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 1』 (이사야마 하지메, 2011)

연휴 내내 숙소를 제공해 준 친구의 집에서 발견했다. “이거, 물건이야”라는 친구의 말에 바로 챙겨 나왔는데 만남 장소로 이동하면서 다 읽어버렸다.

현재 한국에는 3권까지 정식 발매되었고, 인터넷의 음성적인 경로로 21화까지 구할 수 있다. 워낙에 관심이 집중되는 작품이다보니 일본에서 연재되는 내용이 거의 동시에 번역되서 올라온다.

이렇게 소개를 해도 직접 찾아 읽지 않을 친구들을 위해 여기에 내용을 간략히 적는다.

인류가 거인이 공존하는 세계, 인류는 거인의 습격을 피해 평균 15m에 달하는 거인을 피해 50m의 방벽을 둘러치고 그 안에서 거주한다. 이 벽은 3중으로 쌓여있고, 이 벽 덕분에 100년의 평화를 얻는다.

이 평화를 평화가 아닌 굴종과 속박으로 여기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우리의 주인공 앨런 예거 되시겠다. 앨런은 아주 어릴 때부터 벽 밖의 세계를 탐험하는 꿈을 꾼다. 꼭 군인이 되어 거인을 모조리 없애버리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러던 어느 날, 100년 간의 평화를 무너뜨리는 사건이 일어났으니 바로 초대형 거인의 등장이다. 정확한 크기는 알 수 없으나, 방벽 너머로 얼굴이 나올 정도이니 약 60m 정도 된다. 이 거인에 의해 방벽에 구멍이 뚫리고, 거인들이 성벽 안으로 진입한다.

대참사가 벌어지고, 인류는 다시 한 단계 뒤로 후퇴한다. 주인공 앨런 예거는 이 날, 거인들에 의해 어머니를 잃고, 자신의 결의를 더욱 굳게 다지는데…

이 작품의 신선한 점은 세계의 잔혹성을 여과없이 보여준다는 데 있다. 주인공의 의붓남매이자 히로인인 미카사는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부모를 잃고 인신매매를 당한다. 힘 없이 쓰러져있는 미카사를 향해 앨런 예거는 “싸워!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 거야. 싸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고 절규한다.

이 때의 각성으로 미카사는 여아에서 여전사로 다시 태어난다. 자신이 절망했던 약육강식의 세계는 자신이 이미 숱하게 경험해 온 내용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거인과 공존하는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거인은 크기와 힘의 압도로 인간을 죽인다. 먹기 위해 저지르는 살인이 아니다. 오로지 살육 그 자체에 목적이 있다. 그럼 대체 왜 죽이는가… 이 답은 알 수 없다.

이 거인의 존재 앞에서 인간은 나약해지기 마련이다. 주인공의 어머니도 거인이 다가오자 두 아이가 도망가길 바랐으나, 거인에게 잡아먹히기 직전 “가, 가지…마…”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다. 용기가 넘치던 군인들도 막상 거인과 대면하면 모두 전의를 상실한다.

군에서는 매년 몇 차례씩 조사병단을 성벽 밖으로 파견한다. 거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거인 하나당 서른 명의 인류가 필요하다고 할 정도로 피해는 막심하다. 단순 계산으로 모든 현생 인류가 힘을 합쳐 싸운다고 해도 거인을 물리칠 수는 없다.

100년의 평화가 깨지고, 5년이 흘러, 주인공은 훈련병 과정을 수료한다. 그러나 또 한 번 초대형 거인의 등장으로 인류는 위기를 맞는다. 이제 50m의 성벽은 전혀 믿을 것이 못 된다. 초대형 거인의 등장으로 인류는 언제든 멸망할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

이제 인류는 어떻게 반격할 것인가. 주인공이 이 반격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은 작가한테 묻고 싶다. 이 이야기를 수습할 자신이 있는지… 그러나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이 정도의 세계관과 이야기, 분위기, 신드롬을 만들어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다.

『어리숙한 척, 남자 부려먹기』 (에스테 빌라, 황금가지, 1997)

저자 이름을 까먹고 책 제목만 기억한 채로 인터넷 중고서점을 뒤지다가 적당한 가격에 구입했다. 아뿔싸, 저자 이름인 에스테 빌라(Esther Vilar)로 검색하니, 『길들이는 여자들, 길들여진 남자들』(2007)이라는 제목으로 다른 출판사에서 다시 펴내어 팔고 있다. 역자는 바뀌지 않았다. 목차도 같다.

원제는 Der dessierte Mann으로 1987년에 출간됐고, 영문판 제목은 The Manipulated Man이다. (영문판 제목으로 원제의 의미를 추측할 수 있다.)

이런 책을 읽고 “정말 그렇다!”라며, 이제부터는 다르게 살겠다, 라고 다짐하는 독자는 드물 것이다. 기실 모든 책의 독자들이 그렇다. 대다수 독자는 한 권의 책을 수많은 의견 중 하나 정도로 받아들이지 섣불리 절대화하지 않는다. 절대화가 허용되는 건 성경 정도라 할 수 있겠다. “예수께서 정말 물 위를 걸으셨어!”

그럼에도 이 책을 소개하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다. 특히나 내가 아는 몇몇의 페미니스트들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려하면 내가 이런 책을 읽었다고 공표하는 것 자체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이 그렇게 꽉 막혀있다고 단정짓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닌 듯 싶다.

서론이 길었다. 이 책의 저자는 ‘사랑’이 여성에게는 평생의 노예 ― 즉, 남성 ― 를 고용하기 위한 수단이며, 남성에게는 자신의 굴종을 정당화하기 위한 알리바이라고 쓴다. 목놓아 양성평등을 부르짖는 여성 해방론자들이 들으면 기가 찰 주장이다. 저자는 ’여성 해방’이 운동으로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하여, 이미 특권을 지닌 이들이 자신들이 지닌 특권을 자진해서 포기하자는 운동이 제대로 될리가 만무하다고 일축한다.

바꿔 말하면, 인간 사회는 여성이 남성에게 억압당하는 구조가 아니라 여성이 남성을 착취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여성은 주로 칭찬, 때로 다그침, 자기비하 그리고 무엇보다 섹스라는 방법을 통해 남성을 길들인다. 남성은 어려서부터 최초의 여성인 엄마에게 칭찬으로 길들여진다. 여성에 대한 매너도 교육받는다. 그리고 여성들의 자기비하를 들으며 항상 미안함을 갖는다. 섹스의 대가로 평생 노예 계약을 맺는다.

여성은 노동하지 않는다. 노동하는 여성은 다음의 경우 뿐이다: ⅰ) 남성이 순순히 굴종할 정도로 매력이 없거나, ⅱ) 남성으로부터 충분히 부양받는 상황에서 그저 취미로 일하거나. 여성 해방을 부르짖는 이들은 같은 직장의 남성이 부양하는 여성의 처지보다 직접 벌어먹는 자신의 처지가 뒤쳐지기 때문에 등장했다. 가능하다면 여성 해방론자들도 집에서 머무르며 남성이 벌어오는 월급을 나눠쓰는 특권을 누리고 싶지, 굳이 열악한 조건의 노동자가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충격적인 주장과 더불어 재미있는 통찰도 보여주는데, 가령 이런 것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남성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반응하지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여성은 남성의 아름다움(저자에 의하면, 여성보다 남성이 훨씬 아름답다!)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로지 같은 여성의 아름다움에만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광고다. 구매력(이 구매력의 전제조건은 남성의 노동이다)을 가진 소비 주체인 여성을 위해서라면, 잘생긴 남성들이 대거 광고에 등장해야 하지만, 실제 광고모델은 주로 여성들이 발탁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대목도 있다. 저자의 남성관과 여성관이다. 저자에 따르면, 남성이 노예로서의 삶을 포기한다면, 본디 아름다우며 지적이고 모험을 기꺼워하는 남성이란 존재는 보다 넓은 우주를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다. 반면, 여성은 그럴 수가 없다. 여성은 게으르고 멍청하며 지적인 성장이라고는 다섯 살 이후로 멈췄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런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나온다고 해서, 이 책을 읽은 모든 이들이 이미 죽은 공자를 두 번 죽이는 패륜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분석이고 주장이며 의견일 뿐이다. 에스테 빌라의 책도 마찬가지다. 정반대의 내용도 가능하다. 그것이 전투적인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분명 눈이 번쩍뜨이는 통찰을 포함하고 있다. 허울 좋은 여성 해방론이 어떤 여성에게는 위선일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일독을 권한다. 기분이 나빠질 수는 있어도 후회는 하지 않을 책이다.

단체 에어로빅

누가 감히 신천변 아주머니들의 단체 에어로빅을 비웃을 수 있어? 직접 해봐. 일단, 해보면 절대 비웃음이 안 나올걸. 아니, 웃음조차 나오지 않을 거야. 무엇보다, 엄청 쪽팔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멈춰서서 쳐다본다고. 노래도 무지하게 경박한 뽕짝 트로트 메들리 뭐 그런 거야. 주요 동작은 가급적 허리를 사용해서 앞뒤나 양옆으로 털면서 하게 돼있어. 되게 민망해, 그거. 그냥 털면 안 돼. 엄청난 BPM으로 털어야 자세가 나와. 근데 제일 중요한 건 이걸 한 시간 동안이나 쉬지 않고 한다는 거야. 특히 에어로빅 강사 분 바로 앞 두 줄의 아주머니들은 거의 선수급 몸동작을 보여주셔. 민첩하고 정확하며 힘있기까지. 내가 정말 어지간한 효자였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열심히 따라하는 엄마 혼자 두고 도망치려고 했어. 결국 도중에 옆구리가 아파서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쉴 수밖에 없었어. 나는 앞으로 단체 에어로빅을 보면 절대 비웃거나, 웃거나 하지 않을 거야. 경의를 표하며, 서둘러 지나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