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조카의 배밀이

첫 조카가 뒤집고, 기대어 앉고, 홀로 앉더니, 드디어 배밀이를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 앞으로 기어가지는 못하고 뒤로만 갈 줄 안다고.

초등학교 때인가. 강낭콩을 길러보라는 숙제를 받았는데, 솜 덮고 물 주고 하루 이틀 밤을 지나면 뭐 유심히 관찰할 새도 없이 어느새 훌쩍 자라버려서 김이 샜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한 생명이 나고 자라는 단계 단계마다 이렇게 ‘경이(驚異)’가 숨어있었구나.

부모님께서 하도 조카를 이뻐하시길래 “누나랑 나 키우시면서 예전에 다 겪으셨는데 그래도 또 신기하고 그러세요?” 여쭈었더니, “실은 너랑 네 누나 키울 때는 먹고 사는 일이 급해서 유심히 들여다보고 할 겨를이 없었어. 엎어놓고 키우다가 울면 달래주고 또 일 하다가 울면 다시 달려가고 그랬지.” 하셨다.

괜한 질문을 했다 싶었다.

아버지의 뜻대로

사촌동생이 있다. 이 녀석이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한 것은 순전히 우리 아버지 때문 혹은 덕분이다. (반대로 나는 ‘직업 군인’의 고단함과 애환을 가까이서 보았기에 한사코 말렸던 편이다.)

아버지께서 사촌동생을 구워 삶기 위한 전략은 실로 굉장했다.

일단 명절과 경조사로 이 동생을 만날 일이 있을 때마다 “공사! 공사”를 연호하셨다. 양손을 이용, 0과 4를 번갈아 내미는 앙증맞은 동작까지 곁들이셨다. (이를 지켜보는 나머지 가족들은 참 힘들었다.)

게다가 동생이 청주로 면접을 보러가는 날에는 운전기사까지 자처하셔서 태워가고 태워오고 하셨다. (내가 대학가고 어디가고 뭐 할 때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으셨던 분이다.)

엄청난 공약들을 남발하셨다. 입학하면 노트북을 바꿔준다, 소위로 임관하면 뭐를 사준다, 뭐를 해준다…

근거가 없는 긍정적 전망을 늘어놓으셨다. 동생을 더러 어깨가 딱 벌어진 것이 어딜 봐도 군인체질이라느니 일단 들어가면 장성 진급은 따놓은 당상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그러실 때마다 나를 비롯 다른 구성원들은 동생이 직접 결정할 사안이지 아버지께서 자꾸 그렇게 부담주면서 강요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고 누차 말씀드렸지만, 아버지께서는 아랑곳 않으셨다.

나는 아버지의 끈질김에도 놀랐지만, 동생이 공군사관학교에 지원해서 합격했고(!), 지금은 사관생도로 두해째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결국 아버지께서 뜻한 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 내가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자, “나는 결국 네가 법조인이 되려고 할 줄 알았다.”(?)라는 기묘한 평을 하셨던 아버지이시다.

아무튼 나도 그래서 나중에 누군가가 “너가 잘 될 거라고 했잖아, 정말로 잘 됐어, 고마워!” 할 수 있게 좋은 말을 많이 할 작정이다. “공! 사! 0! 4!”까지는 아니어도.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외교관이 되어서 반드시 외교가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노라며, 지금껏 그 길만을 좇으며 살아 온 친구가 있다.

처음 그 친구를 만났을 때는 대학 신입생 주제에 무척이나 교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치지 않는가.

그러나 시간이 조금 흘러서는 합격자가 고작 40명 정도에 불과한 그 시험에 도전한 친구가 안쓰럽고 가여웠다. 그러다가 지금은 몇 해째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밀어붙이고 있는 그 친구가 대단히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언제부턴가 온 마음으로 응원하게 됐다. 그 친구 주위의 대부분이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돌이켜보니, 처음 그 친구의 꿈을 들었던 그날로부터, 나는 어쩌면 그 친구를 아주 부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꿈을 정하고 다른 것은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실은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일생을 통해 내보일 수 있는 최선이 아니겠는가.

발 먼저, 발 먼저

연희성당 가는 길에 야구경기용 소운동장을 지나는데, 나는 비로소 오늘 사회인 야구, 라고 하는 것을 처음으로 아주 가까이에서 보았다. 나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연식구라고 하는 공과 알루미늄 배트로 야구라는 것을 곧잘 했었는데, 그 뒤론 줄곧 농구와 축구 뿐이었다.

아무튼 내가 지나갈 무렵 하필이면 타자가 야무지게 공을 깡 하고 쳐냈는데 그 타구가 그만 3루수 품에 안기고 말았다. 히트 앤 런이었는지 아웃 카운트가 어땠는지 3루 주자는 냅따 홈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3루수는 의외의 침착함으로 포수에게 송구했고 포수는 홈플레이트로 달려드는 주자를 요령있게 태그했다.

그러나 심판은 양팔을 크게 휘이 저으며 주자가 득점했음을 알렸다. 주자는 신이나서 춤을 추며 덕아웃으로 들어갔고 이를 지켜보던 동료들은 “발 먼저~ 발 먼저~”를 외치며 함께 환호했다. 나로서는 좀 미묘한 판정이었지만, 갸우뚱거릴 새도 없이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아, 이래서 야구를 하는구나,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