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연기군 신안1리 강수돌 이장의 고층아파트 개발 반대 투쟁기를 담은 책이다. 신안1리는 홍익대 조치원캠퍼스와 고려대 세종캠퍼스 사이에 있는 살기 좋고 한적한 농촌마을이다.
신행정수도 건설 바람과 함께 풍문으로만 돌던 고층아파트 개발계획이 차츰 현실화 된다. 이 마을에 살던 강수돌 교수(고려대 경영학부)는 신안1리 이장이 되어 고층아파트 저지투쟁 일선에 나서게 된다.
결론은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니게” 됐다. 고층아파트 건설의 삽은 떠져서 콘크리트가 올라갔으니 이겼다고 할 수 없다. 콘크리트 구조물은 올라갔으나 미분양으로 완공되지 못하고 중도에 그쳤으니 졌다고도 할 수 없다.
강수돌 교수가 고층아파트 저지투쟁에 나선 것은 이 개발계획이 절차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옳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층아파트가 들어설 땅은 원래가 1종으로 4층 이상 건물을 짓지 못하는 부지였다. 이를 전 이장이 위조서류를 근거로 민원을 제기해 15층 이상 건물을 지을 수 있는 2종으로 바꿨고, 행정당국이 기한이 지난 민원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적극 반영했다.
신안리는 대학문화촌으로 개발될 계획이었다. 양 옆에 대학을 끼고, 농업, 과수업, 임대업 등이 주업인 마을에 1,000세대가 넘는 고층아파트(15층 건물 15개동)를 짓는다는 건 난개발이다. 인근 주민의 조경권, 일조권 침해는 물론 공동체 역시 철저히 파괴될 것이다.
강수돌 교수의 입장에서 그리고 독자인 내 입장에서도 고층아파트 건설을 부당했고 또 부당해보였다. 절차적으로도 합당하지 않고, 내용적으로도 합리적이지 않다. 주민 여론이 100% 개발 찬성이 아니라 찬반이 비등비등한 상황이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닌가.
그랬다면야, 이 책이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야, 신안리 한 가운데 흉물스런 회색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 들어서서 마을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용산참사와 같은 일도 아마 일어나지 않았거나 그렇게 끔찍한 결론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실은 달랐다. 강수돌 이장은 토건자본이 얼마나 교활하고 간악하게 움직이는지, 토건자본과 결탁한 행정권력이 얼마나 무력하고 무능한지, 언론의 펜대는 얼마나 가냘프며 휘기 쉬운지, 이에 비하면 저지투쟁에 나선 자신과 주민들은 지금껏 얼마나 순진하게 살아왔는지, 그러나 투쟁을 겪으며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철저히 처절히 깨닫는다.
결론은 이도 저도 아니게 됐다지만, 대체 어느 지역의 공동체가 “개발 마피아”에 맞서 이 정도까지 싸울 수 있겠는가. 강수돌 교수도 싸우는 과정에서 이장이 됐고 지역공동체에 깊이 개입하게 됐지만, 그나마 그와 같은 쉬이 지치지 않고 꺾일 줄 모르는 지도자가 있었기에 그만한 열매라도 거둔 게 아닌가 싶다.
이 투쟁의 기록에서 충남도의회와 연기군의회의 역할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저자는 아예 그들에게 일말의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사실 이 모든 과정이 주민의 손으로 선출된 도의원, 군의원들이 해야 할 일, 바로 정치다. 이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정치의 과소, 정치의 부족, 정치의 실종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별미는 부록으로 실린 「잘못된 개발 사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풀뿌리 운동 매뉴얼」이다. 경험이 빚어낸 지식 만큼 값진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