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

졸업하는 마당에 가장 많이,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되는 물음이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등학교 졸업해서 대학엘 왔고, 학비 걱정 없이…는 아니지만, 학비 걱정 조금하면서 꾸역꾸역 학교를 다녔다. 공부도 즐거웠고, 활동도 즐거웠고, 사람 사귀는 것도 즐거웠고, 그 와중에 고통과 슬픔과 아쉬움과 무엇보다 큰 고독, 외로움…에 대해 배웠다.

이제 본격적으로 ‘행복’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내 나름의 정의가 필요한 때가 됐다. 그게 되면 위의 질문에 대해서도 쉽게, 는 아니지만, 얼마 간은 답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답은 알고 있는데도, 그럴 용기가 부족해서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 당장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편할 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후회하게 된다.

남 눈에 맞춰서 살고 싶진 않다. 그렇게 사는 사람을 루쏘는 ‘허영amour prope’에 가득찬 사람이라 불렀고, 근대 부르주아지들이 바로 그렇다고 쏘아댔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자기애amour de soi’가 있는 사람들로 봤다. 니쩨 식으로 말하면 ‘좋음good’의 원형이 되는 건강한 사람들이다. 가능하다면 그렇게 자기 긍정을 하면서 살고 싶다. 뒤에서 루쉰이 쏜다. “니가 아Q냐? 그 놈의 비열한 정신승리법…” 맑스도 얘기한다. “너는 너이다. 그러나 특정한 조건에서만 너는 루저다.”

공부는 계속 하면서 살 것이다. 읽고 정리하고 쓰고… 기계적으로, 집중적으로 연마 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운동도 계속 할 것이다. 형편이 된다면 계속 수영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살고 그것도 안 된다면 물구나무서기와 맨손체조라도 꾸준히 하면서… 수영장이 가깝고 뒷산이 있는 동네에 살면 좋을 것 같다.

지역에 터를 잡고 작은 도서관을 겸하는 문화 카페 같은 것을 운영해도 좋을 것 같다. 글 쓰고 싶어하고, 그림 그리고 싶어하는 어린 친구들을 위한 여러가지 사업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기 가족 밖에 모르며 자라는 애들을 보면 늘 안 쓰러운데, 같이 지역을 돌면서 어르신들께 인사도 드리고 지역의 역사나 문화도 배우고 구술사로 기록하여 정리를 한다거나 지역 유적지 같은 곳들에 대한 기술지를 함께 만들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이게 크면 지역언론 같은 것으로 발전할 수 있으려나? 아니 그애들도 나이가 되면, 몇 년 전의 나처럼 한양으로 한양으로… 그 나이때 더 크고 넓은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도 못 말리는 법이다.

작은 텃밭이 있었으면 한다. 토마토나 상추 같은 것은 키우기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하니… 혹 축생을 기를 순 있을까?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일이고, 쉽지 않은 일이라 알고 있다. 그래도 고양이나 개를 풀어놓고 기르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 매어두고…, 그렇게는 기르고 싶지 않다. 내가 애써 기른 작물들을 다 망쳐놓는다면? 한 삼일 정도는 밥을 굶겨야겠지…

아이들은 가능한 많이 낳을 작정인데, 하나는 외롭고, 둘은 아쉽고, 셋이나 넷 정도가 좋을 것 같다. 아이 기르기 무서운 세상이긴 하지만, 내가 기른다는 생각보다는 알아서 잘 클 수 있도록… 요즘은 육아휴직을 아빠들이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엄마만 몸이 괜찮다면 그 방법도 좋은 것 같다. (갑자기 무슨 얘기를…)

꼭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는데… 이건 당장에 할 생각은 없고 적어도 40대 후반 쯤 되어서 시작할 일이다. 바로 ‘우리 가족의 뿌리’에 대한 문화기술지(ethnography)를 쓰는 일이다. 어릴 적부터 틈틈이 들었던 증조부, 조부, 조모에 대한 얘기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실 때마다 조금씩 달랐다는 것도 알고 있고.. 아무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만큼 거슬러 올라가서 써 볼 생각이다. 자료를 모으는 일이 제일 중요한데 일단 구술을 바탕으로 일제시대 등기나 지계 같은 것을 더듬어 올라가면.. 구체적인 묘사는 불가능하더라도 대충 윤곽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의 역사를 통해 시대상을 본다? 그렇게 큰 꿈은 가지고 있지 않고… 아무튼 언제가 풀어야 할 매듭이란 생각이 자꾸 든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물음이다.

잠깐,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답은 아직 구하지 못했다.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나의 부모는 “이제 부모가 길을 제시해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며 내 길은 내가 알아서 찾으라 했다. 그 말은 지금껏 알게 모르게 나를 감싸줬던 울타리 같은 것을 한 번에 해체시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알게 모르게 고독감을 느끼면서 내 존재를 어떻게 지탱해야 할 지… 수시로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삶의 에너지… 동력원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 동력원만 찾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삶의 알리바이가 생기게 되는 셈이다. “나는 살아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들어 줄… 비루하고 보잘 것 없는 삶을 계속 연명해야 할 이유… 나의 레종데뜨르! 땀 흘리기 좋아하는 한 친구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땐 봉사활동을 해보라고 했다. 그래, 누군가는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자기 합리화이지만, 그래 나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구나… 더 살아도 되겠다…

한 때는 부모 때문에 산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부모가 나 하나만 바라보며 사는 것은 아니구나, 깨닫게 된 건 얼마되지 않는다. 나보다 훨씬 당신들 건강 잘 챙기는 그런 부모를 둔 덕분이다. (절대로 비꼬는 것이 아니다.) 그 뒤로는 좀 더 강한 자기합리화 기제가 필요했다… 이를테면 “내가 지금 땀흘려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더 크게 쓰이기 위해서이다”… 같은 전혀 근거를 찾기 힘든… 결론은 “그냥 그렇게 믿고 열심히 노력하자”였고,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이건 졸업하고 군대에 가서 좀 더 생각을 해 볼 것이다. 현실적으로 내 손에 쥐어진 것이 무엇인지 따져보고 부모와도 적정한 선에서 타협을 한 다음에… 그러고 나서 결정할 것이다. 아마 좀 더 살아보면 적당한 계기들이 또 등장할 것이고, 나는 이 계기들을 맞이하면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결정한 뒤에, 행동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의 눈은 필요하지도 않고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나는 나답게” 그런 마음으로 산다면, 당장 내일 한 칼에 맥없이 스러지게 된다하여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글쓴이

Sehee Park

Advocate for Innovators. Lawyer.

“삶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의 4개의 생각

  1. (그리고 적합한 이야기일런지는 모르겠으나) 어릴 적부터 흔히 '가(家)축'으로 분류된 동물들을 기르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지금 그들은 가축은 아니지만요. 공장에서 기르니 공축이라고 해야하나. 사실 기른다는 것도 인위적인 기제이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먹히기 위해, 혹은 보여지기 위해 살아야만 하는 것들을 해방시키고(?) 함께 살고 싶다는 게 내 장래희망이예요. 인류멸망을 꿈꾸는 건 아니고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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