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 다시, 일어선다

누가 넘어뜨리던 제 발에 걸려 넘어지던 다시 일어났다. 누워 엎드려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언제고 다시 일어나서 “What’s next?”를 물어왔다. 아픔과 쓰라림은 그 속에서 어떻게든 아물었던 것 같다. 실은 나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 정도 아픔과 쓰라림 쯤은 호사스러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었다.

어릴 적에는 누가 아버지 얘기를 하는 것이 몹시 싫었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에 대해서 누군가가 고의든 실수든 함부로 말하게 되는 것이 싫었고, 동시에 아버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마치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도 되는 양 내 스스로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는 것도 싫었다. 왜 당당하고 뻔뻔하지 못했는가, 지금도 부끄럽다.

며칠 전, 모처에 지원하는 서류를 완성하면서 부모님께 두 분의 최종학교명을 여쭈었다. 최종학력은 알고 있었기에 지금껏 부모님의 마음을 긁지 않을 수가 있었는데, 최종학교명을 적으라는 서류는 처음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여쭙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얼굴이 화끈거리시는지 아이고, 부끄러워서 어쩌느냐, 혹시 부모의 학력 때문에 아들이 불이익을 입게 되는 것은 아니냐, 하시며 난감해하셨다.

나는 당연히 두 분의 짧은 가방끈에도 불구하고 딸, 아들을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낸 것은 상찬받을 일이지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능글거리는 투로 말씀드렸다. 웃음. 다음날 아침 두 분께서는 밥상 앞에서 서로의 부끄러움을 공유하시고는 그래도 우리 딸, 아들은 나중에 자식에게 부끄러울 일이 없을 터이니 참 다행이라고 멋쩍게 웃으셨다고 한다.

서울사투리를 능숙하게 흉내내는 내가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고 하면, 어디 갱상도 사투리를 들어보자며 정당은 보수당을 지지하는지 야구는 삼성라이온즈를 응원하는지 묻는 사람들이 왕왕 있었다. 나는 해태타이거즈를 응원하며, 부친의 고향이 전남이셔서 그 영향을 받았다고 답한다. 물론 지금의 나는 엘지트윈스를 응원한다.

아버지가 왜 고향 땅을 두고 지역감정이 남아있는 타향으로 이주하여 생계를 잇고 가족을 꾸리게 되었는지 그 구구절절함에 대하여는 아버지로부터 직접 들어 알게 되었다. 그러나 기댈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두 발과 두 손으로 일어서는 일이 얼마나 힘겹고 처절한 것인지, 그 어려움에 대하여 어렴풋 알게 된 것은 부끄럽게도 최근의 일이다.

촌로가 우골탑을 쌓는 심정이셨을까. 아버지께서는 내가 관직에 나아가기를 내심 바라셨다. 오죽하면 이름도 벼슬 관(官)자를 써서 ‘관희’로 지으려 하셨단다. 그 시도를 막아주신 백부님 감사합니다. 공군장교로 ‘임관’하였을 때도 그렇게나 기뻐하셨다. 그러나 나는 고시공부는 끝끝내 싫다고 내뺐다.

어려서는 웹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의무적 야간자율학습을 빠지고 입시미술학원에 다니겠다는 철부지가 아버지는 어찌나 한심하셨을까. 그럼에도 아버지는 직접 학교로 오셔서 담임교사를 설득해주셨다: “우리 아들이 하고 싶어하는 대로 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아들의 결정을 한 번 믿어보겠습니다.” 그때 나는 역설적으로 내 결정에 뒤따르는 책임의 무게감에 섬뜩했다. 딱 1년 만에 쪼르르 학교로 돌아갔다.

지금의 나는 무엇이 되고 말고의 문제는 중요하기는 하지만 결정적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우리는 잠들면서 부디 내일 아침에도 눈 뜰 수 있기를 바라는 존재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숨 쉬는 순간에는 마치 영생을 약속 받은 것처럼 대담함과 무지함을 겸비하고 살아간다. 나는 오늘 또 하루 넘어졌지만, 내일 또 넘어질지도 모르지만, 또 다시 일어선다. 이것이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음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 있다(The greatest glory in living lies not in never falling, but in rising every time we fall).”

–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1918~2013).

글쓴이

Sehee Park

Advocate for Innovators. Law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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