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이라도 좋다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 (도다 세이지, 2006)

어제 기숙사에 도착해서, 다시 한 번 읽었다. 에피소드 별로 몇 번 더 읽기도 했다. 시험기간 내내 기다렸는데 아마 시험기간 도중에 배송되었더라면 시험준비를 등한시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작가는 그림체가 유려한 것은 아니지만, 인물의 감정표현에 능숙하다. 그리고 간결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수준급이다. 그 정점에「인생」이라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상한 꿈을 꾸었다.
「이것이 당신의 인생입니다.」
“…그냥 양파 같은데요.”
「껍질 한 겹이 나이 한 살입니다.」
“…….”
“알맹이가 없는데요….”
「그런 거에요.」
“게다가”
“눈물이 멈추질 않아요.”
「그게 바로 인생이에요.」

단편적으로만 보면, 작가는 마치 인간의 삶이란 별 볼일 없는 것이고 무의미한 것이라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책 제목에서 드러나듯, 도다 세이지의 작품 전반에는 ‘이 지독한 삶’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녹아있다.

다른 에피소드들도 좋지만, 나는 특히 두 번째 장―한 페이지짜리 일상―을 좋아한다. 위의 「인생」도 두 번째 장에 포함되어 있다.

기나긴 폭풍우를 피해 방주에 탔다.
신께서 말했다.
「대충 4, 5명이 한 조가 되거라.」
「여기는 이 4명이 한 조다.」
억지로 묶인 사람들이므로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해하려고는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약간은 행복해질 것이다.

위는 역시 같은 장에 포함되어 있는 「가족」이다.

또 다른 에피소드(「검둥이와 걷다」)에서는 이혼한 아버지가 딸에게 “가족은 그냥 저절로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했어.”라고 실토하는 장면이 나온다. 감정 과잉이 아니라서 좋다. 그저 담담하게 말해도 오랜 여운으로 남을 수 있다. ‘화자가 흥분하면 독자는 싸늘해지는 법’이니까 말이다.

시험

시험기간이 ‘심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결과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결과야 아무래도 상관없다면, 이렇게 원없이 읽고/쓰고/외우고/정리할 수 있는 시간들이 괴롭게 다가올리 없다.

시험에 앞서 결과를 걱정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시험 문제라는 것들이 ‘대체로’ 평소 수업 논의에의 참여와는 무관하게 출제되기 때문이다. ‘수업은 수업이고, 시험은 시험’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결국 ‘평소에 어떻게 살았느냐’ 보다 시험 앞 며칠을 ‘어떻게 요령껏 보내느냐’가 평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매우 하찮게 보이는 바로 그 시험을 통해서 ‘점수’는 매겨진다. 그리고 이렇게 매겨진 점수는 지겹도록 쫓아다닌다. ‘평가’가 주는 기본적인 거부감을 넘어, 시험이 여러가지로 짜증이 대상이 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런지.

바쁨

야망으로 가득찬 젊은이에게 바쁨은 권장사항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쁘다.”는 말에 “너도 알다시피 바쁘지 않은 것보다 낫다.”는 답을 해주는 친구가 늘어간다는 것은 조금은 슬픈 일이고 그 답에 “물론, 그렇지만…” 대꾸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조금은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체질적으로 ‘바쁨’을 즐기지만, 그 바쁨 때문에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쏟을 수 없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시험기간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을 시험 공부에 투자했지만 정직한 시험 문제 덕분에 답안을 쓸 수는 있었다. 종종 변별력(?)을 위한답시고 치사하게 chronology 따위를 외우게 하는 과목들이 있는데 비하면 매우 모범적이라 하겠다. 결과야 어찌되었건, 일단은 한 과목 해치운 것에 만족한다. 결과야 어찌되었건.

수요일 시험에 도움이 될까 싶어 Kymlicka의 책을 읽고 있는데, 의외로 재밌다. 또 매우 잘 정리되어있다. 준비하는데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험 대비하여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재미있다는 것이 바로 思想 과목의 매력이다. 시험 기간에는 굳이 앞으로의 공부에 필요해서 암기한다기 보다, “혹시 이 부분이 시험에 나올까” 싶은 조바심으로 반복 암기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사상 시험의 준비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도 또한 매력이다.

비 한 번 오고, 기온이 확 떨어졌다. 어제 6층에서 공부하다가 발가락 끝에서 냉기가 느껴지길래 얼른 내려와서 양말을 꺼내신었더랬다. 새벽까지 읽고 쓰고, 잠도 몇 시간 못 잔 탓인지 감기 기운이 마구 올려온다. 눈이 침침하고 머리도 지끈거린다. 주어진 적은 시간 내에 집중해서 중간 시험을 준비하려니, 자연히 따라오는 벼락치기 증후군들. 내일은 시험도 없으니 오늘은 컨디션 조절하는 셈치고 일찍 자야겠다.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쓰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

일을 할래도, 뭘 할래도 결국에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인연을 소중히 하자. 모든 사람과 친밀감을 쌓으려는 욕심을 버리자. 나의 진심이 이끄는 ‘내 사람’들을 더욱 각별히 챙기자. 인연을 수단으로 대하고 관리하려 들지 말자. 내 마음이 이끄는 사람과 진정성을 담은 교류를 하자.

― Max Han과 수업 시간에 짧게 나눈 대화에서.

나 잘하고 있어?

“나 잘하고 있어?”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일을 시작하고 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도 사람에 대한 또 사람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신경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강유원이 말했듯,「‘남이 날 알아주고 있다’는 느낌. 이게 독약이다, 스쳐도 죽는….」강유원은 ‘철학하는 이’로서 이런 말을 했지만, 내가 보기에 이 말은 공부에선 일에서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

어쩌면 이별의 순간은 생각보다 일찍, 준비없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미리미리 준비해놓지 않으면 분명 후회하게 되겠지.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닐테니까. 분명히 다시 만날테니까. 그 믿음으로 위안을 삼아야 한다.

아쉬움에 허덕이며,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지 말 것.

흘려버린 말에 대한 후회

어떻게든 말은 해야겠고, 그래서 별 뜻도 없는 말을, 그저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그렇게 내버려둔 적이 있었다. 만약 그 때, 흘러나오던 그 말들에 조금이라도 더 진심과 진정성을 담았더라면… 부디 조금 버벅거리더라도, 또 오래 걸리더라도 숙고의 시간을 거쳐 말했더라면… 보다 많은 것들이 달라져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