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깊으면 꽃이 핀다

피곤하고 지친다. 이 신호를 어찌 해석할 것인가?

허영만의 만화, 을 보다보면 술 빚는 이의 마음가짐을 간접적이나마 엿 볼 기회가 있다. 술을 빚거나 내릴 땐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잡생각을 하거나 화를 내면 술을 망친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론이나, 다음과 같이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어찌되었건 ‘마음이 참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과학적 설명 따위를 요구할 생각은 없지만, 늘 궁금해마지 않는다: “정말로 마음의 변화가 결과를 좌지우지 할 수 있어?”. 술 한 번 빚어본 적 없는 놈의 관념론적이고도 유물론적인 물음이다.

“마음이 깊으면 꽃이 핀다.”고 그냥 믿어볼 뿐이다. 다시 대책없이 요동치는 내 마음을 다잡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몸이 피곤하고 마음이 지칠 때는 잠시 멈춰서서 거추장스런 잔가지를 쳐내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담백하게 살자.

어떻게 살 것인가? 아니,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 지금까지 20, 대체로 40, 잘하면 60, 길어야 80.. 위대해져야 얼마나 더 위대해질 수 있을까?

그저 지독한 하루가 반복될 뿐이다. 나는 여전히 늦잠을 잘 것이고, 이 닦는 것을 귀찮아할 것이고, 한 권의 책을 진득이 보기보다는 이것저것 손 닿는 데로 헤집는 버릇을 못 고칠 것이다.

내 예상을 벗어나는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안심 혹은 안주하는 순간, 신은 그리고 세계는 내가 마주하게 될 ‘사건’을 준비하고 있겠지.

그러나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결심한 바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물리적 폭력, 사회적 억압, 자본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하여 나는 나의 정치를 위해, 나의 자유를 위해 살 것이라고!

과학적 진리

과학적 진리를 발견하려는 자는 먼저 자기가 배웠던 것들 대부분을 산산이 박살내 버려야 한다.

새로운 진리란 상식적 명제들을 무수히 난도질하고 난 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만 거머쥘 수 있는 것이다.

― 오르테가 이 가세트, 심숀 비클러와 조나단 닛잔의 『권력 자본론』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