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3

할아버지 제사 때문에 고향집에 다녀왔다. 제사라고 해도 고인에 대한 기억을 갖고 모인다기 보다는 이렇게라도 모이지 않으면 가족들이 모일 일이 별로 없으니 그냥 뛰어넘기는 뭣하고 해서 지내는 것 같다. 나는 그게 나쁘다고 생각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여전히 ‘생고생’은 여자들이 도맡는다는 것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제사가 간소화되는 추세라서 일이 줄어서 다행이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만나면 반갑고 즐거운 일만 가득할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 역시 졸업 학기와 군대를 남겨놓은, 집안의 철없는 대표주자로서 쓴소리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제사를 핑계로 이렇게 많은 가족들이 한 군데 모인 것이 참으로 행복했다. 서울 생활이 길어지면서 오랜 정이 쌓인 관계, 피붙이에 대한 애착이 강해진 것 같다.

인천에 살고 있는 중학생 사촌을 위해 『아로와 완전한 세계』를 갖고가서 선물했다. 예와 달리 가족과 떨어져 혼자서 있으려 하고, 밥도 잘 먹지 않는 것이 걱정이 되지만 한참 예민할 나이임을 감안하니 그러려니 싶었다. 대구에 있는 중학생, 고등학생 남매 사촌을 위해서는 『만화 박정희』와 『만화 전두환』을 주었다. 비록 만화이지만,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잘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숙부가 얘네들 만화 많이 읽는다고 구박을 주는 모양인데, 나는 만화도 충분히 교육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가족이 돌봄, 나눔, 배움이 있는 그런 관계로 거듭나길 바란다. 그래서 가족 카페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고, 가족 문집 같은 것도 만들어 보려고 계획하고 있다. 자연적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가족이고 뭐고 귀찮고 성가신 그런 관계가 될 뿐이다.

정말 좋은 관계란 부담이 없는, 상대방이 흔쾌히 나눠가질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부담을 갖는 그런 관계이다.

글쓴이

Sehee Park

Advocate for Innovators. Law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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