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J

MBTI, MMPI 검사를 위해 학교 상담센터에 들렀다가 무려 8년 전에 했던 MBTI 결과를 받았다. 2004년 12월 3일에 했으니, 대학교 1학년 가을학기 막바지였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검사를 했는지 모르겠다.

결과는 ENTJ. 인터넷에서 간이테스트를 통해 나의 유형으로 알고 있던 ENTP와 달랐다. 검사는 해놓고 결과를 찾아가지 않은 터에 8년 만에 재검을 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는 같을까, 다를까 궁금하다.

ENTJ는 “외향성 사고형”으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며 활동을 조직화하고 주도해나가는 지도력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내가 지향하는 모습에 부합한다.

내 모습과 맞다고 생각되는 건 다음의 부분이다:

ENTJ들은 비슷한 성향을 가진 객관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항상 현실적 상황과 사실이나 중요한 세부사항을 돌보기 위해 현실감각이 좋은 사람이 주위에 필요하다.

내가 학생회장을 할 당시 부학생회장이던 강영준, 학회를 처음 만들었을 때 이를 도와주던 신우섭, 그들 덕분에 큰 탈 없이 조직을 운영할 수 있었다. 이 대목을 읽으며 그 둘이 딱 떠올랐다.

또 하나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어쩌면 내가 지나치게 부정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두고 보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ENTJ들은) 그들의 논리적 접근에 너무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감정기능의 가치를 간과하기 쉽다. (…) 그들은 남을 인정하는 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 다른 사람의 장점과 아이디어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배우자에 대한 부분은 특히 흥미롭다.

성격이 뚜렷하고 독자성이 강해야 하고, 취미가 다양하며 건강한 자긍심이 요구된다. (…) 남성으로서는 아내가 사회활동에 능동적이고 자기만큼 교육과 교양이 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요가

아는 동작이다? 해봤던 동작이다? 절대 같은 동작은 없다. 인생에 같은 동작이라는 건 없다. (공부도 마찬가지 아닐까? 같은 내용, 같은 페이지는 없다. 매번 더 깊어져야 한다.)

2번 시키면 그 2번이 달라야 한다. 그냥 같거나 오히려 후퇴하면 2번 할 이유가 없다. 100번 시키면 막 졸기까지 한다. 그건 그냥 죽어있는 것과 다름 없다.

지식만 쌓으면 뭐하나? ‘존재’가 부실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존재가 힘이 있어야 지식도 제대로 쓰인다. 손 끝도 따라가지 못하고 이리저리 이끌리면 세상에는 얼마나 이리저리 이끄는 것이 많은가, 다 물리치지 못하고 이끌려 다니는 수밖엔 없다.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

한가위, 어머니와의 인터액션을 위해 영화관엘 갔다. 어머니는 이런 소소한 나들이를 몹시 좋아하신다. 평소엔 누나가 이런 데이트메이트가 되어주지만, 지금은 산후조리원에 있으니 올 한가위에는 내가 이 역할을 맡았다.

어머니와 함께 볼 영화를 고르는 기준은 내 딴엔 까다롭다.
첫째, 외화는 가급적 지양한다. 아는 배우도 없으시고, 자막 읽기도 힘드시다.
둘째, 세밀한 관찰을 요하거나 복잡한 내용 전개를 가진 영화도 안 된다.
영화는 오로지 즐기기 위해서 보는 것이다.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그렇게 선정된 영화가 바로 이병헌 주연의 <광해, 왕이 된 남자>다. 주위 지인들의 평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아주 재밌게 보셨다. 천한 잡놈이 용상에 앉아 왕 흉내를 내며 시원하게 욕지거리를 하시는 장면에서 특히 많이 웃으셨다. 나로서는 대만족이었다.

이 영화의 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임금과 외양이 닮았다는 이유로 왕 행세를 하게 된 천한 잡놈의 우여곡절이 그 첫째요, 얼떨결에 시작한 왕 노릇에 본격적으로 감정이입하며 “궁의 법도” 혹은 “정치 논리” 따윈 아랑곳 않고 소신을 펼치는 활약이 그 둘째다.

극 중 인물들은 물론이고 영화관의 관객들도 이 가감없고 솔직하며 “정녕 백성을 하늘처럼 아는” 왕의 등장에 한껏 고무됐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하나를 줘야 하나를 얻는 것”이라는 ‘정치 논리’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충직한 신하를 기꺼이 구하며 옳은 제도라면 과감히 밀어붙이고 사대보다는 실리를 취하여 백성 목숨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지도자의 탄생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 말이다. 내 평가가 맞다면,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열망을 등에 업었던 대통령이 딱 한 번 등장했었다.

가짜 왕이 등장하기 전, 진짜 왕이던 광해군은 언제 ‘저들’이 자신을 해할지 몰라 노심초사하며 결국 자신과 꼭 닮은 대역을 앞세우고 사흘이 멀다하고 여성을 품어야만 편히 잠들었던 결단력 없고 비열하며 고관들의 등쌀에 눌리는 그러한 왕이었기에 그 대비가 더욱 극명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한 충신에 말을 참고하면, 왕이 되기 전 광해는 “전란의 화살비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돌보던” 자애로운 왕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뜨거운 대중의 열망과 함께 청와대로 갔던 ‘바보’ 대통령은 끝내 부엉이 바위 아래로 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인권 변호사로 명성을 날렸던 그의 대통령 재임기간에 가장 많은 비정규직이 만들어졌고, 가장 격한 노동탄압이 이뤄졌으며, 적지 않은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투쟁을 이어갔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광해라고 달랐을까? “백성을 하늘처럼 알던” 그 가짜 왕은 언제까지고 그 모습 그대로 일까? 자타 공히 왕이 된 순간에도 전주에서 올라와 어매를 그리던 열 다섯 애기 기생을 빌어 자신의 장형을 면했던 그 비겁은 어떻게 치유할까? 금에게 조선 백성을 무사히 돌려보내달라는 서신을 보내는 게 정녕 외교적 득이 더 많은 처사였을까?

대중은 언제나 ‘가짜 왕’과 같은 지도자를 갈구한다. 제 잇속을 챙기는 신하들을 따끔하게 혼내고, 지주들도 다 같은 백성이라며 논점을 호도하는 고관들을 질책하고, 사대주의자들에게 “적당히들 하시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하며 호통을 칠 수 있는, 그런 정치인을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판타지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대중은 ‘진짜 정치’, ‘현실 정치’(realpolitik)를 알지 못한다”는 식의 비하가 아니다. 그보다 오늘의 대중은 스스로가 왕정의 신민이 아닌 민주주의 정치의 주체임을 자각하고, 각자가 자신의 ‘진짜 정치’를 해야한다는 뜻이다. 영화의 말미, 도승지 허균(류승룡 분)이 “그럼 진짜 왕이 되시든가!” 다그치자 가짜 왕 하선이 나지막이 답했던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 생각한다.

청소년노동인권교육 ‘빵과 장미’ 강사 참가기

켄 로치의 <빵과 장미>

켄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를 본 적이 있다. 인텔리로 보이는 한 남자가 한 히스패닉 여성 노동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영화…, 가 전부는 아니고, 이 만남을 통해 건물 청소 일을 하는 히스패닉 여성 노동자가 ‘노동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은 영화.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들이 건물에서 벌이는 유쾌한 투쟁에 공감할 것이며, “사람들이 우리를 투명인간 보듯이 한다.”라고 하는 말에 가슴이 아릴 것이다. 남자 화장실에 대걸레를 들고 성큼 들어오는 여성 청소노동자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하는가? 마치,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것처럼 대한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됐다.

이 영화의 제목인 ‘빵과 장미’는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고, ‘장미’도 있어야 그것이 진정한 인간의 삶이라는 점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먹는 문제만 해결되면 만사 무탈한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건물을 청소하는 노동자도 사람이다! 이게 이 영화의 핵심적인 메시지이다.

청소년노동인권교육, ‘빵과 장미’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공익인권법학회에서 처음 시작한 청소년노동인권교육도 ‘빵과 장미’란 이름을 갖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재단법인 동천의 제1회 공익·인권활동 프로그램 공모전에서 우수팀에 선정되기도 했다(2011.5.14).

2011년 여름,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공익인권법학회 및 사법연수원 인권법학회 연합모임인 [인:연]에서 이 ‘빵과 장미’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기로 했고, 2012년 5월 1일에는 서울시교육청과 업무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 협약에 의해 서울시교육청은 청소년 노동 인권 교육 강사 양성에 들어가는 실비 지원과 교육 대상 고등학교 선정을 돕는다.

나는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열린 청소년 노동 인권 양성 워크샵에 참가했고(2012.5.12), 선일이비지니스고등학교에서 행해진 교육에 보조교사로 참가했다(2012.7.12). 주교사 1명에 보조교사 5~6명 정도가 각 모둠을 맡아 교육 진행을 돕는 형식이었다.

교육내용은 최저임금, 근로계약서, 산업재해 등에 대한 일반적인 것인데 생각보다 학생들의 관심도가 높고 참여도 적극적이어서 필요에 의한 교육이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대해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3학년 학생들의 교육을 보조했는데, 내가 맡은 모둠의 반 수 이상이 여름방학을 마치면 바로 취업을 한다고 했다.

어머니의 용돈

어머니는 내가 먼 길 갈 땐 항상 아침을 먹이신다. 오늘도 따끈한 된장국에 갓 지은 현미밥을 먹고 서울로 왔다.

요리조리 꼭꼭 씹어가며 맛있게 식사를 하던 중에 어머니께서 봉투 하나를 내미셨다. 많이 못 넣었는데 아쉽지 않게 쓰면 좋겠다고.

나는 당연히 마다하며 아니 어머니가 무슨 돈이 있으셔서 이런 걸 나한테 주시냐며 내가 용돈을 못 드리는 게 죄송할 따름이니 넣어두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냥 고맙다고 하고…, 그래, 고마운 일이기는 하니까 고맙다고 하고 받아서 요긴하게 쓰면 될 것이지, 당신은 없으면 그저 안 쓰면 그만이지만 너는 지금 한창 공부하느라 여기저기 돈이 들어갈 때가 아니냐며 다그치셨다.

더 드릴 말씀이 없어 감사하고 꼭 아껴서 쓰겠노라며 덥썩 받아왔다.

나는 항상 어머니가 마음에 걸린다. 아버지는 어쨌든 잘 살아가실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혼한 누이가 그나마 가까이 살고 있어서 다행이다.

어머니의 봉투를 받고 난 이후, 10원 한 푼도 함부로 쓰질 못 하겠다. 3,000원 하는 커피가 너무 비싸게 느껴진다. 어머니의 용돈은 금액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허투루 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