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이라도 좋다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 (도다 세이지, 2006)

어제 기숙사에 도착해서, 다시 한 번 읽었다. 에피소드 별로 몇 번 더 읽기도 했다. 시험기간 내내 기다렸는데 아마 시험기간 도중에 배송되었더라면 시험준비를 등한시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작가는 그림체가 유려한 것은 아니지만, 인물의 감정표현에 능숙하다. 그리고 간결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수준급이다. 그 정점에「인생」이라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상한 꿈을 꾸었다. 「이것이 당신의 인생입니다.」 “…그냥 양파 같은데요.” 「껍질 한 겹이 … 『몇 번이라도 좋다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 (도다 세이지, 2006) 계속 읽기

시험

시험기간이 ‘심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결과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결과야 아무래도 상관없다면, 이렇게 원없이 읽고/쓰고/외우고/정리할 수 있는 시간들이 괴롭게 다가올리 없다. 시험에 앞서 결과를 걱정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시험 문제라는 것들이 ‘대체로’ 평소 수업 논의에의 참여와는 무관하게 출제되기 때문이다. ‘수업은 수업이고, 시험은 시험’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결국 ‘평소에 어떻게 살았느냐’ … 시험 계속 읽기

바쁨

야망으로 가득찬 젊은이에게 바쁨은 권장사항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쁘다.”는 말에 “너도 알다시피 바쁘지 않은 것보다 낫다.”는 답을 해주는 친구가 늘어간다는 것은 조금은 슬픈 일이고 그 답에 “물론, 그렇지만…” 대꾸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조금은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체질적으로 ‘바쁨’을 즐기지만, 그 바쁨 때문에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쏟을 수 없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시험기간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을 시험 공부에 투자했지만 정직한 시험 문제 덕분에 답안을 쓸 수는 있었다. 종종 변별력(?)을 위한답시고 치사하게 chronology 따위를 외우게 하는 과목들이 있는데 비하면 매우 모범적이라 하겠다. 결과야 어찌되었건, 일단은 한 과목 해치운 것에 만족한다. 결과야 어찌되었건. 수요일 시험에 도움이 될까 싶어 Kymlicka의 책을 읽고 있는데, 의외로 재밌다. 또 매우 잘 정리되어있다. 준비하는데 부담이 … 시험기간 계속 읽기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

일을 할래도, 뭘 할래도 결국에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인연을 소중히 하자. 모든 사람과 친밀감을 쌓으려는 욕심을 버리자. 나의 진심이 이끄는 ‘내 사람’들을 더욱 각별히 챙기자. 인연을 수단으로 대하고 관리하려 들지 말자. 내 마음이 이끄는 사람과 진정성을 담은 교류를 하자. ― Max Han과 수업 시간에 짧게 나눈 대화에서.

나 잘하고 있어?

“나 잘하고 있어?”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일을 시작하고 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도 사람에 대한 또 사람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신경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강유원이 말했듯,「‘남이 날 알아주고 있다’는 느낌. 이게 독약이다, 스쳐도 죽는....」강유원은 ‘철학하는 이’로서 이런 말을 했지만, 내가 보기에 … 나 잘하고 있어? 계속 읽기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

어쩌면 이별의 순간은 생각보다 일찍, 준비없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미리미리 준비해놓지 않으면 분명 후회하게 되겠지.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닐테니까. 분명히 다시 만날테니까. 그 믿음으로 위안을 삼아야 한다.아쉬움에 허덕이며,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지 말 것.

흘려버린 말에 대한 후회

어떻게든 말은 해야겠고, 그래서 별 뜻도 없는 말을, 그저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그렇게 내버려둔 적이 있었다. 만약 그 때, 흘러나오던 그 말들에 조금이라도 더 진심과 진정성을 담았더라면… 부디 조금 버벅거리더라도, 또 오래 걸리더라도 숙고의 시간을 거쳐 말했더라면… 보다 많은 것들이 달라져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