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5일, 카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 사망

1919년 1월 15일, 카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가 파시스트 군인들에게 살해당했다. 로자의 시체는 강물에 버려졌다. 독일에서는 5월 1일 메이데이 집회 못지 않게, 이 추운 1월에 집회가 조직된다고 한다.

혹 다음에 독일 갈 기회가 있다면, 그녀가 묻혀있다는 동베를린 외곽 프리드리히펠데 공동묘지에도 꼭 가보리라.

의지가 마지막 희망이다

아무리 마음이 힘들어도 그것과 무관하게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편이 좋은 것 같다. 나는 ‘힘들어도 꾹 참고’ 이런 건 잘 못한다. 살면서 한 번도 수사 이상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야, 정말 참는 데까지 참았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잘 참지도 못할 뿐더러 참는 데까지 참았으면 계속 참지 뭣하러 그런 말을 하는겐가 싶어서, 였던 것 같다. 어차피 참아주는 거라면 끝까지 참아주거나, 처음부터 확실하게 선을 긋거나.

연초에는 하루빨리 ‘이 곳’을 떠나고픈 마음 뿐이었는데, 지금은 좀 숨통이 트인 느낌이다. 상황이나 조건 탓 하지 않으려는, 주어진 것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마음 먹었고, 결국에는 ‘나’의 결정이나 행동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했고,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한 ‘행위’는 그 한계를 내포하지만, 그럼에도 값진 것이라는 약간의 정신승리법스러운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모든 것을 ‘의지’의 문제로 환원할 생각은 없지만, 내게는 ‘의지’가 마지막 희망이다.

왜 공부를 하는가…? 거창한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결국엔 즐거우니까…, 이걸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게 제일 보람있게 느껴지니까… 정도인 것 같다. 오히려 거창한 대의명분이 있다면, 지금 당장에도 공부말고 다른 할 일은 넘쳐난다. 아무튼 공부는 가급적 앞으로의 삶과도 밀접하게 결합시키고 싶고…, 이게 결국 ‘잘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요즘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정도로만 생각하고 살고 있다. 고3 시절 마인드로 돌아갔다.

희망은 직접 구하는 것

현재 강진 군수로 재직 중인 황주홍 동문의 홈페이지를 방문해서 ‘군정일기’도 차근히 읽어보고, 보도자료도 훑어보았다. 다시 기자단 활동에 집중할 힘을 얻었다. 소식지가 왜 필요한지 그 이유를 다시 확인했다.

이와 더불어 학자로 활동하다가 현실 정치에서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비전까지 찾은 느낌이다. 감회가 새롭다고나 할까. 현재 내가 처한 주변의 조건에서는 도저히 희망을 찾을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지만, 세상은 넓고 존경할 만한 이들은 많다. 황주홍 동문을 만나뵐 기회를 꼭 한 번 갖고 싶다.

희망은 직접 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