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이틀 밤을 꼴딱 새우다 시피 해서 한 고비 넘겼다. 그렇다고 48시간을 모두 글 쓰는데 사용한 것은 아니고, 시동 걸고 가다 쉬고 가다 쉬고 기름도 넣고 윤활유도 좀 뿌리고 그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웜업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것 같다.

글의 퀄리티는… 글쎄, 솔직히 말해서 term paper 보다 못한 것 같다. 그래도 term paper는 한 학기 내내 수업 들으면서 고민한 거리들이 생기기 마련이니 그 고민 중에서 쓸만한 것을 골라 구체적인 연구를 진행하면 되기에.

이번에 내가 쓴 주제는 「탈냉전기 중국-ASEAN관계 분석과 전망」이었는데,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이었으면서 왜 그리 거창하게 쓰려고 폼 잡았는지 잘 모르겠다. 동남아시아 쪽 강의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아시아 지역협력 쪽도 마찬가지. 단순히 내가 관심이 있어서 이 쪽으로 쓰겠다고 했고, 눈 빠지게 리딩하면서 많이 배웠다.

느낀 점은 ‘역사 공부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근데 이게 단순히 서사를 암기하는 수준이 아니라 인류사를 꿰뚫는 통찰력을 기를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남은 여름방학과 다음 겨울방학은 수학 공부랑 역사책 읽기로 보내려고 한다.

일단 미완성 초고를 끝내고 나니, 이제야 세부적인 주제를 잡아서 논문 쓸 준비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막 기초 연구를 끝내고, ‘내 연구’라 부를 만한 것을 찾고 싶다는 느낌.

그나저나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영어 실력 = 연구 능력’인 것 같다. 특히 『Asian Survey』 같은 저널에서 발간한 글들도 찾아보긴 했지만, 읽는 속도가 더뎌서 도저히 리딩을 할 수가 없었다.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심리적으로 마음이 급하기도 했고 정신적으로 엄청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중국-ASEAN 관련 아티클을 모두 섭렵한 뒤에 내 관점을 잡아서 참신한 주제로 연구를 하자”던 허황된 꿈은 저 멀리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지도교수님이 참 편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했다. 몇 번 찾아뵙지는 못했지만, “어렵지? 쉬엄쉬엄해.”하시고, “원래 연구 주제를 구체적으로 잡는 것이 제일 어렵다.”며 해주신 조언들은 어쩌면 당연한 말들인데도 참 와닿았다. 현장에서 계속 연구를 진행하고, 정책적 함의를 찾는 분의 입에서 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말이다.

항상 ‘구체’를 들여다보자고 다짐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논문을 쓰면서 지금까지 나의 사유가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추상적이라는 씁쓸한 사실을 깨달았다.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지하철에서 들은 암연

버스 보다 지하철을 선호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난 겨울에 두 달간 신촌-삼성을 지하철로 반복했더니 이제는 지하철하면 넌더리가 난다. 요즘 서초에서 하고 있는 인턴십도 470 버스 한 번이면 연대앞-양재역을 50분 안에 뚫는다.

그래서 참 오랜만에 지하철 탔다. 인턴 끝나고 바로 과외를 가기도 하는데, 양재역-녹번역 구간이 3호선으로 33분 밖에 안 걸린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지하철을 타는 시각이 주로 오후 4시 언저리라 열차 안은 꽤 한산하다.

요즘 지하철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은 뭘까? 내가 느끼기로는 포크송 모음집, 추억의 팝 모음집이 최고 히트 상품인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은 다른 제품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스피커 하나 끌고 와서 열차 중간에서 몇 곡 들려주고 CD를 파는 식이다. 개인적으로는 지하철에서 책 읽다가 졸다가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오늘은 하루종일 머리가 무거웠다. 속이 메스껍기도 해서 강연 시간에는 정신 못차리고 엎드려서 잤다. 아침을 안 먹어서 그런건지, 전날 마신 술이 잘못된 건지, 잘 때 배를 까고 자서 그런건지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다. 양재에서 녹번으로 오는 지하철에서도 아픈 머리 때문에 억지로 잠을 청했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 충무로쯤 왔던가, 멀리서 노래 한 곡 들리던데 그 노래가 암연이었다.

암연

내겐 너무나 슬픈 이별을 말할때
그댄 아니 슬픈듯 웃음을 보이다
정작 내가 일어나 집으로 가려할때는
그땐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았어

울음을 참으려고 하늘만 보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내품에 안겨와
마주댄 그대 볼에 눈물이 느껴질때는
나도 참지 못하고 울어버렸어

사랑이란 것은 나에게 아픔만 주고
내 마음 속에는 멍울로 다가와
우리가 잡으려 하면 이미 먼 곳에
그땐 때가 너무 늦었다는데
차마 어서 가라는 그 말은 못하고
나도 뒤돌아서서 눈물만 흘리다
이젠 갔겠지하고 뒤를 돌아보면
아직도 그대는 그 자리에

노래가 끝나고, CD를 팔던 아저씨는 스피커를 챙겨서 다음 칸으로 넘어갔다. 다시 눈을 감은 나는 몇 번이고 노래를 반복해서 읊조렸다. 이 노래는 내게 그리움이고, 잡아채지 못한 아련한 행복이고 추억이고 그렇다.

행복했던 순간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행복했던 순간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가급적 그런 기억들은 액기스로 모아서 두고두고 기억해야 한다. 한 줄로 “오늘은 참 행복했다.” 정도라도 기록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가끔 쓸데없이 좌절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지탱하는 생명력의 원천을 잃지 말아야 한다.

잊는 것은 잃는 것이다.

용기

물살이 세찬 강을 건너기 전에, 뛰어 도약으로 넘기 힘들 정도로 높은 장애물을 넘기 전에, 밑이 까마득히 아찔한 높이에 걸친 그물다리를 건너기 전에. 우리는 그제서야 ‘용기’라는 두 글자를 가방에서 꺼내 한 알 입에 털어넣을 것이다.

인간이 만든 천국인 도시. 문명과 제도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줄이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인간은 법과 제도, 관습에 자신을 결박하고 더욱 자유로워졌다고 착각한다. 과연 이것이 착각일까?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회적 맥락을 일순간에 생략하고 다시 자연으로 회귀하는 것이 좀 더 자유로워지는 것일까? High risks, High returns. 우리는 시시콜콜한 불편함, 더 많은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가장 현명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 결박하고 있는 밧줄의 실체를 잊지 않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밧줄이 필요 이상으로 우리를 조이고 있지 않은지 늘 의심해야 한다. 인간은 곧잘 자신을 옭아맨 밧줄에 익숙해져서 지금 내가 밧줄에 묶여있는지 아닌지도 모른채 살아간다. 인간을 속박하는 기제가 갑자기 팽팽하게 조여지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진정 자유롭기 위해서 용기가 필요하다. 매트릭스에서 탈출하는 것이 방법일까? 그건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이다. 이런 무모함마저 미덕이 되는 사회이긴 하지만, 매트릭스 외부는 또 다른 매트릭스일 뿐이다. 바로 여기, 매트릭스 안에서 우리의 자유를 위한 싸움을 해야한다.

하종강, 『철들지 않는다는 것』을 읽은 하루

9시가 조금 넘었던가? 시린 이가 걱정이 되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운동하러 갔다. 운동하고 나면 찝찝한 기분이 풀릴 것 같기도 했다.

공(空)으로 생긴 자전거를 끌고 고개 하나 넘으면 있는 수영장으로 향했다. 연희동에서 홍제로 넘어가는 연희고개 쪽 도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는데, 알고보니 서부노련에서 가두시위를 하고 있었다. 행렬은 서대문구청을 향하고 있었는데 이미 전경들이 대오를 갖추고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구청 옆 자전거 보호소에 자전거를 세우고 전경들이 막고 있는 길을 뚫어서 ATM에서 돈을 뽑았다. 그리고 약 1시간 30분 정도 운동을 했다. 그새 상황이 종료되었는지 서대문구청 주위는 한산했다. 그 길로 자전거를 달려 동교동 쪽으로 해서 신촌역 근방에 있는 치과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

소위 ‘신경치료’라는 것을 받는데, 오늘만큼 아픈 적은 없었다. 정말 죽다 살아난 기분이다. 치료를 끝내고 드는 생각은 “이게 무슨 몸고생, 마음고생, 돈고생이냐… 이제 잇솔질 열심히 해야겠다.”였다. 철들고 나서 겪는 고통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선명하게 기억에 새겨지는듯 하다.

다시 자전거를 타는 것도 그렇다. 나는 자전거 타기에 대해서 알게 모르게 두려움이 있었는데, 자전거 타면서 심하게 타친 뒤로 이렇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철들고 나서 다시 자전거를 타게 되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알아가는 기분이 되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변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하종강씨를 만날 뻔한 적이 있었다. 그날 나는 홈에버 상암점 시위 현장에 갈까 하종강씨 강연회에 갈까 고민하고 있었다. 결국엔? 둘 다 못가고 방으로 돌아왔다. 아래쪽 어금니가 너무 아픈 나머지 치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서둘러 귀가한 것이다. 그러면서 “내 몸 하나 못 챙기면서 무슨 큰 일을 하겠나” 싶었다.

오늘 체화당에 앉아서 회의를 기다리며, 이 책을 읽었다. 사실 『역사의 언덕에서』 1권도 함께 붙들고 있었는데, 이 책만 다 읽었다. 산문집이라서 그런지 읽기도 편하고 잔잔한 감동도 있었다. 하종강씨의 글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나는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이 모두 순수하고, 올바르고, 정의롭고, 희생적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건 또 하나의 신화이고 편견이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청렴하고 결백할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그리고 그들이 타인의 고통을 감지하는데 조금 더 예민할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이 믿음을 하종강씨의 글을 통해서 다시 확인한 느낌이다.

법을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공부께나 한다는 애들은 어릴적 누구나 이런 생각 한 번은 해봤겠지. 그러나 난 좀 달랐는데, 난 정말로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팍팍한 법 공부가 나와 맞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 유감이다.

하종강씨의 글을 읽으면서, 나의 안해와 자식과는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지도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나친 욕심 내지 않고, 서로 위하면서 오손도손 가정을 꾸려나가는 꿈. 적게 가져도 행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런걸 좀 가져야겠다 싶었다.

에세이를 모아논 것이라 금방 읽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직접 현장에서 그의 강연을 들어보고 싶다. 꼭 그럴 기회가 있으리라.

친구와의 만남이 주는 행복감

여전히 새로운 만남을 이어가는 생활이지만, 이 와중에도 기존의 인연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 있다. 그들과 만나는 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만남에서 내가 뭔가를 줘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덕분일까?

W형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형이다. 형이 공부를 대하는 자세나 학문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배울 점이 많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나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도 좋다.

그러고보면 나는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 선배의 모습을 닮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후배들이 나를 만나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속시원히 근심 걱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선배가 되어 주고 싶다.

그런데 아끼는 후배를 만나서는 늘 내가 먼저 잔소리를 한다. 후배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닐텐데.. 선배랍시고, 내가 그렇게도 되지 말자고 다짐을 했던 꼰대 같은 선배의 전철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애정이 있어서 그런다고는 하지만.. 그저 후배의 얘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달래 줄 수 있다면 충분 할텐데.. 종종 후회를 한다. 때론 성가신 나를 계속 만나주는 후배의 성품이 부럽기도 하다.

오늘은 휴가 나온 M을 만났다. 아직 저녁을 안 먹었다기에 나도 저녁을 두 번 먹어버렸다. M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은 참 즐겁다. 신나서 얘기하는 녀석의 표정을 보는 것도 재밌고.. 그러면서 간간이 생각할 거리도 얻는다. 부디 다음 만남까지 M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길.

하루 아침에 될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 내가 하려는 일이 그렇게 될 수 있는 성격의 일도 아니고, 흔히 급히 이루어진 일은 급히 무너지기 마련이기도 하니까..

절름거리더라도 한 발 한 발 꾸준히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

떳떳하게 살고 싶다

양재에서 신촌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계속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히며 괴로워했다. 치아에 문제가 생기니까 고통이 머리까지 전달되어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

연대앞에 내리자마자 계좌이체해서 체크카드 계좌에 돈 채워넣은 다음 치과를 찾았다. 대학약국 옆 디아트에 가려고 했는데 무슨 세미나 관계로 임시휴업. 결국 신촌역까지 가서 고운미소 치과에 갔는데 병원 완전 좋더라. 그래서 그런지 앞으로 돈 엄청 깨질 것 같고. 차마 돈 아까워서 치료 더 못 받겠어요 할 수 없어서 잔말 말고 받고 나왔다. 치료도 엄청 아팠다. 물론 안 아프게 하려고 노력했겠지만.

마취가 풀리니 조금 살 것 같다. 덕분에 오후 일정이었던 하종강 강연회나 홈에버 상암점 방문은 뒤로 미뤘다. 그것 때문에 아침부터 카메라도 들고 다녔는데. 쩝. 아마 오늘 같이 간다고 한 사람이 있었다면, 아픔을 무릅쓰고라도 갔겠지만. 혼자였기 때문에 동범형한테 문자 하나 보내고 그대로 기숙사로 돌아와서 쉬었다.

딱 드는 생각은 몸 아프면 하고 싶은 일도 제대로 못하고, 살고 싶은대로도 못 살며, 괜히 비참해지고 비굴해지고 참 꼴사나워진다는 것이다. 나와의 약속, 남과의 약속 꼭 지키며 살기로 마음 먹었는데. 오후 일정을 그대로 포기하니 허탈한 마음과 요상한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소비되는 방황

요즘 대학생들 다들 바쁘다. 바쁜건 좋은데, 헛 바쁨 혹은 하릴없는 바쁨일까 내심 걱정이 된다. 내가 바로 그랬기 때문이다.

내가 바쁘게 살았던 것, 너무 바빠서 내 사람 못 챙기고 제대로 정리도 못하면서 다음 또 그 다음으로 옮겨가면서 살았던 것은… 실은 너무나도 불안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시대를 살면서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좀 문제가 있는거 아닌가?

가진 것도 없고, 그렇다고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차라리 그런 것은 바라지도 않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잘 하는지가 제일 궁금했고 행여나 이걸 내가 알지 못할까봐 엄청 불안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 이 불안이 더 컸다. 내 인생 우째 살아야 할꼬.. 혹시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바쁘게 살긴 살았는데, 그게 정말 ‘내 바쁨’이었는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게 정말 ‘나’를 위해서 바쁜 것이었는지, ‘내 일’ 때문에 바쁜 것이었는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불안을 떨치기 위해서, 바빠지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벌써 7학기를 했고, 아직 내 적성이 뭔지 내 갈 길이 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렇게 불안하지는 않다.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겠나 싶은데 솔직한 내 심정이다. 내가 뭘 잘 하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분야는 얼추 찾았기 때문이다..

나는 후배들이 괜히 바쁘고 싶어서, 좀 더 포장을 잘 하기 위해서, 사회에 좋은 상품으로 출고 되기 위해서.. 별로 마음에도 없고, 뭐 때문에 모이는 지도 모르는 단체에서 활동 같은거 안 했음 좋겠다.. 대표적으로 몇 군데 있지만, 언급하지는 않으련다.. 거기엔 자기 비전 갖고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도 있을테니.. 괜히 기분 상하겠지..

사람 만나는게 좋다고? 둘러봐라. 사람 없는데 있나.. 다 사람 있다. 어떤 분야, 어떤 필드이건 간에 있는 거라곤 사람 뿐이다. 그러니, 사람 만나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고 뜻도 없는 그런 잡스런 활동하면서 시간 소비하지 않았음 좋겠다..

가장 좋은 방황은 몸으로 부딪히는 것이다. 지금 자신이 가진 뜻을 실험할 기회를 찾는 것이다. 무턱대고, 영화처럼 소설처럼 방황하다가 구름 낀 하늘에서 한 줄기 섬광이 자신의 이마에 직사될 것이라는 로만적 상상은 버리는게 좋다. 진짜 방황하고 싶다면, 지금 자신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물고 늘어지길 바란다. 남들 보기에 그게 아주 사소한 것이더라도.. 혹 연대생이 저런 일하고 있다는 소리 듣기가 쪽팔리는 일이더라도.. 그냥 한 번 해보길 바란다. 그게 진짜 방황이다.

대학 4년 동안은, 그렇게 방황하며 살아도 괜찮다. 혹시 자기 입에 풀칠 할 것이 걱정되면 나한테 오면 된다. 숟가락 하나랑 베개 하나 더 놓는 것도 못해줄까? 대신, 남들 보기에 괜찮은 삶 말고 자신이 진짜로 괜찮다 싶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게 조건이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흔히 지나간 과거를 반성하기 위해, 과거의 나는 몰라서 그랬다는 핑계를 대기 위해 다음과 같은 문학적 냄새 풍기는 표현을 쓴다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런데 정녕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인가?

어찌보면 참으로 순수하고 때묻지 않아서, 그래서 더더욱 인간관계를 서툴게 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그런 모습이 관계의 상대에게는 화를 돋우는…

지금은 후회를 한다. 그냥저냥 속 편하게 살 것을… 왜 그리 내 성격, 내 고집, 내 주장 내세웠나.. 왜 나는 관계에서 성실하지 못했는가… 왜 맺고 끊기를 확실히 하지 않았던가… 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래도 똑같이 실수를 하고 후회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지금 알고 있는 것이라도 행하기 위해” 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