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이유 없이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람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자기 편이 되어 줄 가족, 친구, 연인을 원한다. 심지어 가족, 친구, 연인의 정의를 이렇게 하기도 한다: ‘아무 이유 없이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람.’

가족은 그냥 가족이지. 그래도 엉켜 살게 되므로 서로 조금씩만 더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불행하지는 않는 관계가 바로 가족이다.

친구, 연인 관계도 대동소이하다. 내 쪽에서 먼저 아무 이유 없이 상대방의 편이 되어준 적이 있는지? 되어줄 수는 있는지?

그러니 애초에 그런 걸 바라지 않는 게 맞다. 그건 침대 머리맡에 둔 곰인형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부디 그 곰인형이 지금처럼 말을 할 수 없기를 바라며….

 

말하는 건축가 (2011)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건축가 故 정기용 선생님을 담은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를 보았다.

대장암 투병 때문에 성대가 손상된 상태에서도 인간과 공간, 건축가의 사명, 공공건축에 대해 열정을 뿜어내던 모습,

무주 안산면 주민센터 목욕탕 앞에서 걸터앉아 주민들을 바라보던 모습,

자신이 설계한 무주 등나무 경기장 바로 가까이에 태양열 집열판이 흉측하게 들어선 것을 보며 다시는 무주에 오지 않겠다고 말하며 등을 돌리던 모습,

오후 볕이 드는 거실에 앉아 나이가 들면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며 자신은 초롱한 눈빛으로 죽음을 대면하고 싶다고 말하던 모습,

내년에 전시회를 하게 되면 자신이 죽은 다음에 하는 회고전이 될 것 같아 어떻게든 올해 전시회를 하고 싶고, 이 전시회를 오는 건축가들이 반드시 자신이 던지는 화두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던 모습,

춘천 자두나무집에 앉아 도시에서는 시간이 모두 도망가버리는데 여기서는 시간이 머물러 있는 듯 하다며 안온해하던 모습,

이제 우리 사회가 경제적인 것, 재테크라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했으니 문화적인 것, 문화테크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아니냐, 라고 문제제기를 하던 모습,

이 모습들에서 나는 평생 자신의 영역에서 치열한 고민을 이어 온 한 철학자의 생의 마지막 모습을 엿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