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3

믿음 1
믿음 2

‘믿을 건 자신밖에 없다.’라고 생각한다. 이 말이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와 늘 같은 뜻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눈앞에 닥쳐온 심판의 순간은 언제나 불안과 함께 한다. 이 지독한 불안 속에서 의연해지려면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할까. 부적? 점괘? 신? 하지만, 신은 가혹하게도 인간의 노력이 다 한(盡) 곳에서만이 그 영험함을 내비친다고 한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절체절명의 상황에선 오직 ‘자신’을 믿을 수밖에…. ‘자신’이 흘렸던 지난날의 땀을 믿을 수밖에!

신뢰

‘하겠다고 말한 것은 반드시 하는 것’, 그것이 신뢰이다.

제안을 수락하고 언약을 함에 있어서는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할 수 있는 일인지, 가치 있는 일인지, 관계에 있어 중요한 일인지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하겠다고 한 일을 못하게 되었을 때, 그 즉시 연락을 취해야 한다. 연락이 늦어진다면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물론 관계에서의 감정 문제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신(修身)

하루 또 하루, 수도승이 되어가는 기분. 정신의 고요한 상승과 육체의 점진적인 강화.

아버지가 즐겨 쓰는 말이거니와 엄연히 가훈이기도 한 ‘수신(修身)’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젠 알 것 같다.

예전엔 막연히, “아, 절차탁마(切磋琢磨)하란 소리구나.”했다.

틀린 이해는 아니었지만, 그것은 마치 삶의 방법을 묻는 아이에게 그저 “열심히 살면 돼!”라고 말해주는 것과 다름 없는 수준이었다.

사실 그 이상 말해주는 것도 힘든 일이다.

결국, ‘정신과 육체를 고양시키매, ‘무엇’을 열심히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경험으로 체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휴식에 대하여

어제 일요일, 나는 나에게 휴식을 제안했다. 항상 뒤 마려운 찝찝한 휴식을 취하던 나는 흔쾌히 이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어제 하루 종일 편하게 먹고 자고 놀며 쉴 수 있었다. 일말의 찝찝함도 없이 말이다.

우리는 쉽게 ‘좋은 일도 계속 하면 질릴 것’이라는 한계 효용과 희소 가치를 얘기한다. 하지만 그것은 빈도의 문제가 아니라 농도, 밀도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주’ 또는 ‘적게’는 애시당초 관건이 아니다. 3일에 한 번 휴식을 갖는다 하더라도, 앞서의 3일을 짙게 또 빽빽하게 보냈다면 충분히 마음 편한 휴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예전의 휴식은 대부분 ‘나태’의 다른 이름으로서 휴식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정신적, 신체적 재충전이라기 보다 무기력의 재생산, 배가였다. 침전으로의 레일을 움직이는 톱니바퀴의 첫번째 이빨이었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관대하지 말 것. 휴식은 몸 뿐만 아니라 마음 역시 납득할 수 있을 때, 취하는 것이 가장 좋다.