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가 성공할 수 있는 두 가지 비결

한 가족과 세 명의 젊은이가 경북 청송군에서 한집 살림을 시작하기로 했을 때의 일이었다.작은 크기의 공동체가 시작되는 셈이었다.

그 일을 곁에서 도왔던, 충북 괴산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김윤칠이 그 소식을 장일순에게 전하며 어떻게 하면 그들이 뜻을 이뤄가며 화목하게 잘 살 수 있을지를 물었다.

“나 같은 건달이 그런 걸 어떻게 알겠어.”

장일순은 웃으며 이렇게 운을 떼고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다음 두 가지는 얘기를 할 수 있겠지. 여럿이 모인다면 깃발이 있을 것 아냐, 어떻게 가겠다는?

그 깃발 아래 모였으니 깃발을 중심으로 해야 할 테지만 깃발을 너무 앞세울 때는 함께 가는 사람 가운데 늦게 일어난다거나 일을 게으르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무라기 쉽지. 미워하는 마음이 일기 쉽다는 거야. 그럴 때는 말이지, 따뜻한 마음을 갖고 어깨동무를 해서 일으켜세워 같이 가는 마음이 중요해.

다른 하나는 그렇게 하다 보면 일이 이뤄질 것 아냐? 크든 작든 공이 생긴단 말이야. 그때 그건 내가 잘해서 그렇게 됐다 하지 말고, 같이 가는 사람들 공이다, 이렇게 공을 남에게 넘기라는 거지.

이 두 가지를 지키면 되지 않을까 싶네.”

― 최성현, 『좁쌀 한 알』(2004), p.244.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즐겁게 해내기

학부4년이라는 시간 아니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몇가지 있을 것입니다. 그 때는 그것만 찾아해도 충분히 의미있는 시간이겠지요.

― 인남식 교수님의 답장

읽으면 읽을수록 그 의미가 와닿는다. 최근의 나는 쓸데없이 먼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래를 볼 일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나를 봐야 할 일이 아닐까?

나의 꿈을 찾아서 발을 옮기는 것과 그저 미래의 내 모습이 어떨지를 예측하고 걱정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미래를 1부터 100까지 설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소모적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즐겁게 해낸다. 그렇게만 살아도 후회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계획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가

수없이 많은 계획을 세우며 살아왔다. 어떤 때는 “꼭 지켜야지!”했었고, 어떤 때는 “반만 지켜도 성공이겠다.”싶은 때도 있었다.

계획은 기간과 목표를 두고 세웠고, 큰 그림(추상)에서 세밀한 스케치(구체)로 나아가는 방법을 선호했다. 그렇게하면, 하루에 내가 해치워야 할 분량이 나온다.

심리적인 효과도 있다. 아무리 원대한 목표라도 그렇게 하루 하루 차근히 나아가면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목표를 달성하는데 별 도움이 안 되는 조급함과 초조함이 사라진다.

가장 이상적인 계획의 모습은 하루의 몫을 수행하는데 큰 무리가 없어 ‘잘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합리적이고 실행가능한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로, 계획을 세우고 수행할 ‘자신’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이것은 나약한 자신과 타협하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이 tough하게 계획을 수행한 다음 날에도 굴하지 않고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type인지, 아니면 적당히 쉬어줘야 생산성이 높아지는 type인지를 알아야 한다.

둘째로, 목표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도 어렵지만 목표에 대해서 아는 것은 더욱 어렵다. 목표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반복 게임을 통한 경험으로 가능하다. 경험이 없다면 선험자의 기록(책, 조언, 상담)을 참고하는 방법이 가장 좋다.

마지막으로는 계획을 계속 옆에 끼고 살면서 잘 지켜지고 있는지, 수정될 부분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만약, 계획을 세워놓고도 평가하지 않는다면 계획은 아무런 소용이 없고 세우는 순간의 ‘다짐’에 불과하게 된다.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획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 평가를 통해서 ‘자신’에 대해서, ‘목표’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Be Competitive

JYP가 얘기했다. “가수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능 못지 않게 ‘자기관리’가 중요하다”고 말이다.

이 방송을 본 경제학과 조하현 교수도 얘기했다. “정기적으로 오디션을 봐서 새로운 연습생을 충원하고, 매주 시험을 통해서 계속 남아있어도 되는 사람과 떠나야 할 사람을 나눈다. 가수가 되고자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이다. 반면, 지금 너희들은 지나치게 안일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곤, “Be Competitive. 경쟁적이 되어라. 끊임없이 자신을 시험에 들게해라. 자격증 시험, 영어 시험 등에 응시해라. 자신의 노동생산성을 높여라.”고 주문했다. 이는, “full-time student라면 하루에 8시간은 공부해야 맞는 것이 아니냐?”는 그의 반문과 함께 가슴에 꽂혔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나?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말자

중간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기간임에도 불구, 밤늦게까지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느라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전을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이 때문에 후배가 모친상을 당했는데도 가야되는지 말아야되는지 고민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하겠다. 힘든 일을 당한 후배의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해서 찾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이런 문제를 두고 고민을 하다니, 참으로 부끄럽다.

사람들과의 만남 역시 중요하고 소중하다. 그렇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적절히 자제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술도 자제하고, 모임에서도 지나친 언사와 과장된 몸짓은 삼가고…. (회장을 하던 때, ‘분위기를 책임지기 위해’ 하던 행동들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

일이 있다고 아예 자리를 피하는 것도, (단순히 친목 모임에서라면) 가능하지 않는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라는 명목으로 혼자 지레 겁먹지 말자. 내가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으면, 관계는 자연히 잘 유지되기 마련이다.

‘좋은 사람’이라는 허울

있지도 않은 허상의 모습을 갈망하며,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 할 필요없다.

그것은 애시당초 허황된 꿈이며,
설사 그런 평가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유롭게 맺고 끊자.
억지로 엮지도 말고, 얽매이지도 말자.

나의 길을 걷고,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반갑게 대하자.
살갑게 대하고, 따스하게 대하자.
나를 넘어서는 좋은 사람이 되려는 억지 노력은 하지말자.

오늘의 말씀

“컵에 물을 받는다고 생각해봐. 물을 졸졸 흘리면 잘 담을 수 있지.
근데 갑자기 수도꼭지를 콱 열어서 물을 담으면?
담기기는 커녕, 사방으로 다 튀어나간다고….”

― 시간에 조하현 교수, 꾸준한 공부의 효과를 강조하며.

“귀납적으로 접근하려면 끝이 없다.
연역적으로 접근해라.
뇌수를 쳐라!
신촌저널? 일단, 저널 내는 것에서 시작해라.
민회? 회의부터 시작해라.”

― 이신행 선생님, 모둠 일감 발표 시간에 학생들의 발표에 논평을 덧붙이시며.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이 좀 흘러야 그 말의 의미가 깊게 온몸으로 우러나는 말들이 있다.

김명섭 교수님의 강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루는 교수님께서 “나 대학 다닐때,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했었다.”면서,

1학년 때는 자기가 뭘 모르는지 모르고, 
2학년 때는 자기가 뭘 아는지 모르고, 
3학년 때는 자기가 뭘 모르는지 알고, 
4학년 때는 자기가 뭘 아는지 알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저 얘기가 단순히 ‘모름’에 대한 ‘앎’과 ‘모름’ 그리고 ‘앎’에 대한 ‘앎’과 ‘모름’의 경우를 모두 나열한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4학년이 된 지금으로선 저 얘기만큼이나 와닿는 것이 또 없다.

이제 나는 내가 아는 것이 무엇인지 정리할 시점에 와있다. 내가 아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배우고 공부한 것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그것을 토대로 나의 학적 세계, 학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내가 무엇을 아는지도 제대로 모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