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

생활이 워낙에 단조로우니 특별히 할 얘기도 없고 깊게 공부하는 것도 없고 공부하는 게 있다고 한들 여기서 남들과 나누는 게 그닥 의미있게 여겨지지도 않고 그래서 잡소리나 조금 끄적거릴까 한다.

모르긴 몰라도 2011년이 끝날 때까지는 아무래도 이렇게 살아야지 않을거나 싶다. 꼭 지금 내가 처한 상황 때문도 때문이지만, 요새 들어 내 삶의 가치관이 서서히 변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나는 인격신의 존재는 믿지 않는다. 있다 없다가 아니라 그냥 안 믿는다.

인간이 신의 형상을 닮았다는 얘기도 믿지 않는다. 어떤 말씀에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그건 그저 ‘우상’을 섬기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동일시의 욕구일 뿐이다.

또한 ‘신의 의지’라는 것도 믿지 않는다. 그런 목적론적 세계관 자체를 의미할 수 없다. 짜라두짜가 마을로 내려오면서 얘기하지 않았나, “사람들은 아직 신이 죽은지도 모르는 모양이야!”

혹자는 이렇게 묻겠지, “그럼 너는 이 세상에 왜 왔냐?”, 고… 그건 아 글쎄 아바이 날 낳으시고 어무이 날 기르셔서 이렇게 됐지, 그걸 나한테 물어서 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면 모르는 채로 있으면 되지. 그 우주적 허무감이 유발하는 ‘구토’질을 잠시도 참지 못하고, 결국에는 신적 존재에 의지하고야 만다. 허무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어떻게든 신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한다. 이래도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 아니라고?

우린 그냥 나서 그냥 죽는다, 이걸 인정하기가 그렇게나 버거운 일인가? 인류의 조상은 원숭이다. 이게 그렇게 역겹나? 역겹기로는 인류가 자행한 일들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데도?

형식이나 의식에 치우치는 종교는 대부분 ‘우상화’의 결과이다. 자본주의 사회라서 어쩔 수 없다지만, 나는 돈이 오고 가는 종교는 믿지 않는다. 그건 종교가 아니라 장사에 불과하다. 장삿속을 신의 뜻으로 교묘하게 포장한 것이다.

경전을 교조적으로 해석하는 것 역시 역설적이게도 경전의 ‘우상화’에 지나지 않는다. 교리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해보고 싶지만… 공부가 부족하지 그냥 넘어간다.

우짜쓰까. 우리가 신에게 매달리는 순간 우리는 언제나 우상화의 함정에 빠지게 될 뿐이다.

종교의 순기능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자본주의 발전이 고도화 되면서 아예 대놓고 물신을 숭배하며 배금주의자로 사는 부류가 등장하고 있는 판국이니까… (역사적으로 보면 언제나 존재했던 부류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현대의 종교가 대체로 억견일 뿐인 교리해석을 강요하기 보다는, 인간 개개인의 ‘영적 성숙’을 도와야 한다고 본다. 예수나 석가, 공자, 무함마드 등으로 나뉘어 있지 않고 이 모두를 하나로 엮으며 절로 높아지는 그런 종교의 단계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神, God이자 god, 알라)은 도처에 있다.” 굳이 말하자면, 이게 나의 신앙이다. 내게 신은 하나이자 전부로 있다. 신은 나를 위해 있는 것도 아니요, 인류를 위해 있는 것도 아니요, 있다면 인류를 포함한 우주 전 존재를 위해 있는 것이다.

글쓴이

Sehee Park

Advocate for Innovators. Law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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