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가야 할 길』 (M. 스캇 펙, 열음사, 2002)

인간의 삶은 흔히 ‘여행’에 빗대어진다. 적절하고 인상적인 비유다. 우리 모두는 인생이란 여정에 나선 ‘여행자’인 것이다. 다만 이 여행에는 조금 독특한 구석이 있다. 우리는 이 여행이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왜 시작됐는지 알 수 없다. 때론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없기도 하다. 하나 분명한 건, 우리는 지금도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우리에게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있다.

M. 스캇 펙 박사의 『아직도 가야 할 길』(열음사, 2002)은 인간의 정신적 성장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이며, 자신이 직접 정신질환 환자들을 치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이 영적으로 성숙하기 위해 거쳐야 할 ‘훈련’에 대해, 이 훈련의 동력인 ‘사랑’에 대해, 세계관으로서의 ‘종교’에 대해,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초월적 존재의 ‘은총’에 대해 쓰고 있다. 얼핏 따분한 내용 같지만, 풍부한 임상 사례 덕분에 읽는 맛이 상당히 다채롭다.

프로이트Freud는 정상적인 인간을 “약간의 히스테리, 약간의 편집증, 약간의 강박을 가진 사람”으로 정의했다. 인간은 모두 약간의 정신질환을 안고 살며, 이를 인정함으로써 보다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얘기다. 근대의 인간은 자신이 정상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과 보편적 기준, 표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강박을 안고 산다. 이 강박이 지나친 사람들은 잘 맞지도 않는 옷에 자신의 ‘무의식’을 억지로 구겨 넣는 셈이다. 이처럼, 프로이트 이전에 인간의 무의식은 억압과 통제의 대상이었다.

무의식은 인간 의식의 심연에 있는 블랙박스와 같다. 정신치료는 이 블랙박스에 조심스레 다가가는 과정이다. 블랙박스를 열어 비행기 사고의 전말을 조사하듯, 치료자는 환자의 말, 기억, 꿈 등을 매개로 환자의 무의식에 접근해 환자를 치료하고자 한다. 이제 무의식은 맞서 싸우고 억눌러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달래고 화해해야 할 대상이다. 융Jung에 의하면, 이 무의식과 의식의 부조화에서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일어난다고 했다(364쪽).

‘우울’은 “친근했던 무언가를 잃는 것과 관련된 느낌”(101쪽)이라고 한다. ‘상실’은 일반적인 경험이므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우울증을 앓는다. 우울증은 근본적으로 정상적이고 건강한 현상이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가 단지 우울증 증세에서 벗어나기만을 원한다면 우울증은 오래 계속되며 환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환자는 상실 이전의 과거를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무의식은 이제 더 이상 ‘이전처럼’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바로 이 부조화가 정신질환을 낳는다.

사랑했던 무언가를 포기하고, 상실을 인정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다.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마냥 미루기만 한다면, 그의 정신적 성장도 그곳에서 멈춰버린다. ‘회피’는 결코 편한 길이 아니다. 오히려 건전하고 지각 있는 길에서 벗어사는 길이며, 멀리 돌아가는 길이다. 어떤 경우든 문제는 정면으로 다루어야 한다. 수반하는 고통을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융은 “신경증이란 항상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회피한 결과”(21쪽)라고 썼다.

저자는 인간이 정신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겪어야 할 ‘훈련’을 제시한다. 훈련은 “문제 해결의 괴로움을 피하지 않고, 문제 해결의 괴로움을 건설적으로 취급하는 기술 체계”(112쪽)다. 훈련의 첫 번째 기술은 ‘즐거움을 나중에 갖도록 자제하는 것’이다. 고통을 먼저 겪은 뒤 즐거움을 갖게 되면 그 즐거움을 더 잘 즐길 수 있다는 원리다. 이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두 번째 기술인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도 첫 번째와 같은 맥락이다. 책임을 지는 게 어려운 이유는 행동의 결과로 받는 고통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책임회피의 정도가 심한 환자는 무기력함에 시달린다. 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함으로써, 어떤 것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악수를 둔다. 인간의 삶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결과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이를 받아들여야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세 번째 기술은 ‘진실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이 역시 진실과 대면하는 고통에서 도망치지 말라는 뜻이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는 시시각각 변화한다. 따라서 우리는 인생이라는 여행길을 걸으며 우리가 가진 ‘지도’를 계속해서 고쳐야 한다.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해야 하며, 자신의 지도를 타인의 비판에 노출시키기도 해야 한다. 이 과정은 불편하고 괴롭다. 그럼에도 현재의 편안함보다 ‘오늘의 진실’에 충실해야 한다.

네 번째 기술은 ‘균형을 잡는 것’이다. 저자는 “균형을 잘 잡는 훈련은 곧 포기를 배우는 것”(96쪽)이라고 설명한다. 무언가를 포기하는 일 역시 괴로운 일이다. ‘오래된 지도’와 ‘낡은 자아’는 비록 변화하는 ‘진실’과 맞지 않더라도 아늑함을 준다. 어떤 환자들은 이 아늑함에 사로잡혀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는 선택을 하기보다, 자신의 인생 여정 전체를 중단하는 끔찍한 결정을 내린다.

각 훈련은 내용상 서로 연관되어 있다. 핵심은 당장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고, 항상 ‘진실’에 충실하고, 때론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힘이 ‘사랑’이다. 이 사랑은 일반적 의미의 사랑과 차이가 있다. 저자는 사랑을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돕기 위해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118쪽)로 정의한다.

저자의 사랑에 대한 정의는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면서, 한 편으론 상당히 엄격하다. 저자에 따르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사랑’과 구별되어야 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 강렬한 경험임에 틀림없지만, 성적인 것에 국한된 경우가 많으며 대개가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참사랑’은 오히려 ‘사랑에 빠질 때’가 아니라 ‘사랑에서 빠져나올 때’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128쪽).

더 나아가 숱한 매체가 저작물에서 나타나는 ‘낭만적 사랑’ 역시 저자가 정의하는 사랑, 즉 ‘참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하늘이 점지한 운명적 인연이라는 신화는 도리어 관계의 건강함을 망친다. “너 없이는 못 산다”라고 하는 대상에 대한 의존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지만 더 잘 살기 위해 상대방과 함께 살 것을 선택하는 것”(143쪽)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만 할 수 있다. 생명 없는 대상이나 어떤 일에 대한 정신 집중은 애착으로 봐야한다. 우리는 애완동물이 독자적인 정신이나 의지를 발전시키길 소망하진 않는다. 우리에게 의존함으로써, 우리의 영향력 아래에 있길 바란다. 반면, 순수한 사랑의 특성은 참으로 타인이 자신과 다르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성장하기를 바란다. 이처럼, ‘사랑’은 애착을 초월한다.

인간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부모의 사랑을 만나게 된다. 부모는 자녀의 신체 건강에 유전적, 문화적으로 영향을 주지만, 자녀의 정신 건강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아이는 부모가 더는 자신의 생떼거지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부터, 개별적 존재로서 자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부모가 자녀에게 보이는 행위에 따라, 자녀가 자존감을 지닌 책임 있는 개인이 되기도 하고, 의존적이며 고통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개인이 되기도 한다.

부모의 역할, 가족 문화의 영향은 개인의 세계관이나 종교관 같은 가치관 형성에도 결정적이다. 우리가 표면적으로 어떤 신을 믿고 어떤 종교에 귀의하든, 우리 내면에는 각기 독자적인 ‘지도’가 존재하는데, 부모는 이 지도를 그리는데 있어 가장 비중 있는 참조점이다. 종교나 종파에 무관하게 어떤 이는 사랑하고 용서하는 신을 믿으며, 또 어떤 이들은 혹독하고 처벌하는 신을 믿는다. 또한 잘 돌보아 주지 않는 부모를 만난 이는, 세상도 우리를 돌보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부모로부터 학대받으며 사회의 돌봄도 누리지 못한 채 자라는 사람도 있다. 성장의 각 단계에서 누구로부터 충분한 애정을 받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정신적으로 아주 건강한 상태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도 한다. 이는 부모의 사랑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 가벼운 노이로제가 있는 환자가 그 증세가 더 악화되지 않고 그 상태로 유지되거나 회복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왜 정신질환에 빠지는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어떻게 사람들이 정신적 외상을 이겨내고 건전한 생활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351쪽) 이건 인류가 가진 이성의 정점인 과학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문제다. 저자는 이것이 바로 ‘은총’이며, “인간의 의식 밖에 존재하면서 인간의 영적 성장을 돕는 강력한 힘”(383쪽)이라 정의한다.

데카르트적 ‘회의’와 ‘비판능력’은 근대 과학의 발전에 초석이 됐지만, 대다수 현대인들을 바로 이 은총에서 멀어지게 하는 결과도 낳았다. 배운 것을 회의하는 과학적인 태도는 인간의 정신적 성장을 위해서라도 장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종종 과학적 주장 자체가 우상이 되기도 하므로 이에 대해서 회의하는 태도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330쪽). 우리는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까지 버리는 실수”를 범해선 안 된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삶은 고통의 바다”라고 하는 부처의 가르침이다. 정녕 인간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한가, 이는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관점은 아닌가, 인간의 삶은 기쁨과 놀라움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되묻게 된다. 이런 물음에 답하듯, 세간의 베스트셀러들은 하나같이 “긍정의 힘”을 설파한다. ‘긍정적인 마음가짐’만 가지면 삶이 잉태하는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듯이 떠들어댄다. 긍정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 그러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시간이 해결하는 문제들은 애초에 문젯거리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인간에게 그냥 잊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문제는 우리의 무의식에 상흔을 남긴다. “나는 괜찮다!”는 주문으로 문제를 덮는 건, ‘회피’의 또 다른 양식에 불과하다. 부실채권은 언젠가 반드시 회수된다. ‘삶은 고통’이라는 진리를 의연히 받아들이자. 그러면 “나는 괜찮지 않다. 너도 괜찮지 않다. 그러나, 다 괜찮다.”(I’m not OK. You’re not OK. But, That’s OK.)는 말도 받아들일 수 있다.

“한 사람의 위대성의 척도는 고통을 감수하는 능력”(110쪽)이라고 한다. 인간은 ‘훈련’을 통해 정신적 성숙, 영적 진보를 달성할 수 있다. 인간에게 이러한 가능성이 주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다. 고통의 바다를 헤엄칠 때는 적극적이고 공세적일 필요가 있다. 문제가 다가오는 것을 감지하면, 애써 돌아갈 것 없다. 정면으로 부딪혀라. 두려워할 것도 없다. “두려움은 게으름의 주된 형태”(401쪽)이다. “게으름이야말로 영혼의 성숙에 장애가 되는 궁극의 장애물”(398쪽)이다. 작은 용기로 한 걸음 더 내딛어보라.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우리의 내면으로도 향해있다.

오전엔 중국어 공부를 오후엔 수영을

오전엔 중국어 공부를 오후엔 수영을 했다.

처음 내게 중국어 교본을 선물해 준 사람, 자신이 쓰던 중국어 사전을 선물해 준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지금 외교관이 되었다.) 어떤 일을 ABC부터 시작하려니 어간 어색한 게 아니다. 카세트테이프를 다시 꺼냈다. 단어장도 새로 만들었다. 가르치는 분께 “중국 뉴스를 볼 정도가 되려면 얼마나 공부해야 해요?”라고 여쭸더니, “…….” 말씀이 없으셨다.

집 가까이 대봉수영장은 25M 레인 다섯 개에 수심도 1.2M 밖에 안 되는데 입장료가 5,000원이나 된다. 하지만 한가한 시간대에 가면 레인 하나를 통째로 쓰는 호사를 누리기도 하니,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이용객이 적으니 수질도 상대적으로 좋지 않을까. 어느덧 정체기를 지나 다시 수영 실력이 조금씩 늘고 있다. 기분 좋다.

내가 엘리트 수영선수는 아니지만 무언가를 꾸준히 할 때 얻는 기쁨이란 그런 것이다. 남들은 모르지만 나는 감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개선 혹은 우연한 발견, 깨달음. “첼로의 성자”라 불렸던 파블로 카잘스(1876-1973)가 90세가 넘어서도 하루 6시간 연습하며 했던 말이 있다. “지금도 연습을 하면 할수록 조금씩 나아진다.”

대학시절, 간간이 수영장에 나가면서 ‘나 이렇게 하다가 전국체전 나가야 되는 거 아니냐’라며 우쭐하던 당시의 나를 생각하면, 참 가소로울 따름이다. 당시에는 겨우 크롤영법의 물잡기와 글라이딩에 대해 감을 잡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발차기를 하며 발로 물을 잡는다는 게 어떤 건지 조금 알 것 같은 정도이다.

A가 A이지 않고 B이길 바라는 건

A가 A이지 않고 B이길 바라는 건, A의 입장에서는 괴로운 일이다.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일은 말인즉 자신을 살해하는 고통과 다르지 않다. 이 괴로운 일이 대개 부모에 의해 최초로 자행되니 이 얼마나 야속한 노릇인가.

자녀에게 부모란 생명과 양식을 주는 절대적 존재다. “신이 항상 같이 있어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두셨다”라는 얘기는, 대체 도처에 있을 수 없는 신이 정말 신이 맞느냐는 의문과 함께 어머니란 신적 존재에 대한 경외를 자아낸다.

아이는 자신의 생존을 부모에게 의지하며, 부모를 자기 신체의 연장으로 여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아이의 의지와 부모의 행동은 일치하지 않게 된다. 아이는 자신의 생떼거리가 더이상 통하지 않을 때부터, 자신이 부모와 다른 개별적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완의 존재인 ‘나’는 부모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에 놓여있다. 신체 건강의 측면에서 가족력의 영향, 유전자 또는 가족 문화의 영향이 지대한 만큼, 부모가 정신 건강에 끼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몸과 마음의 전일적 관점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기

입장(立場)이라는 건, 말그대로 자기가 선 자리에서 당면한 상황을 정리해서 말하는 거다. 한시적이나마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군인이자 공직자 신분인 내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기에 대해 아무런 할 말이 없는 건 당연하다. 내 입장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을 말, 그래서 그저 잔바람에도 휩쓸려 멀리 사라져버릴 그런 말은 내뱉고 싶지도 않다. 다만, 군인이고 공직자라도 고인의 죽음을 애도할 수는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우연히 그의 민주당경선 연설 동영상을 봤고, 잠시 그를 떠올렸다.

야구선수와 스캔들이 났던 스포츠 채널 아나운서가 오늘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9층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게 겁이 났는지, 이불을 뒤집어 쓴 채였다고 한다. “죽을 용기로 살아보지 그랬느냐”는 핀잔은 예의가 아닌 듯 싶다. 홀로 그런 결정을 내려야 했던 그가 불쌍하고 가여우며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그 결정에 공감하지도 동의하지도 못해, 진심으로 미안하다. 죽지 못해 사는 삶은 있어도 죽음 보다 못한 삶은 있을 수 없다. 삶은 또 어떤 순간에 어떤 보물을 숨겨놓았을지 모른다. 그건 정말 아무도 모른다. 설령, 보물이 아니라 까나리가 숨겨져 있다고 한들, 그게 무슨 대수인가. 살아만 있다면, 또 다시 뽑기의 기회는 있는 셈인데 말이다.

살아있음은 곧 기회이다. 그것도 단 한 번 뿐인 기회이다. 잘못을 저지를 기회,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질 기회, 책임을 통해 고통을 경험할기회, 고통을 지나 새로 거듭날 기회, 이 모두가 다 삶 속에 있다. 삶속에서 과거를 끌어안으며, 미래를 도모했으면 어땠을까. 그냥 시간이 약이려니 마음 먹으며 더 살아보면 어땠을까. 떠나는 이가 남몰래 겪었을 아픔의 크기 만큼, 여기 남은 이들도 쓸쓸하다.

대한적십자사 수상인명구조요원 도전기

2011년 4월과 5월, 약 8주 간의 주말을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의 수상인명구조요원 교육으로 보냈다. 수영강사로 일해보고 싶다는 내 엉뚱한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전국의 각 지사마다 특징이 있다는데, 예를 들면 서울지사는 필기 숙제가 많달지, 대구지사는 달리기 훈련이 버겁달지 하는 등이다. 내가 대구지사에서 교육을 받은 것은 순전히 고향이 대구이기 때문이고, 그 핑계로 주말마다 부모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래의 기록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틈틈이 적어뒀던 글을 모은 것이다(2012.7.28):

1일째

8시에 나섰더니 9시 전까지는 도착했다. 버스 한 번 갈아탔다.

어릴 적 기억에 두류수영장은 엄청난 언덕 위에 있었는데, 버스정류장에서 한 블럭도 안 들어간 곳에 실내수영장이 떡 하니 있었다. 입장료는 3천원이다.

40명 정원에 39명이 접수했다는데, 당일 참석한 사람은 그보다 적었다.

가장 먼저 기초테스트를 했다. 자유영, 평영 각 50M 그리고 잠영 15M, 입영 1분. 어떻게 해도 어색하고 힘이 들어가는 입영이 가장 힘들었다. 평소에는 25M도 거뜬없던 잠영도 긴장을 했는지 준비가 안 됐는지 중간에 조금 힘들었다.

잠영할 때는 절대 앞을 보지 말라고 하는 얘기가 있다. 가야할 거리를 보게 되면 뿌옇고 아득해서, 덜컥 겁부터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숨이 찰 때는 입을 “이-”하고 물을 조금 먹어주면 훨씬 나아진다.

기초테스트에 떨어진 사람이 꽤 됐는데, 대개가 50m를 한 번에 헤엄쳐 본 경험이 없어서, 입영이 힘들어서, 잠영을 배워본 적이 없어서 머리만 수면 위로 올리지 않으면 되는 줄 알고, 정도의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모종의 설명 후에 기초테스트 탈락자들도 계속해서 같이 교육을 받게 됐는데,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수경을 벗고 교육을 받는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계속 수경을 낀 채로 했다. 안경도 간간이 쓸 수 있어서 좋다.

워밍업은 자유영과 평영만 한다. 크롤 영법은 아무래도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평영 발차기. 잘 안 된다. 그래서 앞으로 잘 안 나가고 뒷 사람에게도 피해를… 아무튼 힘들었다.

머리 들고 자유형, 머리 들고 평영, 트리젠 영법(크롤에 평영 발차기)를 배웠다. 머리를 드는 이유는 익수자의 위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머리 들고 평영은 유유히 개헤엄 느낌. 익수자와의 거리가 상당할 때 쓰는 영법이다. 체력소모가 적다. 실제로 별로 어렵지도 않다. 대신 머리 들고 자유형은 몸이 가라앉지 않도록 계속해서 발을 차줘야 해서 체력소모가 크다. 긴급하게 접근할 때 쓴다.

이름도 생소한 트리젠은 체력소모는 적고 빨리 멀리 갈 수 있다는데, 실제로는 체력소모가 가장 심하다. 익숙해지면 좀 달라질까? 머리 들고 자유형과 트리젠 덕에 물 좀 먹었다.

점심은 도시락. 많이 싸갔는데 점심 먹고 구보 – 사회에서도 이런 표현을 쓰다니 – 훈련이 있다고 해서 조금만 먹었다. 상당히 격한 척은 했지만, 진달래 핀 두류공원을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간식으로 고구마와 방울토마토, 초코파이를 가져갔는데 간식타임은 1600부터 1630까지 밖에 없다. 그때 저걸 다 먹는 건 무리였고, 고구마 두어개랑 방울토마토를 좀 먹었다. 나머지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 먹었다. 집에 와서도 계속 허기가 져서 저녁을 따로 먹기도 했다.

틈틈이 10분간 휴식시간이 있다. 이 때는 찬물을 좀 마셔줬다. 탕이나 사우나에 가서 몸도 녹여줬다.

나오면서 수분크림이나 로션을 발랐는데 아직도 얼굴이 당긴다.

길 건너 버스를 타면서 보니 18:30 정도였다.

레포트를 써오라는데 주제가 하나는 교육과정에 임하는 각오, 또 하나는 자기소개서. 이걸 한 장씩이나 써오라니, 도저히 말이 안 된다 싶지만 시키니까 일단은 했다.

강습생이 지각하거나 숙제를 해오지 않을 경우, 벌로 워밍업을 더 가혹하게 시키겠다고 엄포를 놓는 건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다.

자기들이 하고 싶어서 자기 돈 내고 피 같은 주말 이틀 꼬박 바쳐서 참가하는 강습인데, 비록 서른 명에 육박하는 인원이라고는 해도, 인솔이나 통솔에서 콕 집어 군대식이라고 할 문화가 엿보여 여러모로 씁쓸했다.

계속해서 4‘열’ 횡대로 헤쳐모이라는 둥 ― 4열 횡대는 말이 안 된다, 4열 종대가 맞다 ―, 구보하면서 번호를 붙이면서 가라는 둥, 장교교육대를 다시 온 것 같다고 말하면 지나친 과장이겠고, 그저 밖에서까지 이러니까 참 어색했다, 뭐 그런 얘기다.

이것과는 별개로, 내일 안 올 사람이 꽤 있을 것 같다. 나부터가 내일 아침에 일어날 자신이 없는 걸.

2일째

어제보다 좀 더 일찍 오라고 해서 출발을 서둘렀다. 지각하는 수강생 수만큼 훈련을 더 시키겠다고…

오전부터 지상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뜀박질을 했는데, 어제 그 아름다운 코스가 이렇게 지옥으로 변할 수도 있구나… 특히 경사도가 족히 50도는 될 듯한 언덕에서 인터벌 훈련은 진짜 숨 넘어가서 죽을 뻔했다.

오전 워밍업은 역시 크롤영과 평영이었고, 평영 발차기가 잘 안 되는 나머지 따로 빠져나와서 원포인트 레슨을 받았다. 그 다음엔 뭘 배웠더라… 기억이 잘 안 난다. 오전은 적당히 느슨했다.

점심은 역시 집에서 챙겨간 도시락으로 해결했고, 디저트로는 청포도를 먹었다. 『아직도 가야 할 길』도 몇 페이지 넘겼다. 한적한 곳에서 호사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오후 지상훈련도 역시 구보로 시작했고, 마무리는 피튀기는 피티. 그러나 장교대와 비교하면, 훗, 껌이었다. (물론, 표정은 엄청 지치고 힘든 척… 아마 당시로선 진심이었을 듯…)

오후 워밍업은 했던가, 안 했던가… 횡영과 기본 배영을 배웠다. 둘 다 어지간히 할 수 있겠더라. 입영 잠깐, 잠영도 잠깐… 그러다가 오후 시간이 쑥 지나갔다.

간식 타임 때는 삶은 계란, 고구마, 바나나를 먹었다.

오후 강습은 교육 위주여서 크게 힘든 건 없었다. 몸에 익지 않은 영법을 익히려다 본의 아니게 수영장 물을 먹기는 했다. 오전 지상훈련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하루종일 편안하게만 느껴졌다.

훈련 시작 전부터 오른쪽 무릎이 걱정이 됐는데, 막상 훈련을 시작하니 크게 문제가 없었다. 사실 훈련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이 더 힘들었다. 얼굴도 몹시 당기도 몸도 많이 추웠다.

숙제는 지금까지 배운 영법에 대한 교재 설명 읽고 요약하기. 다음 주 토요일은 오전에만 훈련하고, 오후에는 적십자사에 가서 응급조치 배운다고 한다. 그리고 일요일은 다이빙풀에서 훈련을… 5M 풀은 생전 처음이다!

3일째

금요일 밤까지 숙제하느라 늦게 잤다. 미리 해두려고 했으나 다른 일에 밀려서 간신히 끝내게 된 거다.

주중에 수영장 갈 일이 없어 연습을 전혀 하지 못했다. 해서 좀 일찍 수영장에 도착해서 한 20분을 혼자서 돌았다. 근데 자유수영 레인에는 사람이 많아서… 횡영, 기본배영 이런 건 전혀 못하고… 그냥 자유형이랑 평영만 좀…

오전은 지난 주와 같이, 오전 체력훈련과 워밍업 그리고 교육. 오후는 적십자 대구지사로 옮겨 이론교육을 받고 실습을 했다. CPR, AED, 응급조치. 앉아서 강의만 들으니 어찌나 편하던지.

수영장에서는 지금까지 배운 영법들 복습하고, 주로 입영(立泳)을 위주로 훈련했다. 물 밖으로 손 꺼내놓고 5분 버티기… 한 3분은 버틸 것 같다. 5분은 진짜 힘들다. 아, 잠영도 했구나. 잠영 25M는 혼자서도 종종 하던거라 큰 부담은 없었다.

오늘도 숙제가 있다… 아…

내일은 수심 3M, 5M 다이빙풀에서 교육을 받는다. 본격적인 인명구조 교육이랄까. 물이 많이 차니 따뜻한 점퍼도 챙겨 오라고 했다. 내일 황사비가 확실한데 그래도 야외체력훈련은 한단다. 오르막길 인터벌은 여전히 힘들다.

그래도 교육 덕에 몸도 유연해지고 체력도 좋아졌다. 물에서도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무엇보다 빨라졌다. 아침에 혼자 아주 오랜만에 접영도 해봤는데, 50M 왕복도 거뜬했다.

오후 이론은 정말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생각해보면, 심폐소생술(CPR)과 자동제세동기(AED) 사용법이 일반적이라는 게 좀 신기한 일이지만, 이제는 일반상식이다. 다만, 이 일반상식을 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게 중요하리라.

행여 도움이 될까 조금 끄적여보자면…

우선, CPR와 AED는 거의 같이 쓰인다고 보면 무방하다. 다음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누군가 호흡을 멈추고 쓰러진다. 혹은 쓰러진 사람을 발견한다. 이때 가장 먼저 할 일은 현장을 파악하는 일이다. 그냥 쓰러진 건지, 물에 빠졌던 건지, 음독을 한 건지 등.

그 다음은 연락이다. 혼자 있다면 본인이 직접 응급전화를 걸어야 하고, 이때 AED도 함께 가져와달라고 요청한다. 응급전화는 6하원칙에 의거 정확하게 말하는 게 중요하며 환자의 겉으로 보이는 신원(나이, 성별, 몸무게 등), 현장정보 등을 간략히 전달한다.

만약 여러 사람과 함께 있다면, 특정인을 지정하여 응급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공공장소에는 AED가 구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도 특정인을 지목하여 AED를 가져달라고 말한다.

이제 환자의 의식을 확인한다.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은지 물어본 다음, 턱을 들어 기도를 확보하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호흡을 확인한다. 5초 간 듣다가 호흡이 없는 게 확인되면 바로 CPR에 돌입한다.

기도를 확보한 채, 환자의 코를 막고 숨을 불어넣고, 다시 코를 여는 방식으로 두 번 인공호흡을 하고 흉부압박을 30회 한다. 늑골이 아닌 가슴 한가운데 흉골을 압박한다. 분당 100회 정도의 속도가 적합하고 2번 호흡에 30번 압박을 한 싸이클로 2분에 5주기를 할 정도의 속도로 진행한다.

CPR 도중 AED가 도착한다면 즉시 CPR을 멈추고 AED를 사용하며 적절히 CPR을 시도한다. 이 정도가 오후 내내 아주 느슨하게 배운 이론 내용이다.

어설픈 군대 분위기는 계속 신경이 쓰이지만, 무료봉사임에도 성심껏 가르치는 강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아마 다른 방식으로 보답할 길이 있으리라. 이게 적십자 정신이다.

뒤늦게 쓰는 4일차 이야기

이 날은 다이빙풀을 처음 경험했다. 25M*25M 넓이에 절반은 수심 3M, 나머지 절반은 5M이다. 수온은 보통 수영장보다 기껏해야 1~2도 낮을텐데, 체감온도는 그보다 많이 떨어진다.

어느 정도 헤엄을 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수심은 큰 문제가 아니다. 3일차까지 죽어라고 입영 연습을 했으니 크게 힘들지 않았다. 다만, 저체온증은 누구라도 피하기 힘들다. 그래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수면에서 다리로 들어가는 다이빙, 머리로 들어가는 다이빙, 영법으로 빠르게 나아가다가 머리로 들어가는 다이빙을 배웠다. 익수자에게 물 밑으로 접근하거나 물 바닦에 도달할 때 사용된다. 수압 때문에 귀가 좀 아팠지만, 이내 적응이 됐다.

다음으로 익수자를 발견했을 때, 물에 뛰어드는 방법을 배웠다. 다리 벌려 들어가기, 다리 모아 들어가기, 다리 굽혀 들어가기, 조심 들어가기, 머리 먼저 들어가기가 있는데 수심이나 물의 투명도, 낙하거리 등 경우에 따라 나뉘어 사용된다.

그리고 이 날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영구조를 배웠다.

먼저 한 손목 끌기. 의식을 잃은 익수자에게 접근하여 손목을 잡고 물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다음은 가슴잡이. 한 손목 끌기랑 비슷하게 시작하지만 몸으로 끌어당겨서 가슴을 둘러잡는 게 특징이다.

손목 끌기, 가슴잡이 둘 다 횡영을 사용하는데 특히 가슴잡이의 경우에는 구조자의 골반 위에 익수자를 올려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 및 호흡이 상당히 버거웠다. 골반에 쉽게 올려지지도 않는다.

마지막으로 겨드랑이 끌기. 의식 없는 익수자의 후방으로 접근하여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물 밖으로 끌고 나오는 방법이다. 이론은 간단하다. 익수자의 뒤로 가서 몸을 밀착한 다음에 돌려서 끌고 나오면 된다. 그러나 생각만큼 몸이 움직여주질 않는다.

몇 가지 팁이 있는데, 일단 고개를 아래로 하고 해파리 자세로 떠 있을 익수자의 골반을 살포시 앞으로 밀며 익수자의 몸을 수직으로 세운 다음에 허리에서부터 겨드랑이로 두 손을 올려 팔꿈치로 지탱하는 것이다. 여전히 익수자의 몸을 돌리는 문제는 남아있다.

이건, 물 속에서 숨을 참으며 열심히 발을 차는 방법 뿐이다. 그러나 물에서는 뭍에서보다 더 마음대로 몸이 움직이지가 않는다. 게다가 연습 과정에서 자잘한 실수가 있으면 바로 강사가 강습생에게 달려들어 물을 먹인다. 이것도 생각보다 고통스럽다.

마지막으로 입영. 머리 빼놓고 서 있는 것도 곤욕인데 여기에 양 손까지 물 밖으로 빼야한다. 방법은 딱 한 가지 밖에 없다. 죽어라고 발을 차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죽어라고 발을 차면 찰수록 떠 있기는 힘들다. 차분히 한 발 한 발 로터리킥을 하는 게 더 낫다.

자격 검정은 양 손을 물 밖으로 내놓고 5분을 입영으로 버티는 것이다. 이 검정을 실패하면 바로 탈락이라고 한다. 그래서 매 시간마다 강도높은 입영 연습이 따라 붙는 것이다.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는 건 맞는데, 아무튼 체력소모가 상당하다.

교육을 마치며 숙제도 한아름 받았다.

드디어 5일차

실기는 어떻게든 된다 – 그만큼 훈련에 자신이 있다는 강사님의 말씀 – 지만, 필기는 정말 개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도리가 없다. 실기는 빡세게 굴리면 된다. 필기는 직접 머리에 넣어줄 수가 없다. 그래서 내주는 게 “레포트”라 불리는 숙제다.

숙제는 대개 적십자에서 나눠준 안전수영, 수상인명구조 교본의 특정 부분을 요약하는 것으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귀찮고 성가신 일이다. A4용지에 자필로만 쓰라고 하니, 꺼려지지 않을 턱이 없다.

나는 교육 전날까지 숙제를 미뤘고 교육 당일 새벽이 되어서야 간신히 마무리 하고 잠을 청했다. 어쨌거나 다 해서 내긴 했다.

오전 구보 훈련은 아주 간단했는데, 물 밖 훈련이 느슨한 경우는 물 안 훈련이 엄청날 것이라는 암시가 되기도 한다. 오늘은 4일차에 배웠던 구조수영을 복습했고, 익수자 운반, 척추부상자 머리 고정법,  장비구조를 배웠다. 마지막에 검정을 대비하여 중량물 운반과 잠영을 해보기도 했다.

먼저, 구조수영 복습에서 특별히 추가된 내용은 없다. 다만 좀 더 익숙하게 해내기 위한 연습을 했다.

익수자 운반은 구조수영을 통해 구조한 익수자를 얕은 물에서 뭍으로 운반하는 방법이다. 어깨 운반과 등 운반이 있는데, 말그대로 어깨 운반은 익수자를 어깨로 들쳐 메는 것이고 등 운반은 익수자를 자신의 등에 휘감아 들쳐 엎는 것이다.

척추부상자 머리 고정법은 말그대로 척추부상을 당한 익수자 혹은 부상자가 2차 추가 피해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 머리 지지법과 턱 머리 고정법이 있다. 이 경우에는 작은 물살에도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

장비구조는 레스큐 튜브를 이용한 구조방법이다. 레스큐 튜브는 커다란 소시지 모양의 빨간 물체인데 부력이 엄청나다. 덕분에 장비구조는 수영구조보다 부담이 적다.

그래도 유의해야 할 포인트는 있는데, 가장 먼저 장비 때문에 익수자에게서 시선을 떼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레스큐 튜브를 놓아두는 법, 몸에 메는 법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의식이 있는데 지친 익수자에게는 레스큐 튜브를 천천히 건네고 잡으라고 한 뒤에 올라타게 해서 뭍으로 끌어낼 수 있다. 고개를 묻고 의식을 잃은 익수자의 경우에는 손목 끌기를 하면서 익수자의 등에 레스큐 튜브를 휘감을 수가 있다. 그리고는 뭍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의식 없는 익수자의 후방으로 접근하여 직접 레스큐 튜브 위에 익수자를 올리는 방법이다. 다른 두 개의 구조방법과 마찬가지로 맨몸구조에서 했던 겨드랑이 끌기과 상당히 유사하다. 팁이 있다면, 레스큐 튜브를 익수자 등에 충분히 밀착시킨 다음에 뒤집기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량물 운반과 잠영은 별다른 추가 교육 없이 바로 실시했다. 먼저 중량물 운반은 5M 바닥에 있는 5kg 물체를 들어올려 횡영으로 반대편까지 가지고 오는 임무이다. 1분 30초 내로 가져오면 통과라고 한다.

수면으로 꺼내는 건 크게 어렵지 않지만, 반대편으로 가져오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횡영을 통해서 운반하게 되는데, 몸 위에 중량물을 옮기면 몸이 자꾸 가라앉아서 호흡이 곤란해진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강습생들도 애를 많이 먹었다. 그래도 어거지로 성공했다.

잠영은 그냥 물 밑에서 25M를 이동하는 게 아니라, 5M 바닥까지 내려가서 반대편 벽을 찍고 올라가는 임무이다. 심폐능력도 능력이지만, 심리적인 안정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아마 할 수 없을 거라는 마음으로 될 일이 얼마나 있겠냐만은 잠영은 특히나 그러하다.

풀장 벽을 잡고 숨을 고르다가 준비가 되면 다리 먼저 다이빙으로 바닥에 도달한다. 물론 내려가는 동안에 코를 막고 숨을 뱉어 귀를 뚫어준다. 바닥에 도달해서는 지체없이 벽을 차고 출발한다.

강사들은 “바닥에 붙어가라. 그게 제일 편하다”라고 하는데, 실제로 그렇다! 그런데 대부분은 어중간하게 오더라.. 바닥까지 내려가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숨이 딸릴까봐, 중도에 포기하게 될까봐… 바닥에 붙으면 수압 때문에 훨씬 빨라지는 데도 불구하고!

어떤 강사는 “괜히 불안해서 얼마나 왔지, 얼마나 더 가야하지, 잡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몸 안에 있는 산소가 더 부족해진다며 마음을 탁 놓고 머리 속으로 애국가를 부르라”고 했는데, 실제로 1절을 반도 다 부르기 전에 반대편 벽에 도착해버린다. 순간, 50M도 가능하겠는데 싶을 정도였다.

마지막은 역시 입영. 오늘은 음료수통을 운반하고, 통 안에 담겨있던 음료수를 마시기까지 했다. 다닥다닥 붙어서 한다고 할퀴어지고 발에 차이고 잡히고…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성공해서 모두 물에서 나올 수 있었다.

숙제는 없었다. 그런데 교육에 임하는 각오를 다시 한 번 써오라고 했다. 6일차에는 대망의 “방어 및 탈출(막기, 풀기)”를 하기 때문이란다. 역대로 대구지사 방어 및 탈출 교육하는 날에는 앰블런스가 꼭 왔다고 하는데…

산 넘어 산이로구나!

드디어 6일차

어쨌거나 살아 돌아와서 이 글을 적고 있는 내 자신이 참 대견할 정도로… 힘들었다. 무서웠다. 진짜 하기 싫었다.

언제나와 같이 달리기로 오전 훈련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배웠던 구조법, 즉 수영구조 3개 그리고 장비구조 3개를 이어서 연습했다. 가슴잡이 빼고는 모두 무난하게 해냈다.

점심 먹고, 오전 훈련이 힘들었는지 강습생 한 명이 연락두절… 그리고 이어지는 죽음의 피티… 날도 더운데 진짜 제대로 피티했다. 혹시 내가 지금 공군 교육사에 와 있나… 이건 아닌데…

머리까지 어질어질할 정도로 땀을 흘리고 아주 짧은 휴식을 가진 뒤에 그 악명 높은 방어 및 탈출을 배웠다. 물 밖에서 간단히 몇 번 해보고 바로 입수.

총 강습생 25명인데, 8명의 강사님들이 붙어서 가르쳐주시니 배우기는 제대로 배웠지만… 그만큼 힘들었다! 막기 2개, 풀기 4개를 하는데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바로 달려와서 물귀신 입수…

잠깐 설명하자면, 막기에는 가슴막기와 비켜막기 두 가지가 있다. 익수자가 의식이 없다고 판단되어 접근하는 도중에 갑자기 익수자가 달려들 경우에 사용한다. 핵심은 물 밑으로 도망치는 것… 가능한 깊이, 멀리… 쭉… 쭉… 숨 차다고 중간에 올라오기라도 하면, 바로 물 먹는다.

수면에서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어떤가 지켜보며 따라오는 강사님을 보면, 진짜 오싹하다… 그럴땐 죽을동 살동 밑으로… 밑으로… 차라리 빠져죽자는 심정으로 도망가야한다.

풀기는 총 네 가지가 있는데 한 손으로 손목이 잡혔을 때, 양손으로 손목이 잡혔을 때, 앞에서 목을 잡혔을 때, 뒤에서 목을 잡혔을 때 풀고 도망가는 방법이다. 어쨌거나 핵심은 익수자를 데리고 물 밑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거다.

대개의 익수자는 물 밑으로 들어가는 기미만 보여도 바로 풀고 허우적댄다는데… 독한 강사님들은 끝까지 제대로 하나 안 하나 물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양손 손목 풀기랑 앞목, 뒷목 풀기가 잘 안 돼서 한 몇 번은 재시도했다.

재시도는 엄청난 심리적 부담과 체력 고갈 때문에 더 어렵다. 그래서 하면 할수록 더 안 되는데, 이런 경우에도 사정 봐주지 않는다. 가차없이 따라와서 잡고 물 먹이고… 또 먹이고… 방법은 처음에 제대로 하든가, 아니면 끝까지 물 속으로 도망가서 나오지 말든가!

나 같은 경우에는 잠영에 자신이 있어서 한 번 잡히면 일단 물에 들어가서 강사를 살피다가 잽싸게 올라와서 숨 크게 한 번 뱉고 다시 강사가 누르면 누르는 대로 깊이 들어갔다가… 좀 참다가… 좀 참다가… 다시 잽싸게 올라와서 숨 크게 한 번 뱉고 이런 식으로 도망다녔더니, 포기하고 그냥 재시도하라고…

그렇게 재시도하는데 잘 될리가 없다. 숨 차고… 두렵고… 하기가 싫고… 강사님의 “퇴수!” 소리가 정말 간절한데… 아무튼 뭍으로 나오면 엎어져서 트림부터 “꺽, 꺼~억”하고 거친 숨을 내몰아 쉬게 된다. 어렵사리 막기, 풀기를 모두 배우고 휴식을 가졌다.

이 때, 또 한 명의 강습생이 그만뒀다…

스물 여섯으로 이번 주까지 왔는데, 부상으로 한 명이, 자진해서 두 명이 포기해서 이제는 스물 셋이 남았다. 그리고 포기 의사를 몇 번 밝혔으나, 계속해서 재도전하는 강습생이 한 명있다. 나는 그 강습생 보면서 오늘을 버텼다. 그리고 네 명의 독하디 독한 여자 강습생들…

입수하려고 자세 잡고 딱 서는데, 온 몸이 떨릴 정도로 공포가 밀려온다 싶으면 그들을 한 번 삭 둘러보고 그래 차라리 빠져죽자… 포기는 쪽팔려서 안 되겠다… 그런 마음이었기 때문에 포기하고 나간 강습생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아마 아쉬움이 남는다면, 다시 도전하겠지.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까.

휴식이 끝나고, 다시 양 손 물 밖으로 빼고 입영을 좀 하다가… 어제 해봤던 잠영, 중량물 운반을 복습했다. 잠영 할 때는 역시 애국가가 최고다. 4분의 4박자로 부르면 딱 두 소절 끝나기 전에 반대편에 도착한다. 중량물 운반은 횡영 킥이 약한지 조금 버겁긴 하지만, 어떻게든 될 것 같다.

이제 두 번의 교육이 남았다. 한 번은 총복습을 한다고 하고, 또 한 번은 자체 평가를 한다고 한다. 이 검정을 통과해야 이 과정을 수료하게 되며, 자격 검정에 응할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다. 오늘은 숙제도 많다. 여기까지 왔는데, 필기 떨어져서 자격 취득에 실패하고 싶진 않으니 숙제도 기쁜 마음으로 해야겠지.

오늘 물이 얼마나 무서운가 배웠다. 익수자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인명구조 좀 배웠다고 꺼드럭거리다간 같이 죽기 쉽상이다. 내 목숨을 버릴 각오로 물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과연 누가 물에 빠졌을 때 주저없이 몸을 던지게 될까…

방어 및 탈출을 끝내고 첫 교육날

이 날이 오기가 무서웠던 건 순전히 레포트 제출 때문이다. 적지 않은 수의 교육생들이 레포트를 미제출 혹은 부분제출했고, 이 때문에 이 날은 하루종일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 배웠던 걸 모두 정리하는 시간이 이렇게나 기쁘지 않을 수가 있다니!

오전 구보가 끝나고 다시 두 명의 교육생이 자진해서 그만뒀다. (이 둘 중 한 명은 다시 돌아오긴 하지만…) 이 때문인지 오전 훈련이 끝나고 오후 구보/피티 직후에 모든 교육생이 나와 지금까지의 교육을 돌아보고 의지를 다지는 시간을 짤막하게나마 가졌다.

오전 훈련에서는 입수법과 스컬링, 수면 다이빙을 복습했다. 또, CPR을 한 번 더 배웠던가… 바로 어제의 일인데도 매주말이 반복되다보니 디테일하게 기억이 안 난다.

오후 구보가 짤막하게 마무리 되고, 간담회 비슷한 성격의 자리도 가진 덕에 오후 훈련은 아주 속도감있게 진행됐다. 수영구조/장비구조/잠영/입영/중량물운반을 한 번 해봤던 것 같다. 그렇게 스물 두 명이 된 상태에서 교육이 끝났다.

잘 안 되는 게 있는 사람은 남아서 추가 연습해도 좋다길래 남아서 열심히 물질을 했다. 수면 다이빙 연습을 많이 했고, 중량물 얹고 횡영도 계속 연습했다. 그러다가 지칠 때쯤 나와서 귀가했다.

이렇게 공식적인 모든 교육이 끝이 났다. 방어 및 탈출이 끝난 직후라, 엄청난 양의 레포트를 쓰고 난 뒤라, 공식적으로 교육이 종료되는 날이라 여러모로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그래도 끝은 났다. 마지막으로 자체 수료 검정만을 남긴채…

이 교육은 전혀 의무가 아니다! 자기 발로 들어왔고, 그래서 힘들고 짜증이 나면 언제든 자기 발로 나갈 수 있다. 그렇다고 정말 나가는 건, 이유가 어찌됐건, 본인에게도 강사에게도 남게 될 동기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진 않다.

대체 누군들 그만두고 싶지 않았을까… 나 역시 힘들고 겁도 나고 짜증도 나서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살다보면 그 과정을 무사히 끝마치는 것으로도 의미가 되기도 한다는 걸 배웠기에 그러지 않았다.

미운 말은 한 귀로 흘렸고, 부족하더라도 힘 닿는 데까지 노력했고, 가르쳐주는 것은 죽자고 배웠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끝이 났다. 모두가 사람이 하는 일이다. 강사도 사람이고, 교육생도 사람이다.. 사람이 하는 일에 버티지 못할 것은 없다..

문득, 공군 교육사 연병장이 또 생각나고 그러네.. 어휴..

대망의 마지막 날

빡빡한 분위기가 아닐 건 알았지만, 그래도 자체 수료 여부를 테스트하는 날이니 긴장이 아니 될 수 없었다.

필기는 모두 스무 문제였는데, 아리송한 것들이 몇 개 있었고 다음 주 검정을 대비해 필기 공부를 좀 해야겠구나 마음을 먹게 됐다.

다음은 CPR. 감점 요인을 몇 개 발견했고, 이 역시 숙달이 될 정도로 연습을 해야겠구나 싶었다.

이렇게 오전이 끝나버리고(!), 점심을 먹고, 오후 검정이 시작됐다. 무척이나 여유로운 점심시간이었다…

실기 검정은 수영구조 1개, 장비구조 1개, 막기 1개, 풀기 1개, 얕은 물 운반법 1개, 스컬링, 손들고 입영 4분 버티기, 잠영 25M, 중량물운반으로 치뤄졌다.

역시나 감점 요인이 몇 개 있었지만 무난하게 끝났다.

검정이 모두 끝나고 물 속에서 단체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이때 고생하신 강사님들을 위해 친히 교육생들이 강사님들을 들쳐업고 물로 던져드렸다! 그리고 복수의 물 먹이기!

수료 결과는 하루나 이틀 뒤에 나온다고 하지만, 현재로선 모두가 필기와 실기 둘 다 무난하게 통과하여 수료에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한다.

남은 건, 다음 주 토요일의 자격 검정이다. 실기는 평소 훈련 강도보다 훨씬 쉽다고 하는데, 역시나 필기가 걱정이다. 고생한 스물 세 명 모두 자격증을 거머쥘 수 있길…

검정을 마치고

검정이 끝났다. 검정은 필기검정과 실기검정으로 나뉘는데, 수상인명구조요원 교육을 수료하면 응시 조건이 만족된다. 필기와 실기를 모두 통과해야, 대한적십자사에서 발급하는 수상인명구조요원 자격을 취득하고, 둘 중 하나라도 떨어지면 떨어진 부분만 재검정을 보면 된다. 검정비는 다이빙풀 입장료 포함해서 5만원이다.

필기는 모두 50문항 4지선다 객관식으로 50분 간 진행된다. 70점(35개) 이상이면 합격이다. 형식적인 절차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 수상인명구조 경험이 없이 교본으로만 공부한 응시자라면 아리송할 문제가 한 두개가 아니었다. 교육 때마다 나오던 숙제가 힘겹고 귀찮긴 하지만, 성실히 해두면 바로 이 때 도움이 된다.

실기는 성인과 영아 심폐소생술, 자동제세동기(AED) 사용법, 수영구조, 장비구조, 스컬링, 척추 환자 얕은 물 운반, 입영, 중량물운반, 잠영을 검정한다. 이 중 입영, 잠영, 중량물운반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고 기타 항목에서는 감점이 이뤄질 뿐이다. 마찬가지로 총점 70점 이상이면 합격이다.

필기 답안지는 바로 밀봉되어 서울지사로 보내졌다고 한다. 그 때문에 최소 일주일이 지나야 검정 합불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실기 평가는 대구지사가 아닌 타 지사에서 오신 검정위원께서 직접 평가하는데, 우리 때는 경북지사에서 두 분이 오셨다.

최종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다. 필기가 많은 부담이었지만, 막상 필기가 끝나니 참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실기는 그동안 배운 걸 다 보여주지 못해 아쉬울 만큼 금방 끝났다. 필기는 막힘이 없었고, 실기는 자잘한 감점이 예상되지만 큼직한 종목에서 무난하게 성공했기에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주말을 이용해 무언가를 배우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지금껏 휴일을 개인적인 시간으로 보냈던 나는 이 땅의 샐러던트들을 연민하게 됐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시작한 거 다음 주부터는 또 다른 걸워보고 싶다. 함께 교육을 받은 사람들끼리 서핑을 배워보자는 얘기도 했다.

전임강사님을 비롯하여 교육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주말 시간을 할애해주신 많은 강사님들께 감사드린다. 각자 다른 목적으로 이 교육에 참가했지만, 서로 돕고 의지하며 교육을 무사히 수료하고 긴장 되는 검정까지 함께 치른 동기들에게도 진심으로 고맙다. 인연의 끈이 얼마나 길지는 아직 가늠할 수 없지만, 이미 우리의 인연은 보통 인연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제 수영장에서 좀 더 즐기며 수영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참 행복하다.  (끝)

칼퇴근

임관 2년 5개월 만에 칼퇴근이 무엇인지 몸소 깨치고 있다. 약 1년을 스케쥴 근무를 뛰었고, 나머지 1년 5개월은 출근은 누구보다 빠르게 퇴근은 기약없는 생활을 했다. 그래서, 아직은 퇴근시각에 사무실을 나서는 게 영 어색하고 불안하다. 숙소에 돌아가도 전화가 와서 당장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라고 할 것만 같고, 꼭 등 뒤에서 누가 잡아끄는 것만 같고 그렇다.

룸메이트는 이런 나에게, “아주 당연한 것을 이제야 누리는 것 뿐이다.”라고 깔끔하게 정리해줬다. 이 말에 기운이 나긴 했으나, 막상 날이 밝을 때 숙소에 돌아오니 당장에 무엇을 할지 고민이 됐다. 계획해둔 건 있었으나, 놀라움과 불안함과 설렘이 뒤섞여 이러지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침대에 누웠다. 잠깐 누웠다 일어나려고 했는데 그렇게 22시 35분까지 잤고, 그 뒤로 약 1시간 정도 운동을 했다.

18시부터 태권도 승단심사 응심자 연습이 있었다. 차라리 거기라도 갈 걸 그랬다. 인근 도서관에 가서 연체도서도 반납하고, 토요일에 있을 라이프가드 필기 검정 준비도 하고, 밀려있는 책들도 마저 읽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주 꿀맛같은 저녁 잠에 이 계획들이 실행되지 못했다. 플래너라는 건, 실행하지 않으면 있으나마나 한 것이다. 훌륭한 성공 파트너가 한갓 자기 위안 도구로 전락하는 데, 많은 사연이 필요한 건 아니다.

객관적으로 실행에 큰 무리가 있는 계획은 아니었지만, 어제의 야간훈련 및 기타 상황을 고려해서 사전에 조정하는 게 보다 현명한 대처였을 것이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이대로 잠들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는 차라리 계획을 연기하는 기민함과 대범함을 보였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냥 내 몸이 시키는 바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따랐다. 이런 선택, 결정이 때로는 옳기도 하고 순리에 맞다는 것도 알지만, 종국에는 자괴감, 자신감 결여로 돌아올 것도 안다.

계획대로 사는 것, 계획한 대로만 이루어지는 삶, 둘 다 따분하고 매력없다. 인생의 진미는 의외성, 우연성에 있다. 그러나, 계획한 만큼도 해내지 못하는 상태에서 돌발적인 상황을 여유롭게 대처할 생각은 말아야 한다. 계획을 세우고, 조정하고, 평가하는 건 우연적 요소가 개입할 여지를 최대한 줄이고 줄인 후에, 그럼에도 찾아오는 불청객을 따스히 맞이하기 위해서다.

새 사무실로 첫 출근한 날

손으로 적는 일기장을 대구집에 놓고 오는 바람에 부득불 이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새 사무실로 첫 출근한 날이었다. 7시 30분은 되서야 방을 나섰다. 작년에는 6시 45분 정도에 방을 나섰고, 올해는 7시 이전에 방을 나섰던 걸 생각하면, 상당히 여유로워진 셈이다. 아침 시간을 좀 더 활용하는 편이 좋겠다.

아침에는 새 사무실, 새 자리에 앉아 먼지도 털고 책상도 닦고 철지난 문서나 자료들도 치우고 내 물건을 배치했다. 직능에 걸맞는 업무도 파악해야 했고, 내가 관리해야 할 자료들도 하나씩 하나씩 인수했다. 익숙하진 않지만, 버겁지도 않다. 배울 일이 있다면 주저하고 싶진 않다.

이제 전역까지 6개월 정도 남았는데, 무슨 일을 하겠어, 라는 시선이 있다는 건 안다. 그런 시선이 일반적이라는 것도 안다. 분명 내 안에서도 그냥 대충 때우다 전역하자는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어디서나 제 몫을 해내는 사람이고 싶다. 이 과정에서 내 적성, 내 재능, 내 강점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이미 어느 정도 고정된 관계에 끼어든다는 건 불편하고 복잡한 과정이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들은 나에게 어느 편이 될지 결정하라는 주문을 하는 듯도 하다. 나는 언제나 어느 편도 아니면서 모두의 편이고자 하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입장을 취하지만, 그게 어정쩡함이 되거나 절묘한 균형이 되거나, 내 할 바에 달렸다.

오늘 또 한 번 알게 된 것인데, 나는 상대방이 자신의 발화에 강하게 공감하길 원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 도무지 어쩔 줄을 모르겠다. 특히나 그가 “남 얘기”를 하고 있다면, 더군다나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라면, 나는 내가 건성으로 듣고 있다는 티를 내고야 만다. 아니면, 아주 삐딱한 반응을 보여준다.

내가 듣는 이의 자세가 부족하다는 건 인정한다. 나는 곧 죽어도 내 할 말은 하려고 하는 유형의 사람이라서 더욱 그런 면이 있다는 것도 안다. 이 부분은 확실히 개선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듣는 이가 되는가. 이건 나중에 더 생각해보자.

나의 부족함과는 별개로 “남 얘기”를 하는 건, 쉽게 용인하기가 어렵다. 특히나 자신의 편협한 관찰 혹은 판단에 동의, 공감하기를 바라는 뉘앙스를 풍길 때면, 참으로 불편하다. 인간은 누구나 뒷담화를 한다. 그러니 아주 자연스레 한 귀로 흘려넘기면 될 일인데, 너무도 어색한 반응이 나온다.

어쩌면, 그 ‘남’이 언젠가 ‘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예감 때문일까? 그럴 가능성이야 인간 사회에서 상존하는 것이니, 대범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그래야 정신건강에도 유익할 것이다. 나는 상사들이 자신을 술안주로 올리는 부하직원들의 맹랑함을 너그러이 눈 감아주어야 한다는 쪽이기도 하다.

현장에 있는 ‘나’와 ‘너’가 서로 맞대고 앉아 할 얘기가 고작 “남 얘기”, 그것도 “남 좋지 않은 얘기” 밖에 없는지, 이 실태가 서글프기도 하다. 그것 말고라도, 좀 더 진솔하고 진취적이고 생산적인 담화를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내가 그런 담화를 나누고픈 상대방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부터는 마음과 귀를 함께 열고 진심으로 들으려 노력해보자. 바로 반응하지 말고, 곱씹어 생각하고, 또 생각한 뒤에 정중하게 나의 의견을 알리자. 네/아니오, 긍정/부정으로 답하기가 부담스럽다면, 아리송하고 갸우뚱한 그대로를 솔직하게 역시 정중하게 내뱉자. 그리고 나서, 다시 이 문제를 고민해보자.

가정의 달

어린이날에는 부모님과 금정산엘 올랐다. 동래온천도 가려고 했으나, 그건 못했고 금정산 막걸리는 함께 마셨다.

어버이날에는 특별한 선물은 못했고, 아버지께는 포옹(!)을, 어머니께는 평소 좋아하시던 음악을 CD로 만들어드렸다.

오늘, 스승의 날에는 적십자 수상인명구조요원 강사님들께 <스승의 은혜>를 불러드렸네.

부부의 날에는 별로 할 게 없으니, 이렇게 가정의 달은 정리하면 되겠다.

부관 하번

퇴근했으니 서둘러 대구로 떠나얄텐데 방 정리를 핑계로 이렇게 꾸물거리고 있다.

주말 내내 수영에 숙제에 시달릴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실은 내일 내야할 숙제도 다 못해서 걱정이다. 집에 가서 시작해도 새벽에야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2009년 12월 9일부터 시작됐던 내 삶의 한 부분이 이렇게 갑자기 끝나게 될지는 몰랐다. 담담하게 받아들이곤 있지만 서운함, 상실감은 어쩔 도리가 없다.

살다보면 정말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진다. 나와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일이 나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저 받아들이고, 잘 넘기면 된다.

약 1년 5개월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많이 배웠다. 아쉽게도 최선을 다하진 못했다. 이렇게 갑자기 끝나니, 뭔가를 해 볼 기회마저 없어졌구나.

남은 8개월이 어떻게 될지도 조금 걱정이다. 어쨌거나 새 환경, 새 사람, 새 일…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