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과 깨달음

배움과 깨달음. 이 둘이 언제나 함께일 수는 없지만, 둘 모두 너무나 값지다. 조용헌은 산을 오르며 느끼는 청량감을 mountain orgasm이라 했다. runners’ high란 말도 있으니, learners’ high란 표현도 가능하지 않을까.

깨달음은 깨는 것에서 온다. 무엇을 깨는가? 자기를 둘러싼 견고한 알껍질을 깬다. 이 자기 세계를 균열하지 않는 앎, 배움이란 소용이 없다. 깨지면 아프다. 쓰라리다. 그래서 아프지 않은 배움은 배움이 아니다.

그러나 알을 깨봤자, 다시 더 두껍고 견고한 껍질을 만날 뿐이다. 영영 벗어날 수 없는 이 껍질을 깨고 다시 싸이고 깨고. 그게 배움과 깨달음의 전부이다. 이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 희열을 얻는다는 건 인간이 가진 대단한 아이러니다.

희열은 배움과 깨달음이 주는 변화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다. 결국 또 아프게 껍질을 깨야하지만, 오직 변화한다는 그것이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배움의 전후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그걸 배움이라 부르지 않는다.

글쓴이

Sehee Park

Advocate for Innovators. Law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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