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기술』 (조시 웨이츠킨, 2007)

저자는 어릴 적 체스챔피언으로, 청년이 되어서는 태극권추수(推手)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단순히 ‘잘한’ 정도가 아니라, 둘 다 세계제패라 할 정도의 성과를 거뒀다.

나는 저자의 이색적인 경력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 책을 집었다. 일반적으로 체스와 태극권은 (하나는 머리, 하나는 몸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질적인 것으로 생각하는데, 만약 저자가 이 둘을 통합하여 깨우친 궁극의 비급이 있다면 엿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책을 덮은 뒤의 결론은 ‘그런 건 없다’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저자와 같은 경지에 이르고 싶다면, 직접 수행을 해야 마땅하다. (당장에 실천에 유용한 몇 가지 지침을 일러준다는 점에서 이 책보다는 『달인』이 훨씬 유용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형편없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때론 심오한 경지를 내보이고 있는데, 내가 체스와 태극권에 익숙치 않은데다 저자와 비슷한 강도의 수양을 경험한 적이 없는지라 그 가치를 제대로 헤아리기 힘든 면이 있다. 예로, 체스의 오프닝-미들-엔딩게임에 대한 부분이나 각 말의 기능을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이를 통합하는 ‘숫자를 넘어선 숫자’ 개념의 설명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또, 저자가 실감나게 묘사한 태극권추수경기도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체스와 태극권 모두 승패를 가르는 싸움이라 할 수 있고, 이에 저자가 극복하고자 하는 상황은 ‘예측하지 못한 혼란으로 인해 집중이 흐트러지는 경우’이다. 결국 저자가 일러주는 ‘배움의 기술’은 “매일 꾸준히 정교하게 기술을 연마하고, 실전에 대비하여 자신이 취약한 상황에 집중적으로 대비하라”는 것이다.

본문에서 건진 것을 아래에 옮겨둔다.

  • 승패 따위는 중요치 않다고 말하지 말라. 대니는 승패가 중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위로한답시고 그렇게 말했다간 도리어 고통만 가중시킬 뿐이다.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면 왜 그토록 이기려고 안간힘을 썼단 말인가? 왜 체스를 공부하고, 경기에 참가하려고 아까운 주말을 낭비했단 말인가? 시합의 결과는 중요하고, 대니도 그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함께 공감하는 게 문제해결의 시발점이다. (p.67)
  • 하지만 완벽함에 집착할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완벽주의자들에겐 실수가 두려움, 이탈, 불확실성, 혼돈을 불러일으켜 쉽게 결정내리지 못하게 만든다. (p.85)
  • 하지만 우리가 실수를 저지른 후 과거에 집착할 경우 이 평행선[시간과 우리의 인식]은 서로 어긋나게 된다. (p.89)
  • 먼저 어깨에 힘을 뺀 채 양 손바닥을 몸쪽으로 향하게 하고 양손의 집게손가락은 엄지손가락으로부터 약간 떨어지게 한다. 이때 양손가락을 천처히 펴면서 숨을 들이마신다. 그런 다음 가운데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엄지손가락에 의식을 집중시킨다. 이때 호흡과 정신은 손가락 맨 끝으로 부드럽게 향해야 한다.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배꼽에서 약 6센티미터 밑에 있는 원기가 왕성한 단전에 모은 후, 기 에너지를 단전에서 손가락으로 이동시킨다. 숨을 들이쉰 후에는 천천히 숨을 내쉰다. 손가락을 이완하고 정신은 휴식을 취하고 엉덩이 관절에 힘을 빼고 몸의 긴장을 풀고 정신을 집중한다. 숨을 내쉰 다음, 다시 기를 모은다. (p.121)
  • 그동안의 선수생활을 뒤돌아볼 때마다 ‘초심자의 마음가짐’과 ‘실패에 투자하라’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p.133)
  • 배움의 원리는 큰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 작은 부분의 미세한 신비로움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p.136)
  • 언제나 깊이는 넓이를 이긴다. 왜냐하면 깊이는 만질 수도 없고 의식할 수도 없는 우리 속에 잠재하고 있는 창조적인 요소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p.143)
  • 혼란스런 상황에 대처하는 3가지 방법:
    첫째, 불완전한 상태를 차분히 받아들이는 법
    둘째, 수련을 통해 그런 불완전함을 이점으로 활용하는 법
    셋째, 의식에 파동을 일게 하는 방법. (p.146)
  • 휴식시간을 잘 활용하는 선수는 위험한 고비의 순간이 닥쳐와도 거뜬히 극복해낼 수 있다. (p.199)
  • 상대가 반칙할 때, 내 감정을 부정하는 대신 그런 감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오히려 정신을 집중하는데 역이용했다. (…) 최고가 되려면 우선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천성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억압하면 더이상 자신의 직관이 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 (…) 다음 단계는 감정적인 반응을 집중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도망가거나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 그것을 억누르는 대신, 일어나는 감정과 대면하여 그것을 파악하고 궁극적으로는 극복할 수 있는 영감을 발견해야 한다. (pp.224-225)
  • 어떤 경우든 연습이 중요하다. (p.167)
  • 진정한 배움의 기술은 숙련이란 차원을 뛰어넘어 우리의 본질 속으로 들어갈 때 습득된다. (p.231)
  •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시합, 모험, 사랑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 인생의 갖가지 시험에서 얼마나 많이 준비했는지와 상관없이 언제나 익숙하지 않은 전쟁터를 만나게 될 것이고, 평지풍파를 만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또 온 세상이 나를 방해하려고 사방에 건초더미를 쌓아올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이 때야말로 더욱 열심히 노력할 때다. 그리고 그것을 통과할 열쇠는 견디기 힘든 압박감 속에서도 창조력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기초를 튼튼히 하고, 그 기초를 통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p.274)

숭례문 전소

아주 후련하게 자-알 탔구나!
남대문시장 근처 노숙인들이 추운 날씨에 몸 좀 녹이려 불을 지폈나?
― 누가 이들을 거리로 나앉게 했는가?

아니면 나라의 보물, 그것도 나라 제1의 보물 대접을 제대로 못 받자 스스로 타버렸나?
― 국보 제1호로 지정했다면서, 흔한 스프링클러 하나 설치해놓지 않았다.

11일 아침, 까맣게 타버린 숭례문 앞에는 국화꽃이 놓여져 있었다고 한다.
대개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흰 국화를 놓아둔다지?
그럼, 이번에는 대체 무엇이 죽은 것일까?

돈도 안 되는 보물 하나 관리하느라고 그동안 괜한 애 많이 썼는데 타버려서 잘 됐다.
어차피 국보건 사적이건 돈으로 이용할 가치가 없으면 없느니 못한 것 아닌가? 궁상맞게시리 그런거 다 보전해서 뭐하겠나?

이왕 타버렸으니 남은 잔해도 불도저로 확 밀어버리고 제2의 청계천을 파자! 그게 아니면, 공영 영어몰입 시설을 세우자!

2008년 2월 어느 겨울밤에 일어난 이 화재는 미쳐돌아가는 이 시대를 웅변하는 사건이다.
역사가 제대로 되었다면 後世는 기억하겠지, ‘얼마나 나라꼴이 엉망이었길래, 별 이유도 없이 국보를 태웠을까?’

제 몸을 태워 이 시대가 미쳤다는 것을 깨우치다니, 과연 나라의 보물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