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 (2013)

생각했던 것만큼 유머러스한 영화는 아니었다. 무게와 재미를 동시에 담았다는 평을 많이 접했었는데 말이다. 4.3을 다루는 영화가 이 정도보다 덜 묵직하고 가볍기란 불가능할 것 같다. 오히려 이 엄청난 사건을 소재로 하면서도 절제된 미학을 선보인 오멸 감독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다리가 불편한 어미가 몸으로 품어낸 지슬(감자를 뜻하는 제주 토박이말)이 불길에 구워져서 남아있는 이들의 허기를 달래어 준 장면과 큰넓궤동굴의 위치가 발각되자 말린 고추 등을 태우며 연기를 내던 장면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숨을 헐떡이며 “미안합니다. 잊어버리세요.”하던 대사가 잊혀지질 않는다.

오멸 감독은 현재 생존한 4.3 피해자들도 이 영화를 볼 것이기에 더 잔인하게 묘사할 수 없었다, 라고 했다. 굳이 지난 일을 자꾸 꺼내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것은 무엇이냐, 이런 대거리도 가능하겠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역사’에서 4.3을 자꾸만 “잊어버려서, 미안했습니다.”

영화의 형식을 빌어 행해진 이 위령제가 4.3으로 명을 달리한 이들의 넋을 달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발딛고 사는 이 땅이 어떠한 야만의 역사를 거쳐서 지금에 이르렀는지, 국가의 이름으로, 이념의 탈을 쓰고 자행된 폭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왜 우리가 제주 4.3을 잊어서는 안 되는지, 새기는 데에는 성공한 것 같다.

글쓴이

Sehee Park

Advocate for Innovators. Law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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