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굴레에서』 (서머싯 몸, 민음사, 1998)

윌러엄 서머싯 몸(W. Somerset Maugham)의 ‘자전적 허구’라고 할 작품이다. 작가와 주인공의 삶이 많은 부분 닮아있다. 주인공의 심리서술, 독백에서 느껴지는 생생함이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다. 교양소설, 성장소설로서 괴테,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고전의 반열에 오르긴 어렵지만, ‘현대의 고전’에 꼽힐만한 대중소설이라고 한다.

작품명인 ‘인간의 굴레에서’(Of Human Bondage)는 스피노자의 글에서 따온 것이다. 이 제목에는 중의적인 구석이 있다. 인간의 삶에 얽힌 굴레를 뜻하는지, 아니면 인간이라는 굴레를 뜻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삶이라는 굴레, 인간이라는 굴레… 주인공 필립의 삶을 보자면 이 두 의미 모두 유효한 듯 싶다.

필립이 갇힌 첫번째 굴레는 나면서부터 한 쪽 다리가 불편한 상태라는 것과 어려서 양친을 잃고 (선량하고 모범적인 사람들이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어 사랑을 주는 방법을 잘 모르는) 백부모의 손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필립은 장애로 인해 보다 예민한 감성과 성숙한 내면을 얻는다. 또한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가족의 절대적인 사랑에 목마르게 된다.

두번째 굴레라고 한다면, (사랑에 있어서는 잘 되고 못 되고를 따지기가 힘들지만) 잘못된 대상에 대한 어긋난 열정이다. 이 굴레에서는 밀드레드! 바로 이 밀드레드라는 여성이 필립을 옭아맨다. 필립은 때론 자신을 타락시키는 고통을 통해 마침내 이 굴레에서 벗어난다. 그리고는 사랑의 열정은 광기에 가까운 것이며 그것은 어느 누구도 쉽사리 통제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세번째 굴레는 필립 자신의 진로와 경제적 독립에 관한 것이다. 필립은 고등과정에서 줄곧 우수한 성적을 냈지만,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독일로 떠난다. 믿는 구석이라곤 약 2천파운드 상당의 유산이었다. 성직자, 변호사, 회계사가 되라는 백부의 조언에도 아랑곳 않고 파리에 가서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시험해본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길은 선친의 직업이었던 의사가 되는 것이었고, 유산을 모두 탕진하여 노숙자가 되기도 하면서 가까스로 의사 면허를 얻는다.

독자인 내가 느끼기에도 때론 멍청한 선택과 부질없는 경험을 거치며 굴레를 벗어난 필립이지만, 종국에는 또 다른, 그러나 무엇보다 행복한 굴레에 스스로 구속되는 선택을 한다. 필립은 의사 자격을 따고 그토록 그리던 스페인으로 또는 동양의 어느 곳으로 떠나고자 하는 꿈을 접고, 한 여인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자 한다. 그 선택은 일견 아주 평범하고 범속한 것이지만, 필립은 이 행복을 위해 그 멀고 먼 길을 돌아서 왔는지도 모르겠다.

근 1천 쪽에 달하는 소설이지만, 아니 그렇게 긴 소설이었으니 이 작품을 통해 얻은 즐거움은 상당했다. 그리고 그 즐거움에 비해, 이 정도로 형편없는 리뷰를 남긴다는 사실은 좀 민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