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낸 순간』과 김연수

작가 김연수를 좋아한다. 최근에 김연수를 더 좋아하게 된 일이 있었다.

친구의 생일선물로 책을 주려고 했다. 워낙에 책 선물을 좋아한다. 받는 상대방이 뭐야, 책이야? 실망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책을 선물 받을 때의 나는,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살아갈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그런 기분을 함께 받곤 한다. 그래, 이 책을 읽어야겠구나. 읽으려면 살아야겠구나.

마음산책에서 펴낸 『우리가 보낸 순간』 시편과 소설편 중 시편을 선물하기로 했다. 직장일로 바쁜 그에게는 호흡이 짧고 여운이 긴 시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연수가 꼽은 보석 같은 시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정말 값지게 읽었다. 한마디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하는 책을 선물하기로 한 것이다.

새 책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수중에 돈이 몇 푼 없었으므로 읽던 책을 그대로 선물하기로 하고, 그래도 역시 선물은 포장 뜯는 맛이니 포장지에 싸서 주기로 했다.

신촌에 있는 오래된 책방, 홍익문고에 들러서 넌지시 책 포장이 되느냐고 물었다. 책을 포장하려면 얼마 정도 듭니까. 그랬더니 따로 가격이 책정되어 있지 않아서 돈을 받고 해드릴 수가 없다. 아마 맞은편 H백화점에서도 포장이 될 것이니 그리로 가보시라.

백화점 포장,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라고 하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바로 그 대표적인 예가 백화점 포장인데. 나는 난색을 표하며 그러면 내가 여기서 다른 필요한 책을 살테니 그 책 대신에 이 책을 포장해달라고 하면서 가방에서 김연수 책을 꺼냈다.

그러자 김연수 책을 본 그 분께서, 활짝 웃으면서, 아 김연수씨 책이에요? 그럼 그냥 해드릴게요. 하시며 룰루랄라 야무진 손맵시로 책을 이쁘게 포장해주었다.

이 책의 발문에는 이른바 ‘다섯 배의 법칙’이 나온다. 부정적인 말 한 번이 주는 악영향을 상쇄하려면 최소한 긍정적인 말 다섯 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려 다섯 배란다. 다섯 배.

그런데 작가는 남들의 부정적인 말보다 내 안의 무의식이 더 무서운 것이라고 썼다. 나는 재능이 없어, 소질이 없어, 아마도 안 될거야. 누가 뭐라지 않아도 어느새 내 안에서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는 말들.

매일 글을 쓰면서, 작가는 자신이 “인간으로서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됐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건 전적으로 글쓰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날마다 글을 쓰면서 나는 자신을 비난하는 일을 그만두고 가장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일을 매일 연습한 셈이니까.”라고 덧붙인다.

이 책을 샀던 홍대 주차장길에서 아래 대목을 눈으로 훑으며, 울컥,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질이 없다는 말을 듣기 전에 우리는 소질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매일 좋아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 그러므로 쓰라. 재능으로 쓰지 말고, 재능이 생길 때까지 쓰라.

… 비난하고 좌절하기 위해서 쓰지 말고, 기뻐하고 만족하기 위해서 쓰라. …”

이렇게 말해주는 작가 김연수를 나는 좋아한다.

종강

2013년 가을학기,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고 네번째 학기가 종강했다.

첫 기말시험이 11월 27일 수요일에 있었던 탓에 학기말이 좀 어수선했다. 두번째 세번째 시험도 연달아 있어서 거의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발을 다친 탓에 지각, 결석도 많이 했다.

마지막 수업, 교수님의 조언을 기억해두고자 글을 쓴다.

나를 포함한 2학년들에게, 졸업까지 이제 1년 남짓 남았으니 지금부터라도 아낌없이 공부하라고 하셨다. 변호사라는 자격이 정말 좋은 자격이니 그 자격에 합당한 실력을 갖추고 가능한 만반의 준비를 하여 실무로 나갈 수 있도록 공부하라고 하셨다.

선생이 학생에 공부하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임에도, 결코 가벼이 느껴지지 않았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도 상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생활, 내 습관의 어느 부분을 조금 손 볼 것인가, 고민 중이다.

그리고 변호사의 직무라는 것은 그 영역이 무궁무진하므로 절대로 고전적인 법조, 재야의 틀에 갇히지 말라고 하셨다. 이 역시 내가 동의하는 바이다. 최근에는 어쨌거나 시작은 로펌에서 해야겠다, 그런 생각도 하고 있긴 하지만.

할 수 있을 때, 하여야 한다.

내가 ‘나를 믿는다’는 것에 대하여

내가 ‘나를 믿는다’는 것에 대하여,

한 번 생각해봤다(오늘 낮에 염유식 교수님의 말씀도 있고 하여).

나 역시 ‘자기 믿음’이나 ‘자기 확신’이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들이 부재한 상태란 곧 ‘일상적 불안’을 뜻하기 때문이다.

불안이 일상화 된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럴때는 정말 누군가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간절하다. 설령 빈말일지언정 그들의 격려는 많은 도움이 된다. 머릿속에 가득한 불안의 먹구름이 외부로부터 유입된 격려의 바람으로 인해 잠시 밀려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바람이 먹구름을 완전히 분해할 정도로 강한 것은 아니기에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불안이 그늘을 드리우게 된다. 이러한 불인간의 유적 본질에서 기인하는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다. 당장 다음 끼니, 오늘밤의 쉴 곳, 내일의 생존.

과정은 좋았지만 여전히 후회가 남는 시험

아직도 정리가 잘 안 되고 있지만, 그 상태 그대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

그러니까 어제 시험 하나가 끝났다.

학점수로는 3학점이긴 한데, 일단 시험시간이 4시간. 문제지는 총 164쪽. 그리고 이걸 설마 다 쓰라고 준 건 아니겠지 싶을 정도의 두툼한 답안지를 받았다.

목요일과 금요일은 수업도 없었겠다. 정말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먹고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만 빼고는 꼬박 공부했다. 꽤 많은 양을 보았고 이해했고 정리했다. 약간의 자신감도 생겼다. 조금 늦었다 싶은 감은 있었지만 어떤 문제가 나오더라도 어지간해서는 풀어낼 자신이 조금은 있었다. 그래서 그 자신감에 기인한 기대감으로 시험을 기다렸다.

시험 당일 오전에는 조금 헤매긴 했다. 약 5시간을 남겨두고, 자 이제 무엇을 해볼까….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있었다’라는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얼마나 가혹하고 힘이 빠지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거라고 알게 된 게 어디야, 싶지만, 시험이 끝나고 다시 책을 잡는 사람이 몇이나 되더라….

도무지 “끝난 것에 의의를 두는 것”도 안 되는 상태이다.

지금 쓰면서 정리가 좀 되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한 번 보고 어떻게 아는가.”이다. 그렇게 위안을 삼아보련다. 이게 ‘시작’이라고.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번이 ‘시작’인 것은 아니다. 기실 지난 3개 학기 동안 형사법 수업을 통해서 배워 온 부분이다. 물론 수업의 핀트야 조금은 달랐을 수도 있지만, 내가 ‘제대로’ 공부했다면 정확히 이해하고 익히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잊으며 사는 존재라는 그 존재의 본질을 상기하더라도!

그러니까, 어쩌면 지금의 좌절감은 지난 시간들을 제대로 쓰지 못한 것에 대한 속칭 ‘정대만류’의 후회와 비슷한 것이다. 한다고는 했는데, 혹은 제대로 하지도 않았구나. 동위선상에서 엇비슷하게 경쟁(?)하고 있는 줄 알았던 사람들은 얼추 나보다 잘 알고 있는 것만 같을 때, 아 나는 이 모양인데 저 치는 저만치나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정대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실 정대만은 중학MVP 출신이고, 잠시 운동을 쉬고 놀기는 놀았지만 결코 담배는 피지 않았노라고 회상한 것으로보아 아예 몸을 망가뜨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역 내 약팀이라고는 해도 엄연히 레귤러가 있는 북산팀에 들어가서 당당히 자리를 꿰찬다. 그럼에도 회한이 남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적다보니, 정리가 된다. 지금은 회한에 젖을 때가 아니다. 그냥 다시 묵묵하게 나아갈 때이다.

책을 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