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사회로 가는 한국 : 제16회 연세 지역학 학술회 참가기

아직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담론이 여물기 위해서는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분명히 이것은 ‘시간’ 문제이다. 오늘날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소수인종의 비율은 약 3% 정도로 1960년대 후반의 유럽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가속화 되고 있는 지구화의 흐름과 점차 국경이 희미해져가는 추세에서 한국이 예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다문화주의가 제기된 과정: ‘동등한 대우’에서 ‘차이의 인정’으로

김남국 교수는 유럽에서 다문화주의가 제기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첫째, 사회적 소수의 숫자가 일정수준 이상이 되면 사회적 소수는 다수와 동등한 사회경제적 대우를 요구하게 된다. 둘째, 경제적 인정을 넘어선 문화적 생존을 주장하게 된다. 다문화사회의 갈등이 본격화 되는 것은 두번째 단계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한 사회의 지배적 문화를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문화 차이를 공공영역에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첫째 단계는 보편적인 인권 차원에서 이해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다른 인종, 다른 민족, 다른 국적, 다른 문화적 배경의 인간이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인 사회경제적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인정은 근대 국가에서는 그렇게 어려운 수준이 아니다. 근대 국가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구성원 간의 무차별성과 동질성에 기반한 국민 의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이가 존재한다면 제도적으로 이 차이를 경감시켜야 하는 것이다.

둘째 단계에서 사회적 소수가 요구하는 문화적 생존권이 쉽게 인정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문화적 생존권의 인정이 기존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던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불편함은 공공영역에서 다문화적 생존 권리를 지원해주는데서 오는 매우 구체적인 것이다.

사회적 소수: 소수 인종과 소수 민족

사회적 소수도 소수 인종ethnic minority과 소수 민족national minority으로 나눌 수 있다. 소수 인종은 자발적 선택에 의해 이민을 택한 사람들로 사회경제적 인정은 원하지만, 정치적인 분리나 자치를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반면, 소수 민족은 역사 속에서 다수 민족 사회에 병합, 정복 당한 경우로 소수 인종에 비해 보다 전투적으로 자치나 문화 보존의 권리를 주장한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소수 인종은 다문화사회인 미국 내의 한인 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소수 민족은 영국의 경우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등이 될 것이다.

유럽의 대응: 관용, 비차별의 법제화, 다문화주의

이러한 다문화의 도전에 직면해 유럽의 대응은 크게 세 단계의 변화양상을 가진다고 한다. 첫째가 관용이고, 둘째가 비차별의 법제화, 셋째가 다문화주의이다. 관용은 매우 필수적인 덕목이지만, 다수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점에서 언제나 자의적으로 멈출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비차별의 법제화는 다수가 소수를 차별하는 표현, 접근 방해, 물리적 폭력 등을 가중 처벌하는 것이다. 다문화주의는 정책적으로 문화적 권리를 지원하는 단계이다.

한국은 위의 세 단계 중에서 아직 관용의 단계에 머무르고 있지만, 이주노동자 문제나 베트남 결혼이주자 문제는 더이상 한국 사회가 높은 동질성을 고집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사회적 양극화 해소와 절대빈곤층 해결은 여전히 시급한 사회경제적 현안이긴 하지만, ‘다문화주의의 대두는 한국 사회의 존엄과 민주주의를 시험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프랑스의 공화주의와 영국의 심의다문화주의: ‘원칙’과 ‘합의’라는 두 방법

김남국 교수는 프랑스의 공화주의와 영국의 심의다문화주의라는 두 나라의 고유한 원칙을 살펴봄으로써 한국 사회에의 적용 가능성 여부를 명확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의 공화주의는 홍세화 씨가 늘상 강조하는 그 똘레랑스를 바탕으로 기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비차별의 제도화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영국의 심의다문화주의는 관용은 물론 비차별의 제도화와 문화적 권리를 행사하는데까지 나아가 있다. 프랑스의 공화주의는 분명한 원칙으로 논리적 명쾌함을 보여주지만, 문화적 생존권 보장이 미약하다. 영국의 심의다문화주의는 공공영역에서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이지만 자의적인 판단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다수제 민주주의와 합의제 민주주의: ‘지루한 일상’이 될 정치

한국 사회의 원칙은 다수제 민주주의majoritarian democracy라 할 수 있다. 다수결은 민주적 의사결정의 기본이다. 그러나 다수결이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소수 의견의 존중과 소수의 권리 보호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곧 ‘사회적 연대감’이 사회에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약, 다수결에서 소수가 구조적 소수로서 반복되는 게임에서 계속 소수가 된다면 단순 다수제simple majoritary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합의제 민주주의consensual democracy의 대표적 형태인 협의제 민주주의consociational democracy네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 내 다양한 하부 집단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둘째, 이렇게 인정된 집단의 대표들이 대연정을 통해 정부를 구성하는 것, 셋째 이 대연정의 구성원칙으로 비례성을 존중하는 것, 넷째가 각각의 집단이 상호거부권을 갖는 것이다.

김남국 교수는 ‘한국 사회가 다수제 민주주의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로 이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각 집단이 상호거부권을 가지게 되면 정치가 항상 정체되어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김남국 교수는 ‘유럽의 경험에 비춰보았을 때, 각 집단에 상호거부권이 주어지더라도 학습효과를 통해 거부권을 행사하기 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정국을 운영해나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문화사회에서는 한 사회에 지배적인 거대담론이 존재할 수 없으며, 정치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의 합의’를 도출해내는 지루한 과정이 될 것이라고 한다.

정리: 한국 사회의 다문화와 심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 공론장

앞서 얘기했듯, 현재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갈등을 걱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로 생각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다문화에 대한 대응이 주는 교훈은 단순히 사회적 소수의 문화적 생존권 인정이 하나의 사회 규범이 된다는 것에 있지 않다. 다문화적 요구에 대한 대응이 주는 교훈은 다문화사회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기본적인 원칙이 ‘대화와 타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원칙이 깨어지고, 분열된 사회의 갈등이 그대로 거리에서 표면화된다면 사회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소수 민족에 의한 갈등보다 소수 인종에 의한 갈등이 예상되므로, 극단적인 사회 불안은 예외적인 상황이라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와 이들의 2세 그리고 베트남 결혼이주자와 이들의 2세의 비율이 계속 늘어나고 있고 탈북 이주민의 수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다문화 정책이 마련될 필요는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단순 다수제에 의한 정치 게임은 이러한 소수 구성원들을 배제시키고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권리를 동등하게 부여하는 정도에서 끝날 염려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단 한 사람의 정치적 의견이라도 존중하며, 가능한 많은 사람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합의제 민주주의는 유의미한 이행으로 보인다.

갈등은 예상보다 더욱 심각할 지도 모른다. 어떤 소수자 집단의 지배적 문화가 소수자 집단 내부의 소수 문화를 억압하는 경우(이를테면, 특정 종교의 여성 차별)도 있을 수 있고, 소수자 집단의 대표가 해당 소수자 집단을 충실히 대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소수 집단의 문화적 권리가 기존 사회의 지배적 문화적 가치와 전면적으로 배치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해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방법은 대화와 타협 뿐인 것이다. 그대화와 타결이라는 원칙의 반복 게임을 통해 대화 관습habit of dialogue을 학습해야 한다.

이런 협의제 민주주의, 심의다문화주의의에서 대화 관습을 학습하고, 대화와 타협의 원칙을 배양하는 시민교육의 장소로서 강조되는 것이 바로 공론장이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공론장은 생활세계와 정치를 연결해주는 중간 역(域)이다. 이제 실천적 물음이 제기된다. 한국 사회에서 공론장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또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글쓴이

Sehee Park

Advocate for Innovators. Law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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