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논란과 미니홈피

광우병 사태를 맞아 한 가지 특이할 사실은 미니홈피가 정치적 의사 표명 도구로 손쉽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엄청난 조회수를 자랑하는 인기 연예인들의 미니홈피에 한두 줄 끄적여진 것들이 기사화되고 누리꾼들의 격려 방문을 받을 정도라니….

꼭 연예인 뿐만 아니라도 일반 누리꾼들도 “이 머저리 같은 정권의 등신 같은 외교”에 대해 말을 내놓고 있다. 4.9 총선의 투표율을 생각해 볼 때, 이런 적극성은 좀 의아한 것이긴 하지만 ‘시민참여는 민주정치의 동력’이라는 명제를 고려해보면 긍정적인 평가를 할 법하다.

여기서 나는 두 가지 점이 궁금한데, 하나는 그러한 온라인에서의 정치적 의사 표시가 거리로까지 이어지고 있는가? 또 하나는 분명히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정치색을 탈색하려는 수사를 덧붙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령, ‘나는 MB까도 아니고, 반동분자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고…’라는 식으로 자신의 정치성을 부정하는데, 그러기 보다는 ‘나는 이번 대선에서 MB를 찍었지만 이번 사태는 도저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이 사태를 관망하고 있자니 정부나 관료가 하는 일이 늘 맞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뼛속깊이 우파이지만 오히려 이건 건전한 우파의 상식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는 식으로 적었다면 어땠을까?

우섭과의 재회

우섭. 딱 2개월 만의 만남이었다.

그의 웃음을 보고 있노라니 묘하게 마음이 편했다. 본의 아니게 고민 상담도 했다. 전보다 좀 더 간결해진 것 같아서 좋았다. 만나고 나니 꽤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웠던 것 같다.

信. 믿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자유주의자와 공동체주의자

나의 실천윤리는 자유주의자의 것과 닮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입으로는 그렇게도 공동체, 공동체 말하면서도 말이다.

나는 개인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책임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무한히 자유롭고 싶다면 무한히 책임지면 된다. 흔히들 자유롭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다고 믿지만, 실은 책임지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고 그러기에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개인은 공동체 속에만 존재한다고 믿으며 내가 주로 겪는 선택에 대한 갈등 역시 ‘어떤 것이 더 공동체를 위하는 것일까?’에 맞춰져 있다. 이렇게 보면 또 공동체주의자이기도 한가?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2007)

광화문 스폰지하우스가 그렇게 깊숙이 숨어있는 줄 몰랐다. 어쨌든 산뜻하게 개봉 첫 날 조조로 봤다.

PERSEPOLIS

한국의 딸들(혹은 소녀들)이 마르잔을 닮아주기를 바랐다. 물론 마르잔처럼 용기있게 크기 위해서는 멋진 할머니와 엄마, 아빠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고작 열네 살의 나이로 가족의 품을 떠나 낯선 곳에 정착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마르잔의 말마따나 “자유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빈에서 마르잔은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독일어를 알아듣기 힘들었다. 파티에서 자신을 프랑스인이라고 소개했던 날에는 이란에 있는 할머니의 그림자가 쫓아왔다. “그래, 네가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마르잔은 육체적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나이에 걸맞게 사랑을 했고, 또 상처를 받았다. “혁명에도 전쟁에도 살아남았는데, 사랑 때문에 무너졌다.” 그 이후에는 말해 뭣할까? 강하고 똑똑하던 마르잔은 그렇게 무너졌고, 결국 다시 모국 이란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하지만, 더 말을 보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이 여성의 성장에 대해 감히 무슨 말을 덧붙일 자격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