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창의허브 오픈기념식

하자창의허브 오픈기념식엘 다녀왔다. 한예종 무용원 친구들의 땐스를 보며, ‘아, 몸은 저렇게 푸는구나!’ 싶었다. “지식인은 글로 소통한다.” 내가 자주 읊는 경구이긴 하나, 소통은 활자로만 머리로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더 정확하게는 “근대적 의미의 지식인은 글로만 소통한다.”라고 써야한다.

세미나를 해보라. 따지고 보면, 세미나도 서로 주고 받는 상호작용, 그러니까 합을 맞추는 협동작업이다. 헌데, 몸이 풀리고 마음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제 아무리 훌륭한 논리 공방을 펼쳐도 합(合)은 도출되기 어렵다. 오히려 벽에 머리를 찧는 느낌, 허공에다 대고 말하는 느낌 등의 패배감만 얻는다.

정연회 때도 그랬다. 뭐가 그리 풀 것이 많았는지, 몇 차례 화끈하게 뒷풀이를 했는데, 그렇게 격하게 몸을 써가며 어울리고 난 뒤부터는 세미나의 호응도 더 좋았다. 항상 세미나 시작 전에 자기소개로 입을 풀곤 했는데, 즉흥땐스를 통해 몸도 풀고 시작했으면 더욱 찰진 모임이 됐을지도!

전속

성탄 전에 옮기는 것이 확실하다. 아무리 늦어도 내주중이다. 이 객관적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차근히 준비를 해야한다. 적응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이리저리 치이다보면 금새 익숙해질 것이다. 다만, 정리는 내가 나를 채근하여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잘 하기가 어렵다. 심란한 마음도 추스리고, 널부러진 짐도 챙기고, 도움주신 분들도 챙기고, 그렇게 빈틈이 없도록 해야한다.

변수를 끌어안고 가는 것

성탄은 넘길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을 수 있다는 걸 오늘 알았다.

촘촘히 짰던 계획은 뒤틀릴 것이고, 덩달아 내 속도 뒤틀릴 것이다.

그래도 어쩌랴!

한 친구의 말처럼, “삶이란 변수를 쳐내는 것이 아니라 변수를 끌어안고 가는 것”이니,

잡을 것은 잡고, 흘릴 것은 흘리고, 그렇게 우주의 시절 인연이 이끄는 대로,

혹은 어느 종교의 표현을 따르자면, 주님께서 예비하신 대로,

또 어디론가 나 역시 흘러갈 뿐이다.

태양, 커피, 음악, 책, 동무

양재역 가까이 커피숍에 앉아 커피의 각성을 맞이하고 햇살의 내음을 맡는다. 태양과 커피, 이 둘만 있으면 지구 어디에서라도 그럭저럭 살아낼 것만 같다. 여기에 음악이 있으면 아주 훌륭할 것이고, 책이 더해진다면 거의 완벽할 것이며, 함께 책을 읽고 시시덕댈 동무가 옆에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지난 밤, 나는 어둠과 함께 그 사람을 보냈고, 빛은 홀로 돌아왔다. 나는 안다, 당장의 담담함이 얼마나 큰 고통을 품고 있는지를. 그도 나도 우리의 결정이 옳다고 확신할 수 없다. 인간은 꼭 옳은 일을 위해 살지는 않는 듯하다. 오히려 우리는 자연스러움에 이끌려 살아가는 듯하다. 물론 그 자연스러움 안에는 뭇사람들의 의도와 의지가 녹아있다.

자연스럽게 만나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다 자연스럽게 식고 자연스럽게 전환기를 맞이한다. 자연스럽게 함께 고비를 넘거나 자연스럽게 각자 갈 길을 간다. 자연스럽게 다시 마주치기도 하고 역시 아주 자연스럽게 평생을 두고 멀어지기도 한다. 이 자연스러움을 통해 그와 내가 짧게라도 찰나를 영원으로 느끼며 살았으니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