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으로 본 한국역사』 (함석헌, 한길사, 2003)

처음 샀을 때는 고유의 문체가 그리도 거슬려서 읽기가 싫더니 지금은 몸과 마음이 쉬고 싶을 때마다 찾게 된다. 함형우가 장일순 선생의 강연록을 모은 『나락 한알 속의 우주』를 두고 ‘보약 같은 책’이라고 했던가? 나 역시 그에 동의하고, 이 책에도 감히 그런 표현을 붙이고 싶다.

도대체 이 역사책을 어찌 읽어야 할까? 함석헌 선생은 분명히 ‘역사란 적극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리고 씨알(민족, 민중으로 번역될 수 있을까?)이 부침하는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물이 들어차서 민족의 기상이 상승하는 시기와 썰물처럼 민중의 혼이 빠져나가는 그런 시기를 나누고 있다. 도저히 ‘과학’으론 설명되지 않는 그런 서술이다. 민족혼의 부침(浮沈)은 무엇을 지표로 알 수 있단 말인가? 함석헌 선생에게는 몇 가지 대당(對當)이 있긴 한 것 같다. 순서없이 생각나는대로 정리하면,

  1. 민족, 민중 고유의 것  vs.  사대주의, 유교정신
  2. 북벌, 만주지향, 호연지기  vs.  보수, 지나친 문편(文偏)
  3. 이상주의(義)  vs.  현실주의(利)

앞의 것이 좀 더 본질적이고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바이며 고난의 역사를 걸어온 주체라 할 수 있다. 뒤엣 것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나 앞엣 것이 제대로 나아갈 수 없도록 막아온 장애물이고 역사의 걸림돌이다. 함석헌 선생은 이 역시 ‘역사’의 일부로 본다. 고난의 역사를 위해 필연적으로 등장했던 ‘시험’으로 본다. 버리고 싶고, 없었으면 싶은 역사이지만 이 역시 하나의 등장인물로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참으로 대담한 해석이다. 이건 오히려 역사라기 보다는 하나의 신앙에 가깝다.

고작 이 책 하나를 읽은 내가 감히 함석헌 선생의 사상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선 선생의 생애를 면밀히 살펴 볼 필요가 있겠고, 선생이 쓴 다른 글들도 찬찬히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예전에도 『풀뿌리 정치의 사회적 정당성』을 읽지 않고, 이신행 선생님의 민회 운동을 부르주아 운동 쯤으로 여겨버리지 않았던가? 이 책을 쓸 당시의 함석헌 선생의 처지나 시대적 배경,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읽는다면 과도한 민족주의로 수용될 여지가 클 것이라는 염려는 한다.

  • 사람의 살림도 앞으로 발전, 발달하고 위로 올라가려면 우선 자리잡고 서서 없음 속에서 빨아올려 있음을 만들어내는 뿌리가 있어야  한다. (…) 뿌리가 뭐냐? 생각함이다. 어디다 박으란 말이냐? 사실(事實)의 대지에다 박으란 말이다. (pp.29-30)
  • 별을 바라는 자만이 산에 올라갈 수 있고, 구름을 따라가야만 바다를 건널 수 있다. 발부리 앞만 보고 자즘자즘 하는 놈은 아무것도 못하고 역사의 지층 속에 화석이 될 뿐이다. (p.190)
  • 사람이 가슴속에 한 조각 이상을 품고, 거기 가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을 때까지는 산 사람이고, 그 이상이 한 번 죽어놓으면 살았어도 송장이다. (p.211)
  • 정말 민심을 하나로 하는 것은 어떤 위대한 국민적 이상을 주는 일이다. 사람은 의기에 느끼는 물건이라, 배부른 민중은 말을 아니 들어도 위대를 본 민중은 죽으면서도 나선다. 그러므로 국민적 이상, 민족적 사명, 세계사적 정신은 중요하다는 것이다. (p.212)
  • 쓰다가 말고 붓을 놓고 눈물을 닦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 눈물을 닦으면서도 그래도 또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 써놓고 나면 찢어버리고 싶어 못 견디는 이 역사, 찢었다가 그래도 또 모아대고 쓰지 않으면 아니 되는 이 역사, 이것이 역사냐? 나라냐? 그렇다. 네 나라며 내 나라요, 네 역사며 내 역사니라. (p.218)
  • 역사의 흐름에 맑은 물, 흐린 물 따로 없다. 역사의 음악에 높은 악기, 낮은 악기의 구별이 없다. 있는 것은 다만, 다만 오직 하나, “살아라! 뜻을 드러내라!” 하는 절대 명령이 있을 뿐이니라. (p.219)

자기 객관화

내가 나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니, 마음이 훨씬 편해진다. 그리고 남들이 나보다 뛰어나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나는 여전히 호승심을 갖고 있으며, 경쟁에서 이기고 더욱 강인해지길 바란다.

나는 이 마음이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하고, 정신적 스트레스로 괴로워하지만 않는다면, 즉 적절히 조절된다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후회할 선택

‘이게 지금 잘하는 선택인지, 미래에 후회하지는 않을지….’

그러나, 지금은 마음이 편하다. 어떤 선택이건 일단 고르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후회는 ‘가능태’로, 즉 노력하면 후회할 여지를 좁힐 수 있다. 노력해도 후회할 수 밖에 없다면, 그건 결과론적으로 옳은 선택이 아니었거나 또는 노력이 부족했거나.

나는 내가 했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했고, 자칫 선택 자체를 후회하려고 했으며 그런 선택을 내린 자신을 혐오하려고 했었다. 그러니까 과거의 실수를 또다시 반복하고 있는 나 자신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인간… 그게 지금의 내 모습 같았다.

맞다. 나는 후회하고 번민에 휩싸일 선택을 했던 것이며, 그것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은밀하고도 추악한 내 모습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것에 동정하지는 않으려 한다.

다시, 선택을 했다. 후회할 선택을 했다. 후회해도 좋다. 아니, 나의 노력으로 후회하지 않도록 만들 것이다. 최선을 다하자. 지금으로선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스스로 ‘자기희생’적이라 생각하며 자처했던 억지스런 행동들이 끝끝내 그 친구의 용기를 꾹 다물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가족 1, 2, 3

가족 1

버르장머리 없던 어린 시절, 내색은 안 했지만 몇 번이고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힘들 때도 나와 누나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언제나 나와 누나 덕에 행복했고, 행복하다고…. 나와 누나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절대적 신뢰는 흔들리는 나를 붙잡아 주는 끈이 되었다.  (2006. 4. 12.)

가족 2

기나긴 폭풍우를 피해 방주에 탔다.
신께서 말했다.
「대충 4, 5명이 한 조가 되거라.」
「여기는 이 4명이 한 조다.」
억지로 묶인 사람들이므로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해하려고는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약간은 행복해질 것이다.

― 도다 세이지, 「가족」, 『몇 번이라도 좋다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 중.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 : 돌봄과 배움의 공동체』를 읽는데, 위 만화의 내용이 계속 떠올랐다. 억지로 묶인 사람들, 그게 바로 가족이다. 그래서 굳이 없인 못 죽네 사랑하고 그럴 필욘 없다. 다만, 서로 조금씩만 더 이해한다면…. (2006. 12. 25.)

가족 3

가진 것 없고, 보잘 것 없는, 작고 나약한 존재로 태어났지만 교육에 열성적이었던,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던, 검소한 생활방식과 자신과의 약속에 철저했던, 가족을 최우선으로 돌봤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것은 내겐 가장 큰 행운이었다. (2007. 3. 17.)

헌혈 그리고 기억

여섯번째 헌혈.

2005년을 마지막으로 약 2년 만이었다. 2006년 한 해는 도저히 헌혈을 할 수가 없었다. 잠을 충분히 잔 적도 며칠 안 되었고, 하루 걸러 술을 마셨기 때문. 올해는 꼬박꼬박 해야지. 그리고 헌혈증은 기부해야지.

오늘 헌혈을 하게 된 것은 사실 크리스피크림 앞을 지나다가, 늘 나에게 헌혈을 권유하셨던 아주머님에게 ‘꽉’ 붙들렸기 때문. 딱히 안 할 이유도 없고 시간도 있던 차라 그 길로 헌혈을 했다. 침대에 누워서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잠시 눈을 붙였는데, 그새 머릿 속의 기억이 나를 1년 전 중앙도서관 앞으로 보냈다.

“기억에는 ‘시간’도 소용이 없구나.” 나는 그저 웃음으로 체념하였다. 웃음으로 체념하였다. 그리고 말없이 까딱까딱 거리고 있는 헌혈팩을 바라보았다.

불안 3

요즘 같은 시대에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는 굉장한 낙천주의자거나 지독한 불감증이 있는 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모두가 부러워 할 조건을 갖춘 것임에 틀림없다.

불쑥 불쑥 불안함과 조급함이 턱을 쳐올 때, 묵묵히 조근조근 한 자 한 자 求道의 마음으로 써내려가며 나를 달랜다.

글로 나를 달랜다. 나의 마음을 다스린다.

다시 출발선 위에서

다시금 출발선에서 웅크리고 있는 느낌.

‘어라, 아직 난 준비가 안 되었는데….’
어느새 ready, set, 방아쇠는 당겨지고.
반사적으로 튀어나간 뒤, 그저 지기 싫다는 일념으로 달렸지만.
그 달림에서 무엇을 배웠고, 또 잃었는지 성찰할 기회도 빼앗긴 채.

어느새 여긴 다시 출발선이고,
나는 또다시 준비되길 강요받고 있다.
되돌릴 수도 없고 빨리 감을 수도 없으니 그저 즐길 수 밖에.

놓치는 삶

EBS 文化史 시리즈 을 즐겨봤었다.

극은 주로 김승옥과 김지하, 김중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이 셋 외에도 김지하에게 영향을 준 장일순 그리고 김승옥과 함께 동인지 활동을 했던 김현 등 주변 인물들의 등장도 재미를 더했다.

요즘들어 자주 생각나는 부분은 조동일이 캠퍼스를 거닐며 ‘인사’를 하는 장면이었다. 민족문화에 대한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조동일은 인사하는 시간도 아까워 오른손 검지를 들며 ‘손가락 인사’를 했다고 한다.

해설자였던 정보석은 이를 두고 ‘그렇게 바쁘게 살아왔던 만큼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지만, 또 그만큼 많은 것을 놓치며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하는 물음을 던졌다. 그것은 비단 조동일 개인의 삶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급속한 성장을 위해 달려왔던 한국 근대사에 대한 물음이기도 했다.

3월 초, 아끼는 친구의 생일이었지만 가까스로 TOEFL을 끝내고 개강 준비와 내 생활에 바빠서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소중한 친구를 챙겨주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약간의 자괴와 함께 조동일의 ‘그’ 손가락 인사를 생각한다. 골몰하는 표정으로 바쁘게 캠퍼스를 거닐던 그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