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끝나면

금요일에 친구의 연락을 받고, 바로 다음날인 토요일에 박노해 사진전 <나 거기에 그들처럼>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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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좋았다. 사진은 피사체가 가장, 구도가 그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아주 흡족했다.

구경 잘 하고 도망가려다 친구 손에 이끌려 도록을 사고, 줄 서서 박노해 시인의 사인도 받고, 덩달아 화두(“정치 한다는 친구들 대통령 한다 그러고 그러고 떠나도 사랑은 남더라고요.”)도 얻고, 박노해 시인의 새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도 선물 받았다. 온반과 냉면도 먹었다지.

마종기 시인 이후로 시를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선물도 받은 김에 펼쳐 보았다. 대개가 쉽게 읽혔다. 그러니 어렵게 썼겠지 싶다. 운문 임에도 산문을 읽는 듯 서사가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 시는 읽는 게 아니라 읊는 거라고 했던가? 어쨌거나 시인은 미학보다는 정치와 윤리에 더 관심이 많으신 듯 하오니.

길이 끝나면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겨울이 깊으면 거기
새 봄이 걸어나온다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일어선다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하나에 꽂히면 정신 못 차리는 애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는데, 참 얘가 별 걸 다 기억하고 있어서 놀랐다. 본인 입으로 기억력이 좋다고는 했지만, 나도 기억 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세세히 설명해주는 걸 듣고 있자니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그랬다.

그 친구가 기억하는 나는 “하나에 꽂히면 정신 못 차리는 애”였다.

“넌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만화만 봤어. 심지어 수업 시간에도 계속 봤잖아. 진짜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어. 근데 6학년 때는 컴퓨터에 미쳤지. 그 때도 정말로 이상했어.”

우산

서울역에서 버스를 타고 명동에서 내렸는데, 우르릉 쾅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어둑한 하늘이 소나기를 내리붓기 시작했다.

빗대의 기세가 아주 굵직했다.

가판대 앞에 나와있는 우산을 사려고 달렸는데, “5천원!”이라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건만, 막상 내 앞에서는 “8천원!”이라니, 아무리 비가 와도 그렇지, “아저씨, 아까 5천원이라고 하셨는데요?”, “아니야, 8천원이야.”

쉽게 그칠 비가 아닌 것 같아 8천원을 주고 장우산하나를 집어들었다.

급히 우산을 펼쳐 들고 나오는데, 내 등 뒤로 아저씨가 외쳤다.

“우산, 만원!”

행복전도사의 자살

가슴 찡한 일이 있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말라. 실패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도 있으니까.

주위에 행복전도사의 자살에 충격 받은 사람이 많다. 나는 몹시 가여운 생각이 든다. 고통은 외롭다. 고인의 죽음은 건강해야 행복함을 얘기하는지도 모른다.

취침도 늦고 기상도 늦고 졸음도 늘고. 가을이라선지 몸상태가 나빠진 건지…. 식사량 줄이고 운동량 늘려야지.

책은 잘 안 읽는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건 아닌데도 그렇다. 부끄럽다.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여러 선택지를 손에 쥐고 이리 고민 저리 고민 저울질을 하던 나로서는 “이 길이 나의 길”이라며 무대포로 걸어가는 뭇 청춘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힘이 그들을 그렇게 용감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실제로 찾아가 물어보기도 했다. 소용없는 일이라는 건 뒤늦게 깨달았다. 그건 ‘자기 자신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비전, 소명… 이 얼마나 듣기에 좋은 말인가! 하지만, 진실로 자신의 소명을 찾기 위해 안락함을 희생하며 거친 광야로 길을 나서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저 비난받지 않을 이유와 적절한 조건에 타협하고 만다. 그런 삶을 낮추어 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개인적 안녕과 사회적 명망을 동시에 얻는 좋은 길일 수도 있다.

이신행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무들 똑똑해서 실컷 머리로 재고 따지고 하다가 봄은 다 지나고 여름에야 씨를 뿌린다. 곧장 가을이 오고, 그다음은 겨울이다.” 또, 왕지혜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로는 다들 똑똑하고 훌륭하죠. 그런데 실천은요? 실제로는 누구도 움직이려 하지 않아요.” 이제 ‘말 잔치’는 끝내고 움직일 때가 됐다.

엄기호 선배는 “대안은 실천하는 동안에만 보인다”고 했다. 행동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실수는 당연히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머리로만 ‘완전무결한 실천’을 연역해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이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차라리 걸으면서 생각해야 한다. 인류는 직립보행을 시작하며 뇌도 커지고 사고도 덩달아 진화했다.

내가 ‘나의 길’을 자각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나를 둘러싼 기운이 조금씩 바뀌는 걸 느꼈다. 그저 아무 의미도 없이 나열되고 진행되던 세계가 일순간 나의 의미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걸 두고 비전, 소명이라고 하나 싶기까지 했다. 나는 여태 헛똑똑이로 살았구나 싶었다.

나 자신의 탁월함이 아니라, 내가 나로서 오롯이 설 수 있도록 인정하고 격려해 준 지인들의 존재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겁쟁이로 살았을 것이다. 세상의 기준에 응답하지 못하고 세상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그러느라 정작 내면의 부름에는 응답하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왜 하필 ‘나’이고, 또 왜 하필 ‘이 길’인가, 번민도 했다. 그러나 그에는 이유가 없다. 다만,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정만 가능하다. 아메리칸 드림은 “Anything is possible!”을 외치며 인간 존재가 원하기만 한다면 무엇이라도 될 수 있음을 설파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다른 이는 몰라도 나 자신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그래, 우리는 남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끝끝내 ‘나’는 속일 수가 없다. 해서, 설령 가시밭길이 기다린다 할지라도 발걸음 가벼웁게 걸어야 하는 것이다. 남에게 내보일 거창한 결과가 없어도 좋다. 길을 걷는 것만으로 좋다. 이로써 자기 존재의 완성과 궁극적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에 질문을 던지며 살라

우라사와 나오키의 <마스터 키튼>(マスターキートン)을 보며 “인간은 언제 어디에서도 배울 수 있다”는 말을 가슴에 담았고, 대학 졸업 후 입대하여서는 하물며 군대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기본군사훈련을 받는 도중에 박이철 선배의 강연을 들었다.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는 시간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가 아래의 강연 내용을 듣고는 귀가 번쩍 뜨였다.

“언젠가 아들 녀석이 하늘은 왜 파랗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나는 다시 되물었습니다. 너는 왜 파랗다고 생각하느냐고….

아들은 아무말도 없더군요.

여러분, 질문을 하는 쪽이 이기는 겁니다.

세상의 질문에 답하기보다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며 사세요.”

세상에 질문을 던지며 살라. 고된 훈련과 수면 부족으로 찌들어 있던 나는 순간 짜릿함을 느꼈다. 그래서 곧장 노트에다 적고, 그날 저녁 훈련일지에도 적고,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적고, 몇 번을 되뇌었다. 그러나 정작 이 말을 행동으로 옮기고자 결정한 것은 최근이다.

나 혹은 우리는 지금껏 세상의 질문에 답하느라 바빴다. 수능점수, 학점, 스펙, 연봉…,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가느라 허덕였다. 이제 더는 세상이 내주는 질문에 맞추어 나를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고, 모범답안을 내놓지 못하는 스스로를 책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나도 세상에 물음을 던질 것이다.

이제는 내가 묻고, 세상이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