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존경’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한낱 인간’일 뿐인 누군가를 쉽게 존경하고 쉽게 실망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사랑에 빠져들 때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을 걱정하지 않듯이, 언젠가 다가올 실망의 순간을 미리부터 겁낼 것은 없었다.

오늘 나는 ‘용기’에 대해서 들었다. 진실을 판가름 하는 일의 중요성 못지 않은 우리 스스로가 가진 진실을 밝히는 것의 위중함에 대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라도 진실을 위하여 맞서 싸울 수 있는 그 용기에 대하여 말이다.

큰 시험까지 이제 백 여일 남짓, 한 줌의 지식을 더하는 작업에 열중하면서도 지혜와 용기를 잃지 않고자 매일의 나를 단련해야만 한다는 것을, 오늘의 나는 알았다.

60만 번의 트라이 (60万回のトライ, 2013)

오사카조선고급학교 럭비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자이니치(在日)’과 ‘럭비’라는 소재에 이끌려 보게 되었다.

제목의 ‘60만’은 통상 재일교포를 추산할 때 붙이는 수식어인 것 같다. “1,000만 서울”, “7,000만 한민족”이라고 하듯이.

소수자 문제를 스포츠와 결합해 다루는 영화는 이전에도 많았다. 사회 속에서 눈에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라는 것이 스포츠의 룰 속에서는 작동하지 않게 되고, 그럼으로써 스포츠의 바깥에서 작동하는 차별을 도드라지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첫 조카를 품에 안고

내 첫 조카. 그렇게 작고 약하며 가벼운 갓난 아기를 안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내 품에서 고이 잠든 아기를 보며, 나는 나의 누이와 닮은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나를 닮은 새 생명을 보며, 아,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로구나, 하는 갑작스런 깨달음을 얻었다.

번식하고 생육하라. 낳고, 또 낳아라. 인간에게 이것 말고 또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고 나서도 이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들이 있고 그들의 후대로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나는 첫 조카의 탄생을 통해서 비로소 실감했다.

그 때 이후로는 좀 더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의 중차대함을 항상 생각하며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