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

종종 내 안에 살고 있는 여리고 철 없는 아이를 발견한다.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고, 애정을 얻기 위해 잘나보이려 누군가를 이기려 노력하는, 어릴 적의 나…

꼭 모두에게 사랑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다독여본다.

불행

그 길을 택한다면, 확실히 불행해질 것이다. 그러나 때론 불행을 겪어야 하지 않겠는가. 언제나 성공을 거두며 살았다면, 지금껏 관대한 목표만 가졌던 것은 아닌가. 무엇보다 앞으로의 불행을 상쇄할 만큼, 충분히 행복하고 평안하게 살지 않았는가. 당선이 아닌 ‘낙선’을 계획하고 출마하라던 그 말이 참으로 와닿는다.

다시 만난 라이어 공연 팀

토요일에 라이어 공연 팀을 다시 만났다. 정확히 4년 하고 6개월이 지났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어도 다시 만나서는 공연 얘기를 했다. 누가 어떤 실수를 했느니, 준비가 어땠느니… 조각난 기억을 조금씩 모으며 추억을 어루만졌다.

나는 공연 직전에 우이동으로 갔던 합숙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합숙 둘째날 엄청나게 마셔댄 탓에 마지막 날 함께 돌아오지도 못하고 종석의 도움을 받으며 기숙사로 돌아왔던 끔찍한 경험 때문인 것 같다.

다들 하나도 안 변한 것 같다. 아직은 그게 좋다.

백팩커

남부터미널에서 호주에서 온 여행자를 만났다. 앞 뒤로 어마어마한 짐을 메고 있는 젊은 여성이었다. 같이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데, 주위를 둘러봐도 혼자 밖에 없길래 말을 걸어봤다. 중국으로 한의학을 배우러 가는 도중에 한국에 잠깐 방문했다고…

학회를 다시 시작하는 이들이 즐거웠으면 한다

비단 학회, 정연회에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겠지마는…

조직이 굴러가려면 우선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모이는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자신의 욕구 때문이다. 남과 사귀고 나를 드러내려는 욕구, 대화를 나누고픈 욕구, 공부를 더 해보려는 욕구, 공동체를 꾸려나가고픈 욕구 등.

어떤 이는 욕구에 단계도 있고 차등도 있다고 봤지만 그랬거나 저랬거나 모든 욕구는 그 욕구가 타인과 공동체에 심각한 위해가 되지 않는 한에서 장려되얄 것이다.

나는 배움의 즐거움이 욕구의 최종 단계라 생각했다. 결국은 배움의 즐거움으로 모두 수렴하여 조직을 사랑하게 되리라. 따라서 조직은 형식지이건 암묵지이건 사람에게서 배우건 책을 통해 배우건 배움을 주는 마르지 않는 샘이어야 했다.

그게 나의 비전이라면 비전 같은 것이었다. 다만, 현재적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 즐겁고 그러면 끝이라는 한계. 아마 가장 좋은 비전은 ‘함께 꾸는 꿈’이리… 그러려면 우선 자신이 그 꿈을 진심으로 믿어야 한다. 과연 나는 그랬는가.

선의로 시작한 조직, 운동이 개인의 희생과 불행으로 끝나는 안 좋은 과거를 너무나도 많이 봐왔다. 이건 나의 트라우마라면 트라우마다. 리더는 희생양의 대용품이라고 하지만, 타인의 인생을 망쳤다는 얘기까지는 듣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무언가를 줄 수 없을 때, 선뜻 누군가에게 자신의 것을 내어달라고 하질 못했다. 그만큼 자신이 없었다는 얘기도 될 것이다. 연이은 작은 성공에도 왜 그런 불안을 가졌는지 잘 모르겠다. 정녕 내 믿음이 약했는지도 모른다.

학회를 다시 시작하는 이들이 즐거웠으면 한다. 서로를 환대하고 우정을 나눴으면 한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체로 만났으되 차이를 존중하며 연대감을 느꼈으면 한다. 정말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아줬으면 한다.

습관

평소보다 바쁜 일정이었는데도 심리적 안정감 때문인지 아니면 공부를 거르고 놀았기 때문인지 어쨌든 푹 잘 잤다. 요즘의 내 화두는 규칙적 생활 습관 기르기다. 꼭 홈런이 아니더라도 기복 없이 꾸준한 성적을 내고 싶다.

싸움의 룰

과거를 모르고도 미래는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세계는 ‘의지’의 각축장인 듯 보인다. 제한된 인정자원을 두고 너나 할 것 없이 아귀다툼을 하고 있다. 이 생지옥에서 점잖기를 바라는 건, 위선에 가깝다.

무엇이 이겨야 하는지, 결국 누가 이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계속해서 싸울 뿐이다. 이 싸움에도 룰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싸움에 임할 것, 이다.

‘보수’를 표방하는 대학생 정치단체가 프레스센터에서 ‘비전 선포식’(?)을 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의지가 세상에 던져졌다.

길이 닫히면, 새 길이 열리는 법

더는 미룰 수 없다. 기다림에도 정도가 있다. 아예 기다림에서 벗어난다면 이 외로움과 적막함도 나를 지치게 만들 수 없으리.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듯 보였던 지인의 번뇌를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나는 그에게 인간적인 유대를 느꼈다. 불안하지 않은 이 어디에도 없도다. 진심으로 그의 건필을 바란다.

합격은 무전제의 ‘당위’겠지만, 객관적 결과는 ‘사실’이다. 결국 수험생활은 당위(되어야 한다)를 사실(되었다)의 간극을 좁히고 좁혀 하나로 만드는 고되지만 그렇기에 즐거운 과정이다.

합격 또는 불합격, ‘결과’ 하나만 달랑 얻은 채로 이 모든 과정이 끝나버리지 않길 바란다. 노력, 끈기, 몰입의 경험을 내 몸 곳곳에 새기고, 겸허함과 겸손함을 배우길 희망한다.

결과엔 연연치 않는다. 길이 닫히면, 새 길이 열리는 법이다.

마을 만들기와 인간다운 삶

오늘자 한겨레 칼럼에 조한혜정 교수가 쓴 기고가 실렸다.

“…우리는 좋은 동네란 자신이 사는 곳을 소중히 가꾸는 시민들이 있고 작은 단골가게와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산책로가 있는 곳이라는 데 합의했다.”

수 해 전부터 조한혜정 교수는 ‘마을 만들기’를 얘기해왔다. 우정과 환대, 돌봄과 배움이 있는 마을이다. 박원순 변호사가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고 말한 그 마을과 같은 맥락이다. 대충 ‘생활공동체’ 같긴 한데, 근대적 상상력으로는 쉽게 감이 오질 않는 이야기다.

마포에 있는 성미산 마을은 공동육아협동조합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육아에서 시작해 교육, 노인 돌봄까지 시작하면서 마을의 틀이 잡혔고, 생협까지 만들어저 어엿한 마을의 모습을 갖췄다(한겨레오늘자 27면). 최근 이 성미산이 학교 신축 부지로 선정되어 위기에 처했다. 산을깎기 위한 포크레인질은 이미 시작됐고, 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다.

“…자기 밖에 모르는 ‘명품 인재’들이 어느 시점에 국제 미아가 되어버리는 시대에 ‘공익’을 생각하는 이들이 마을에서 자라나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는 초, 중, 고를 아파트촌에서 살았지만, 정규교육을 받기 전에는 대구 수성구 범물동이라는 촌동네에서 자랐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나가시면, 끼니는 언제나 ‘옆집’ 식탁에서 해결했다. 응당 그렇게 하는 걸로만 알았다. 천둥벌거숭이로 동네 곳곳을 날뛰어도 곳곳에 계신 동네 어른들 덕에 위험한 줄을 몰랐다. 그 덕에 아이 하나가 여태껏 죽지 않고 살아있다.

전세계를 무대로 돈을 버는 ‘글로발 인재’가 각광받는 이 시대에 ‘마을 가꾸기’ 담론은 고색창연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뿌리뽑힌 삶은 돈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상흔만을 남기며 우리를 허허로운 벌판에 세워놓았다.” 글로발 인재들이 반드시 ‘국제 미아’라는 불행한 결말을 맞으리라는 저주를 퍼붓고 싶지는 않다. 실제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무엇이 인간다운 삶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조급함 2

조급함 1

불가능한 일이지만 요절한 선인들에게 묻고 싶다. “일찍 죽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은 없었나요?” 요즘 부쩍 내 무운을 시험해보고픈 당돌한 생각이 든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도 타보고, 남아메리카도 가보고. 죽다 살아나는 기분이 궁금하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다. 분명 기다림이 필요한 일인데도 그걸 못 참고 자꾸 꿈지락거린다. 요령껏 돌려서 부드럽게 전달해야 할 때에도 직선거리로 내지른다. 할 말은 다 해버려야 속이 시원하다. 내 속만 시원해져서 될 일이 아닌데도 그랬다.

매듭을 잘라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꼬인 데서부터 푸는 게 맞다. 사과할 일이 있다면, 가급적 빨리, 늦더라도 분명히, 사과하고 넘어가야 한다. 감정이 얽힌 일이라면 더욱 세심하게 살펴야 옳다. 예전에는 그걸 잘 못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바심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서른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막상 서른이 된다면 지금 무언가를 시작하지 않은 것을 기필코 후회할 것이다. 그 일이 매듭풀기든, 사과든, 고시공부든 뭐든 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