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t Wing 시즌 7

장장 7개 시즌의 대미는 민주당스럽지 않은 산토스와 공화당스럽지 않은 비닉의 대결.

민주당 후보 산토스는 라틴계, 해병대 출신으로 젋고 정력이 넘친다.

반면, 공화당 후보 비닉은 전통적인 보수당 표밭인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이지만, 낙태 문제에 있어서 개인의 선택을 중요시하는 입장이고(pro-choice) 게이 결혼 문제를 굳이 의제로 삼고 싶어하지 않는다.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 리오 맥게리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박빙의 승부에서 승리한 산토스는 공화당 후보였던 비닉을 국무장관(Secretary of State)으로 지명하여 입각시킨다.

West Wing이 바틀렛 행정부 1, 2기의 모습을 주로 다루면서 친민주당(pro-democratic) 선전물(propaganda)이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는데, 마무리는 결국 미국적 민주주의의 이상이라 할 ‘초당파적(bipartisan) 화합’으로 그려진다.

초심

언제나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앞에서 드린 약속들과 함께 또한 중요한 것이 이러한 약속들을 잘 지켜나가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처음[의 마음], 과 학생회 선거 출마를 결심할 때의 마음, 추천인 연서를 받으러 연희관을 분주히 다닐 때의 마음, 그 때의 마음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당선된 지금의 마음도 잊지 않겠습니다.

― 제43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회 당선 사례 (2006年 4月)

만물유전萬物流轉! 사람도 변하기 마련이다. 몸도 변하고, 마음도 변한다. 이 와중에 처음의 마음을 유지한다니, 새롭게 더 새롭게 계속 변화하고 또 변화해도 모자랄 판에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계속 새로워지기 위해서 노력하겠다.”,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나는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책상 옆에 선거 홍보지를 붙여놓고 매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내 입에서 나온 말, 내 손으로 써진 글을 지키기 위해서 매일 읽었다. 새로운 상황, 새로운 맥락에서 나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고심했다. 그래도 평가는 타인의 몫이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오늘 면접 합격 통보를 받고, 가장 먼저 ‘초심初心’이 떠올랐다. 지원서를 쓸 때의 자기-확신, 면접을 준비하던 때의 걱정, 면접에 들어가기 직전의 설렘, 면접에서 내가 힘주어 내뱉었던 말들,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의 기쁨, 이 모두를 잊지 않으련다. 2005년 이후 한국의 상황에 대해 정력적으로 공부하면서, 수단 역시 매끈하게 갈고 닦아야지. 이것이 나를 위한 기회가 아님을, 내가 남을 위해 쓰일 기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이 싼 값에 우유를 마실 수 있는 권리

West Wing에는 많은 명장면이 있지만, Season 1 막바지에 조쉬 라이먼이 바틀렛이 뉴잉글랜드 주지사이던 시절, 그의 연설을 회상하는 장면이 있다. 이 연설은 조쉬 라이먼이 나중에 부통령이 되는 호인즈의 밑에서 바틀렛의 참모진으로 옮기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낡고 어둡고 한산한 유세장에서, 바틀렛이 한 낙농업자의 질문을 받는다. “저는 당신이 하원 의원이던 시절에 세 번 투표했고, 주지사로 두 번 투표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하원에서 뉴잉글랜드 낙농계약에 반대하는 투표를 했죠. 전 그 투표에 피해를 입었습니다. 지금 여기서 당신의 해명을 듣고 싶네요.”

특유의 지긋한 표정으로 낙농업자를 응시하던 바틀렛은

“그 문제에서는 제가 당신을 속인 겁니다. 골탕을 먹인거죠. 당신 뿐만 아니라 많은 제 지지자들이 한 방 먹은겁니다. 오늘날 빈곤한 미국인들 중 가장 많은 수가 ‘어린이’가 되었습니다. 네, 저는 반대 투표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우유를 사먹기가 힘들어지길 바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때문에 화가 나서 절 원망한다면, 저는 전적으로 그것을 존중하겠습니다. 다만, 미합중국 대통령에게 뭔가 다른 것을 기대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투표하세요.”

리오의 부름으로 바틀렛을 보러왔던 조쉬 라이먼은 곧장 워싱턴으로 돌아가서 잘 나가는 로펌의 변호사인 샘 시본을 꼬드긴다. 아니, 단 한 마디의 말도 건네지 않는다. “조쉬, 네 얼굴만 봐도 알겠어. 그는 ‘진짜’였구나!” 조쉬는 (물론 리오에 대한 깊은 신뢰도 있었겠지만) 한 눈에 바틀렛의 진면목을 알아보았다. 샘은 그런 조쉬의 눈을 믿고 당장에 로펌을 때려치고 함께 바틀렛 캠프로 들어간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치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 이건 정말로 무책임한 말이다. ‘잘’ 모르겠다고? 그럼 ‘조금’은 알겠다는 말인가? 정치가 답을 줄 것이라 믿고 정치외교학 전공을 선택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제 발로 미궁 속에 들어왔구나’ 싶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진짜’를 만날 수 있을까?

유네스코 면접

작년에 외교통상부 건물에서 봤던 정부간 청소년교류 면접 마치고도 후기를 썼었다. 그 후기를 읽은 덕분에 당시의 면접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번 면접에 임하면서 mind control에 도움이 된 듯 하다. 역시 기록해야 기억하고, 기억해야 나아진다. 잊으면 잃게 된다.

이번 면접은 당락에 상관없이 좋은 경험이었다. 지난번 면접이 2:3에 정해진 질문을 순서대로 답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4:1에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방식이었다. 30분 정도 일찍 여유롭게 도착해서, 제출했던 서류를 다시 한 번 읽어보면서 입을 풀었다. 같이 면접 보러 온 대기자들과 담소도 나누었다.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다 하고 나와서 후련한 기분은 드는데, 후련한 기분 들려고 너무 거르지 않고 말한 것은 아닌가 싶다. 반성을 하자면 그렇다. 그리고 면접 보기 전에 영어 면접에 대한 스트레스로 설쳤던 것을 생각하면, 더 이상 영어 공부를 미루기 힘든 지점까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짐 하나 내려놓아서 홀가분하다.

내일 학회 세미나 준비, 월말 학회 워크샵 준비를 시작해야 하고.. 다음 학기 사업계획서 작성하면서, 짐 챙겨서 퇴사하면 8월도, 이번 여름방학도 끝이다.

『아로와 완전한 세계』 (김혜진 , 바람의 아이들, 2004)

불완전한 세계로 지탱되는 완전한 세계

청소년 소설이라 가볍게 생각한 것에 비해 심상찮은 책 두께에 놀랐고, 한 번 책을 집으면 쉽게 책을 놓기 어려울 정도의 흡입력에 또 한 번 놀랐다.

이야기는 주인공 ‘아로’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라는 책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아로’는 이 책에 달린 보라색 브로치를 통해 ‘불완전한 세계’에서 ‘완전한 세계’로 이동하고, ‘읽는이’로서 위기에 처한 ‘완전한 세계’를 구하는 여정에 오른다.

이런 액자식 구성은 벽장을 통해서 현실 세계와 판타지 세계를 넘나들던 『나니아 연대기』와 비슷하다. 긴 여정을 끝낸 뒤 막상 현실 세계에 돌아와도 아직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다는 설정 판타지 성장 소설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평범한 소녀에 불과한 ‘아로’이지만 판타지 세계에서는 ‘읽는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완전한 세계의 열 두 나라를 여행하는 동안 ‘아로’는 온갖 위기를 겪는다. 곤경에 처했을 때, 아로는 이렇게 묻기도 한다. “왜 하필 내가 읽는이일까?”

그렇지만, ‘내가 누구인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완전한 세계의 존재들이 ‘읽는이’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아로’는 이를 자각하여 ‘읽는이’로서 강한 사명감을 갖게 된다. ‘아로’는 더 이상 평범한 소녀가 아니라, 절망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판타지 세계의 구원자로 성장한다.

‘완전한 세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불완전한 세계’의 존재가 필요하다. ‘아로’와 같은 불완전한 세계의 ‘읽는이’가 주기적으로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를 읽어줘야 완전한 세계는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완전한 세계가 불완전한 세계의 존재로 지탱된다는 역설!

나는 자연히 이 역설을 체제 내적으로 해결하려는 별꽃나라 현인 ‘유하레’의 노력에 공감이 갔다. 비록 ‘유하레’는 권모술수를 부리는 암흑 보스로 그려졌지만 말이다. 완전한 세계에 사는 이들은 언제까지 읽는이가 오기 만을 기다려야 하나?

자유의 본질

자기 자신에게 규율을 가하고, 그 규율이 자기 삶에 의미 있는 규율이기 때문에, 기꺼이 그것에 따름으로써 보다 승화된 삶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유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남이 준 것으로 인해 자유의 영역이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오히려 자신에게 제약과 규율을 가하는 속에서 그것이 보다 더 의미 있고 높은 정신성으로 자신을 승화시킨다는 진리를 터득했어요. ― 리영희, […]

미려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미려는 괴로워> 이 프로그램은 ‘리얼리티 쇼’를 모방하고 있지만, 정작 리얼리티 쇼에 ‘리얼’이 빠져있다는 것은 보는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역시 조작논란에 시달려야했다. ‘리얼리티 쇼’는 ‘적당히 사실처럼 보이도록 짜고 치는 쇼’ 정도로 정의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정말로 ‘리얼’이라고 믿으면서 속는 시청자가 바보다. 그래도 이건 나 같은 다른 프로그램들에도 나타나는 일반적인 경향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가고 싶다. ‘리얼리티 쇼’라는 말 자체가 앞 뒤가 안 맞는 표현이다.

‘누구나 하고 싶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그래서 당신들이 나서서 해주겠다고?

내가 정말 이 프로그램에 불만인 것은 김미려가 가수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리겠다고 하는 이 프로그램이, 이 부분에서는 정말로 리얼하게, 김미려에게 지방흡입수술을 권했다는 것이다. 마치 이 수술이 가수가 되기 위해서는 넘어서야 할 고난의 언덕인 것처럼!

성형수술, 지방흡입수술이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 쯤 되고 있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변신에 목숨을 건 김미려가 열정의 시간을 통해 가수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리겠다는 이 프로그램에서, 김미려가 두려운 마음을 극복하고 수술에 임하는 것이 마치 열정이고 노력인양 그리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김미려의 다이어트를 담당하고 있는 작자는 “요즘 지방흡입시술은 예전처럼 무식한 방식이 아니라 필요한 부분만 하는 것이며, 마취법도 바뀌어서 몸에 큰 무리가 없다”는 식의 설명을 하면서 김미려를 설득한다.

나는 김미려가 이 설득에 넘어가는 전개를 보면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김미려와 자신을 동일시 하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을 상상하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건 나의 과대망상에 불과했으면 좋겠다. 시청자들은 단순히 흥미로 김미려가 가수가 되는 과정을 지켜볼 뿐이며, 이 사회의 대표적인 ‘빅 사이즈’였던 김미려가 시대의 대세에 순응해 ‘스몰 사이즈’로 ‘개조’되는 과정을 그저 지켜볼 뿐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연예인들 다 수술하는데, 왜 미려만 갖고 그래!” 그래, 안그래도 괴로울 김미려에게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무엇이 진정 김미려를 위한 길인가? “너까지 나서서 진정 김미려를 위할 필요 없어. 그냥 김미려 일은 김미려가 알아서 하라고 해. 그게 진짜 김미려를 위한 길이야.” 그래, 그 말도 맞다. 그래서 나는 더 할 말이 없다.

다만, 왜 김미려가 이 프로그램의 힘을 빌려서 지방흡입수술을 감행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지방흡입수술에 대한 이 광범위하고도 대중적인 홍보가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을 따름이다.

고향 3

할아버지 제사 때문에 고향집에 다녀왔다. 제사라고 해도 고인에 대한 기억을 갖고 모인다기 보다는 이렇게라도 모이지 않으면 가족들이 모일 일이 별로 없으니 그냥 뛰어넘기는 뭣하고 해서 지내는 것 같다. 나는 그게 나쁘다고 생각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여전히 ‘생고생’은 여자들이 도맡는다는 것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제사가 간소화되는 추세라서 일이 줄어서 다행이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만나면 반갑고 즐거운 일만 가득할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 역시 졸업 학기와 군대를 남겨놓은, 집안의 철없는 대표주자로서 쓴소리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제사를 핑계로 이렇게 많은 가족들이 한 군데 모인 것이 참으로 행복했다. 서울 생활이 길어지면서 오랜 정이 쌓인 관계, 피붙이에 대한 애착이 강해진 것 같다.

인천에 살고 있는 중학생 사촌을 위해 『아로와 완전한 세계』를 갖고가서 선물했다. 예와 달리 가족과 떨어져 혼자서 있으려 하고, 밥도 잘 먹지 않는 것이 걱정이 되지만 한참 예민할 나이임을 감안하니 그러려니 싶었다. 대구에 있는 중학생, 고등학생 남매 사촌을 위해서는 『만화 박정희』와 『만화 전두환』을 주었다. 비록 만화이지만,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잘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숙부가 얘네들 만화 많이 읽는다고 구박을 주는 모양인데, 나는 만화도 충분히 교육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가족이 돌봄, 나눔, 배움이 있는 그런 관계로 거듭나길 바란다. 그래서 가족 카페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고, 가족 문집 같은 것도 만들어 보려고 계획하고 있다. 자연적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가족이고 뭐고 귀찮고 성가신 그런 관계가 될 뿐이다.

정말 좋은 관계란 부담이 없는, 상대방이 흔쾌히 나눠가질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부담을 갖는 그런 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