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타임 (About Time, 2013)

타임슬립(Time slip) 전문 여배우 레이첼 맥아담스가 참 이쁘고 사랑스럽게 나온 영화. (그는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영화 <노트북>, <시간 여행자의 아내>, <미드나잇 인 파리>에도 출연하였다.)

광고에서 하도 러브 액츄얼리를 많이 언급하길래(연출이 리차드 커티스라는 이유 만으로…), 약간은 뻔한 로맨틱 코미디 정도의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코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시간’에 관한 이야기이고, 시간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시간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이고,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팀의 아버지(빌 나이 분)는 팀(돔놀 글리슨 분)에게 시간여행의 선배로서 여러 선배들의 후배로서 팀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준다. 어떤 과거를 보아도 돈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최선의 선택이 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마지막으로 자신을 만나러 온 아들 팀에게 팀의 아버지가 해 준 말은 좋은 힌트가 된다:

“나이 50의 이른 나이에 은퇴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식과 더 많은 시간 탁구를 치길 원하는 암 걸린 시간여행자 뿐이란다(The only people who give up work at 50 are the time travelers with cancer who want to play more table tennis with their sons).”

세상에서 가장 바쁜 직업들 중 하나인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도 일주일에 5번 이상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는데, 당신은 왜 못하는가(If President Obama Can Get Home for Dinner, Why Can’t You?), 라는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어쩌면 우리는 가족들과 매일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가장이 되기 위해서는 미국 대통령씩이나 되어야만 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삶에 대하여 진지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한 번도 삶에 대하여 진지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그러나 내가 그만큼 나의 삶을 소중하게 대하였는지는 의문이다.

힘든 공부 속에서도 즐겁게 지내고 있는 스스로가 대견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반문하게 된다.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너무 편했던 것은 아닌가? 누구보다 힘겹게 공부했어야 했는데 스스로의 기준이 너무 낮았던 것은 아닌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잊고, 뒤늦게 실망 혹은 자책하고… 이 패턴을 반복하다보니 자신에 대한 기대가 낮아졌고, 어느샌가 아예 아무런 목표도 세우지 않게 된 것은 아닌가.

지금 나는 누군가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나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나를 믿는다. 이 말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어려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닌 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자신있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자신있게 나를 한 번 믿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려면 나를 다시 추스려야 한다. 당연히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바로 생활이다.

생활을 바로잡자.

SEWOL 4.16.14

Remember 0416

‘오늘’의 무게가 갈수록 무겁게 느껴진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깊고, 짊어져야 할 ‘책임’은 크다. 사회는 위험을 줄이고 분산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인데, 오히려 위험을 가중하고 편중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어쩌면 우리는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른지도 모르겠다.

여객이 승선한 배를 버리고 슬그머니 뭍으로 나온 선장을 두둔하거나 비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도덕적 비난은 물론이거니와 형사절차에 의한 엄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인간의 ‘사명감’, ‘책임의식’이 단순히 “선장”이라고 하는 ‘직책’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사명감과 책임의식은 그에 걸맞는 ‘적정한 임금’과 ‘사회적 인정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이 입던 구명조끼를 벗어 학생에게 입혀주고는 정작 자신은 탈출하지 못해 사망한 승무원과 같이 고매한 정신과 숭고한 영혼을 가진 의인도 있다. 그들의 희생은 오래도록 기억되어야 한다. 그러나, 도처에서 의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더욱 적정한 임금과 사회적 인정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일이 중요하다. 그만큼 자신의 일에 애정을 갖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기에.

세월호 사고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잠시 잊었거나 애써 외면했던 한국 사회의 병폐를 너무나고 노골적이고 충격적으로 드러냈다. 하나 둘 열거하기가 힘이 들 정도이다. 나 역시도 요령과 편법을 마치 이 사회가 암묵적으로 인정한 또 하나의 원칙처럼 생각해왔던 게 사실이다. 그렇게 차츰 기성의 일부로 편입되는 와중에 있었던 나에게 이번 사고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하는 자각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