도 멋쩍다.

TV조선의 강적들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 영화를 다룬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이 영화가 북한의 어두운 실상을 폭로하고 있다느니, 독재자 김정은의 불안정한 인격을 잘 드러냈다느니, 왈가왈부 하였는데, 아마도 이 영화를 직접 보았더라면 이 영화를 두고 그렇게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을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한 가장 적절한 반응은 이미 영화 속에서 제시되고 있다: “누군가 너를 조롱한다면, 네가 그에게 돌려줄 것은 단 한 가지야. 웃음.” 그런데, 웃음을 지을 정도로 이 영화가 재밌지 않다는 점은 몹시 아쉽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2014)

상영관 확보의 실패가 곧 흥행의 실패가 되어버리는 것이 영화판의 구조라고 한다. 작년 12월 31일에 개봉하였으나, 변변한 흥행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하는 이 영화를 성북구에 위치한 아리랑시네미디어센터까지 가서 보았다.

휴일 저녁 7시 상영이었고, 아이를 데려온 부모 관객이 다수였다. 그 때문인지 아리랑시네미디어센터가 동네 커뮤니티 공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제목만 놓고보면 블랙코미디 냄새가 난다. 포스터를 보고도 안녕 프란체스카 따위를 떠올렸다. 그런데 일단 막이 오르고 나면 따뜻한 웃음으로 한가득이다. 영화를 보러 온 아이들도 좋아했지만, 같이 보러 온 어른들이 더 많이 웃고 또 울었다.

아역 배우 셋과 그 중 둘의 어머니로 강혜정이 열연하고, 김혜자, 최민수, 이천희 등 모두 준수한 연기를 보이는 데다가 스테디셀러라고 하는 원작소설의 스토리가 워낙에 탄탄하기 때문이다.

원작의 제목을 그대로 따온 부분이나 서양에나 있을 법한 김혜자의 캐릭터,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동남아 어느 부족의 이야기가 조금 튀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그 밖에는 딱히 흠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각색도 훌륭하다.

사실 이 영화를 놓고 영화적 완성도를 따지는 것은 좀 우스운 일이다. 세대를 막론하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재밌는 이야기를 거슬리는 부분 없이 필름에 잘 담아낸 것만으로 매우 좋은 영화이다.

오블리비언 (Oblivion, 2013)

SF, 액션 그리고 톰 크루즈, 이 셋의 조합으로 흥행 요소는 모두 갖추었는데 어쩐일인지 한국에서의 흥행은 그리 대단치 않았던 모양이다. 영화 전반에서 풍기는 어두운 분위기가 흥행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다. 영화 내내 탐 크루즈는 농담 한 번 하지 않고, 소리내어 웃지도 않는다.

배경은 가까운 미래(서기 2077년), 지구 밖 존재의 침공에 대항하기 위하여 인류가 핵전쟁을 벌인 후의 지구이다. 외계존재와의 전쟁에서는 승리하였으나, 그 여파로 지구가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더는 인간이 살 수 없는 행성이 되었고, 결국 인류는 지구를 떠나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으로 이주하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지구의 바다로부터 에너지를 추출한다.

전쟁에는 패하였지만 외계인 무리가 완전히 소탕된 것은 아니며, 인류가 설치한 시설들을 파괴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들로부터 이 설비를 지키고, 그 밖의 지역을 순찰하는 무인드론을 관리하는 것이 탐 크루즈가 분한 잭 하퍼와 같은 팀원 빅토리아(앤드리아 라이즈버러 분)의 지구에서의 임무이다.

영화 제목인 오블리비언은 우리말로 ‘망각’이다. 이 영화의 반전의 핵심도 망각에 있다.

잭 하퍼(톰 크루즈 분)는 폐허가 되어버린 지구에 대한 애정이 많다. 자그마한 화분을 키우고, 수십 년 전의 슈퍼볼 게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뉴욕 양키스 야구모자를 즐겨 쓰고, 소로우의 월든 호숫가를 연상시키는 비밀 아지트도 마련해주었다. 임무를 마치고 우주선으로 돌아가기 전 이 비밀 아지트를 같은 팀원인 빅토리아에게 구경시켜주고자 하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하곤 한다. 잭 하퍼는 지구에서의 시간이 아쉽기만 하고, 빅토리아는 어서 임무가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뻔한 반전, 수동적이고 평면적인 여성 캐릭터들, 거의 톰 크루즈 원맨쇼로 채워지는 액션씬, 조금은 허무한 결말 등은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이다. 그래도 미래영화답게 볼 거리도 풍부하다. 생명체 반응에 무차별적으로 화력을 난사하는 막강한 살인기계인 무인드론은 기계문명의 디스토피아를 보는 것 같아 섬뜩했다. 꽤나 호평을 받았다고 하는 영상미도 훌륭했다. 방사능에 오염되긴 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한적한 지구를 잘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