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북페스티벌

와우북페스티벌 다녀왔다. 굳이 우리말로 하면 책장터쯤 되려나. 홍대앞 주차장거리, 주차장 자리에 출판사들의 천막이 세워졌다.

내게 이런 여유가 허락되는 것인지를 묻지 않고, 책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김연수의 산문집을 샀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한다. 하루 중 얼마간을 그런 시간에 할애하면 내 인생은 약간 고귀해진다.”라는 문장이 가슴에 박혔다.

책이 무어냐, 내게 책 읽기가 무어냐, 라고 물어온다면 나는 그것이 ‘자유’라고 답할 것이다.

얼마쯤의 용돈을 들고 동네서점에 달려가서 책을 고르던 때의, 시립도서관을 처음 알게 되어 서가마다 빽빽했던 그 책들을 다 읽어 볼 생각에 벅차올랐던 때의 그 자유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려나,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좋은 글을 읽는 것이다.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

중앙도서관 앞 공사현장에서 자전거 발전기로 앰프를 켜고 젬베를 두드리며 노래하는 이들을 보았다. 그 뒤편에는 천막이 있었고 우리 학교 교수로 추정되는 어른들이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지하 주차장 공사에 대한 학내·외의 반대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공사현장을 알리는 컨테이너 담장에는 이미 “갑영산성”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공학원에서부터 중앙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초목들은 뽑히거나 잘려나갔다. 땅은 이미 여기저기로 파헤쳐지고 있다. “올해도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구린내를 맡고 싶다”라고 하는 귀여운 푸념이 가벼이 읽히지는 않는다.

나 역시 창조에는 파괴가 수반되며, 변화에는 고통이 뒤따름을 안다. 미래에 더 좋은 시설을 갖춘 학교를 다니게 될 후배들을 위해 우리가 좀 참아주자고 하는 점잖은 의견도 있다.

그러나 나의 실망은 공사 그 자체나 공사가 주는 불편함에 있지 않다. 오히려는 한 번 땅을 파기 시작하면 어떻게도 원상복구가 불가능한 공사라는 수단이 최후의 보충적인 수단으로 고려되지 아니하고 가장 우선적인 해법이 되어버린 이 상황이 실망스러운 것이다.

현재 구성원이 겪어야 할 불편은 당연히 감내할 수 있고, 감내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니, 딱히 불평의 대상도 아니다. 나로서는 그저 지성의 전당이라고 자처하는 대학의 문제해결능력이 고작 이 정도 수준이라는 것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보다는 바삐 지나치기만 하는 나 자신의 한심함도, 느끼고야 말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나는 이런 말을 하는 스물아홉을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모국어의 생경함

학교 내려오는 길에 바람이 솨- 하고 불더니 나무에서 도토리들이 후두둑- 떨어지더라.

떨어진 도토리들이 그대로 비탈길을 데구르르- 구르는 것을 보니, ‘도토리’라는 말에서 운동감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알고보니 도토리는 ‘(멧)돼지가 즐겨먹는 밤’이라는 뜻의 한자어 ‘저의율’을 우리말 ‘도토밤’, ‘도톨왐’으로 쓰다가 오늘날 도토리로 굳어진 것이라고 한다.

한가위는 뭐니뭐니해도 달의 날이다.

하늘에 달려있는 달, 이 ‘달’을 다알-, 다-알로 소리내어 읽으면 닿을 수 없을 듯 아득한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모국어의 생경함에 매번 놀란다.

어머니의 공감력(?)

그저께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우연히 한 회식 자리에 따라갔고(소고기 먹는다는 얘기에 꾀임), 그 자리에서 엄청나게 과음을 했다. 급기야 어제 새벽에는 정신을 못 차리고 이리저리 헤매었고 그 대미는 중력을 거스르는 역류 사태로 장식했다.

어제 저녁 밥상머리에서 나의 이 미련한 폭음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께서 글쎄 “한 번씩 그렇게 위로도 빼고 그러면 좋다(?)”라는 도저히 자연의 순리나 건강상식에 맞다고 생각하기 힘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닌가.

당연히 불쌍한 아들을 감싸기 위해서 하신 말씀일텐데, 듣는 나로서도 좀 어이가 없어서 마구 웃었다.

어머니께서 걱정 안 하시게 내 몸 알아서 잘 챙겨야겠다 싶었다. 누군가의 편이 되어준다는 건 이런 것인가 싶다가도.

오늘 부모님께서 서울에 오시는 바람에, ‘공감’ 사례가 하나 더 추가됐다.

서울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대구로 내려갈 채비를 하시던 어머니께서 나를 조용히 부르시더니 아버지 몰래 용돈을 쥐어주셨다.

스물아홉 먹은 아들 체면상 극구 거절을 하였지만 당신이 덜 쓰면 덜 썼지 너는 서울에서 돈이 떨어지면 어찌 하겠느냐 하시며 어여 받으라고 하셨다.

용돈을 받아넣으면서 꼭 필요한 곳에 요긴하게 쓰겠다고 말씀드리자, 어머니 말씀이, 그래 당연히 알아서 필요한 데 잘 쓰겠지 하셨다가, 그런데 돈을 또 어떻게 꼭 필요한 곳에만 쓸 수 있느냐, 돈이라는 게 쓰다보면 쓸데없는 곳에도 쓰고 하는 게 돈을 쓰는 것이지, 그러니까 쓸데없이도 쓰고 그렇게 해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그건 다 네 어머니께서 너를 깊이 믿으시니까 그러신 거다, 라고 설명을 해주었지만, 나로서는 누군가의 편이 되어준다는 건 이런 것인가 싶다가도.

아무튼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